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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Buffalo Daughter - New Rock

버팔로 도터는 시부야계 시절 명멸했던 밴드 중 하나입니다만, 플리퍼즈 기타나 피치카토 파이브 같은 시부야계의 전형과는 좀 다른 괴팍한 음악을 하는 밴드입니다. 음... 개인적으로는 코넬리우스의 후기작들이 이들과 비슷한 노선을 타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방가르드적 노이즈와 기타 록, Funk, 버블검 팝, 턴테이블 스크래치, 크라프트베르크이나 스테레오랩식 빈티지 신시사이저, 일렉트로닉이 상당히 특이한 비율로 섞여있는 음악을 하는 뮤지션입니다.

뭔가 해외 진출이 참 어정쩡한 느낌으로 되었다 말았다 한 밴드가 되긴 했지만 첫 음반 두 장은 해외 시장에서 나름 지지를 얻었고 지금 들어도 상당히 괜찮습니다. 일뽕이 가미된 90년대식 쿨한 인디 팝/로큰롤을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들어도 괜찮을 앨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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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31

졸업 날짜가 정해졌습니다. 근데 취직 자리는 결정이 안 났네요 하하.

...앞날이 캄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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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onard Cohen - So Long, Marianne

마리안느 옹도 안녕히. 코헨 옹도 안녕히.

뒤늦었지만 그동안 좋은 음악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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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의 총성 [The Shooting] (1966)

2016/12/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

[복수의 총성]에서 주인공 윌렛은 모래에 흔적을 남기면서 등장한다. 길을 잃지 않으려고 주의하는 그의 모습은 그러나 [복수의 총성]에서는 무의미한 행동이라 할 수 있다 윌렛이 친구 콜리를 만나는 순간 [복수의 총성]은 미스터리로 윌렛을 포박하기 때문이다. 공포에 떨고 있는 콜리는 윌렛에게 그들의 동료인 코인이 누군가를 쏴 죽였으며, 코인이 떠난 뒤 리랜드가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총에 맞아 죽었다고 말한다. 앞 뒤를 살펴보면 원한에 기반한 복수인게 분명하지만, 대체 누가 리랜드를 쏴죽였단 말인가?

이 의문은 [복수의 총성]을 진행시키는 중요한 동력이다. [바람 속의 질주]가 그렇듯이 몬테 헬만은 주인공들을 설명되지 않은 카오스로 밀어넣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다만 [바람 속의 질주]가 대항할 수 없는 구조가 만들어낸 부조리와 무기력함으로 주인공들을 밀어넣었다면, [복수의 총성]은 광기에 가까운 집념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가 윌렛과 콜리를 잡아끈다. 이 미스터리를 이끄는 주체가 여성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바람 속의 질주]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소녀 애비게일를 연기했던 밀리 퍼킨스가 다시 맡은) 이름 없는 여자는 윌렛과 콜리에게 킹스턴으로 데려달라고 말하지만, 곧 윌렛은 이 여자가 다른 목표가 있다는걸 알게 된다.

먼저 윌렛을 보자. 윌렛은 별다른 사건이 일어나지 않길 바라는 소시민적 카우보이이다. 윌렛과 여자의 대화에서 윌렛이 한땐 현상금 사냥꾼이였지만 지금은 소시민적인 삶을 누리길 원하는 인물이라는게 밝혀진다. 난폭하게 사람을 쏴죽이고 도망가버린 윌렛의 형과는 대조된다. 윌렛은 여자에게 적당한 보수를 받고 헤어지길 원한다. 반대로 여자는 현실감각이 다소 떨어지고 집요하고 막무가내로 자신의 목적을 이루고자 하는 캐릭터로 그려지는데, 때문에 윌렛과 여자 간에는 불편한 긴장이 흐르게 된다. 윌렛은 여자가 어떤걸 원하는지 집요하게 의심하고 여자는 그를 도구로 쓰면서도 그의 의심에 짜증을 낸다.

반대로 콜리는 미성숙한 소년이다. 콜리는 여자를 보는 순간 홀딱 빠지게 되는데, 이는 그가 소년다운 아직 위험과 무법의 세계에 대한 동경심을 버리지 못했다는걸 보여준다. 그가 미성숙한 남성이라는건 여자에게 이름을 붙이려고 하다가 떠올리지 못하고 엄마의 이름을 붙이려고 하는 장면에서도 잘 드러난다. 그런데 각본을 맡은 캐롤 이스트먼이 여성이라는걸 생각해보면 뒤이어 이어지는 여자의 거절은 재미있는 구석이 있다. 한마디로 이 여자는 모성으로 환원되는걸 매몰차게 거절한다. "그(콜리)는 내가 보는 걸 보지 못해요"라는 대사는 이스트먼과 헬만이 콜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잘 드러내는 대사라 본다.

영화는 여자가 복수하려고 하는 대상이 누군지 결말 전까지 보여주지도, 설명하지도 않기 때문에 대체 왜 여자가 집요하게 복수를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없다. 심지어 영화의 결말이 나오고 난 뒤에도 여자가 그 복수극에 어떻게 얽혀있는지 설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여자와 빌리의 집요한 집념은 불가해한 경지까지 이르게 된다. 여자를 향한 "당신은 우리 모두를 죽음으로 안내할 게야 자신 마저도 말이오."라는 윌렛은 대사는 영화의 정곡을 찌르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 대사는 후술한 연출하고도 맞닿아있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엔 잭 니콜슨이 연기한 빌리 스피어스가 끼어든다. 빌리가 끼어들면서 [복수의 총성]은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바람 속의 질주]에서 잭 니콜슨이 연기한 번은 반항아이긴 했지만 그 속내를 이해하기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복수의 총성]에서 니콜슨이 연기한 빌리는 도무지 속내를 읽을 수 없는 공격성으로 가득차 있다. 심지어 그의 등장은 숨어있다가 눈치챈 윌렛이 나타나라고 도발하면서 이뤄진다. 윌렛은 그 공격성과 알수 없는 모호함을 읽어내지만 콜리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어설프게 반항하다가 파국으로 이어진다.

빌리가 등장하면서 [복수의 총성]은 표면적 의도 아래에 있는 가학적이고 불온한 흐름으로 인물들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인물의 감성은 바가지를 긁는 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사막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부터 시작해 광활하지만 죽음의 이미지로 가득한 사막만이 의미없는 인물들의 대화를 보조할 뿐이다. 몬테 헬만은 서부극의 대가들이 그랬듯이, 자연 풍광에서 영화적 매력을 이끌어낼줄 아는 감독인데 그의 세계에서 자연은 인물의 실존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쓰이고 있다. [바람 속의 질주]에서 돌멩이가 푸석한 흙먼지 산이 고립된 인물들을 강조했다면 [복수의 총성]에서 주변 풍경은 점점 삭막해지고 신경을 긁는듯한 인물 간의 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이런 과정 속에서 서부극의 언어는 산산조각난다. 복수를 하려던 콜리의 죽음이라던가 빌리와 윌렛의 다툼은 서부극적 전통에서 기반해있지만, 이 장면들엔 메마른 악독함이 줄줄 배어나고 있다. 안소니 만의 [서부의 사나이]에서 링크와 콜리가 몸싸움을 벌이다가 링크가 콜리를 죽이고 전율하는 장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할까. 물론 각본 뿐만이 아니라 촬영 당시 헬만과 워렌 오츠, 니콜슨 사이에 있었던 충돌이 그런 악독함을 강조하고 있는듯 하다.

[바람 속의 질주]가 샷과 컷의 변화가 평이하고 단조로운 대신, 무드를 비틀어놓는 타입의 영화라면, [복수의 총성]은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샷과 컷을 제정상으로 밀고 간다. 다시 리랜드가 죽을 당시를 보여주는 시퀀스의 연출을 돌아가보자. 콜리의 플래시백으로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아무런 대사가 없다. 그런데 리랜드가 누구랑 대화하다가 총에 맞아 죽는 장면의 시점 연출은 좀 이상하다. 콜리의 회고에 따르면 총격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콜리는 텐트에 누워 바깥에 있는 리랜드랑 눈을 마주치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헬만이 이 장면을 보여주면서 콜리의 시점으로 보여주는 것 자체는 그리 이상하진 않다.

이상한 것은 그 다음 경악에 찬 눈빛으로 쓰러지는 리랜드를 보여주는 샷이다. 이 샷이 이상한 이유는, 지금까지 콜리의 시점이라 못 박아둔 샷 다음에 거리상으로 불가능한 풀 샷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몽타쥬 배치상 이 샷이 콜리의 주관적인 샷의 연장선상이라는건 명백하다. 이 샷이 이상하고 낯선 이유는 죽음의 순간이 갑자기 유보되어 정지한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정지된 샷에 담긴 리랜드의 얼굴은 공포와 경악에 질러있다. 헬만은 이를 통해 콜리가 왜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는지 설명한다. 콜리는 리랜드가 맞이한 이해할수 없는 죽음이 언제든지 자신을 덮칠수 있다는 공포가 그 순간 콜리를 사로잡은 것이다. 재미있는건 다음날 윌렛은 그 자리에 우연히 비슷한 자세로 앉을 뻔했다는 것이다.

사소한 설정이지만 영화의 결말에 나오는 반전은 이 사소한 설정을 다시 재고하게 된다. [복수의 총성]의 결말은 정말 난해하고 당혹스럽고, 매우 인상적이다. 마침내 여자가 복수 대상을 찾았다고 총을 들고 달려가고 여자를 쫓아간 윌렛은 여자의 복수 대상이 자신의 형제인 코인라는걸 알게 된다. 그런데 여기서 몬티 헬만은 윌렛을 맡은 워렌 오츠를 코인으로 기용해 슬로우 모션을 이용한 클로즈 업 샷으로 그의 죽음을 처리해버린다. 그리고 그 뒤에 헬만은 좀비처럼 살아와 걸어오는 빌리를 롱 샷으로 보여주면서 영화를 끝내버린다. 

이는 로저 코먼 밑에서 영화 경력을 시작한 헬만 특유의 B 무비의 뻔뻔함이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정교하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헬만은 배우 캐스팅비를 아껴야 하는 제작 여건을 주인공 형제 역에 주인공 배우를 캐스팅해 뻔뻔하게 돌파하지만, 동시에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고 있다. [복수의 총성]은 서부의 야만성을 신화적인 제의를 통해 비추는 영화다. 가장 중요한 단서로는 여자는 윌렛을 보면서 당신은 광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 통해 윌렛의 과거 역시 그리 깨끗하지 않았음은 충분히 예측 가능하다. 그렇다면 형제로 설정된 코인은 윌렛의 이면이라 볼 수 있을것이다. 실제로 영화가 진행될수록 윌렛은 코인처럼 점점 거칠고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이처럼 헬만과 이스트먼은 코인의 야만성은 윌렛에게도 있었던 것이며, 또한 서부 그 자체라 보고 있다. 일견 모호해보였던 여자의 캐릭터 역시 무법자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부의 야만성에 복수하려고 하는, 가해자가 된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술했지만 여자가 사건의 휘말린 계기는 끝끝내 설명되지 않기에, 여자의 복수심은 당위성이 있다기 보다는 막연하고 불가해한 영역으로 남겨진다. 그렇기에 모성을 거부하고 복수에 나선 여자 역시 코인과 다를게 없어진다. 아예 초자연적 재해같은 빌리는 말할것도 없다. 헬만은 그 야만성이 이끄는 신화적 제의의 끝을 '죽음'이라 본다. 리랜드의 죽음을 강조한 이유도 그 죽음의 순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코인의 죽음은 리랜드의 죽음처럼 영원히 정지한듯한 슬로 모션 샷으로 보여진다. 헬만은 죽음로 대표하는 파국의 절정을 박제한 뒤 야만의 화신인 빌리가 부활해 다가오는걸로 영화를 끝내버린다. 이 결말이 두려운 이유는, 화법의 낯섬도 있지만 헬만의 태도엔 그 이후를 전혀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은 건 죽여도 죽지 않는 악마와 같은 빌리가 곧 가져올 궁극적인 파국이다. 묵시록적인 비전이라 할 수 있겠다. [복수의 총성]은 그렇기에 정통 서부극에서 그려왔던 신화의 이면과 그것이 파괴되는 과정을 이상하게 그려내고 있는 독특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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ムーンライダーズ - 青空のマリー

작년 6월쯤에 문라이더즈의 [青空百景] 앨범을 샀더랩니다. 저야 스즈키 케이이치의 음악 세계는 잘 몰랐고 문라이더즈가 그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단초가 되는 밴드라 들어서 사전 정보 없이 샀습니다. (찾아보니 문라이더즈 입문작으로도 추천이 많이나오는 앨범이기도 하더라고요. 나머지는 [카메라=만년필] 앨범.) 뭐 스즈키 케이이치가 있었던 하치미츠파이가 핫피 엔도식 일본 포크 록을 해서 적당히 오오타키 에이치 같은 시티팝 튠을 하는 밴드인가- 싶었죠.

막상 들어보니 시티팝 영향도 있긴 하지만... 음 XTC 영향력이 생각보다 강하더라고요. 비치 보이스의 [Love You] 시절 아날로그 신스팝하고 XTC식 개성파 뉴웨이브, 시티팝 성분이 뒤섞인 앨범입니다. 그리고 스즈키 케이이치 비중이 의외로 절대적이지 않은 민주적인 체제의 밴드입니다. 시라이 요시아키, 스즈키 히로부미, 카시부치 테츠로, 오카다 토오루 같은 다른 멤버 참여율이 높아요. 이 중 카시부치 테츠로랑 오카다 토오루, 타케가와 마사루는 하치미츠 파이에서 넘어온 사람들입니다.

일웹에서 정보를 찾아보니 당시엔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았던 밴드라고 하더라고요. 서던 올 스타즈 같은 유명한 밴드에 비하면 좀 컬트적인 위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거와 반대로 일본 뮤지션 내 지지는 절대적이더라고요. 카네이션과 폴리식스의 하야시 요스케가 이 앨범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는 회고가 있으니깐요. 하긴 이런 사운드는 당대 영미권에서도 여러모로 최전선이긴 했습니다. 이런 점도 XTC를 닮았습니다.

사실 제가 이 앨범에서 엄청 좋아하는 곡은 '僕はスーパーフライ'라던가 'O・K,パ・ド・ドゥ'이긴 합니다만 이건 유튜브에 없어서.... 뭐 지금 올린 '청공의 마리'는 아마 이 앨범에서 가장 유명한 곡이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법사에게 소중한 것 ~여름의 하늘~]에도 커버되었을 정도니깐요. 맑게 쟁글거리는 기타와 관악기, 신스 사운드가 1980년대 중후반 일본식 컬리지 록을 연상케하는 구석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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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손자 베스트 [Great Patrioteers] (2016)

[우리 손자 베스트]가 처음 공개되었을때,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소수의 호평 사이에 대다수의 거부감으로 나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사람들의 패악질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개빻은 한남"인 어버이연합과 일베 이용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는 흥행 실패였다.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정녕 그렇게 단순하게 내쳐야 하는 영화인가? 이 영화에 대한 비판들을 읽으면서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현실을 반영했다고, 자동적으로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 믿음은 루카치의 순진한 믿음이나 다름없기도 하니깐.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놀라운 점은 그동안 [잉투기]나 [불청객]처럼 디씨 문화권에 있는 영화들이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제거되었던 불경함과 천박함을 (그게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고 돌파하려는 정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런 돌파가 성공적이였나는 비판은 가할 수 있겠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돌파한 길은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던 영화다.

초반부에서 모두가 혐오를 표한 장면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교환이 피씨방에 들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다가 옆자리에서 백남기 시위 영상을 보는 남자를 발견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의 김상현 성우 목소리와 합성한 결과물을 화면 위에 크게 틀어놓는 장면 말이다. 나 역시 이 장면을 보면서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다른 평론가들도 지적했지만 이 장면은 게임의 유희가 현실의 무거움을 희화화시켰기 때문이다. 디제시스 바깥에 덧붙여진 김상현 성우의 목소리는 디제시스 안 영상에 담긴 현실의 폭력성을 무화시키고 현실의 시공간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소환사의 협곡과 같은 하나의 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당연히 정상적인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면 혐오감을 표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장면이 없었다면 [우리 손자 베스트]가 지금과 같은 강력함을 지닐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장면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 손자 베스트]가 강력한 주관적인 세계로 진입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주관의 세계는 민주화를 모욕으로 사용하는 일베/디씨의 세계기도 하며, 어버이연합의 세계기도 하다. 포챈이나 디씨, 2채널로 대표되는 이 세계는 유희의 감각으로 모든 심각한 사건을 일그러트리고  자신의 왜곡된 신념에 따라 이미지를 조작하고 퍼트린다. 합필갤과 무수히 널려있는 노알라 짤과 고인 모독적인 짤들을 떠올려보라. 그 짤들은 기본적으로 '조롱'과 '유희'를 무장하고, 사회가 합의한 가치를 훼손하면서 현실의 가치를 흔드려고 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그런 짤들이 가지고 있는 '클로즈 업의 폭력성'을 차용해 첫 시퀀스를 구성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지아장커의 [세계]의 가짜 랜드마크 공원처럼 왜곡된 시뮬라크르로 넘쳐나는 세계다.

그렇기에 [우리 손자 베스트]는 자신만만한 합성 몽타쥬를 지난 이후로는 클로즈 업 대신 풀 샷을 쓰면서 그들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가 내세우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발기불능'이다.  먼저 교환을 살펴보자. 그는 섹스에 환장하지만 정작 제대로 섹스를 하지 못한다. 야동이 백그라운드로 깔리면서 여성기 짤을 찾아 합성하는 장면이라던가 잠자고 있는 여동생의 팬티를 찍어 올린다던가, 우연히 만난 여자랑 섹스를 하다가 야동 신음 소리를 흉내내는 장면에서 감독은 교환의 세계가 열화복제된 시뮬라크르로 가득차 있으며, 그에게 '섹스'와 '오르가즘'은 타인과 절대로 함께 할 수 없고 오로지 차용하고 왜곡해야만 누릴 수 있는 행위라는 걸 보여준다.

교환이 어머니가 다른 남자랑 섹스하는 장면을 훔쳐본 뒤, 근친상간적인 상상을 하는 장면은 불쾌하지만 문제의식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교환은 어머니의 욕망 이미지를 왜곡해 자신을 그 위치에 '배치'하는 것으로 왜곡된 성욕을 충족시킨다. 김상현 성우의 목소리가 백남기 시위 장면에 덧붙여지면서 타인의 죽음을 협곡의 전투로 만든것처럼 교환은 타인의 섹스 장면에 자신을 '편집'해 집어넣는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욕망은 교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다. 그 장면에 어머니가 아니라 모르는 여자와 아버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환 자신의 '자위'다.

이렇기에 교환이 그 왜곡된 편집과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행위로 넘어가면 초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그는 테러를 결심하면서도 먼저 온 사람에게 선수치기를 당하며, 그나마 행한 납치 역시 후술하겠지만 우스꽝스럽게 끝난다.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상대 티파니는 전화 너머 영어를 쓰며, 만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당연히 그는 티파니를 찾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한남충"이기에 자신보다 약한 박카스 할머니에게 욕과 폭력을 휘두르는 것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숙희에게 화를 낸 이유도, 약자에 대한 본능적 혐오과 더불어 자신의 자위라는 마지막 보루를 숙희가 마음대로 침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감독은 벌거벗은채 성기만을 가린 교환을 찍은 뒤 킬킬거리며 사라지는 여성과 교환이 자기 성기를 빨려는 행위를 통해 교환의 발기불능과 초라한 남근을 강조한다.

교환이 정수에게 끌리는 이유도 정수가 교환과 달리 실제적인 폭력을 휘두를줄 아는 틀딱 어버이 연합이기 때문이다. 정수가 교환의 카메라 렌즈를 부러트리는 장면은 분명한 남근의 메타포다. 즉 교환은 자신의 남근을 부러트린 정수에게 발기 가능성과 자신의 수컷성을 회복할 롤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정수의 모습은 교환의 파탄난 가족을 대체할 강력한 가부장상이기도 하다. 교환의 아버지가 운동권 세대이면서도 가정에 무력하며 나아가 아예 가족 해체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모양새를 보이는것과 대조된다. 일련의 매우 유아적인 발상이기에 그들이 만난 후 일련의 조우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 흘러가는건 영화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영화는 정수 역시 교환과 다를바 없다는 것도 폭로한다. 정수가 집착하는 남근은 국가 유공자 메달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정수는 국가 유공자 메달을 받지 못하고, 자랑하려고 데려온 진짜 손자는 짜증내며 사라진다. 정수의 이런 모습은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 보여주는 발기불능성은 국가와 파시즘의 문제로 확장된다. 교환이 넘쳐흐르는 자극적인 시뮬라크르에 목을 매며 현실을 왜곡한다면, 정수는 파시즘 국가의 인정에 목을 매며 현실을 왜곡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만남과 친목은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절박해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들이 절박하고 슬퍼보이는 이유는, 이미 영화 안에서 답이 제시됨에도 그걸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초장에 프레임 가득히 채워진 일베/디씨 언어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시뮬라크르가 가지고 있는 저열한 폭력성을 돌파할 방책을 서사 내에서 제시하고 있다. 김수현 감독은 서브플롯에서 김상현 성우를 본인 역으로 출연시킨다. 이 순간 [우리 손자 베스트]는 메타적인 요소를 함유하게 된다. 한국 리버럴을 상징하는 김상현 성우가 등장하면서 초반부의 파괴되고 모독된 성우의 목소리는 분명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  그 점에서 상현이 교환을 경찰서에서 불러내 교환에게 써내린 댓글을 스스로 읽게 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고 기묘한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기 기묘한 통쾌함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교환의 납치 실패극으로 이어진다. 교환은 납치해온 상현에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메시지를 읽도록 협박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화면 가득히 덜렁거리는" 파시즘 시뮬라크르와 맹신하며, 그 시뮬라크르의 재료를 제공한 현실의 인물이 자신 아래 굴종하도록 협박하는 셈이다.  하지만 상현은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직후 상현은 교환에게 반격해 자신이 했던 행위를 다시 돌려준다.

당연한 일인게, 상현에게 교환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현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우아하고 신랄하게 교환과 교환으로 대표되는 일베충들의 발기불능성을 확인시켜준다. 어찌보면 성우의 목소리만을 시뮬라크르로 포섭하려는 짝퉁 파시스트를 향한 육신을 지닌 성우 자신의 유물론적인 반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 손자 베스트]는 연대와 신념, 사랑을 추구하는 가치가 어째서 '대안 현실'이니 '위선'이니 같은 공격에도 왜 쉬이 꺾이지 않는지 독특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상현 뿐만이 아니라 [우리 손자 베스트]의 여성 캐릭터들은 발기 불능된 남성들과 달리 최소한 긍지를 지키고 있다. [우리 손자 베스트]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긍지를 하나씩 꺼내보인다. 그건 교환의 어머니처럼 성적 대상화와 딸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새드 베케이션]의 치요코를 연상케하는 소름끼칠정도로 순수한 모성애이기도 하며, 교환의 여동생 미선이나 티파니처럼 어떤 가치로도 재단되지 않는, 주체적인 에너지와 욕망을 지니며 살아가는 현대 한국 여성의 초상이기도 한다. 그 캐릭터성에 대해 비판할 점이 없다는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 손자 베스트] 내에서 그들은 정수와 교환처럼 긍지를 잃거나 추잡해지지 않는다. 

이 여성들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여성은 숙희다. 박카스 아줌마인 숙희는 정수에게 학대당하고 교환에게도 뺨을 맞으며 욕을 듣는 밑바닥 여성이다. 하지만 숙희는 절망하지 않으며 계속 살아간다. 정작 정수와 교환이 발기불능성에 우울해하는 동안, 숙희는 자신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에게 고백을 듣고, 그와 함께 일생을 같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잡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정수의 반응은 욕설과 폭력이다. 그 장면 이후 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모멸받은채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정수와 교환과 달리, 서사 내에서 관계의 가능성을 확인받았으며 정수의 폭력이나 욕설과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지속해 갈 것이다. 그렇기에 직전 할아버지의 대사는 사무친다. "우리 평생 패배자로 살았잖습니까. 남은 일생이라도 승자로 살아가봅시다."

하지만 정수와 교환은 그런 승리 방법을 승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을 모욕하며 클라이맥스에 돌입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이 순간부터 갑자기 샷 간의 인과관계가 흐트러지며, 추상적인 결말로 달려간다. 정말로 정수는 암에 걸린 것일까? 교환은 정수를 죽인 것일까? 여기에 대답은 없다. 마지막에 남은건 우스꽝스러운 형식으로 자신의 죽음마저도 시뮬라크르로 교체한 정수와, '내가 찾은 팩트는 바로 나다.'라고 말하며 광장에서 어설프게 춤추는 교환의 풀 샷이다. 

이 결말에 이르면 영화는 다소 주저하고 있다는게 보인다. 김수현 감독은 이들이 어디로 갈지 확신하지 못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이 결말엔 모종의 아이러니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영화 내내 추구한 왜곡된 시뮬라크르로 가득찬 소극笑劇과 그 소극 속에서 피워낸 관계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무의미했고 또한 절실하고 간절했다. 그들은 끝내 숙희나 상현처럼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낸 시뮬라크르를 뛰어넘어버렸다. [우리 손자 베스트]라는 제목은 그 점에서 그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제목엔 일간 베스트를 연상케 하는 왜곡된 가치관과 신념이지만, 동시에 정말로 '우리' '손자' '베스트'라는 칭찬을 담고 있다. 그런 칭찬 속에서도 일베충 교환은 여전히 왜소하고 작은 성기를 연상케하는 프레임 속에서 어설프게 춤춘다. 교환은 주어진 발기불능성을 딛고 정말로 행복해질수 있을까?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 등장하는 교환이 일베충의 모든 모습은 아닐것이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일어난, (김상현 성우의 후배 성우가 겪었던) 끔찍한 사태와 집단 광기는 교환 앞에서 먼저 테러를 벌였던 또다른 일베충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나저나 사회정의를 외친다고 밥줄을 끊는다던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라는 영화 속 김상현의 대사가 현실에서도 정말로 일어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영화 역시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의 언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그 질문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 자신이 믿는 긍지라는 가치를 답으로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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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7

-일단 땜빵.


-요사이엔 일찍 잠 못드는 습관이 생겨서 죽을 맛입니다. 아무리 피곤해도 침대에 누우면 잠이 잘 안 와요....


-나이가 들수록 좋아하고 사랑하는건 자꾸만 사라지고 좋지 않은 것이나 져야할 의무만 계속 느는 느낌입니다. 이 블로그가 20주년을 맞이하면 그 사이에 전 또 많은걸 잃게 되겠죠.


-그런데 별로 어른은 된 것 같진 않고 참 씁쓸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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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irport Convention - Million Dollar Bash

갓뮤지션과 갓밴드가 지하실에서 만든 갓곡의 갓밴드의 커버.... 싫어하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진짜로. (엄근진

근데 썩을 밥 딜런과 소니 뮤직.... 밥 딜런과 더 밴드 버전은 왜 안 풀어놓는거야! 노벨문학상 받았으니 까짓거 화끈하게 유튜브 저작권 풀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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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나잇 스페셜 [Midnight Special] (2016)

2013/05/10 - [Deeper Into Movie/리뷰] - 테이크 쉘터 [Take Shelter] (2012)

2013/12/04 - [Deeper Into Movie/리뷰] - 머드 [Mud] (2012)

제프 니콜스의 SF라는 얘기를 들었을때, [미드나잇 스페셜]이 어떤 영화가 될지 조금 상상이 안 가긴 했다. 2007년 [샷건 스토리즈]에서 출발한 제프 니콜스는 기본적으로 지역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카와세 나오미나 스와 노부히로, 아오야마 신지처럼 어떤 지역을 떠나면 성립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니콜스는 테렌스 맬릭이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같은 희귀한 사례를 제외하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미국 중남부 서민-화이트 트래시들의 삶에 애정을 느끼고 거기서 출발한다. (심지어 아칸소는 맬릭이나 링클레이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영역이다.) 아칸소 백인 하층민들을 소재로 삼았던 [샷건 스토리즈]와 [머드]. 오하이오와 버지니아라는 남부라는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곳에서 영화를 만든 [테이크 쉘터]와 리뷰 예정인 [러빙]...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영화는 영화 언어에 미처 포섭되지 않았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그 점에서 제프 니콜스는 동시대 감독 중에서도 미국에서만 성립 가능한,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장르의 세계에 들어선다니 기대와 걱정이 앞설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드나잇 스페셜]은 생각보다 멀리가지 않았지만 상당히 넓어진 영화다. [미드나잇 스페셜]의 배경인 루이지애나 주는 전작들과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나 연출 면에서 니콜스는 장 르누아르부터 시작해 테렌스 맬릭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자연주의 영화의 전통과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카펜터 같은 장르 영화의 거장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즉 지역 영화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을 품고 탈지역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전작을 보지 못했거나 평범한 관객들이라면 [미드나잇 스페셜]에서 장르로 대표되는 탈지역적 요소를 먼저 발견하고 심심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미드나잇 스페셜]이 다루고 있는 장르적인 요소들은 너무나 구닥다리기 때문이다. 아니 시대가 언제인데 [E.T.]나 [스타맨]에 기독교 구세주 SF 설화를 도입하나? 비주얼은 왜 이렇게 안 멋져? 모름지기 SF 영화란 삐까번쩍 해야지! 이런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극히 논리적인 선택이다. 상술했듯이 니콜스는 아직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떠날 생각이 없이, 자신의 땅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즉 장르를 생각하고 지역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지역에서 장르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드나잇 스페셜]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를 장르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장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지역은 바이블 벨트와 늪지대, 황량한 모텔과 주유소, 신흥종교단체로 가득차 있다. [미드나잇 스페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르 영화보다는 지역 영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니콜스는 장르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지역 영화를 만든다는걸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미드나잇 스페셜]은 심심한 장르 설정과 익숙한 추격전 플롯에서 불구하고 단단하게 뿌리박은 영화 언어 속에서 생경할 정도로 낯섬과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그것은 대부분의 장르 영화들이 가볍게 여겼던 '공간'의 특성 (이는 지역적인 특성이기도 하며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와 같은 영화적 특성이기도 하다.) 이 강하게 대두되어서 생기는 부분도 있으며 (이 부분은 분명 존 카펜터에게 배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미국 남부 고딕의 전통이 새로운 활력을 얻었기에 생기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런 "공상과학"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비주얼 설계라는걸 생각해보면, [미드나잇 스페셜]이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비주얼은 어떤걸 접하고 생각했기에 저런 리듬의 저런 비주얼이 가능한지 묻고 싶을 정도다. 어떤 부분은 바이블 벨트에서 자란 지식인이라는 이점에서 비롯되는 부분도 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특정 종족의 묘사는 분명 성경에서 비롯된 천사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어떤 장면은 단순히 문화적 이점이라고 넘길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주유소 시퀀스에서 알튼이 기적을 부리는 장면이 그렇다. 느긋하면서도 갑자기 비현실적인 상황이 관객 앞에 툭 떨어지는 이 시퀀스는 경이롭다.

이런 태도는 영화 속 샷과 몽타주를 구성하는 방식하고도 연관된다.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제프 니콜스는 서사에 따라 차곡차곡 누적되는 샷과 몽타주의 구조를 믿는 고전적인 부류의 영화 감독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뉴욕 감독'이였던 제임스 그레이랑 달리 니콜스는 미국 남부 영화인이기에 가능한 느긋한 리듬이 있다.  도입부는 니콜스만의 느긋한 리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가 그랬듯이 우리는 로이와 알튼 일행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도망가는지를 알려면 기다려야 한다.

이는 속도를 중시하는 장르 영화로써는 그렇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미덕이 있다. 니콜스는 자신만의 샷과 몽타쥬 방식으로 천천히 쌓아올리면서 인물들의 불안과 상실, 기쁨과 긴장 같은 감정들은 신중하게 끌어낸다. 그렇기에 니콜스가 선택한 샷엔 신기할 정도로 헤아릴수 없는 인간을 위시한 피사체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가득하다. 마이클 섀넌을 비롯한 연기진들의 연기는 그런 확고한 믿음으로 세워진 샷에서 시작한다.

그 점에서 그는 F.W.무르나우의 [선라이즈]와 장 르누아르에서 발원한 자연주의/휴머니즘 영화의 충실한 후예기도 하다. 우직한듯 보여도 [미드나잇 스페셜]의 인물 관계나 묘사는 어떤 위악이나 아이러니가 담겨있지 않다. 알튼, 로이와 사라의 가족 관계라던가 어딘가 어벙해 보이는 연구원 폴 세비어, 회의주의자 루카스 모두 단단한 존재들이다. 제프 니콜스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위악이나 비극으로 빠질 수 있는 캐릭터에게 단단한 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미드나잇 스페셜]은 아마도 니콜스의 바이블 벨트적인 성향을 가감없이 고백하는 영화기도 할 것이다. 상술하기도 했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알튼과 알튼이 속한 특정 종족은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와 사도, 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점에서 무신론자에게 [미드나잇 스페셜]은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테이크 쉘터]에서 니콜스는 지식인으로써 현실을 근심하면서도 미국 남부인 특유의 독실하게 뿌리박힌 어떤 '믿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는걸 잊으면 안된다. 

누설 때문에 적을 수 없지만 [미드나잇 스페셜]은 구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던지는 영화기도 하다. 인간 관계에서 이뤄지는 믿음과 사랑에서 출발해 '믿으면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아 천당간다' 식의 구약식 죄의식과 맹목적인 믿음을 부정하고 이 지구가 그렇게 나쁜 공간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 점에서 [미드나잇 스페셜]은 '백인의 의무식 구원주의'에 빠진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다르다. 제프 니콜스의 지역 영화적 특색은 여기서 다시 한번 발휘한다. 이 땅을 떠나지 않더라도 행복해질수 있다고,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라고. 니콜스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루카스 같은 회의주의자/무신론자인 글쓴이마저도 긍지를 가지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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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11

토익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적어도 이건 필요할 것 같아서요. 얼마전엔 단기지만 알바도 했습니다.

나이 슬슬 먹어가는데, 쌓여있는게 별로 없는 것 같고 앞으로 세상 나가는게 조금 두렵고 마 그렇습니다. 블로그도 얼마전에 (2006년 12월 20일) 10주년을 맞이했는데 이 블로그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만 드네요. 적어도 제 전공으로 세상을 살려면 뭔가 일반적인 길과 다른 쪽으로 가야 할 것 같다는 막연한 예감만 있습니다.

제가 그림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더 늙기 전에 무언가를 배우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였습니다. 이제서야 뭔가 감이 잡히는 것 같은데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가끔 제 자신이 어린 아이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벌써 성인의 의무를 져야 한다니 부담스럽네요. 정말 어른이라는게 그냥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럴리 없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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