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디스아너드 [Dishonored] (2012)


[디스아너드]는 여러모로 [바이오쇼크]를 신호탄으로 시작한 "워렌 스펙터([시스템 쇼크], [시프], [데이어스 엑스])의 아이들" 조류에 속해있는 1인칭 잠입 액션 게임입니다. 이 게임을 이야기할때 빼놓을수 없는 이름인 하비 스미스가 바로 워렌 스펙터 프로듀서 그룹 출신에 [시스템 쇼크]와 [데이어스 엑스]를 거쳐왔거든요. 그만큼 [디스아너드]는 워렌 스펙터제 게임들의 자장에 속해있는 게임입니다. 물론 하비 스미스와 더불어 게임을 지탱하고 있는 제작자 라프 콜란토니오와 그가 만든 [다크 메시아: 마이트 앤 매직]도 중요한 이름이긴 하지만 적어도 [디스아너드]에서는 [마이트 앤 매직]보다는 [데이어스 엑스]나 [시프]의 영향력이 확고해보입니다. 단순히 디자인 측면이 아니라 미적인 세계관으로도 말이죠.

[디스아너드]의 게임 디자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바로 '상황을 풀어갈수 있는 가능성의 수'입니다. 비록 이야기 자체는 여전히 일자에 가깝지만-후반에 전개가 변하긴 하지만 [헤비 레인] 수준은 아닙니다.-[디스아너드]는 기존 잠입 게임들과 달리 그 일자 상황 내에서 게이머들에게 풀어갈수 있는 많은 가능성들을 던져주려고 하고 있고 상당수 성공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으헉 이런 선택도 가능하다니'라는 생각마저 드는 선택들이 있는데 한가지 예를 들자면 '대상의 사회적인 말살'을 플레이가 직접 '선택'할 수 있는건 전 여기서 처음 봤습니다. 그리고 변화무쌍하진 않다, 라고 적긴 했지만 플레이어의 선택이 게임의 소소한 디테일에 변화를 주고 나중에 큰 흐름을 바꾸게 되는 것도 훌륭한 선택였다고 봅니다. 그게 좀 한쪽으로만 정해지는게 좀 아쉽긴 하지만...

물론 거기까지 '도구'도 잔뜩 주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디스아너드]가 [데이어스 엑스: 휴먼 레볼루션]보다 낫다 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그 '도구'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아주 세련되고 간결하게 정리한데다 나아가 다른 요소들과 유기적인 연계에도 신경썼다는 점입니다. 휴레도 좋은 편이였지만 [디스아너드]가 보여주는 그 극한의 경제성과 각 요소의 유기적인 연계가 만드는 능구렁이 같은 리듬에 비하면 밀립니다. 쥐에게 함정을 설치해 쥐에게 빙의시켜 적에게 공격하는 플레이부터 본 참(DLC 한정이긴 하지만)과 쥐떼 공격을 이용해 무한 마나 공급 학살 플레이까지 플레이어의 도전정신을 자극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도구'를 쓸 수 있는 '배경'(즉 레벨)의 디자인도 게임 내 미적 세계관에 충실하면서도 '환풍구' 같은 인위적인 요소 없이 자연스럽게 잠입을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느껴져요. 좋은 잠입 게임들이 그렇듯이 [디스아너드]의 치밀한 설계가 만들어내는 요소들의 리듬과 서스펜스는 거의 능구렁이 수준입니다.

게임의 세계관 역시 매력적입니다. 기본적인 뼈대가 되는 스팀펑크는 그리 특이할것 까진 없지만, [디스아너드]는 세계 내에 배치된 다양한 저널들을 통해 치밀하고 꼼꼼하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하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래 기름을 통해 이뤄진 "산업 혁명"이 가져온 부귀영화와 거기서 잉태된 톨보이를 비롯한 신비로우면서도 "그 세계의 과학 법칙에 투철하게 설계된" 기계들, 하지만 그런 발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폭압과 전염병 속에서 신음받는 일반 시민들, 기계문명의 발달을 비웃듯이 사람들의 무의식과 악몽 속에 자리잡아 군림하는 메피스토텔레스 아웃사이더 등 [디스아너드]의 세계관은 영국을 한때 지배했던 빅토리아 시대의 화려함과 고딕의 음울함이 독특한 배합으로 섞여있습니다. 이런 유니크함은 하비 스미스와 리카르도 베어 이 둘의 미적 취향이 강력히 배어있다고도 할 수 있을겁니다. 물론 [하프 라이프 2]의 도시 17을 만들어낸 빅토르 안토노프의 공도 빼놓으면 안 되겠지만요.


유니크하면서도 치밀하게 짜여진 세계관에 비해 각본은 좀 약한 편입니다. 말을 하지 못하는 "1인칭 주인공 캐릭터"가 가지는 한계를 넘어보려고 하는 시도라던가, 저널과 기록들을 통해 경제적으로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려는 시도 (이것도 워렌 스펙터 제 게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시도이긴 합니다.), [몬테크리스토 백작]를 연상시키게 하는 영리하고 흥미진진한 전개는 칭찬받을만합니다만 대부분 이런 공력들은 안전지대에 머물러 있어요. 전반적으로 [디스아너드]는 세련되고 유려하게 흘러가는 복수극이긴 하지만 [레드 데드 리뎀션]이나 [어새신 크리드]처럼 캐릭터와 세계, 서사에 콱 몰입하게 하고 중후한 감동을 안겨주는 그런 장쾌한 "매력"은 좀 부족합니다. 반전 이후 이야기의 템포가 너무 빨랐다는 것도 지적하고 싶군요.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렇다고 [디스아너드]의 매력이 사라지는 건 아닙니다. 이 게임은 여전히 자기만의 투철한 미학과 방향을 가지고 잠입 게임의 새로운 판도를 제시하려는 야심찬 게임입니다. 그리고 그 야심을 대부분 성공시키고 있고요. 이야기에 조금만 더 욕심을 부렸더라면 정말 굉장한 게임이 나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깝긴 하지만 여전히 잠입 게임 팬들이라면 꼭 해봐야 할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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