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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앨리스 [Něco z Alenky / Alice] (1988)



앨리스

Alice 
9
감독
얀 슈반크마이에르
출연
크리스티나 코호토바, 카밀라 파워
정보
애니메이션, 판타지, 스릴러 | 스위스, 영국, 서독 | 91 분 | -


체코 스톱 애니메이션 거장 얀 츠반크마이어의 장편 데뷔작 [앨리스]는 "당신은 아이들을 위한 영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라고 서문을 연다. 하지만 곧 애매하게 "아마도."라고 덧붙인다. 그 아마도를 의심하는게 좋을것이다. 이 애니는 절대로 아이들에게 친절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니깐. 스토리는 모두가 아는 루이스 캐롤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다. 개작을 거치긴 했지만 우리가 아는 앨리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미지로 넘어가면 다르다. 츠반크마이어의 [앨리스]는 그야말로 기괴함의 향연이다. 영화 대사가 절제되어 있기 때문에 (그나마 그 대사도 나레이션으로 처리해버린다)  정교하게 구성된 미장센으로 구성된-특히 앨리스의 방은 정말 미장센이 환상적이다-이미지가 두드려져 보이게 되는데, 츠반크마이어가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으로 그리는 이상한 나라는 낡은 폐건물 같은 곳에 빵에서 못이 자라고 깡통에서 압정이 섞여있는 마멀레이드와 벌레가 발견되며 눈알과 뼈가 강조된 동물들이 돌아다니고 손잡이가 빠지는 서랍이 통로인 그런 생기없는 장소다. 유일한 인간인 앨리스조차 가끔 자기 인형 같은 섬뜩한 모습으로 변하곤 한다. 전반적으로 츠반크마이어의 [앨리스]는 환상의 세계이지만 죽어있는 느낌으로 가득하다.


생기없는 이상한 나라에 사는 동물들도 무섭다. 가끔 구식 스톱모션의 향취의 정겨움이 느껴지긴 하지만 그조차 기계적인 강박관념으로 가득찬 행동으로 싹 지워버린다. 그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매드 해터와 3월 토끼의 다과회다. 고목나무 장승 같은 매드 해터와 눈알이 빠져나오는 3월 토끼가 미친듯이 같은 대사를 지껄이고 자리를 바꾸고 시계에 버터를 바르는 해괴한 짓을 하는데 이게 굉장한 포스를 자랑한다. [모던 타임즈]의 강박관념을 연상시키게 한다고 할까. 물론 가위를 들고 머리를 잘라대는 실밥 터진 하얀 토끼와 틀니와 의안을 가진 양말 지렁이도 만만치 않다.


츠반크마이어의 [앨리스]는 원작이 품고 있던 기분 나쁜 부분들을 츠반크마이어식 해석을 거쳐 만든 순수한 악몽덩어리다. 꿈이 그렇듯 해석은 재미없긴 하지만, 이 애니에 묻어있는 '기계적이고 죽어있는' 분위기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속해있는 서유럽 문학하고는 거리가 멀다는건 지적하고 싶다. 오히려 카프카의 [심판], 고골리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나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게오르규의 [25시]같은 '끝내 도구화되는 인간들'을 다뤘던 동유럽 문학 고전들의 향취가 느껴진다. 물론 '아이의 눈으로 본 어른 세계의 부조리성'라던가 '아이의 무의식과 본능' 같은 보편적인 해석을 내릴수 있는 가능성들도 포진해 있다. 어느 쪽이든 츠반크마이어의 이상한 나라의 악몽은 풍부하고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곳이다. 


츠반크마이어의 [앨리스]는 원작을 따라가면서도 결국엔 원작이 가지고 있던 이면을 정확하고 제대로 파헤쳐 풍성한 결과를 일궈낸 애니다. 결국엔 이런 원작이 있는 작품을 만들때 중요한 것은 만드는 사람의 '예술적인 감각과 방향'에 대한 확신감인듯 하다. 애니를 사랑한다면 꼭 봐야할 애니다.


P.S.1 엔딩의 앨리스 대사가 무척이나 섬뜩해서 해석할 거리가 많아진다. 결국엔 앨리스는 토끼(로 대표되는 아버지)를 죽이기로 마음 먹은 것일까?

P.S.2 맥기의 앨리스하고는 미묘하게 다르다. 이면을 탐구했다는 점에서는 같지만, 맥기의 앨리스는 서유럽 전통에 머물지만 21세기적인 팝아트/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감수성을 받아들이고 있다. 츠반크마이어는 그에 비하면 감수성은 다르지만 정파다.

P.S.3 아주 어린 애들은 무리겠지만 12세 이상 정도 되면 재미있게 볼 수 있을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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