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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모번 켈러의 여행 [Morvern Callar] (2002)




모번 켈러의 여행

Morvern Cal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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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린 램지
출연
사만다 모튼, 캐슬린 맥더모트, 루비 밀튼, 돌리 웰스, 린다 맥과이어
정보
드라마 | 영국 | 97 분 | -


큰: 오래간만이군요. 폴라곰 씨.

폴: 예에. 휴가도 못가고 땀띠나 죽겠는데 본지 좀 된 영화 리뷰나 같이 하게 됬군요. [퍼시픽 림]은 혼자서 리뷰하고. (투덜투덜)

큰: 워워 그러지 마시고...

폴: 그럼 호러 영화 리뷰나 같이 좀 하죠. 씨원하게.


큰: 네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이탈리아 호러 영화나 한 편 보죠. 이번에 같이 리뷰할 영화는 [모번 켈러의 여행]입니다.  

폴: 뭐 정보를 잠시 나열하자면 [케빈에 대하여]로 유명한 린 램지의 2002년 영화죠. 사만다 모튼이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유명 배우로 자리잡고 난 뒤에 찍은 영화입니다. 원작은 스코틀랜드 작가인 알렌 워너가 썼고요.

큰: 물론 이야기의 주인공이 제목의 모번 켈러라는 건 폴라곰 씨도 보기전에 눈치 채셨겠죠. 알렌 워너와 린 램지는 시작하자마자 관객에게 이 모번 켈러가 시체를 더듬는 장면을 던져놓습니다. 관객은 당연히 당황합니다. 곧 관객들은 이 시체가 제임스 길레스피이며, 모번의 남친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폴: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관객들은 남친이 왜 죽었는지 설명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램지와 워너는 알듯말듯한 남친의 유서만 던져놓고 곧 잊어버립니다. 'Be Brave'라니 도대체 이 제임스라는 사람 여친 조롱하는겁니까?

큰: 뭐 추리 소설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설정의 도입입니다만 램지와 워너는 추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이 관심이 있는 부분은 바로 모번 켈러입니다.

폴: 이 모번이라는 여자도 좀 이상한 거 같습니다만. 시체를 무슨 이케아 가구처럼 전시해놓고 있어요.

큰: 모번도 그리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죠. 영화는 모번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쫓아갑니다. 그 중 몇 개는 정말 심각한 범죄여서 서스펜스물이나 범죄물로 발전하기도 충분하죠. 하지만 영화는 그런 서스펜스에도 무관심합니다. 모번의 범죄들은 적어도 영화가 끝날때까지 들통나지 않습니다.


폴: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정체는 뭡니까.

큰: 심리 드라마라 봐야죠.

폴: 제임스처럼 모번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는 내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요?

큰: 없다곤 할 수 없습니다. 모번이 외간 남자의 호텔방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다가 섹스를 하는 장면처럼 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단서들은 나오고 있죠. 무엇보다 모번에 대조되는 라나라는 캐릭터가 옆에 있습니다. 라나는 여러모로 모번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입니다. 스코틀랜드 중하류층 여성인 라나는 하루 벌이에 고민하며 놀기 좋아하고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죠. 여러모로 미스터리에 빠져 있는 모번과 달리 라나는 관객의 시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알기 쉽습니다. 아니 사실상 이 영화를 해석하기 위한 모든 실마리는 라나와 모번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폴: 모번도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라 할 수 있지 않나요?

큰: 그렇긴 합니다만 방향은 다릅니다. 라나는 딱히 현실을 개변할 의지도 없고 그럴만한 도구도 없는, 모험보다는 안정에 빠져 있는 캐릭터입니다. 스페인에서 라나는 클럽이나 그런데 놀러다니며 즐기지만 정작 '모험'이라 할 만한건 하지 않습니다. 모번 때문에 호텔을 뛰쳐나와 이상한 남자를 만나 히치하이킹 하고 길가에서 노숙할때 화내는 장면을 보면 라나는 모험에 익숙하지 않으며 익숙해질리도 없다는 걸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모번은 다릅니다. 시체를 발견하고 장례식 비용을 빼서 스페인 여행을 가고 남친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팔아 넘깁니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낯선 남자의 차를 하이재킹하고 예정에 없는 관광지를 가고...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내심 일탈을 추구하고 있었고 남친의 자살은 그 트리거가 된 겁니다.


폴: 그렇다면 큰뿌리님은 이 영화의 주제가 '일탈'이라 생각하는 거군요.

큰: 네. [고스트 월드]가 그랬듯이 모번의 여행은 산문적인 세계에 일탈이라는 운문적인 요소를 뿌리려고 하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문에 모번은 이니드처럼 묘하게 19세기 프랑스 대중 소설의 안티 히어로 (헤로인이라고 할까요) 느낌도 납니다. 무도덕적이고 오싹하지만 매혹적인 면도 있는 그런 캐릭터죠. 영화 마지막에 알듯말듯하게 클럽을 유유히 스쳐지나가며 조용한 음악을 듣는 장면은 그 점을 요약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폴: 영화는 전반적으로 졸립더라고요. 약간 흐릿한 정신으로 봐서 그런지.

큰: 맞습니다. 이 때문에 사실은 이 모든게 모번의 망상 아닐까라는 의문마저 품게 하죠. 여기에 대한 힌트도 없다시피하니 그야말로 추측의 영역이지만요. 영화에 나오는 알듯말듯한 모번의 "주관"으로 처리된 호텔 섹스 장면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겁니다. 이 장면은 현재의 시점일수도 있고, 제임스를 만날 당시(를 회고하는 모번)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말이 되죠. 

폴: 설명이 마치 린치 영화 같네요. 그래도 린치 영화는 호러적인 요소라도 있어서 쫄깃하게 하는 맛이 있었는데.


큰: 근데 사실 호러 테이스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폴: 어떤 식으로 말이죠?

큰: 은근히 유령들린듯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제임스가 영화 내내 스토리에도 영향력을 미친다는 걸 지적하고 싶군요.

폴: 제임스가요? 어떻게 죽은 사람이 그게 가능하죠?

큰: 음악입니다. 영화는 모번의 심리를 설명하지 않는 대신, '죽은자가 남긴 흔적, 음악'이라는 요소를 전면에 부각시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죽은 자가 남긴 음악을 듣는 행위가 자주 등장하고 나아가 중요한 극적 모티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론 분위기마저 바꾸기도 합니다. 보통 "남친 시체를 욕조에서 조각내는 모번의 피부에 하얀 피가 튄다"라는 장면의 들으면 왠만한 스플래터 영화 뺨치는 긴장감 넘치는 시추에이션을 상상하겠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나오는건 평온하고 애달픈 감정입니다.


폴: 으으... 그거 제대로 보여줬다면 어지간한 호러 영화 뺨칠듯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나른한 'I'm Sticking With You'이 강렬하긴 했죠. 여튼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느꼈지만 린 램지의 선곡 솜씨는 뛰어난것 같아요.

큰: 그렇죠. 린 램지의 영화에서는 음악은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다만 [케빈에 대하여]는 단지 상황에 맞는 음악과 불길하게 습격하는 자니 그린우드의 스코어가 흘러나오는 정도였다면 [모번 켈러]는 음악을 듣는 행위와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외재적 음향과 내재적 음향으로 넘어가는 연출이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폴: 말 꼬지 말고 좀 쉽게 설명해줘요.

큰: 걍 모번이 제임스가 남긴 음악 테이프를 눌러서 듣는 장면이 유달리 많이 나온다고요. 그리고 주인공이 있는 '서사'와 서사 바깥에 있는 '연출 영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할까요. 이런 반복적인 행태 때문에 영화는 강신굿처럼 보입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흔적에 집착하고 나아가 죽은 자가 남긴 음악을 통해 강령술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마치 이유도 없이 덜컥 자살을 선택한 제임스를 기리듯이 말이죠. [케빈에 대하여]에서 에바가 막판까지 그 진상을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에 벗어나지 못하고 발작적인 플래시백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폴: 근데 의미나 매력은 알겠지만 영화가 너무 불친절하지 않나요?

큰: 뭐 초기작인 [쥐잡이]나 뒤에 나온 [케빈에 대하여]와 달리 너무 그 구조에 집착한 한 편이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드가 강조되서 불친절해져버력 한 편이라고 할까요. 모번은 매혹적인 캐릭터지만 감정 이입하기는 어려운 캐릭터고요. 린 램지의 몇 안되는 커리어 중에서도 전형적인 "예술 영화"적 외연에 가까운 영화 아닐까 생각합니다.


폴: 까말 지루했어요. [케빈에 대하여]처럼 손톱을 잘근잘근 뜯어먹는 마력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사만다 모튼은 제대로 캐스팅된 배우였다고 생각해요.

: 보통 이런 연기들은 소위 말하는 "명연기"와 다른 체질의 연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요. 감정 표현 같은게 거의 차단되고 오로지 한정된 채널로 연기해야 하니깐. 잘못하면 멍청한 표정만 짓다가 끝날수도 있는 역이였는데 모튼은 그 어느쪽에도 빠지지 않고 위태위태한 감정들을 잘 끄집어냈다고 봅니다.

폴: 모튼이 일반적으로 이쁜 여배우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컨트롤]에서는 제법 매력적입니다.) 그 독특한 마스크에서 풍겨저 나오는 굳건한 방벽 같은 느낌이 있는데 감독이 이걸 제대로 써먹고 있더라고요. 배우 얼굴만으로도 영화가 되는 케이스가 있는데 이 영화도 그 중 하나 아닐까 생각합니다.

큰: 라나 역의 캐슬린 맥더모트도 모튼을 잘 받쳐줬어요. 다만 일반적인 명연을 구경하기엔 미묘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감독이 워낙 인물 자체를 오브제처럼 정교한 미장센 속에서 다뤄서.


폴: 여튼 [모번 켈러]는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지만 지루한 구석도 보이는 그런 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나온 [케빈에 대하여]를 생각하면 아직 모색/발전 단계 아니였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큰: 그래도 그 지루함 속에서도 번쩍하면서 황홀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 보는 느낌이였어요. 느리고 숨막히는 분위기와 템포로 일관하지만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게.

큰: 여튼 여기까지 리뷰하시느라 수고하셨고, 다음엔 장르 영화나 한 번 해보죠.

폴: 네.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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