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엘르 [Elle] (2016)

(강력한 누설이 있습니다.)

아마 크레딧이 지나가자마자 얼굴이 벌개질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파울 페르후번은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당당하게 강간 현장에서 벌어지는 노골적인 소리를 외화면에서 흩뿌린다. 엉뚱하게도 영화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샷은 강간 장면이 아닌 검은 고양이의 정면 응시 샷이다. 때문에 파울 페르후번이 [엘르]에서 취한 시점이 고양이의 시점 아닌가라는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관객이 그 착각에서 혼란스러워하는 동안, 두번째 샷에서 이미 강간은 다 끝난 상태다. 하지만 피해자인 미셸은 울지 않는다. 오히려 덤덤하게 일어나 청소하고 욕조로 들어가 목욕을 한다.단 두-세번째 샷을 통해 파울 페르후번과 [엘르]는 장르 관습에서 완전히 이탈해버린다. 이미 네덜란드 영화계와 할리우드를 자기 방식으로 조교시킨 음탕한 네덜란드 애처가이자 정숙하고 침착한 사디스트인 파울 페르후번은 이번엔 뻔뻔하게도 이자벨 위페르를 내세워 프랑스 영화계를 조교하려고 한다. 

강간 사건이 잠깐 물러난 자리에 이어지는 것은 미셸의 일상이다. 미셸의 일상은 (이자벨 위페르가 [다가오는 것들]에서 편안한 연기해냈던) 프랑스 중년 지식인 캐릭터가 누리던 일상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에릭 로메르의 기적이 일어날 자리엔 강간이 일어났다. 자연히 [엘르]는 완전히 이상한 방향으로 일탈한다. 페르후번은 외부인의 입장에서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깔깔 비웃으면서 발기발기 찢는다. 남의 아이를 임신한 여자랑 살겠다며 찌질하게 구는 징징거리는 아들, 무례하기 그지 없는 아들의 여친, 안 팔리는 주제에 폭력만 휘두르다 이혼당한 지식인 전 남편, 섹스에 환장한 어머니의 젊은 남친, 낙하산이라고 미셸을 경멸하는 게임 회사 직원... 미셸의 일상은 루이스 부뉴엘과 마르코 페라리의 경박함과 미카엘 하네케의 서늘함을 품고 사정없이 해체된다. 미셸이 가족과 친구들을 불러모아 만찬을 하는 시퀀스에서 날아다니는 위선과 경박함, 부글거리는 성적 에너지는 페르후번이 부뉴엘이 시전했던 풍요로운 부르주아의 식탁을 작살내는 쇼트들을 존경하고 있다는걸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서 미셸이 게임 회사 사장이라는 점은 상당히 중요하다. 출판게에서 일하다가 낙하산으로 업계에 뛰어들었다는 뒷설정은 미셸의 위치를 극명하게 잘 보여준다. 미셸은 전통 지식인 사회에서도 떨어져 있고, 신세대가 주축이 된 게임 업계에서도 한발짝 떨어져있는 아웃사이더다. 전통 지식인 사회와 이혼했지만, 발 붙이고 싶어하는 게임업계와도 사이가 냉랭한 상태에서 강간이 끼어들게 된다. 슬슬 미셸의 캐릭터가 잡히기 시작하는데, 미셸은 강간 사건을 '게임'으로 보고 있다. 미셸은 게임의 NPC를 뛰어넘어 플레이어가 된 뒤, 최종적으로 '프로듀서'가 되고자 한다. 디자이너를 총괄하는 프로듀서.

이때 미셸이 개발하는 게임은 [스틱스: 마스터 오브 섀도우]다. 간과하기 쉽지만, 페르후번은 여기서 중요한 단서를 남겼다. [스틱스: 마스터 오브 섀도우]는 고블린이 주인공인 안티 히어로 잠입 게임이다. 이 게임의 비중은 의외로 크다. 내용이 직접적으로 언급되는건 아니지만 페르후번은 이 게임의 개발 과정과 그에 관련된 소동들을 서브 플롯으로 삽입한다. 심지어 미셸은 게임 모델링을 활용해 만든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 삼은) 포르노 영상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미 강간 사건을 겪은 미셸에게는 이런 모욕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영상을 만든 엔지니어는 미셸을 성적 대상으로 삼았지만, 미셸은 오히려 그 성적 대상화를 역으로 반격한다. 미셸은 그 영상을 보고 인상을 한 번 찌푸리고는 차분하고 남자의 팬티를 벗겨 성기를 유심하게 관찰한 후 냉정하게 모욕을 준다. 페르후번은 이 서브플롯을 통해 미셸이 강간당하는 여성이 아니라, 강간하는 고블린에 가깝다는걸 명백히 한다.
 
그런데 이 게임의 진상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 게임의 결말에서 주인공인 복제 고블린은 무도덕한 본체 창조주 오크 마법사를 소멸시키고 본체 스틱스의 정체성을 차지하게 된다. 정체성의 문제라던가 아버지 살해라는 모티프라는 점에서 이 게임의 플롯은 미셸의 과거사나 주변 환경과 묘하게 맞물려 들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대체 '복제'인 미셸은 누구를 죽이려고 하는가? 미셸이 죽이고 싶어하는 원본은, 경건하고 온화한 중산층 기독교인이었다가 무자비한 살인마로 돌변한 아버지다. 미셸 역시 그 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내심 불편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인)다. 강간 사건은 미셸이 안고 있는 불편함을 수면 위로 올려보낸 셈이다.

[엘르]가 이상한 안티 히어로물이라 할 수 있다면, 중후반부 강간범의 정체가 드러난 뒤 미셸이 취하는 행동에서 비롯된다. 미셸 앞집에 사는 강간범 파트리크는 묘하게 미셸의 아버지와 닮아있다. 멀쩡한 중산층 부부의 가장으로 위장하고 있지만, 속은 미셸 그 이상으로 비틀린 범죄자다. 미셸은 파트리크의 비틀린 욕망을 알아차리고 그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도구로 활용한다. 거센 바람이 부는 날 창문을 닫아달라고 파트리크에게 부탁해 같이 정리하는 미셸의 시퀀스는 사실상 둘의 섹스 시퀀스나 다름없다. 이 장면이 불편하다면 초반부의 강간 시퀀스의 뉘앙스와 행위를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도무지 정상적인 사고방식은 아니지만, 페르후번과 위페르는 이미 미셸을 욕망에 충실하고 재주가 많은 고블린이라고 정의내렸다. 고블린은 인간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충족할 수 있는 존재다. ("하하하. 당최 알아먹지 못하는구나? 살거나 죽거나... 이제는 더이상 내게 명령할 수 없어.") 무도덕한 지식인에게서 태어난 - [엘르]에서 탄생은 축복이 아니라, 한낱 조롱거리에 불과하다. 조시의 흑인 아이는 정숙한 여성상에 대한 빅 뻐큐에 프랑스 백인 지식인 사회가 두려워하는 악몽이며, 또다른 고블린이다. - 고블린은 우연한 계기로 자신의 뒤틀린 욕망을 인정하게 되고, 중산층의 위선을 차분하게 까발린다. 미셸의 생각을 읽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우리가 미셸의 입장을 따라갈수 있다면 그건 고블린의 내면이 어떻게 설계되어있는지 알아차린 이자벨 위페르의 공이 크다.

영화 후반부, 미셸은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병으로 잃는다. 하지만 어머니 유골은 소동으로 제대로 뿌려지지 못한 채 허겁지겁 막을 내리고, 아버지 시체 앞에서 미셸은 대놓고 비웃고 경멸한다. 미셸에게 부모의 죽음은 차라리 본체로부터 해방에 가깝다. 미셸은 무책임한 창조주를 직접 소멸시키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 소멸을 애도하지 않고 경멸하는 것으로 복수를 완수한다. 이 순간 미셸이 책임지고 있는 게임이 동시에 완성되는건 당연하다. 미셸은 게임 완성 축하 파티에서 작가 남편과 게임 업계의 뚜쟁이가 된 뒤, 친구 안느에게 안느의 남편과 바람 피고 있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안티 히어로 고블린은 이렇게 탄생한다. 이 잔칫날의 배경 음악으로 '삶에 대한 욕망'과 '고립시키자'가 나오는 건 고블린과 페르후번의 사악한 유머일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강간범 파트리크다. 파티에서 나온 미셸은 파트리크를 불러내 헤어지자고 선언한다. 페르후번과 위페르는 이 선언을 통해 폭압적인 관계를 완전히 뒤집어버린다. 강간하려고 발악하려는 파트리크를 똑바로 응시하는 미셸의 얼굴 샷은 그 점에서 로라 멀비가 지적했던 시선의 권력 관계를 명백히 의식하고 있다. 미셸은 파트리크에 고개를 숙이지 않음으로써 파트리크를 부끄럽게 만든다. 미셸은 부모를 죽일수는 없었지만, 강간범 파트리크의 존재 이유를 빼앗을수 있었다. ("날 봐라! 스틱스! 내가 네 운명을 선택하는 것을 보라고.") 파트리크는 발악하다가 자멸하고 곧 이어 상황을 모르는 빈센트의 손에 살해된다.

[엘르]의 클라이맥스는 철저한 아이러니다. 어느 누구도 파트리크와 미셸이 이상한 관계를 맺었다는걸 모른다. 빈센트의 살인은 정당방위로 경찰에서 인정한 합법적인 폭력이 될 것이다. 아내인 레베카 역시 범죄자 파트리크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초반부 남성들에게 모욕당한 미셸은 마지막에 게임의 프로듀서로써 성공한다. 그 '게임'은 진짜 '게임'이기도 하고, 강간범과의 파워 게임이기도 한다. 미셸은 파트리크를 죽이면서 법을 비롯한 남성의 장치를 빌리지 않고 빛으로 위장한 "어둠의 주인"이 된다. 미셸이 키우다가 언급 없이 사라진 검은 고양이는 그 게임으로 인도하기 위한 환상이었던 것일까?

이 아이러니로 이뤄진 안티 히어로 극을 실제 여성들이 동의하기는 힘들 것이다. 우리는 많은 여성들이 강간의 공포에 떨며 살아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미셸의 행동은 도무지 현실로 옮길수 있는 종류의 행동이 아니다. 어떤 여성들에게 [엘르]의 미셀은 결국 남성이 ([엘르]의 원작, 각본, 감독 모두 남성이다.) 만들어낸 기벽증으로 가득한 환상 (까놓고 말해 히토미 꺼라 식의)으로 다가올 것이다. 페르후번은 여성들의 연대를 보여주는 것으로 예상된 비판에 대답한다. 미셸은 불명예스럽게 이사가는 레베카를 위로한다. 이때 레베카는 풀이 죽은듯 보여도 이겨낼 기운이 있어보인다. 그리고 남편과 이혼을 결심한 안나랑 미셸이 얘기를 나누면서 앞으로의 미셸의 인생은 어둠 없이 안나랑 즐거울 것이라는 암시를 남긴다. 당신은 이 고블린이 맞이한 결말에 납득할 수 있는가? 이 연대가 정말로 진실하게 느껴지는가? [엘르]는 강력한 에너지로 밀어붙인 뒤, 관객을 회색 영역에 남겨놓는다는 점에서 파울 페르후번다운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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