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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닌텐도 스위치 생김

사실 스위치 생길거라고 생각도 안 했는데 형이 선물로 사왔더라고요. (뻘이지만 저희 형도 스위치 있습니다.) 여튼 괜시리 미안해지네요. 부담주는 것 같아서...

여튼 잠깐 DS 있었던거 제외하면 온전하게 제 첫 휴대용 게임기입니다.... 일단 [마인크래프트]를 깔긴 했는데 딱히 할건 같진 않고, 곧 발매될 [암즈]나 같이 하자고 한 상태입니다. [마리오 카트 8 딜럭스]도 할것 같긴 한데....

...생각해보니 [스플래툰 2] 곧 나오잖아? 이거 같이 해야지 잇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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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 [野火 / Fires on the Plain] (2014)

시작은 따귀다. 첫 샷에서 츠카모토 신야는 자신을 카메라 앞에 세워두고 무자비하게 자신을 구타한다. 이 폭력이 담긴 샷들은 거칠고 불안정하다.  츠카모토는 이 도입부를 통해 자신의 첫 전쟁 영화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지 몸에다 새겨넣으려고 애쓴다. 그의 영화가 과잉된 육체와 속도의 에너지를 만화적 과장을 무릎쓰더라도 프레임에 새겨넣으려는 연출로 유명해졌다는걸 생각해보자. 츠카모토에게 전장은, 감당할 수 없는 감각의 과잉으로 넘쳐나는 장소다. 그 점에서 [노비]의 따귀는 어떤 약함도 허용되지 않는 과잉된 현장을 육체에 체득하기 위한 통과의례다.

하지만 [노비]는 츠카모토의 오리지널 각본으로 만들어진 영화는 아니다. [노비]의 원작은 오오카와 쇼헤이의 체험에 기반하고 있으며, 이 원작은 이미 이치가와 곤이 1950년대에 영화화한 적이 있다. 이치카와 곤의 [들불]이 어떤 식으로 이뤄져 있는지는 감상하지 않은 지금 이 순간 적는건 불가능하지만, 적어도 그가 고전기 스튜디오 시절 감독이라는걸 생각해보면 츠카모토가 만들었던 것보다는 훨씬 정제된 영화였을 것이다. (실제로 고어 묘사가 삭제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대체 츠카모토는 원작에서 무엇을 발견했기에 지금 이 시대에서 다시 만든 것일까?

[노비]가 내세우는 주인공 타무라 일등병은 낙오자다. 폐병에 걸렸다고 항의를 해도, 전쟁을 만들어낸 불합리한 시스템은 그의 병을 모른척 하고 내쫓는다. 그는 계속 전장을 떠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군상을 만난다. [노비]의 서사 구조는 한 점이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타무라는 전장에서 빠져나가 살고 싶다는 욕망 하나로 끊임없이 이동하지만, 그 이동마저도 쉽지 않다. 퇴각할 수 있다는 정보는 점점 신빙성을 잃어가고 점과 점 사이를 지나가면서 타무라는 온갖 못 볼 꼴을 다 본다. 극단적인 수직 권력 관계, 폭력, 무의미한 죽음, 식인....

[노비]가 전장을 다루는 방식은 추상화다. 일부는 저예산 독립 제작을 고수하는 츠카모토 특유의 제작 방식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제작 방식 이외에도 츠카모토는 의도적으로 배경을 추상화시키고 있다. [노비]에 등장하는 동남아의 정글은 문명은 커녕 전장의 흔적이라곤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부조리극처럼 추상화된 곳이다. 샷과 샷 간의 시공간은 명확한 구분이 없이 흘러가며, 인물들의 행동은 의미를 잃고 동물처럼 퇴화해 있다. 이외에도 츠카모토는 원색의 강렬한 자연, 제목의 들불, 병약한 타무라가 정신을 잃고 암전되는 장면, 디졸브와 얼굴 클로즈업 샷을 쪼개는 기법을 오가며 지옥 속 인간의 심리와 육체를 휘갈겨 그려낸다.

하지만 츠카모토는 추상화된 '그 곳'이 어떤 곳인지 안다. 타무라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회에서 현지인들을 조우하는 시퀀스는 그 점에서 영화의 차가운 응시를 격렬하게 보여준다. 이 시퀀스는 구조상 상당히 초반에 등장하는데, 타무라의 불안한 관음증적인 시선으로 훔쳐보는 현지인들은 전쟁의 광기가 상관없이 사랑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숨어있던 타무라가 등장하는 순간, 이름없는 현지인 커플의 행복은 산산조각 난다. 서로에 대한 의심과 한계에 도달한 이성은 이 상황을 파국으로 몰고간다.

이 시퀀스 말미에 등장하는 현지인 여성의 광기 넘치는 비명은 그 점에서 무시무시하다. 츠카모토는 타무라가 현지인들에겐 무시무시한 가해자에 불과하며, 그 증거로 피해자의 악에 찬 절규를 타무라와 관객 앞에다 가져다놓는다. 이 시퀀스가 그럼에도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면 타무라 역시 제국주의의 피해자라는게 명백하기 때문이다. 결국 타무라는 현지인 여성도 쏴 죽이는 것으로 상황을 마무리짓지만, 동시에 피해자 타무라 역시 누군가에게는 가해자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교회는 결국 구원의 장소가 되지 못한다.

그리고 고어 묘사가 있다. 전장에서 갈려나가는 병사들을 보여주는 시퀀스는 고어 호러 영화와 닮아있으며, 그것들을 표현하는 샷들은 샘 페킨파처럼 파편화되어 흩날린다. 츠카모토 신야의 B급 정신이 전쟁 영화에 이식된 것이다. 얼핏보면 [노비]의 어법은 위험해보인다. 전쟁 영화에서 고어 영화의 피범벅을 빌러, 끔찍함을 영화적 즐길거리로 만드는 일은 흔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비]는 전쟁을 쉽사리 스펙터클화하지 않는다. 비슷한 어법을 쓰지만 살짝 자기 자신에게 도취된 듯한 샘 페킨파와 달리, [노비]의 슬로모션과 쪼개진 샷들은 넘쳐나는 고어의 과잉을 차갑게 응시한다. [노비]의 고어 묘사가 무서운 이유는 결국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인육은 그 점에서 [노비]의 고어 묘사의 집약판이라 할 수 있다. 츠카모토가 [노비]를 현 시점에서 리메이크한 이유도, 1950년대 당시엔 불가능했던 고어 묘사와 인육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이건 원작에도 해당되는 얘기지만 [노비]에서 인육이 원숭이 고기로 위장되는건 상당히 흥미롭다. 인육이 상징하는 극단적인 생존 본능이, 원숭이의 고기로 포장되면서 잠시나마 본능과 도덕이 양립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인육의 정체가 드러나면서, 이 양립이 얼마나 기만적인지 까발려진다. 줄곳 생존만을 생각하며 본능적으로 이동하던 타무라가 분노하는 순간 역시 이 순간이다. 그리고 이 순간 죽어가던 타무라의 양심은 다시 깨어난다. 타무라는 최후의 순간, 인육을 더 이상 먹는걸 거부하면서 무의미한 존재가 되길 거부한다.

그렇게 거부했건만 타무라는 스스로 돌아가지 못하고 포로가 되서야 살아나갈수 있었다. 여기서 원작과 츠카모토판 영화와 차이가 발생한다. 츠카모토는 원작과 달리 타무라 앞에서 나가마츠가 자살하는 것에서 본편을 마무리 지은 뒤, 막간 자막에 게릴라에게 습격 당했다는 디테일을 추가하면서 오오카와가 품고 있던 회의적 시선을 강화시킨다. 당사자인 오오카와가 트라우마로 묘사하지 못했던 순간을 전후 태생인 츠카모토가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재현할 수 있기에 가능했던 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제목으로 돌아가보자. [노비]는 '들불'을 일본어로 음독한 제목이다. 오오카와 쇼헤이의 원작이 그랬듯이 [노비]에서도 들불은 생존과 죽음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존재로 그려진다. 하지만 [노비]의 마지막 쇼트는 오오카와가 그려냈던 '들불'을 츠카모토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보여준다. 일본으로 돌아온 타무라는 여전히 트라우마에 시달리면서 자신의 경험을 남기려고 애쓴다. 하지만 뜻대로 잘 되지 않고, 트라우마로 인한 거식증은 그를 괴롭힌다. 잠시 쉬러 나온 타무라는 창 밖을 바라보다가 영화 내내 등장했던 불의 이미지가 유리창에 비춰지는 환영을 본다. 이때 타무라는 마치 불의 감옥에 갇힌 것처럼 보인다. 츠카모토는 일본조차도 들불로 대표되는 군국주의가 만들어내는 공포와 불안에 갇혀있다고 보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노비]가 마지막에 보여준 불의 감옥은 무시무시하고 섬뜩하다.

*원작에 대한 정보는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2174669&cid=41773&categoryId=50387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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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25

잉여 잉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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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esop Rock - Daylight


Life’s not a bitch life is a beautiful woman. 

Your only call her a bitch because she won’t let you get that pussy.

별개로 이 앨범 꽤 괜찮습니다. 풍성한 악기라던가 전원적 비트에 사색적인 메시지를 전하는 독특한 힙합 앨범 찾으신다면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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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살자 [Le Boucher / The Butcher] (1970)

[도살자]의 시작은 평온한 마을 전경 쇼트 직후 사소한 실수를 배치한다. 행복한 결혼식을 위해 준비하던 일꾼들 중 한 사람이 실수로 음식을 엎지른다. 이윽고 바삐 일하는 주방에 들어가면서 샤브롤은 삼각형으로 세워진 케이크 위의 신랑 신부와 진짜 신랑 신부를 매치 컷으로 이어붙인다. 고기에 대한 수다가 이어진 뒤, 관객들은 고기를 준비한 포폴이라는 남자를 소개받는다. 그런데 이 남자 앞으로 오는 건 따로 준비된 식칼과 포크에 푹 찔린 고기다. 심지어 그 다음 샷에서 샤브롤은 잘려지는 고기의 질감이 보일 정도로 클로즈업한다. 사전 정보 없이 들어온 관객이더라도 이 장면에서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 샷에서 고기는 맛있다기 보다는 피가 뚝뚝 떨어질 것 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샤브롤은 아무렇지 않게 그 식칼과 고기를 치워두고 행복한 순간으로 돌아간다. 하지만 이 장면들은 작지만 불길한 메아리처럼 남는다.

그래도 주인공 엘렌에게는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시골로 내려와 초등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있는 엘렌 앞에 등장한 정육점 주인 포폴은 수줍고 친절한 남자다. 결혼에 관심없고, 군대 시절이 즐겁지 않다고 회상하지만 그래도 연애하기엔 무리없는 배려심을 지니고 있다.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둘은 이내 가까워진다. 서스펜스를 기대하는 사람이라면 [도살자]의 초반 전개는 심심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샤브롤은 초중반를 트뤼포나 로메르의 영화에 등장해도 이상하지 않을법한 중산층 커플의 이야기로 끌어간다. 놀랍게도 그는 그들의 사랑을 이죽거리지 않는다. 엘렌이나 포폴은 많은걸 드러내지 않지만 감정 이입하기엔 무리 없는 캐릭터고, 샤브롤 역시 그들의 사랑를 그릴때 어떤 블랙 유머 따윈 집어넣지 않는다.

하지만 엘렌과 포폴의 수줍은 사랑이 진행되는 동안 [도살자]는 도입부에서 제시되었던 이물적인 샷을 스멀스멀 퍼트린다. 처음은 비가시적인 소문이다. 엘렌은 학생들에게서 우체부가 시체를 발견했다는 얘기를 듣는다. 엘렌은 무심하게 넘기려고 하지만, 동시에 피해자가 저번주까지 멀쩡하게 춤추던 여자라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낀다. 대도시였다면 피해자는 익명의 존재로 남았겠지만 [도살자]의 배경은 얼굴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시골이다. 이 영화의 불안은 당연히 있어야 할 일상의 순간이 사라지거나 흐트러지면서 발생한다. 샤브롤은 그 불안을 점점 키워나가면서 미심쩍은 단서와 쇼트들을 엘렌 주변에 흩뿌린다. 

여기서 흥미로운 시퀀스가 등장한다. 포폴을 학교로 데려온 엘렌은 학생들에게 왈츠를 가르치는데, 이때 학생들과 포폴은 프랑스 귀족 전통 의상을 입고 있다. 그런데 샤브롤은 여기서 다시 이상한 쇼트를 집어넣는다. 포폴이 잠시 벽에 기대서 엘렌과 학생들을 보는 도중, 포폴의 시점에서 엘렌의 뒷머리를 줌 인하는 쇼트가 갑자기 끼어든다.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관객들은 재고를 할수 밖에 없다. 대체 샤브롤은 왜 엘렌의 뒷머리를 극단적으로 클로즈업 해서 담아냈을까? 만약 포폴이 엘렌에 대한 상념을 지울 수 없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다면 엘렌의 뒷 모습을 중간 크기의 쇼트에서 보여주는 것으로도 충분했을건데 말이다. 게다가 직후 이어지는 포폴의 반응 쇼트 역시 어딘가 불편해보인다.
 
대체 '무엇이' 포폴을 불편하게 했던 것일까? 어디까지나 추론이지만 이 쇼트에 담긴 엘렌의 붉은 뒷머리가 포폴이 다루던 생고기랑 비슷하게 보여서 아닐까, 라고 생각해본다.  물론 머리카락과 생고기는 완전히 다른 물체지만, 적어도 이 쇼트에서 붉은 뒷머리는 지나치게 확대된 나머지, 본 의미를 쉽게 알아차릴수 없을 정도다. 마치 조지아 오키프의 대상을 확대시켜 추상적으로 찍은 사진들처럼 말이다. 극단적으로 확대된 이미지는 본 의미를 잃고 생경하게 다가오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추상화된 붉은 이미지는 고기의 색감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샤브롤은 우아함을 중시했던 프랑스 귀족을 분장한 인물들 사이에 극단적으로 확대된 뒷머리 쇼트를 집어넣으면서 이물감을 발생시킨다.

[도살자]의 오프닝 크레딧은 동굴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샤브롤은 그 오프닝을 잊지 않았다듯이 영화 속에서 동굴을 등장시킨다. 체험학습을 위해 아이들을 데려간 엘렌은 이 동굴이 원시인이 살던 동굴이라 설명하고, 이에 아이들은 잠들어있던 원시인이 깨어난다면 분명 착할거라고,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한다. 하지만 그 직후 엘렌과 아이들은 시체를 발견한다. 살인 현장의 피가 하얀 샌드위치 위로 떨어지는 장면은 그 점에서 상징적이다. 문명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샌드위치의 깔끔한 하얀 이미지 위에 원시적인 피가 떨어지면서 얼룩지기 때문이다. 동굴과 식빵은 서로 화해할 수 없어보인다.

사실 살인 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후반부터 명백해진다. 바로 끊임없이 야만과 폭력의 자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포폴이 범인이었다. [도살자]가 흥미로운 점은 엘렌의 일상에 비일상적인 살인과 폭력이 끼어들면서도, 엘렌과 살인마 포폴의 연애담을 장르적으로 소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히 관객은 이 사실을 눈치채는 순간 포폴이 엘렌을 죽일지 모른다고 긴장하게 된다. 서스펜스의 공식에서 남성 연쇄살인마와 여성의 관계는 필연적으로 연쇄살인마가 여성을 착취하면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샤브롤이 두 캐릭터를 존중하면서 신중하게 감정을 쌓아올렸기 때문에 [도살자]는 쉽게 착취적인 태도로 빠지지 않는다.

모든 진상이 밝혀지는 후반부는 그 점에서 [도살자]의 섬뜩하면서도 애절한 매력이 잘 드러나고 있다. 하늘거리는 커튼을 보여준 다음, 어둠 속 교실에 홀로 있는 엘렌 앞에 불쑥 나타나는 포폴의 샷은 히치콕에 대한 존경심이 잘 드러나는 장면이기도 하다. 이 순간 포폴은 부정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살인마다. 샤브롤은 포폴의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더욱더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진상이 밝혀지기 전에도 포폴과 엘렌의 로맨스는 일상이 끝난 오후에서 밤에 이뤄졌지만, 살인이 등장한 순간 샤브롤은 포폴과 엘렌의 로맨스는 빛 아래에서 이뤄질 수 없다고 선언하는 것 같다. 

하지만 포폴은 쉽게 단죄할 수 없는 인물이라는 것도 샤브롤은 명백히한다. 때문에 [도살자]의 멜로 드라마는 도피적인 면모가 강하다. 이런 도피적인 멜로 드라마는 자해한 뒤 죽어가는 포폴을 싣고 엘렌이 밤의 도로를 질주할때 극한에 달한다. 이 순간 관객은 포폴을 두려워하면서도 진심으로 동정하고 그가 엘렌과 함께 행복하길 바란다. 포폴은 깨어났지만 환대받지 못하는 착한 원시인이며, PTSD를 앓는 군인이다. 구체적인 정치 메시지를 담은 영화는 아니지만, 포폴의 캐릭터는 알제리 전쟁의 맥락과 연계될 수 있을 것이다. 병원에 들어갔을때 샤브롤은 병원 의사들이나 병원 풍경을 보여주지 않고 포폴과 엘렌의 샷-리버스 샷만을 고집하면서 둘만의 감정을 기어이 완성시킨다.

하지만 그 완성은 동시에 죽음을 의미한다. 결국 두 사람은 이 세상에서는 이뤄질 수 없는 관계였고, 엘렌의 마음을 간직한 채 포폴은 쓸쓸히 죽는다. 샤브롤은 이제 홀로 남은 엘렌의 모습을 보여준다. 엘렌을 보여주는 마지막 쇼트야말로 [도살자]의 무표정한 쓸쓸함을 집약하고 있다. 다시 찾아온 사랑이 비극으로 끝난 뒤, 엘렌은 골똘히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이때 샤브롤은 엘렌 뒤에 물안개와 불이 켜진 차 전조등을 보여준다. 엘렌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남겨진 엘렌이 이어갈 삶은 어떻게 될 것인가? 샤브롤은 그저 물안개라는 흐릿한 상황 속에 등대처럼 켜진 전조등을 통해 엘렌과 포폴의 사랑을 집약한다. 파국으로 끝났지만 그래도 무의미하지 않았다듯이. [도살자]가 만약 샤브롤의 대표작으로 불릴 수 있다면 샤브롤의 무표정함이 상당히 절절하게 메아리치고 있는 영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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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7

얼마 안 있으면 19대 대통령 선거... 죽기 전까지 탄핵당해 선거일이 바뀔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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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te Rock - Play Dis Only At Night

제가 힙알못 (힙스터 알못, 힙합 알못 뭐든 간에)이긴 하지만 이 앨범이 상당히 좋은 연주 힙합 앨범이라는건 알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야밤중 도시의 정경을 제대로 잡아내고 있는 비트와 소울과 펑크의 고전을 인용하는 샘플링, 그루브가 담겨있는 찰진 앨범입니다. 한밤중에 듣고 있으면 밤의 정경에 절로 녹아든다고 할까요. 곡 하나하나의 완성도도 높고, 앨범을 쭉 놓고 들어도 집중력이 높은 앨범입니다.

제이 딜라의 유작 앨범과 함께 흑인들의 관점에서 턴테이블리즘이나 DJing, 비트메이킹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고 행해지는지, (세대적으로 보면 이 분은 드 라 소울이나 ATCQ, 딜라 같은 얼터너티브 힙합 세대인 사람입니다.) 잘 알 수 있는 앨범입니다. 그 점에서 힙합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강력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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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7

대통령 선거가 얼마 안 남았는데... 정말 좋은 대통령이 뽑혀야 될건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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숏 컷 [Short Cuts] (1993)

2017/04/19 - [Deeper Into Movie/리뷰] -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 [McCabe & Mrs. Miller] (1971)

로버트 알트만의 [숏 컷]의 시작은 하늘을 날아다니는 살충제 헬리콥터다. 중요한 점은 이 헬리콥터에 대한 정보가 보이스 오버 형식을 통해 인물들이 보는 뉴스로 전해진다는 점이다. 도입부의 의도는 명백하다. 알트만은 불특정 다수의 개인적인 영역에서 일어나는 파편화된 사건들을 조합해서 그릴 예정이다. 몇몇은 이야기가 진행되는 도중에 만나겠지만 몇몇은 영화가 끝날때까지 만나지 못할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같은 LA 하늘 아래에서 살고 있다. 알트만은 이렇게 분절된 개별 캐릭터들을 하나의 영화로 묶는 과정을 헬리콥터-살충제-뉴스를 거쳐 도식화하고 암시한다.

조각나고 분절된 상황처럼 보이지만 하나로 엮어지는 [숏 컷]의 서사 구조 자체는 알트만 영화를 조금이라도 본 사람이라면 익숙할 것이다. 알트만은 이미 [내시빌]에서 이 도식을 완성시킨바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소 느슨하게 구성되어있던 [내시빌]과 달리, [숏 컷]은 훨씬 치밀하게 직조되어 있다. 레이먼드 카버가 쓴 단편 소설들을 엮어낸 [숏 컷]의 캐릭터들과 상황들은 하나하나가 인상적이기에 도입부의 교통정리가 끝나면 그들이 누군지 파악하기 어렵지 않다. 웨이트리스가 일으킨 교통 사고로 아들을 잃은 부부, 돌아다니며 불륜을 저지르는 경찰, 시체를 발견하고도 신고하지 않고 낚시에 집중하는 사내들, 어릿광대 일을 하는 여자....

레이먼드 카버가 제공하는 세계는 그야말로 질척하기 그지 없다. 원작 소설도 그렇지만, 카버의 세계는 침이나 땀으로 범벅이 된 원초적인 본능이 구질구질한 감정들과 계급 양태랑 얽혀있는 리얼리즘의 세계다. 시체가 잠긴 강에서 남편이 건져올린 생선을 먹었다가 역겨워하는 아내, 술과 담배로 쩌든 집에 앉아 기계적인 폰섹스를 나누는 여자, 아들을 잃은 슬픔을 생일 케이크를 먹으면서 해결하는 부부... 카버의 세계에서 욕망과 감정은 날것으로 내던져지고, 인물들은 그 폭풍 속에서 끙끙 머리를 앓으며 욕설을 내뱉는다. 알트만은 그 영역에 발을 내딯으며 생생하게 그 폭풍을 잡아낸다. 그 점에서 [숏 컷]은 존 카사베티스의 세계에 가까운 알트만 영화일것이다. 비슷한 알트만 군상극이였던 [내시빌]이 기본적으로 학자의 시점을 견지했던 것과는 대조된다.

중요한 점은 이 과정에서 관객은 알지만, 작중 인물들은 모르는 정보의 차이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점이다. 개별 시퀀스 내에서도 꾸준히 등장인물들을 마주치게 하고 심지어 중대한 사건까지 일으키지만, 그 인과관계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웨이트리스 도린은 자신이 친 아이가 죽어버린걸 끝내 알지 못한채 괜찮을거라고 믿으며, 메리안과 랄프가 꼴불견으로 싸웠던 것을 클레어와 스튜어트는 알지 못한다. 이렇듯 [숏 컷]은 인물들은 단선으로 이해하고 있는 상황을 관객이 입체적으로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면서 감정적인 긴장을 만들어낸다. 그 긴장은 안타까움이기도 하고, 블랙 코미디적 조소이기도 하고 허무함이기도 하다.

어떤 점에서는 얄밉고 냉소적이기까지 하다. [숏 컷]은 독립적이었던 카버의 단편들이 하나의 세계에서 서로 얽히고 섥히게 한 뒤, 조감하면서 생기는 거리감이 있다. 주인공들의 고민과 감정은 묵직하고 진지하지만 영화가 취하고 있는 헬리콥터의 시점에서는 일부에 불과하다. 단일 구조에서는 진지했을 감정들과 행동이 각각의 상이한 구조가 얽히고 파편화되면서 전체적인 인상은 가벼워지는 것이다. 알트만의 이런 태도는 상이한 음표들을 모아서 통일된 곡으로 만들어내는 작곡 과정을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다. 실제로 [내시빌]이 그렇듯이 [숏 컷] 역시 가수가 노래를 부르는 샷을 집어넣어 영화의 전체적인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숏 컷]의 마지막은 카버의 리얼리즘을 흔드는듯 하면서, 동시에 카버가 추구했던 인생의 깨달음를 동시에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의 결말에 등장하는 지진과 살해는 뜬금없고 당황스럽다. 노골적으로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표방하는 이 영화의 결말은 그러나 상당히 일관된 이해의 결과물이다. 먼저 지진은 도입부에 등장한 살충제와 수미상관적 댓구를 이루는 도구다. 살충제가 모기를 죽이는 유독한 물질로,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시점을 제시했다면 지진은 그 시점의 존재감과 죽음의 존재를 다시 확인시키며 파편화되어있던 사건들을 일시적으로 하나로 묶는다. 지진 앞에서 느끼는 공포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며, 동시에 살충제의 유독성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이 지진은 궁극적으로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알트만은 끝없이 지리하게 이어질것만 같은 개별 일상의 리듬에 격렬한 충격을 가하지만, 아무렇지 않게 돌아가는 인물들의 삶을 보여주면서 아이러니를 끌어낸다. 극단적인 욕망이 살해라는 행위로 폭발하지만, 그 극단 역시 자연스럽게 일상의 리듬으로 회귀하는 아이러니. 심지어 알트만은 짜증나서 유기했던 개를 다시 찾아와 데려오는 서브플롯을 집어넣으면서 그 아이러니를 강조한다. 궁극적으로 이 아이러니는 도덕적으로 쉽게 판별될 수 없는, 인간의 양면성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숏 컷]은 군상극 이외의 알트만적 인장인 '아이러니'를 발견할 수 있는 영화기도 하다.

[숏 컷]은 그런 아이러니에서 긍정과 부정 어느 쪽으로 떨어지지 않는 독특한 영화다. [내시빌]에서 있었던 얄밉고 냉소적인 태도는 여전하지만, 알트만은 카버가 담아냈던 '인생에서 일어나는 긍정과 부정, 그리고 기이한 깨달음'이라는 테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데 성공했다. 이 영화의 무지막지한 길이는 그 파편화된 긍정과 부정을 하나의 영화로써 조각모음하기 위해 필요한 도구라 할 수 있다. 그 점에서 [숏 컷]은 후기 알트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영화이며, 단편의 흐름을 공시성을 가지고 조직했다는 점에서 서사 영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밀어붙인 걸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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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n Morrison - Cyprus Avenue

여성 편력이 쩌는 북아일랜드 영감님이지만, 그래도 좋은건 좋다고 해야죠. 도입부부터 꾸준히 하프시코드와 은은하고 목가적인 재즈 임프로바이제션, 남성미 넘치는 블루아이드 소울풍 모리슨의 보컬이 포크와 재즈를 오가면서 독특한 곡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신비로운 목가성이 넘치는, 레전설로 남을만 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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