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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2017/12 (10)
20171231

연말을 감기몸살로 골골거리면서 보내다니.... 덕분에 이 세상의 한 구석에 리뷰는 내년으로 미뤄졌습니다.

남은 2017년 잘 지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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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bert Johnson - When You Got a Good Friend

존경합니다 블루스 킹 갓 로버트 존슨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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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이차선 [Two-Lane Blacktop] (1971)

2016/12/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

2017/01/26 - [Deeper Into Movie/리뷰] - 복수의 총성 [The Shooting] (1966)

[자유의 이차선]은 이전작처럼 길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길 위에 선 몬테 헬만의 인물들은 집으로 갈 생각이 없고, 어디론가 향해 가는 것으로 서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자유의 이차선]은 전작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먼저 시대가 현대로 변했고 주인공 자리엔 잭 니콜슨 대신 비치 보이즈의 데니스 윌슨과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가 대신하고 있다. (헬만이 사랑한 워렌 오츠는 계속 나온다.)

또한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길을 잃거나 도주해야 했던 이전작과 달리, [자유의 이차선]의 주인공들은 아예 목표 의식이 희박해져버렸다. 부조리한 상황 역시 훨씬 은밀하게 영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운전수와 정비공은 드래그 레이스를 한다. 그러다가 경찰이 등장해 도망쳐 어디론가 달린다. 대체 얼마나 달렸나 싶을까 잠시 차를 멈춰세웠을때 한 여자가 몰래 차를 탄다. 하지만 운전수와 정비공은 여자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운전수와 정비공이 G.T.O를 만나면서 헬만은 그만의 기이한 실존주의를 슬슬 펼쳐가기 시작한다. 운전수와 정비공과 달리 나이가 많아보이는 G.T.O는 굉장히 수다스러운 캐릭터다. 그는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수다를 떨어대며 끊임없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다. 그는 여자에게 영영 떠돌수 없다고 말하며, 스피드에만 집중하는 주인공 일행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말을 바꾸며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는 주인공 콤비랑 별반 다르지 않은 캐릭터다. 그의 수다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헬만은 G.T.O.와 주인공 일행을 대조시키면서 캐릭터들이 취하고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관객이 재고하도록 한다.

이들이 뉴욕을 향해 경주 내기를 걸면서 [자유의 이차선]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자유의 이차선]은 모든 요소들은 헬만 특유의 완만한 리듬에 배치한다. 먼저 등장하는 장소들은 비슷비슷하기 그지 없다. 저예산의 한계였을수도 있겠지만, 헬만이 선정한 공간들은 유달리 시간이 고여 흐르지 않는 곳들이다. 모텔, 휴게소, 농장, 주유소, 불법 드래그 레이싱, 한적한 시골길... 길과 길 사이엔 아무것도 없거나 무덤덤한 사건들 뿐이다. 가끔 등장하는 불법 드래그 레이싱 역시 그런 무덤덤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질주와 휴식 이 두 개의 행위를 오갈 뿐이며, 그 이상의 요소들은 집어넣지 않는다.

요컨데 [자유의 이차선]은 익명의 영화다. IMDB 가서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이름이 있는 캐릭터는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워렌 오츠가 맡은 G.T.O처럼 가명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그들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미국 머슬카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레이싱, 기계 부품들이며 상대방에 대한 관심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자동차와 길 위의 열정을 그려냈던 [길 위에서] 같은 비트 기행 문학을 오마주/패러디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잭 케루악이 [길 위에서]에서 그렸던 저항과 흥청망청한 열정은 밋밋한 미국 중서부 풍경 속에서 가라앉아버리고, 프리 섹스의 대안 공동체는 동승객에 대한 덤덤함으로 대체된다. 이 영화에는 섹스는 암시로 처리된다.

헬만은 대신 음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대중음악부터 시작해 자동차 음향이 스크린을 채우고, 음향은 조용한 인물들과 밋밋한 풍경을 대신해 리듬을 그려간다. 기이하게도 이 순간 헬만은 로베르 브레송과 닮아간다. 이 영화의 연기는 제한적이다. 비전문 배우인 제임스 테일러와 데니스 윌슨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말하며 연기하는 워렌 오츠조차 많은 연기 언어를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브레송이 그랬듯이 공허함과 침묵의 공기를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어둠에 묻혀있다가 점점 밝아오는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의 클로즈업 쇼트들의 감흥은 쉽사리 잊기 힘들다.

대놓고 코믹한 영화는 아니지만 [자유의 이차선]은 은근 무성 코미디스러운 구석이 있는 영화다. 주인공 일행과 G.T.O가 벌이는 경주는 사실상 전 재산을 걸고 벌이는 도박이지만, 헬만은 이 경주를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기 때문에 은근히 가볍게 다루고 있다. 운전수랑 정비공은 그닥 잃어도 별 상관은 없어보이고, 여자는 애시당초 제 3자다. 심지어 이 경주에 안달복달해야할 G.T.O조차도 종종 사람들과 얘기하느라 정신 팔린 모습을 보인다. 캐리커처화된 히치하이킹 승객들도 그렇고 고작 앞섰다 싶으면 자동차가 고장나 뒤따라온 경쟁 상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헬만은 전지적 작가의 권능을 활용한 뒤 슬쩍 웃는다.

[자유의 이차선]이 작가로써 몬테 헬만을 파악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하면, 은유적이었던 서부극과 달리 좀 더 본격적으로 196-70년대 미국 청년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단 주역 둘 캐스팅이 1960년대 미국 록 음악에 중요한 뮤지션이다. 또한 이 영화에 빼곡히 등장하는 자동차에 대한 디테일들은 히피즘과 결합된 자동차 개조 문화인 커스텀 컬처를 반영하고 있다. 어느 정도 상업적인 고려도 있었겠지만, 헬만은 팝 문화의 아이콘과 당대 로드 무비 장르를 끌어들여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실존적인 침묵 (실제로 헬만은 연극 무대에 있을땐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기도 했다.)으로 가득찬 여정에 시대상을 반영하려고 한다. 그들이 서부에서 시작해 뉴욕으로 가는 이유도 헐리우드에 대한 환멸과 뉴욕의 현실을 얘기하고 싶어했던 당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 눈에 띈다. 다른 주인공들처럼 이름이 없는 이 여성 캐릭터는 [바람 속의 질주]와 [복수의 총성]에서 밀리 퍼킨스와 함께 발전시킨 도발적인 여성 캐릭터 활용과 맥이 닿아있다. 이 여자는 무심하게 남자들의 경주를 지켜보며 관계를 가지고 차를 바꿔탄다. 그녀는 애초에 어느 남자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캐릭터며, 자기 흥미와 욕망에 따라 여정을 함께 한다. 마지막에 이 여자가 떠나는 것으로 경주가 마무리되는 것도 흥미롭다. 여자는 마치 자동차가 질렸다듯이 휴게소에서 만난 바이크를 탄 남자랑 같이 떠나버리고 두 남자들의 경주는 흐지부지된다. 

G.T.O.는 여느때처럼 다른 손님을 태우며 자신의 차가 방금 전에 있었던 두 남자와의 경주에서 땄다고 거짓말한다. 한편 운전수와 수리공은 드래그 레이싱을 하러 간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뉴욕에 가지 않고, 서부로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그 사이의 황야를 방황할 뿐이다. 몬테 헬만은 196-70년대 미국 도로를 달린다는 것, 나아가 청년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무덤덤한 황야를 떠돌아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방황이 마냥 무기력한건 아니라고 헬만은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드래그 레이싱이 시작하기 전 불타오르는 필름이다. 이 불타오르는 필름이 [바람 속 질주] 마지막에 등장하는 질주하는 말과 주인공의 쇼트에서 확장된 건 명백하다. 헬만에게 196-70년대 미국 청년들의 삶은 과묵한 불꽃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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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5 즐거운 성탄절

모두가 행복해지는 날이 되길.

(그냥 이 곡 올리고 싶어서 쓰는 글이야! 신경 쓰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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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강화도 가족 송년회

(12월 절반 이상을 [제노블레이드 2] 하느라 날려먹었어! 망할 가챠의 키즈나...)

간만에 형이랑 부모님이랑 같이 강화도를 다녀왔습니다. 그냥 하루치기 드라이브여서 큰 건 없었고, 민물장어 식당에서 점심 먹고 보문사 관광하고 (별로였습니다. 올라가는게 약간 힘들었는데 석모도 경치 감상 빼고는 너무 상업화되서.....) 집에 돌아왔네요. 개인적으로 해변가에 가보고 싶었는데, 러시 아워 피하느라 내릴 기회가 없었던게 아쉬웠습니다.

그래도 요새 퍼그뱀이 바빠서 가족끼리 움직일 일이 적었는데 (여름 휴가땐 저희 아버지가 아프셔서 같이 가질 못했습니다.) 이렇게 같이 갔다와서 다행이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행동할 시간이 적어지는데 오늘 안 갔으면 후회했을것 같아요. 송년회도 겸사겸사했네요.

2017년도 얼마 안 남았는데 나이만 먹어가고 별로 달라지는게 없어서 걱정되고 그렇네요. 미래가 아무것도 안 보여요.

뱀발. 날짜 보고 이상하게 여기지 마시길. 임시저장해둔 글을 그대로 활용해서 올리는거니깐요.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인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 | 보문사
도움말 Daum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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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도시 Z [The Lost City of Z] (2017)

2013/08/08 - [Deeper Into Movie/리뷰] - 리틀 오데사 [Little Odessa] (1994)

2014/02/23 - [Deeper Into Movie/리뷰] - 투 러버스 [Two Lovers] (2008)

2016/05/29 - [Deeper Into Movie/리뷰] - 이민자 [The Immigrant] (2013)

제임스 그레이 팬덤은 갸우뚱했을지도 모른다. [이민자]로 현대와의 작별을 고한 제임스 그레이는 코스튬 드라마에 이어 고색창연한 모험 영화로 돌아왔다. [잃어버린 도시 Z]는 데이비드 그랜의 논픽션 원작을 기반으로 도시 Z를 찾아 아마존 밀림으로 떠났던 탐험가 퍼시 포셋를 다룬다. 영화 타이틀이 뜨는 순간은 의미심장하다. 어둠 속에서 아마존 원주민들이 불꽃을 피울때, 제임스 그레이는 타이틀을 띄워 저 불꽃이 있는 곳이 '잃어버린 도시 Z'이며 이 영화의 종점이라 말한다.

영화의 도입부, 제임스 그레이는 사슴 사냥을 떠나는 영국군들을 보여준다. 부감 샷으로 진행되는 이 시퀀스는 영화 전체를 압축하고 있다. 사슴은 Z이며, 그 Z를 쫓아 샛길로 들어서는 주인공 퍼시 포셋은 남들에게 인정받지 못할 길을 갈 것이다. 이후 그레이는 마침내 찾아낸 사슴에게 방아쇠를 당기는 퍼시의 샷을 길게 보여주면서 그를 끌어당기는 운명의 힘을 예감케한다. 문명의 세계에서 퍼시는 자연을 폭력으로 굴종시킬수 있었으나, 문명 밖 세계인 아마존에서는 그런 행동이 불가능하다는걸 깨달을 것이다. 

그 다음 그레이는 포셋 부부를 사냥 축하 파티장으로 불러들이면서 루키노 비스콘티의 [레오파드]를 인용한다. 잘 차려 입었지만 불편해하는 (니나의 코르셋에 대한 농담이 대표적이다.) 예의바른 남녀들, 노란 색과 붉은 색의 조명과 색감, 그리고 드리워진 상류 사회의 그림자. 그레이는 포셋 가문에 드리워진 방탕함과 추문을 흘리면서 퍼시의 인정 욕구를 설명한다. 퍼시는 그레이의 다른 주인공들처럼 인정 욕구를 갈구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한 환멸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다. 이미 영국 사회에 편입된 머레이 경과 퍼시의 첫 만남을 보여줄때 그레이는 높낮이를 이용한 미장센으로 둘의 불화를 암시한다.

도입부로 퍼시의 캐릭터를 설명한 그레이는 퍼시를 런던으로 데려오면서 Z를 향한 여정을 시작한다. 당연히 퍼시의 첫 여정은 영국 제국주의의 첨병로써 수행한다. 왕립지리학회 회원으로써 퍼시 포셋은 두 나라 간의 국경을 정하는 임무를 맡으면서 영국 제국주의에 편입될 기회를 노린다. 하지만 퍼시는 여정 도중, 단순해보였던 아마존에 문명과 관련된 비밀이 있다는걸 알고 매혹된다. 퍼시가 느끼는 매혹은 장소의 물성에 대한 영화적 매혹이기도 하다. 그린 스크린과 CG의 시대에서 제임스 그레이는 정말로 아마존으로 가서 배우를 고생시키면서 아마존이라는 대상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담아내고자 한다.

동시에 그레이는 아마존 밀림을 향한 퍼시의 도전을 좌절시키면서, 출발과 귀환의 구조를 만든다. 이 구조를 반복하면서 시간은 흘러가고 영국 제국주의와 상류층 사회에 대한 환멸과 미지의 도시 Z에 대한 동경은 더욱더 커져간다. [잃어버린 도시 Z]는 20세기 초입 유럽이 겪어야 했던 격렬한 변화를 그려내고 있는 영화기도 하다. 퍼시의 실패는 잭의 성장을 의미하기도 하며, 동료의 죽음을 의미하기도 하며, 1차 세계 대전으로 대표되는 19세기적 가치관의 몰락과 무지비한 현대 문명의 등장이기도 하다. 밀림은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사람과 사회는 달라진다. 그레이는 그 변화에 애잔함을 느낀다. 영화 후반부에 퍼시가 자신은 늙었다고 장성한 아들에게 한탄하는 장면이 무게감이 느껴진다면, 그레이 특유의 인과율적인 작법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퍼시는 이 인과율 속에서 영국 사회가 바라는 세속적인 가치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Z와 아마존 문화를 존중하고 집착하는 사람이 되어간다.

퍼시의 Z에 대한 매혹은 영화가 진행될수록 퍼시 혼자의 것이 아니라는게 명백해진다. 먼저 퍼시의 아내 니나가 있다. 비록 퍼시의 여정에 동행하지 않지만, 그레이는 니나의 업적과 좌절을 통해 19세기 서구 문명의 여성 억압이 어떤 식으로 이뤄져 있는지, 어떻게 여성들이 저항했는지 보여준다. 니나는 행복해지고자 발버둥쳤던 [이민자]의 에바에서 발전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한편 잭 같은 경우, 좀 더 복잡한 그레이의 가족 묘사에 맞닿아있다. 아직 어렸던 잭은 아버지의 부재에 상처받으면서도 그와 같이 있길 원한다. 다시 떠날 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원망하지만, 동시에 부상당해 앞을 보지 못한 채 누워있는 아버지를 보면서 무력감과 씁쓸합을 느낀다. 퍼시의 가족들은 Z라는 궁극적인 목표 앞에서 고뇌하고 갈등한다.

포셋 가문의 사람들이 제임스 그레이 영화 주인공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커뮤니티의 편입 이외의 다른 길이 열려있다는 점이다. [잃어버린 도시 Z]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영국에서 아마존으로 떠나는 과정을 간략화한다. 그러면서 한 인물이 갈망하는 공간을 현재 시공간에 서서히 겹쳐놓기 시작한다. 제 1차 세계 대전 시퀀스가 대표적이다. 제임스 그레이는 이 시퀀스를 앙상한 전장 이미지에서 시작한다. 철저하게 파괴된 공간 속에서 퍼시는 현대 문명에 염증을 느낀다. 동료를 잃고 염소 가스에 쓰러지는 이 시퀀스의 결말은 그 점에서 매우 상징적이다. 이때 그레이는 갑자기 영적인 순간을 마련한다. 부하들의 손에 이끌린 퍼시는 집시 점쟁이를 만나게 되고, 점쟁이는 퍼시에게 당신은 아마존과 도시 Z를 잊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순간 퍼시와 점쟁이는 전장이 아닌 아마존 숲 속에 있다. 

이 갑작스러운 뛰어넘음은 그레이의 인물들을 결말로 이끄는 운명적인 힘과 연관이 있다. Z는 변해가는 세상에 변치 않는 가치관이며, 그레이가 만들어냈던 등장인물들이 바라던 평화와 안식이다. 어떤 일이 일어나던 그들은 Z로 가야만 하고, 기어이 영화 속 여정의 과정을 생략/단축하는데 이른다. 하지만 [투 러버스]의 레너드가 그랬듯이 Z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가족에게서 떠나가야만 한다. 그레이는 가족과 이상향 사이에 있는 간극과 고뇌를 산발적인 플래시백으로 형상화한다. 퍼시는 여정 도중 고난을 겪을때마다 플래시백을 빌어 가족을 생각하며, 잭이 아버지 퍼시를 설득해 마지막 여정을 떠날때 등장하는 플래시백 역시 영국에 남겨진 가족들이다.

그리고 그들이 Z로 추정되는 곳에 도착했을때, 운명은 그들을 미지의 영역으로 인도한다. [잃어버린 도시 Z]의 후반부는 죽음이라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묵상이다. Z 근처에 있는 족장은 그들을 보고 '이 곳도 저 곳도 속하지 않은 영혼'이라며 머물 집을 찾으라고 말한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잭과 퍼시는 저항하지 않는다. 그저 두려워하면서 서로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며, 그 운명을 받아들인다. 이 받아들임을 보여줄때 영화는 정중한 침묵으로 가득찬 쇼트를 이어가면서 해탈의 경지에 이른다. 서구 문명에서 떨어져 나온 포셋 부자는 Z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그 와중에서도 플래시백으로 사랑하는 가족을 떠올린다. 마지막 플래시백에서 퍼시는 자신의 과거를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새 생명이 탄생하는 순간의 행복을 떠올리면서 동시에 거리감을 느낀다. 그는 결국 가족이라는 커뮤니티에서 관찰자일 수 밖에 없었지만, 그 짧았던 순간을 결코 잊지 않으려고 한다.

실제 퍼시 포셋은 사기꾼이었다고 한다. 데이비드 그랜의 원작 역시 사실과 맞지 않는다는 평이 있다. 하지만 영화 [잃어버린 도시 Z]의 결말은 자기완결적이다. 결말에서 제임스 그레이는 그들의 영혼이 머물 집을 상상하지 않고, 남겨진 니나에게 돌아간다. Z에 대한 열망이 퍼시 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고 말하는 니나는, 남편과 아들이 남긴 물건을 가지고 지리학회장에게 보여준다. 미심쩍어하는 지리학회장을 남겨두고 니나는 떠난다. 하지만 니나가 향하는 곳은 런던이 아닌 밀림이다. [이민자]의 결말과 같은 구도지만, 여자와 남자는 분리되지 않고 같은 방향을 향해 나아간다. 뉴욕을 떠난 제임스 그레이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그 곳에서 인물들은 함께 할 수 있을까? 한가지 분명한 것은 그레이는 이상을 쫓는 행위는 분명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잃어버린 도시 Z]는 그 점에서 우주로 갈 그레이의 차기작 [에드 아스트라]를 예측해볼수 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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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eohtrix Point Never ft. Iggy Pop - The Pure and the Damned

사실 OPN에 대해서는 별 생각은 없었습니다만, 얼마전에 본 사프디 형제의 [굿 타임] (리뷰 준비중입니다) 사운드트랙은 기가막히게 잘 써서 흥미가 좀 생겼습니다. 영상과 음향 몽타주의 충돌이라고 해야 할까, 원초적인 매력이 있더라고요. 이게 정말 계속 갈 재능인지는 좀 생각해봐야 되겠습니다만 (레픈...) 그래도 이 이기 팝과 협업한 엔딩 트랙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피아노 앰비언스가 인상적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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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브린느 [Belle De Jour] (1967)

2017/04/02 - [Deeper Into Movie/리뷰] - 절멸의 천사 [El ángel exterminador / The Exterminating Angel] (1962)

2017/09/24 - [Deeper Into Movie/리뷰] - 부르주아의 은밀한 매력 [Le charme discret de la bourgeoisie / The Discreet Charm of the Bourgeoisie] (1972)

멀리서 마차가 다가온다. 제목 타이틀이 뜬 뒤 마차는 공적 영역에서 벗어나 사적인 숲 속으로 들어온다. 두 남녀가 달콤한 사랑을 나누지만 다음 샷에서 갑자기 상황은 반전된다. “부드러움이 무슨 소용이죠?”라는 질문을 한 여자는 곧 모욕을 들으며 옷이 벗겨지고 남자는 여자를 벌하라고 마부들에게 명한다. 묶여있는 여자는 맞으면서 애원한다.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 이어질것 같은 다음 샷에서 여자, 세브린느는 남자 피에르를 바라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요?” “우리 생각이요.”

조셉 케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루이스 부뉴엘의 [세브린느]의 도입부는 마치 농담처럼 시작한다. 피학적인 상상으로 사랑하는 남편과의 지고지순한 부부 관계를 전복하려는 세브린느의 속내를 피에르는 알지 못한다. 그들은 멀쩡한 부부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딘가 공허함에 시달리고 있다. 둘의 대화는 진심으로 위장하면서 문제의 근원에 닿지 않는다. 이 관계에서 부뉴엘은 완벽하고 순종적인 부르주아 부부라는 정형적인 관계가 서로를 질식시키고 있다는걸 보여준다.

부부는 다음 시퀀스에서 겨울 산으로 놀러간다. 보통 사람들은 겨울 산에서 소복히 쌓인 눈을 생각하지만, 부뉴엘은 한번도 하얀 눈으로 덮인 산을 보여주지 않는다. 대신 세브린느와 피에르는 눈 내린 마을을 걸어간다. 이때 바닥에 깔린 눈들은 더러워져 있다. 부뉴엘은 흰색의 순결함을 믿지 않는다. 후술할 세브린느의 하얀 옷과 연결해보면 이 눈 내린 마을은 캐릭터가 내세우는 순결함이 세속적인 욕망을 숨기는 커튼에 불과하다는걸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은 친구 잇송 씨를 만나게 된다. 이때 세브린느는 잇송을 불편해 하며, 잇송은 피에르를 보고 '자네와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잇송이 식당을 떠나면서 한 말은 '밤을 맞으러 가봐야 되겠다'다. 그 시퀀스 직후 세브린느는 잇송과 동행했던 친구랑 (의미심장하게도 그 친구는 잇송을 더 이상 만나지 않는다고 한다.) 택시를 타면서 앙리에트를 둘러싼 매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는 잇송이 보낸 꽃을 꽃고 이동하다가 꽃병을 깨트린다. 그리고 화장실에 들어간 세브린느 화장수 병을 다시 깨트린다. "내가 왜 이러지?" 부뉴엘은 이 순간 최면을 건다. 부뉴엘은 무언가 깨지는 행위를 세브린느의 무의식에 등장하는 더러운 배관공에 대한 플래시백과 조응시키면서 이후 이어질 부르주아의 도덕률의 붕괴를 은유한다. 심지어 자신처럼 정숙했으리라 생각했던 피에르조차도 결혼 전에 창관에 다녀왔다는 사실을 알린다.

잇송의 밤을 맞으러 간다는 대사는, 일반적인 도덕 관념을 탈피하러 간다는 얘기며 세브린느의 내면을 반영하고 있다. 세브린느 역시 일탈하고 싶어한다. 이 순간 잇송이 다시 등장하는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순결해 오히려 페티시적인 (눈처럼) 흰 테니스 복장을 한 세브린느 앞에 잇송은, 은근슬쩍 암시했던 자신의 마음을 본격적으로 드러낸다. 불편해하는 세브린느에게 잇송은 아나이스의 창관을 알려준다. 남은 건 세브린느 자신의 선택 뿐이다. 물론 부르주아 룰에 순종적인 세브린느는 타락을 거부하려고 한다. 세브린느가 창관 근처에서 서성거릴때 드러나는 망설임은 다시 얘기치않은 플래시백을 불러오게끔 한다. 영성체을 거부하는 세브린느의 플래시백은 가톨릭을 향한 부뉴엘의 세속적인 저항이며, 동시에 보수적인 도덕률을 거부하기 힘들다는걸 드러낸다.

세브린느는 아니아스를 만나게 되고, 매춘을 하기로 결정한다. 아니아스는 세브린느에게 억지로 키스를 하는 것으로 욕망의 문을 여는 선언을 한다. 하지만 세브린느가 만난 손님들은 낯설고 두렵기 그지없다. 악랄하게도 첫 매춘이 이뤄지는 시퀀스에서 부뉴엘은 아돌프라는 무례한 부르주아 남성 캐릭터를 데려온 뒤, 남성기와 사정을 암시하는 샴페인을 배치해 얌전하게 살아온 세브린느에게 충격 효과를 가한다. 어렵게 매춘을 마친 세브린느는 앓아누워 부르주아를 만나는걸 거부하고 한동안 매춘업소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세브린느는 결국 매춘업소로 돌아온다. 어째서일까?

부뉴엘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인물의 욕망이 영화 전체의 구조를 흔드는데 있다. [세브린느] 역시 루이스 부뉴엘의 뻔뻔스러운 욕망과 서사 구조에 대한 풍자적인 도발이 잘 드러나 있다. [세브린느]는 일단 시공간을 흐트러트린다. 이 영화의 소품들이나 배경은 분명 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음에도 19세기적이다. 중간 중간 등장하는 마차라던가, 호화롭지만 공허해보이는 귀족 저택, 세브린느의 집은 이야기의 시공간을 의심케한다.반면 부뉴엘은 텔레비전을 아니아스의 창관에만 배치하면서 현대 문명을 매춘과 동일시시킨다. 19세기적 엄숙한 도덕에 갇힌 현대의 부르주아들은 텔레비전이 있는 창관에서 기괴한 욕망을 배출한다. 

부뉴엘은 매춘과 자본주의 간의 관계를 탐구하며 부르주아의 허울과 위선을 조롱한다. 아니아스는 매춘부들에게 매번 예절과 교양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아니아스의 창관이 어떤 가치관으로 움직이는지 잘 보여준다. 아니아스의 매춘부들은 처음엔 부르주아에 걸맞는 예절과 교양으로 맞이하지만, 그 예절과 교양은 이내 섹스라는 동물적인 행위 앞에서 벗겨진다. 교수와 샤를로트가 벌이는 SM극 도중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중단과 지속은 부르주아에 내재된 사회적 페르소나와 동물적 욕망의 기괴한 진자 운동을 잘 보여준다. 아니아스와 부뉴엘은 그 점에서 부르주아의 이중성을 예리하게 파악하고 있다.

이런 이중성을 지켜보면서 세브린느의 비틀린 욕망은 분절적인 플래시백으로 분출된다. 이 플래시백에서 세브린느의 위치는 상당히 복잡하다. 어떤 플래시백에선 과감히 유리병을 깨는 잇송과 함께 피에르 앞에서 섹스하기도 하며 (NTR!), 어떤 플래시백에선 잇송 씨를 이기고 남성성을 뽐내는 (잇송은 '피에르에게 초콜릿이나 선물하라'고 세브린느에게 돈을 준다. 절대로 독립된 성인을 대하는 태도는 아니다.) 피에르에게 구출받는 자신을 상상하기도 한다. 명백한 점은 환상 속 세브린느가 아무리 피학적인 위치에 있더라도, 궁극적으로 이 플래시백들은 세브린느의 주체적 욕망과 연계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 욕망의 플래시백은 중간중간 영화 서사를 가로막고 관객으로 하여금 캐릭터의 재구성을 유도하게 한다.

앓아누웠던 세브린느가 다시 매춘업소로 돌아간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매춘을 한 세브린느를 묶어두고 피에르가 진흙을 던지면서 매도하는 환상은 여러모로 이중적이다. 이 환상은 순결을 포기하고 세속적으로 군 여성에 대한 징벌을 담고 있지만 동시에 세브린느 자신의 주체적인 피학 욕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피에르는 현실에선 세브린느의 피학 욕망을 충족해줄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다. 세브린느는 매춘을 통해 자본가의 이면과 마주해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킬수 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세브린느는 변한다. 영화 중반에 이르면 세브린느는 환상 밖 자기 욕망의 주체가 되고 매춘할때 입던 옷을 입고 피에르와 데이트를 할 정도로 변해간다.

[세브린느]의 전환점은 마르셀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면서 시작한다. 그는 모든 점에서 완벽한 피에르의 안티테제다. 아무런 직업 없이 아버지뻘인 히폴리테 (부뉴엘은 이 캐릭터에 은연중에 스페인 망명객이라는 암시를 남긴다.)와 함께 퍽치기 범죄를 저지르며, 등에 새겨진 상처와 빠진 이를 드러내며 여성에게 폭력적인 마르셀은 야성적인 청년 무산자이다. 세브린느의 피학적인 정열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남자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마르셀을 묘사할때 부뉴엘은 명백히 장 뤽 고다르의 [네 멋대로 해라]를 인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르셀이 처음 등장하는 시퀀스는 개선문 근처며 그 주변에서는 엑스트라가 진 세버그의 '뉴욕 헤럴드 트리뷴'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잘 될 것만 같았던 마르셀과 세브린느의 관계는 곧 파국으로 치닫는다. 메꽃, 오후의 미녀, Belle De Jour. 세브린느는 오후에만 욕망에 충실해질수 있는 불완전한 부르주아의 죄수다. 세브린느에게 매춘은 자신의 욕망을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다. 하지만 폭력적이고 여자를 소유하려는 마르셀에게 매춘부 세브린느는 인생의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존재다. 그러기 위해서는 세브린느는 오후의 미녀가 아닌 매일의 미녀 Belle de Chaque jour가 되야 한다. 하지만 마르셀의 욕망은 내려치려는 허리띠 앞에서 당당한 세브린느 앞에서 좌절된다. 마르셀이 있는 한 자신의 일상이 유지될수 없다는 걸 안 세브린느는 아니아스를 떠난다. 아니아스의 억지 키스로 열어젖힌 욕망의 문은 세브린느가 아니아스에게 키스하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기어이 세브린느의 사적 영역에 들어선 마르셀은 진실을 폭로하겠다고 세브린느와 실랑이를 벌인다. 그러던 마르셀은 피에르의 사진을 보고 모든 것을 이해한다. 세브린느가 선택한 욕망의 충족과 통제는 궁극적으로 피에르를 사랑하기 위해서였고, 세브린느와 피에르 사이에서 자신이 들어설 자리는 없다는걸 마르셀은 알아버린다. 좌절한 마르셀은 모든 관계를 파탄내고 피에르를 향해 총을 쏜다. 그리고 마르셀은 마치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 미셸 푸가드처럼 롱 숏 속에서 경찰 총에 맞아 죽는다. 부뉴엘은 마르셀을 통해 [네 멋대로 해라]를 패러디하면서 프랑스 누벨바그에 대한 어떤 코멘트를 남기고 있다. 아마 부뉴엘은 [네 멋대로 해라]를 보면서 프랑스 청년 세대의 좌절과 기득권을 향한 파괴 본능을 잡아냈던 걸지도 모른다.

남은 건 반신불수가 된 피에르와 정숙한 부인으로 돌아온 세브린느다. 이때 잇송 씨가 다시 등장한다. 피에르를 은연중에 깔보고 있었던 잇송은 안타까움을 보이면서 동시에 세브린느에게 대신 사실을 털어놓겠다고 말한다. 왜 세브린느는 피에르에게 사실을 고백하지 않는 것일까? 잇송은 피에르는 자신에게 헌신하는 아내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을 뒤집자면 세브린느 역시 자신에게 여전히 다정한 피에르에 대해 사랑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세브린느는 오후의 미녀가 되는 것으로 사랑을 유지하면서도 욕망을 통제하는 방법을 찾아냈지만, 결국 엇나가버렸다. 당신이 총에 맞은 이후 꿈을 꾸지 않는다는 세브린느의 고백은 기괴한 순정을 담고 있다.

부뉴엘은 서로를 향한 이 기괴한 헌신을 비웃지 않는다. 잇송에게 사실을 들은 후 눈물을 흘리던 피에르가 일어나는 샷은, 부뉴엘식 현실 파괴지만 조롱의 의미는 담겨있지 않다. 일어난 피에르는 세브린느를 비난하지 않고 대신 휴가를 떠나자고 말한다. 이때 마차 방울 소리가 울리고 세브린느는 피에르에게 말한다. "저 소리 들려요?" 소리를 따라 발코니로 나간 세브린느의 시점 샷 뒤에 이어진 반응 샷은, 초반부에 등장했던 마차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그 마차엔 아무도 타고 있지 않다. 세브린느를 향한 반응 샷임에도 가상선이 파괴된 이 샷은, 더 이상 굴절된 욕망과 조응하지 않은 채 그대로 사라진다. 부뉴엘은 세브린느가 가지고 있는 욕망과 일탈은 큰 죄가 아니였으며, 그저 왜곡된 부르주아 체제 하에 세속적인 해소 행위에 불과했노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세브린느는 욕망의 소리를 피에르와 공유하면서 행복해진다. 이상한 꿈은 끝났고 남은 것은 달콤한 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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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블레이드 2 스토리 예고편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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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3

작년 연말엔 나라 망할것 같은 분위기에 시위 나가느라 한 해가 끝나는지 잘 모르겠던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좀 정상적인 연말 느낌이네요. 올 한 해는 그 잔해를 수습하는 느낌입니다.

다시는 이런 힘든 일은 경험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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