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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Headphone Music/단상 (3)
Yo La Tengo Live in Seoul 20161130

야광 티켓입니다.

공연 중 사진 촬영 금지였기에 올리는 건 이 정도로 ㅇㅇ '시끄러운 셋' 시작 직후 찍은 사진입니다.

좀 뒤늦었지만 올려봅니다. ㅇㅇ 썩을 티스토리 과거 글 현재 시간 발행 기능 왜 없앴냐...

요 라 텡고가 처음 내한했을 당시엔 꼭 가고 싶었던 공연이였는데, 그때 제 사정이 좀 암울하기도 했고 결정타로 돈이 없어서 결국 무산되었습니다. 놓치고 난 뒤 3-4년 내에 재내한할줄 알았죠. 그런데 8년이나 걸렸습니다...사실 이번 내한 소식도 좀 뒷북으로 알아서 (...) 얼리버드 티켓 다 놓치고 현매로 표를 구했습니다. 출혈이 심하긴 했지만 그래도 여유 자금이 있어서 어찌 버텼네요.

사실 제가 단독 공연을 본 게 서니 데이 서비스&소카베 케이이치 내한하고 소카베 케이이치 일본 공연 밖에 없었습니다. 둘 다 바를 겸업하는 소규모 공연장였기에 중대형 공연장은 한번도 가본적이 없습니다. 악스홀? 사운드마인드? 롤링홀? 그런거 몰라요... 집에서 음악 듣는 방구석폐인 웅엥웅 쵸키포키...  그랬던 제가 무브홀에 가다니 요 라 텡고를 참 좋아헀긴 좋아했나 봅니다.

집에서 홍대까지가 가까운 곳은 아닌지라 좀 일찍 나와서 표 받았습니다. 그 뒤 저녁 먹고 시간 떼우다가 (좀 헤맨 뒤) 다시 돌아갔는데 그 사이에 줄을 많이 섰더라고요. 그래서 앞에서 못 보겠다 싶었는데 그래도 일찍 온 보람은 있는지 나름 앞자리 차지하는데는 성공. 무브홀 자체는 깔끔하게 보기 좋더라고요. 

근데 와... 사람 많더라고요. 공식 추산 600명이라는데 공연 시작할 쯤엔 꽉꽉 들어차는 바람에 나중에 쉬는 시간에 나가지도 못하고 걍 앉았습니다. 나가면 못 돌아오겠다는 공포감이 들더라고요. 언제 될지 모르지만 다시 내한 올 정도의 관객이었습니다. 누가 말하길 "홍대 인디 밴드 및 모소모 송년회"....

고지받은 대로 처음엔 '조용한 셋'부터 먼저 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나온 곡은 몰랐지만 'Big Day Coming' 나올땐 나름 공연에 빠져들기 시작합니다. 조지아 허블리는 브러시 드럼 치고 제임스 맥뉴도 거대한 콘트라베이스로 연주하는 등 전반적으로 차분하고 친밀한 느낌이었습니다. 

조용한 셋 좋긴 했습니다. 짬밥 때문에 연주나 무대 매너도, 편곡도 깔끔하고 (어쿠스틱 기타랑 브러시 드럼으로 잔잔하게 편곡했는데도, 곡 자체의 매력을 잃지 않더라고요), 공연 음향도 빵빵해서 만족스러웠습니다. 다만 모르는 곡들이 좀 섞여 있었고, 개인적으로 '시끄러운 셋'에서 듣고 싶던 'Big Day Coming', 'Deeper into Movies'가 '조용한 셋'으로 나온게 좀 아쉬웠습니다. 

원래 요 라 텡고가 스튜디오 녹음과 라이브가 상당히 상이한걸로 유명하고 조용한 셋 버전도 좋아서 조용히 제창하긴 했지만 역시 노이즈로 지져주는 맛이 있는 곡들이라... 그래도 좋아하는 곡인 'Black Flowers'랑 'Friday I'm in Love' 나왔을때 감동은 진짜... 녹화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습니다. 

공연장이 좀 후덥지근한데다 체력이 고갈되니 후반부로 갈수록 입고 있던 코트가 부담되더라고요. 못 버틸 정도는 아니였지만, 조용한 셋 끝나고 나서 결국 약간의 민폐를 감수하고 퍼질러 앉았습니다. 앉고 나니깐 좀 낫더라고요. 한편 코트는 벗긴 벗었는데 보관하기 난감해서 고민 끝에 허리에다 묶었습니다.

그리고 시작한 시끄러운 셋은... 조용한 셋 좋은거에 100배로 좋았습니다. 처음부터 딩딩딩 띵 딩 띵~ 하면서 'Mr. Tough'가 나오자마자 저는 혼절하는 줄 알았고 'Before We Run'로 서서히 고양시키더니 'Shaker'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면서 기타 노이즈로 조져주는게 아주.... 소카베 케이이치가 기타 조져주는 수준도 장난 아니였지만 아이라 카플란이 온갖 코드를 넘나들며 기타 조져주는건 그냥 와... 그냥 그 자체로 완결된 예술이더라고요. 

근데 이게 끝이 아니였습니다. 'Tears are in Your Eyes'로 잠깐 쉰 뒤, 'Sudden Organ'로 다시 기타와 오르간이 불을 뿜기 시작하고 'Autumn Sweater'부터는 그냥 펄펄 날아댕기더라고요. 'Sugarcube'-'Ohm'에 이르러서는 떼창을 하지 않는 청중들이 못내 원망스러웠고 (아니 이 라이브에 떼창을 안해?!!?) 기타 속사와 즉흥 연주에 담긴 노이즈로 밤풍경으로 그려내는 대작 'I Heard You Looking'를 들을땐 그냥... 너무 행복해서 할말이 없더라고요. 오르간과 기타, 보컬을 넘나들며 무대를 장악하는 아이라의 조용한 카리스마가 굉장했습니다. 다리도 저릿하고 체력도 바닥이 났음에도 너무 행복해서 힘든 거 다 까먹었을 정도였습니다. 아이라 아저씨 저희 아버지보다 1살 연하라는게 사실입니까?? 과..과연 60세!!

사실 제게 이 공연에서 유일한 단점은 공연 시간이 긴 나머지 앙코르 들을때 열차 끊기는걸 걱정하고 있었다는 점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객관적으로는 라운드앤라운드 쪽 운영이 미흡한건 지적해야 되겠지만...) 앙코르도 인심 좋게 세 곡이나 해서 (내심 라이브로 듣고 싶었지만 안 나오나 싶었던 'Today is the Day'이랑 'Luci Baines' 진짜 최고였습니다.) 저는 행복해하면서도 열차 시간... 집에 어떻게 가지... 이 생각 때문에 사인도 못받고 머천다이즈도 못 사고 공연장 탈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일찍 나왔음에도 또 길을 헤매는 바람에 엄청 힘들게 막차 탔네요

역시 밴드 30년 짬밥은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라는걸 보여주는 멋진 공연이였습니다. 아이라랑 조지아가 저희 부모님 또래여서 그런지 친근감과 동시에 무병장수를 기원하게 됩니다. 무병장수 백년해로 재내한 간절히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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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마포구 서교동 368-22 | 무브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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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를 냉소한 노이즈: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스


(과제용으로 제출한 글을 그대로 올립니다.)


우선 글을 시작하기 전에 노이즈가 어떤 개념의 ‘소리’인지 정의를 내려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한마디로 노이즈란, “음악의 규칙으로 환원될 수 없고 따라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모든 소리(잡음)라는 의미”다. 그렇기에 20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노이즈는 음악사에서 배격되어왔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의미’가 없어서 메시지를 담을 수 없고, 불편함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노이즈는 현대음악가들에게 각광받기 시작했다. 왜일까?


개인적으로 노이즈가 각광받기 시작한 것은 파시즘 같은 매우 정치적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히틀러는 “증폭스피커 없이는 독일을 정복할 수 없었을 것”라고 말한 적이 있으며, 그들이 선호한 음악은 영웅적인 서사와 화음이 담겨있는 바그너였다. 그렇기에 히틀러의 재앙에서 살아남은 음악가들이 의미를 부여할 수 없는 소리인 노이즈를 음악적 화법에 넣으면서 일사불란한 힘을 가지고 있는 파시즘의 미학을 파괴하는 용도로 쓴 것이다. 이를 통해 노이즈는 단순히 듣기 싫은 소리에서 미학적인 저항의 상징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런 현대음악의 노이즈 사용은 곧 대중음악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대중음악에 노이즈라는 개념이 도입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였다. 그리고 그 선두엔 벨벳 언더그라운드라는 밴드가 있었다. 그리고 그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냉소적인 노이즈는 후대 밴드에게도 영향을 미쳤는데 이 글은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스를 통해 그들이 노이즈를 통해 무엇을 냉소했는지 알아보려고 한다.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1965년 뉴욕에서 결성되었다. 이들은 로큰롤에 노이즈를 본격적으로 도입한 밴드로 불리는데, 사실 이 밴드가 추구한 음악은 성향이 다른 두 중심 멤버의 시너지에서 나왔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먼저 존 케일은 영국에서 클래식과 현대 음악을 전공하고 초기 플럭서스 운동에 영감을 받아 라 몬테 영이나 시어터 오브 에서럴 뮤직 같은 아방가르드 뮤지션들과 협업하면서 자신의 세계를 만든 사람이며, 반대로 루 리드는 두왑과 엘비스 프레슬리 같은 음악을 흠모하며 개러지 록 밴드들을 전전한, 대중음악과 로큰롤의 뿌리가 가까운 사람이였다. 


이 둘이 뭉쳐서 만든 음악은 당시 로큰롤의 조류하고는 거리가 먼 음악들이였다. 당시 비틀즈와 버즈를 위시한 로큰롤은 화음과 멜로디 중심으로 청자들을 끌어들이며 낙관적인 도취감으로 가득찬 사이키델릭을 추구했으나, 이들이 만든 첫 앨범 [The Velvet Underground & Nico]은 전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한마디로 그들은 당시 사회를 지배했던 낙관적인 도취감 대신 그것을 냉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부드러우면서도 끊임없이 비올라의 웅웅 거리는 소리가 포근함을 방해하는 ‘Sunday Morning’부터 ‘Venus In Furs’나 ‘Heroin’ 같은 곡에서는 로큰롤의 비트를 따라가는 것처럼 보여도 전자 비올라와 기타가 음정을 무시하며 노이즈를 만들며 단조로우면서도 최면적인 드론 사운드로 청자의 귀를 방해한다. 간신히 남아있는 멜로디만이 그 노이즈에 청자들을 접근할 수 있도록 가교가 되어준다. 가사는 약물 중독과 사도마도히즘 같은 성적 일탈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며, 스포큰워드에 영감을 받은 루 리드의 보컬은 뻣뻣하고 냉담하게 그 메시지들을 중얼거린다.


이들의 노이즈 성향은 다음 작인 [White Light/White Heat]에서 존 케일의 성향이 강해지는데, 상술했던 라 몬테 영과 시어터 오브 에서럴 뮤직 같은 현대 음악가들의 영향력이 강력하게 느껴진다. 멤버들의 불화를 반영하듯 당시로ᄊᅠᆫ 극한에 다다른 노이즈는 로큰롤이라는 형식을 잡아먹어버리고 무시무시한 속도로 청자를 공격하는 청각적인 괴물이 된다. ‘White Light/White Heat’나 ‘Sister Ray’에서 밴드가 만들어내는 단순한 구조로 이뤄진 노이즈는 불온한 내용들을 기계적으로 외치는 루 리드의 목소리를 뒤덮어버리고 그 자체로 순수한 음향 덩어리가 되어 굴러간다.


이런 음악적 경험에서 청자들은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자신들이 속한 당대의 사회적 분위기에 대해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는걸 알 수 있다. 왜 그들은 당대의 ‘낙관주의’에 대해 냉소적으로 보고 있을까? 이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비트라는 문화를 언급을 해야 할 것 같다. 한국에서는 다소 생소한 단어일 비트는 1950년대부터 대두되기 한 새로운 청년 문화로,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기고만장해진 ‘위대한 미국’을 조소하며 방탕한 삶을 즐기며 퇴폐적이고 저급한 것들에 대한 찬사를 보냈다. 당시 비트를 대표하는 문학 작가로는 앨런 긴즈버그와 잭 케루악, 윌리엄 버로우즈, 게리 스나이더, 닐 캐시디가 있으며 주로 찰리 버드 같은 재즈 음악을 숭앙했다.


물론 벨벳 언더그라운드가 결성될 당시엔 청년 문화로써 비트는 이미 히피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는 상태였고, 존 케일과 루 리드도 비트 세대보다는 한 세대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였다. 하지만 비트에서 히피로 청년 문화의 주도권이 넘어가는 전환점에서 비트 문화 내에서 대표적인 비트 세대였던 잭 케루악과 앨런 긴즈버그 간에 있었던 논쟁은 히피 세대와 비트 세대가 어떤 공통점을 공유하면서도 동시에 차이점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히피 세대는 ‘참여적’이고 ‘유토피아 공동체’에 대한 낙관이 강했다면 비트 세대는 ‘고립적’이고 ‘유토피아 공동체 자체에 대해 냉소적’이였다. 실제로 논쟁 이후 긴즈버그는 히피 세대와 함께하기 시작했고 케루악은 불교를 통해 영적인 구원을 얻고자 했다. 패션 스타일 면에서도 비트 세대는 검은 선글라스와 어두운 색깔을 즐겨 썼다면 히피 세대는 밝은 옷과 원색을 즐겨 썼다.


따라서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로큰롤의 구조와 멜로디 자체를 방해하고 나중엔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노이즈는 히피 세대가 추구했던 유토피아 공동체가 얼마 가지 못할 것이라는 냉소가 담긴 예언이었으며, 동시에 그 문화적인 대격변 속에서 갈피를 못 잡고 방종한 생활을 이어가는 개인들을 그려내는 붓이였다. 그리고 그 붓이 ‘상업 이미지의 대량 복제를 통해 기존 미학의 해체’라는 개념을 도입한 팝아트 주자인 앤디 워홀과 현대 음악의 영향력을 받았다는건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노이즈를 통해 ‘부패한 이면’을 그려낸 벨벳 언더그라운드는 당대 대중음악계엔 인정받지 못하고 단명해야만 했으나 곧 추종자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뉴욕으로 한정지어서 보자면 뉴욕 돌즈를 통해 노이즈로 당대의 로큰롤을 해체하고자 했던 펑크 록이 탄생했고 이 펑크 록은 1980년대에 소닉 유스가 등장할 수 있게 하는 자양분이 되었다.


 우선 강하게 대두되는 노이즈, 냉소적으로 읆조리는 보컬 등은 벨벳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소닉 유스는 그 노이즈를 본격적으로 변칙 튜닝을 통해 녹여내고 있다는 점에서 독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오픈 튜닝을 사용해 개방 현들이 하나의 코드로 화음을 이루게 하는” 변칙 튜닝은 실제론 대중음악에서 잘 쓰이지 않는데, 그 이유로는 음색이 튀어서 멜로디를 만들기에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런 변칙 튜닝을 썼다는 점은 소닉 유스가 노래 구조 자체를 노이즈에 적합하도록 변혁하려고 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Daydream Nation]에 실린 ‘Eric’s Trip’은 그런 노이즈와 변칙 튜닝 간의 시너지를 잘 볼 수 있는 곡인데 일반적인 로큰롤 구조가 탈력적인 변칙 튜닝와 노이즈를 통해 기괴하게 무너지는 음악적 풍경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벨벳 언더그라운드도 오픈 튜닝을 도입하긴 했으나, 소닉 유스는 이를 의식적으로 쓰고 발전시켰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변칙 튜닝을 소닉 유스에게 가르쳐 준 사람이 벨벳 언더그라운드처럼 현대음악가라는게 여러모로 재미있다. 소닉 유스가 영향을 강하게 받은 현대음악가는 글렌 브랑카다. 그는 변칙 튜닝 뿐만이 아니라 일반적인 밴드의 구성을 혁파해 기타를 비롯해 일반적이지 않은 악기를 여러 대를 배치해 ‘연주’가 아닌 ‘노이즈’를 비롯한 ‘음향 설계’를 노렸는데 이는 소닉 유스의 방법론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런 변칙 튜닝을 통해 나오는 강렬한 노이즈 속에서 소닉 유스가 냉소하는 것은 1980년대 레이건 체제 속에서 낙관적인 환상에 젖은 미국과 그것들의 첨병이였던 마이클 잭슨과 마돈나 같은 정교한 화성으로 주류 팝 음악 체제다. [Daydream Nation]에 실린 ‘Teen Age Riot’은 노이즈 기타를 연주하는 영웅이 (이 영웅의 모델은 후배 밴드였던 다이노서 주니어의 J 매시스라고 한다.) 10대들을 폭동으로 이끈다는 가사를 담고 있으며, ‘The Sprawl’는 사이버펑크의 대부 윌리엄 깁슨을 인용해 당시 발전하던 사이버 세계를 상상하고 있으며, 연주곡 ‘Providence’는 멀찍이 들리는 피아노 소리에 알듯모를듯한 소리 콜라주와 고장난 앰프에서 흘러나오는 노이즈가 황폐한 심상을 그려내고 있다. 좀 더 대중화 된 [Dirty]에선 ‘Youth Against Facism’ 같은 노골적인 파시즘에 대한 저항의 메시지를 전하기도 한다. 


이외에도 [Daydream Nation] 발표 직후 마돈나의 미들네임을 가져와 치콘느 유스라는 이름으로 마돈나의 곡들을 해체한 앨범을 발표했다는 점은 여러모로 시사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변칙 튜닝의 구조 속에 녹아든 노이즈가 1980년대 말 미국의 청춘들의 냉소적인 심리상태를 그려내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소닉 유스가 1990년대 초반 얼터너티브 문화에 영향을 미쳤다는건 어찌보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결론을 내리자면,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소닉 유스는 제 2차 세계 대전 이후 노이즈를 받아들인 현대음악계가 어떻게 대중음악계에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그런 노이즈가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낙관주의를 냉소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밴드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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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 데이 서비스 / 소카베 케이이치 in Korea 감상기.
 

제가 서니 데이 서비스와 그 리더인 소카베 케이이치를 좋아하는 건 여러분들도 잘 아시겠죠. 하지만 이렇게 보러가는 건 처음입니다. 2007년 내한땐 제가 소카베 케이이치를 몰랐고 (...) 알고 난 뒤엔 이미 때는 늦으리~ 게다가 그땐 서니 데이 서비스는 재결합은 안 했고요. 서니 데이 서비스는 이게 최초 내한일겁니다. 그래서 이건 장기라도 팔아서라도 보러 가야 되겠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아 물론 장기는 안 팔았습니다. 겸사겸사 소카베 케이이치도 보러가자고 생각해서 소카베 케이이치도 끊었습니다.

나중에 안 건데 소카베 케이이치 밴드도 이번 1월에 페스티벌 형식으로 내한 했더라고요. 그때도 꽤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이 참에 소카베 케이이치 인지도나 좀 올랐으면 좋겠습니다.


1. 소카베 케이이치

그래서 금요일엔 안하던 연가도 내고 보러갔습니다. 직장에 있는 사람들이 여친하고 데이트하냐고 물어봤지만 알게 뭐야.

사실 소카베 형과 음악으로 연애하는거라면 맞겠지만.

 아버지가 부산 싸나이여서 제가 쓸때없이 고집이 쎕니다. 뭐 여튼 전 공중캠프라는 곳을 (+홍대 클럽) 처음 가봐서 꽤 신기했습니다. 카페+바+공연장 이런 느낌. 술 마시면서 공연 보는 사람들 보면서 참 뭐랄까 묘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래요 전 남양주 촌닭이란 말입니다. 뭐 여튼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더라고요. (후술 하겠지만 서니 데이 서비스가 워낙 사람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진것도 있고.) 그래도 나름 그럭저럭 자리 찼고 술 마시면서 보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친밀한 분위기여서 좋았다고 할까요. 소카베 씨는 이런 느낌의 공연을 자주 하던것 같더라고요.

게스트로는 김일두 씨가 나왔습니다. 뻘한 위트가 넘치는 곡들을 들려주셔서 상당히 좋게 들었습니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영어로 있어보이게 부르는데 사실 가사는 뻘하게 웃기는 가사였던 곡들. 나중에 일본 가셔서 소카베 씨랑 꼭 같이 공연하시길.

소카베 케이이치 공연은 솔직히 제가 소카베 앨범들이 없는지라 제대로 못 즐겼다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엉엉. 그래도 중간중간에 나오는 서니 데이 서비스와 소카베 케이이치 밴드 앨범들 수록곡 때문에 손해본 느낌은 없었고 새로 알게 된 곡 중에서 낚인 곡도 있었습니다. (텔레폰 러브와 어른 같은거 되지 말아줘. 너무 좋았어요!) 게다가 소카베 형이 너무나 열심히 공연해주고 (정말 어쿠스틱 기타에서 그런 힘이 쏟아져 나오다니... 나중엔 반팔 입고도 땀까지 흘리시더라고요.) 무대 매너도 너무나 좋았습니다. 정말 진솔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예인을 보는것 같아서 멋있더라고요. 결정적으로... 


소카베 형이
공연을 하다가 
무대에서 내려와 

제 얼굴을 보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엄마 고마워요 일찍 가라고 해서 어어어어엉어어어어어어어어엉
소카베 형 나 이거 평생 안 잊을꺼야 엉어어어어어어엉어어어엉엉어어엉어어어엉

그 순간 너무 당황해서 굉장히 어설프고 난감한 모션을 취했습니다. 오징어 춤

그거 하나만으로도 행복한 공연이였습니다. 공연 자체는 기타 한대로 진행되서 좀 소박한 느낌이였지만 반대로 친근한 느낌이 들어서 굉장히 좋았습니다.

그리고 앨범에 싸인도 받았습니다. 마침 서니 데이 서비스 베이시스트인 타나카 타카시 씨도 있어서 두 분 사인도 받고 왔습니다. 두 분 다 잘생기셨더라고요. 소카베 씨도 미중년이였지만 타나카 씨도 역시 제법... 타나카 씨하고는 사진도 찍었는데 굉장히 이상하게 나와서 제 가슴에 흑역사 적립...

 
2. 서니 데이 서비스

사실 이걸 더 기대하고 있었고 그 기대는 충분히 보답받았습니다. 무엇보다 게스트로 온 한강의 기적이 김일두 씨만큼이나 멋진 공연을 보여줘서 기대치가 올라갔는데 이어진 서니 데이 서비스는 정말 굉장했습니다. 물론 어머니 충고에 따라 일찍 가서 앞에서 보았습니다.

물론 삼인조 밴드 체제로 해서 편곡의 묘미를 즐길수 없었다는게 아쉬웠지만 ('수국'이나 '섬머 솔저' 같은 곡이 그렇죠.) 역으로 삼인조 밴드 체제로 뿜어낼수 있는 에너지 고갱이를 순수히 즐길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새빨간 태양'나 '젊은이들'를 아예 펑크풍으로 편곡해 듣는 재미가 상당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잊어버렸어' 같은 곡은 정말 절창으로 뽑혀져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이 라이브의 절정은 뭐니뭐니해도 '여기서 만납시다' 였습니다. 원곡도 상당히 파워풀했는데 원곡 이후 이어지는 기나긴 잼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는게 와... 할말을 잃어버리게 만들더라고요. 데뷔 17년차가 다되가는 밴드의 저력이 느껴지더라고요.

전반적으로 도쿄와 사랑과 웃음의 밤, 세임 타이틀 곡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역시 이 시절 곡들이 그나마 가장 잘 개인적으로 24시 앨범의 '안녕히! 거리의 연인'하고 세임 타이틀 ' 해줬으면 했는데 안해서 아쉽긴 했지만 어쩔수 없죠. 대신 나온 곡들도 다 좋아서 충분히 배부른 느낌이였습니다. 서니 데이 서비스 모르는 사람이라도 좋아하게 할 만큼 엄청난 공연이였습니다. 다들 꼭 보셔야 했는데.

그래서 이번엔 드러머 마루야마 하루시게 씨에게도 싸인을 받았습니다. 조금 귀찮게 한 것 같아서 죄송하고... 뭐 그렇습니다. 그리고 막판으론 소카베 형과 한방 사진 찍었죠! 으하하하하하하 기분이 HIGH합니다. 게다가 형님이 절 기억해주셔서 더더욱 기분이 HIGHHIGH!!!! 저 올해 운세를 여기다 다 쓴거 같습니다. 다음에도 또 와줘요...

근데 이것도 이상하게 나와서 조용히 흑역사로 봉인... 젠장 내가 이렇게 뚱뚱하고 얼큰이에 못생겼다니.

그래서 이번 내한 공연 결론은 서니 데이 서비스와 소카베 케이이치는 최고라는 것 ㅇㅇ
변치 않습니다. 포에버. 영원히. 알러뷰.
P.S. 서니 데이 서비스 공연 녹화해놓은게 있는데 이걸 어떻게 뽑아낼지가 문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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