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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등장한, 20세기의 유산들로 빚어진 정파 어드벤처.

사후적으로 보면 [미스트], [가브리엘 나이트 3]와 [그림 판당고], [오미크론] (1990년대 중후반을 전후로) 이후 이야기와 퍼즐로 승부하는 순수한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는 주류 게임계에서 설 자리를 잃었다. 화려한 그래픽과 자극적인 게임 디자인을 선보이는가로 승부를 거는, 3D-HD 게임 시대에 이야기와 순수한 두뇌싸움으로 일관하는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를 주류 게임 시장에 내놓는다면, 그건 개그로 오해받기 쉽다. [헤비 레인]과 [앨런 웨이크], [하프 라이프 2]가 웅변하듯이 어드벤처도 급속도로 하이브리드화 되가고 있다.

하지만 [헤비 레인]처럼 헤비한 모션 캡처를 할 수 없는 창조적인 제작자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도 이 장르에 희망을 가지게 된다. 존 디포 시리즈, 텔테일 게임즈, 연말에 공개될 제인 젠슨의 [그레이 매터]가 그렇고 이번 [머시너리움]도 그렇다. 모든 요소를 제외한, 순수한 퍼즐과 이야기로 이뤄진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는 지금도 가능하다.

이 게임의 제작사는 체코에 있는 아마니타 디자인이다. 샘로스트 시리즈로 등장한 많은 주목을 받으며 등장한 이들은, 샘로스트 후속작으로 이 작품을 내놓았다. 비록 샘로스트 시리즈 1편(=데모)밖에 못했지만, 이 게임은 3D 대세를 거스르는듯한 우아한 2D 그래픽과 독창적인 퍼즐 디자인을 가졌던 걸로 기억한다. 머시너리움은 전작에서 받았던 찬사를 이어가는 작품이다.

게임의 이야기는 어느정도 미스테리/추리의 형식을 가지고 있다. 도입부 쓰레기 하치장에 버려진 주인공 로봇 조셉은 여러모로 플레이어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셉이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는지 밝혀지는데, 이 방식이 무척 독특하다. 모든 이야기와 대사들은 효과적인 무성 애니메이션으로 표현됬는데, 보면 절로 웃음과 감탄사가 동시에 나온다. 머시너리움은 언어의 한계라는 스토리 위주의 게임이 가질수 밖에 없는 산을 재치있게 돌파했다. 물론 도시를 파괴하려는 악당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동시에 소박한 사랑을 다룬 전반적인 이야기도 잘 다듬어진 편이다.
 
게임의 퍼즐은 적절히 밸런스가 맞춰져 있다. 종종 허들이 높은 퍼즐들이 등장하긴 하지만, 초보자라도 좀 고생하면 풀 수 있는 수준이다. 적어도 힌트 없이 사기적으로 던져지는 퍼즐은 없으며, 힌트도 적절한 수준으로 제공된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퍼즐은 마지막 아케이드 액션 게임 아니였나 싶다. [머시너리움]의 퍼즐은 전통적인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의 향수을 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것을 성공적으로 살려냈다. 다만 핫스팟 범위가 좁은 것과 중간에 등장하는 오목 AI가 너무 높은 거 아닌가라는 흠 아닌 흠을 지적하고 싶다. 

이 게임의 세계관은 20세기에 많이 기대고 있다. 프리츠 랑이 [메트로폴리스]를 구상하면서 머리와 종이에 잔뜩 담았을법한 스팀 펑크 풍 상상력부터 시작해 고풍스러운 재즈 음악, [로봇]의 카렐 차펙과 얀 쯔반크마이어, 프란츠 카프카가 공격했던 동유럽 특유의 관료주의, 레트로 아케이드 게임, 깁슨 식 사이버펑크 등이 그렇다. 하지만 [머시너리움]은 느긋한 태도로 이 재료들을 가지고 독자적인 세계관을 만들고 있으며, 결과 역시 인용 이상의 것이다. 아기자기하지만, 고풍스러운 매력을 갖추고 있다.

[머시너리움]은 굉장히 아름다운 작품이기도 하다. 거의 수공업에 가까운 2D 그래픽은 전반적으로 무채색 톤을 유지하고 있지만, 세밀함과 정교함, 그리고 포스를 뿜어낸다. [Braid]와 더불어 HD 시대의 2D 그래픽의 미덕을 제대로 보여준다. 얀 쯔반크마이어 같은 재인들로 가득한 걸로 유명한 체코 아트 애니메이션의 저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IDM과 재즈를 넘나드는 배경 음악도 잊혀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모두 압도적이다.

[머시너리움]이 어드벤처 게임의 대세를 바꾸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 [헤비 레인]과 달리, 그들의 작품들은 소박한 판매고를 올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같은 장르의 인디 게임인 [브레이드]처럼 화끈하게 혁신적이지도 않다. 아마니타 디자인이 이 이후로도 초거대 제작사로 성장할 가능성은 더더욱이나 드물어보인다. 어찌보면 [머시너리움]은 그저 스쳐지나가 버리는 것이 더 자연스러웠을 그런 작품이다. 

하지만 이야기와 세계관을 중시하고 잘 짜여진 퍼즐의 재미를 중시하는 고전적인 2D 포인트 앤 클릭 어드벤처의 미덕을 생각해보면 [머시너리움]은 20세기 게임과 작별하기 위해서라도 21세기 게이머들이 꼭 해봐야 하는 게임이다. 특히 당신이 [네버후드], 유럽 아트 애니메이션을 좋아한다면 더더욱 해봐야 한다.

P.S.1 전반적으로 석원님의 Gigi의 [Maintenant] 해설지를 오마쥬한다는 느낌으로 썼다.
P.S.2 후반부는 어머니하고 같이 즐겼는데, 정말 즐거워하는 어머니를 보며, 앞으로 이런 게임을 많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식된 도리 아닌가.

Ladies and Gentlemen, We Are Floating in the Space.

에리카 바두의 신보 [New Amerykah Part Two: Return Of The Ankh]는 듣는 이를 몽상의 세계로 초대하는 앨범입니다. 조만간 손에 넣을 예정인 파트 원하고는 어떤 관계를 가지는지는 2부작 리뷰으로 미루겠지만, 이 앨범은 개인의 정서에 집중하는 앨범이라는거 정도는 말할 수 있겠군요.

이 앨범은 무척이나 몽환적입니다. (제가 바두의 다른 앨범을 듣지 못해서 이 앨범 한정으로 이야기하는 건 양해 부탁드립니다.) 달리 말하자면 사이키델릭의 영향이 강하다고 할수 있습니다. 다만 이 사이키델릭이라는 개념은 백인들 중심으로 사이키델릭 록의 그것하고는 다릅니다. 에리카 바두가 목소리와 곡으로 풀어내는 사이키델릭은 무척이나 영적이고, 아프리카의 기원으로 돌아가고자하는 강한 회귀 본능과 고전적 디바의 품위가 모두 느껴집니다. (그녀의 예명이 원래 이름을 아프리카식으로 고친 거라는 것은 팬들의 기본 상식이죠.) 물론 1960년대의 소울 디바의 영향도 뺴놓을 수 없겠죠.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힙합 비트에 몸을 맡길줄 아는 세대의 소울 디바이기도 합니다. 에리카 바두는 소울쿼라이언스라는 크루의 멤버이기도 했고, 여러 래퍼들과 힙합 크루들하고 교류 관계를 맺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몇몇 힙합 앨범엔 피처링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넓게 보자면 에리카 바두의 음악은 흑인 음악의 뿌리부터 지금까지 찾아나서는 한 흑인 여성 예술간의 순례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에리카 바두의 새 앨범은 다소 정체되는 것처럼 보였던 네오 소울(바두 자신은 이런 "렛떼루"를 붙이는 걸 싫어하지만.)의 지평을 온화하게 확장하는 앨범입니다. 확실히 이 앨범은 전작에게 쏟아졌던 평과 달리 실험적이거나 혁신적이지 않습니다. 전통에 기대고 있다고 할까요. 그러나 힙합 비트와 소울의 휭키함, 재즈의 싱커페이션을 넘나들며 건강하지만 탐미적인 영성을 뿜어내는 바두의 목소리와, 그 영성을 실천시키기 위해 동원된 곡의 방법론들은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저음의 펜더 로즈와 오케스트레이션에 상념적인 바두의 보컬이 가세한 첫 트랙까지 '20 Feet Tall'부터 고전적인 재즈 디바의 위엄에서 우주적 몽상으로 나아가는 마지막 트랙 'Out My Mind, Just In Time'까지 몽롱하지만, 뼛속 깊은 영성을 건드리는 곡들로 가득합니다. 기계적이지만 영적인 나레이션과 제이 딜라의 고급스러운 비트가 돋보이는 'Love'와 맑은 하프 도입부가 인상적인 'Incense'도 빼놓으면 안 되겠죠.

반쪽짜리 감상이지만, 그래도 이 앨범은 독자적으로 대접받을 가치가 있는 앨범입니다. 견고하게 짜여진 앨범이 제공하는 도취에 하루종일 빠져지내고 싶을 정도입니다. 흑인 음악을 즐겨 듣지 않는다도 해도, 편안하지만 단단하게 자기만의 음악 세계를 만들어가는 에리카 바두의 이 앨범은 들어볼 가치가 충분합니다. 단연 에리카 바두는 지금 활동하고 있는 흑인 여성 아티스트중 가장 독보적인 사람입니다.

P.S. 앨범 커버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와 에리카 바두의 작품입니다.

오오 샘 바우어.

4개월 동안 인터넷 들여다보면서 잉여짓하기 싫어서 '이왕인 김에 못해본 게임이라도 깨자!' 싶은 심정으로 잡게 되었습니다.

톰 클랜시 원작의 스플린터 셀 시리즈는 잠입 액션으로 유명한 게임입니다. 하지만 형이 시리즈 중 더블 에이전트 하다가 접는걸 보고 저도 자연히 할 마음을 접었습니다. 사실 전 액션치거든요. 그나마 몬헌 프론티어와 페왕 시리즈로 감은 잡았지만, 여전히 액션 게임을 잘한다고는 말 못합니다. (...) 빠른 반응을 요하는 잠입 게임하고는 연이 더욱 멀죠.

그런데 이번 컨빅션이 의외로 진입벽이 낮아졌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이번에 잡게 되었습니다. 사실 샘 바우어 간지 때문이라곤 말 못합니다 (...)

컨빅션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아마 '방법의 다양함' 아닐까 싶습니다. 한 마디로 이 게임은 잠입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미션을 통과할 수 있습니다. 필드 내의 적들을 무쌍난무를 하면서 싹 다 쓸어버리거나, 적절한 유인을 통해 어둠 속에서 하나씩 차근차근 없애거나, 아예 죽이지 않고 아이템을 쓰거나 잠입하면서 진행할 수도 있습니다. 뭐 그렇다고 '네 멋대로 해라!' 이런 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어느정도 제한되어 있습니다. 이건 해보시면 압니다.

이런 다양함 때문에 게임의 허들이 좀 낮아졌습니다. 잠입 실패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게임을 진행할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변화이긴 하지만, 지금까지 시리즈를 즐겼던 골수 팬들이 분노는 좀 과도한 바가 있습니다. 게임은 여전히 잠입 플레이를 할 수 있는 여지들을 많이 남겨놓고 있거든요. 돌파할 여러 방법들을 강구하는 것도 은근히 새로운 재미와 긴장을 부여하기도 하고요. 전반적으로 게임이 많이 스피디/스타일리시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클리어 후 리뷰로 대체하겠습니다만, 지금 이 상태로도 충분히 재미있습니다. 유비 소프트가 퀄리티 관리를 잘해서인지 아주 구리거나 흠가는 부분은 없습니다. (다만 PC판 최적화와 유플레이는 좀...이 아니라 유플레이는 좀 까여야 마땅합니다.) 게임이 짧다는 얘기가 있던데 조루 엔딩만 아니였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ㅅㅂ 지금까지 펼쳐놓은 떡밥이 좀 되겠구만...)

참고로 이 게임만 잡으시려면 위키가서 설정 읽고 시작하시는게 좋을겁니다. 시리즈가 시리즈다 보니 인물 관계들이 좀 복잡해요.

P.S.1 이 게임의 10년 뒤를 다루고 있는 게임인 엔드워 설정을 알고 있어서인지, 저한테 덤벼드는 적들을 보면서 '너네들은 다 모가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뭐 모가지 둘째치고 제가 다 쓸어버렸기 때문에 상관없지만...

P.S.2 서포트를 담당하고 있는 안나 그림스티도어 (성을 보면 아시겠지만 아이슬란드 이민자입니다.)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일본판에 왜 쿠사나기 소령님(다나카 아츠코)을 캐스팅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목소리 굵어! 37세인데 저렇게 목소리가 굵다니! 게다가 삭았어! 비요크 누님은 역시 동화 속 요정이였구나! 아흑흑
본격 뒷북 음반 감상 시간 (하나도 안자랑)이 돌아왔습니다.

지금이야 서전음과 TV 옐로우, 3호선 버터플라이, 줄라이하트 등이 합류하면서 인상이 많이 바뀌였지만, 한때 저에겐 비트볼은 복고적인 이미지의 레이블이였습니다. 몽구스 3집, 스마일즈와 피들밤비가 데뷔 앨범을 내던 2006-07년이 절정이였던 것 같네요. (이렇게 적고 보면 굉장히 과거처럼 느껴지네요.) 당시엔 다른데에 관심이 있어서 이 음반을 구매하지 못했는데, 문득 생각이 나서 며칠전에야 지르게 되었습니다.

스마일즈는 당시 비트볼의 복고적인 이미지를 정석적으로 따라가는 밴드입니다. 제대로 향수(?!)를 자극하는 뒷면의 프로듀서 해설도 그렇고 (전형적인 한국 올디즈 LP 슬리브 디자인이죠. 양희은의 1991 앨범에도 실려있던...) 표지 사진까지 정말 제대로 복고 간지입니다.

앨범은 '정말' '제대로' 60년대 팝입니다. 최근에 질러서 듣고 있는 Gigi의 어느 부분하고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데, 별다른 치장 없이 순진한 멜로디, 편곡을 통해 팝의 즐거움을 순도높게 재현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필 스펙터와 비치 보이즈(와 브라이언 윌슨)을 모두 언급 가능한 앨범이라는 점도 있습니다. 둘 다 비트볼 발매 앨범이기도 하고요.

이 앨범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트랙은 'Rainbow'입니다. 살짝 보사노바 풍 편곡에 소박하고 아름다운 선샤인 팝 멜로디가 비상하는 그 느낌이 좋습니다.

그 외엔 할말은 더 없습니다. 사실 뭐라 설명할 대단한 실험이나 혁신이 있는 앨범은 아니고, 그저 흥겹게 옛 향취를 즐기면 되는 앨범입니다. 밴드나 프로듀서 모두 그 목표에 충실하게 봉사하고 있고, 완성도도 좋은 편입니다.

다만 한국 밴드에서 이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게 음악 외적으로 신기합니다. 선샤인 팝의 낙관주의는 솔직히 한국 역사하고는 거리가 먼 풍경이였죠. 이런 팝의 즐거움을 한껏 고양시킨 앨범이 나왔다는 사실은 한국도 이제 이런 감수성을 풀어내도 괜찮은 환경이 되었다는 걸지도 모릅니다. ...허나 판매량을 생각해보면 아직 이걸 받아들이기엔 대중들의 의식은 아직...인것 같습니다.



-3집 발매 기념으로 뒤늦게 질렀습니다.

-매드체스터/더 폴 풍 댄스 리듬에 번쩍거리는 질감을 올려놓는 작법은 1집하고 동일합니다. 단지 변한 것이라면 ‘소리’와 ‘멜로디’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앨범은 전반적으로 곡 위주로 사고된 앨범입니다. 한마디로 매끈합니다. 전작 ‘Never As Tired As When I’m Waking Up’같은 곡에서 무의식적으로 능숙한 사운드/멜로디 메이킹을 드러냈는데, 이 앨범에서는 그 능수능란함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고, 대부분 성공적입니다.

-특히 매끈한 멜로디를 자랑하는 'North American Scum'나 'All My Friends'부터 시작해, ‘Someone Great’나 ‘New York, I Love You But You’re Bringing Me Down’ 같은 LCD 표 댄스 발라드까지 앨범은 굉장히 착착 달라붙습니다. 앨범 전체 흐름도 롤러코스터처럼 짜릿하기 그지 없습니다. 한번 들으면 멈출 수 없어 하이프라 생각한 사람들의 입을 딱 다물게 할 정도로 좋습니다.

-물론 매끈해졌다고 해도, LCD는 LCD. 여전히 감수성은 너드후즐근합니다. 누가 ‘나는 북미의 쓰레기’라고 당당히 선언하는 댄스 트랙을 만들수 있을까요.

-다만 사운드 메이킹의 발전보다 전작의 연장선상에서 안정적인 틀 만들기라는 느낌이 강하기 때문에, 이 점을 좋아하지 않을 사람도 있을듯 싶습니다. 이 앨범은 마치 [Franz Ferdinand] - [You Could Have It So Much Better]의 관계를 연상시킵니다. 훌륭한 첫 타에 이은 굳히기 한 판 소포모어라는 느낌입니다.

-그래도 좋은 앨범입니다. 다만 1집에 비해 크게 변화한 부분은 없다는 것은 감안해야 할듯 싶습니다.


from [The ArchAndroid : Suites II And III] (2010, Bad Boy)

아 누님 숑숑 갑니다...

선배라 할 수 있는 에리카 바두보다는 쏘~울한 맛은 적지만, 정말 잘 노는군요. 부럽습니다.


당신이 음악을 사랑한다면 놓치면 안되는 힙합 앨범

장르를 정의한 걸작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제 리뷰한 이기 앤 더 스투지스의 [Raw Power]도 그렇고, 이번 리뷰 대상인 드 라 소울은 [3 Feet High and Rising]도 그렇습니다. [3 Feet High and Rising]은 황금기 힙합의 큰 나무인데, 그 나무에 열려있는 열매들이 참으로 풍성하기 그지없습니다.

힙합이라는 장르가 황금기 힙합이라는 이름으로 붐을 타기 시작한 것은 이들이 등장하기 전 3~4년전 런 DMC부터였는데,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퍼블리 에너미나 N.W.A.처럼 과격한 메세지를 과격한 사운드 메이킹을 통해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었습니다. 드 라 소울은 정글 브라더스하고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와 더불어 이런 흐름에서 떨어져 느긋한 분위기에서 힙합의 미학과 평화주의에 연구하기 시작했는데, [3 Feet High and Rising]은 정글 브라더스의 [Done by the Forces of Nature]와 더불어 그 연구의 초기 성과물이라고 할만합니다.

70년대를 수놓았던 팝스와 쏘울의 고전들 (레드 제플린과 조니 캐쉬, 스틸리 댄, 제임스 브라운까지! 음악 만드는 것도 덕질입니다. 여러분.)을 무시무시하게 집어삼키고 훔친 뒤, 이를 은은하지만 도취감 가득한 사이키델릭 소울-팝 그루비 휠로 멍석을 깐 뒤 두 MC의 래핑이 신나는 굿판을 벌이는데, 흑형 음악 사랑하지 않아도 훌륭한 사이키델릭 팝스의 견본으로 청취될만합니다. 불멸의 클래식 'The Magic Number'나 'Eye Know'가 그렇습니다. 후일 부기 다운 프로덕션이나 사이프러스 힐 같은 래퍼들의 작업에 참여한 프린스 폴 프로듀싱도 어느 정도 선까지 이뤄졌는지 짐작할 수 없으나, 이 정도 결과물이라면 좋습니다.

황금기 힙합의 주 방법론인 컷 앤 페이스트가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관이 있다 하는데, 아마 드 라 소울은 그 포스트모더니즘적 접근을 통해 모더니즘 의미의 예술로 만든 선구자들 중 한 명으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을 논하기 이전에 DJ로써 능력과 예술적 혜안, 멜로디 감각이 뛰어나다는 것도 언급해야 되겠죠.

불행히도 이 앨범 이후 걸린 저작권 소송 때문에 이들의 방법론은 크게 타격을 입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 앨범의 가치는 더욱 높습니다. 더 이상 이룰 수 없는 한 시대의 이상과 방법이 모두 담겨있는 앨범입니다.

이런거 듣고 있으면, 정말 잘 하는 사람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이 듭니다.

P.S. 개인적으로 이들의 업적을 제이 지와 로카펠라 일당들이 벤치마킹 대상으로 삼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실 제가 가장 관심이 있는 뮤지션 패밀리는 바로 Byrds 패밀리입니다. 음악을 듣다보니 버즈 본가부터 시작해 틴에이지 팬클럽, 엘비스 코스텔로, 걸스, 디비스, 빅 스타, 핫피 엔도, 카우보이 정키스, 윌코, 신즈, XTC, 플릿 폭시즈, (조금 장르는 다르지만) 오브 몬트리올까지 Byrds거나 Byrds의 직간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밴드들을 꾸준히 찾게 되더라고요. 제가 델리스파이스와 블러로 음악 듣는 것에 입문해서인지, 기타 중심의 팝 사운드에 향수를 느끼는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리뷰도 그 버즈 일가에 대한 것입니다.

The Byrds - [The Notorious Byrd Brothers] (1967, Columbia)

-이 앨범은 본가 버즈가 남긴 최고의 앨범을 꼽으라면 [Younger Than Yesterday]와 더불어 꼭 꼽히는 앨범입니다. 허나 두 앨범은 다릅니다. 버즈 특유의 쟁글쟁글거리는 포크 록을 기조로 컨트리, 사이키델릭을 섞는 것은 여전합니다만 작법상에서는 미묘한 차이를 보입니다. [Younger than Yesterday]가 파퓰러한 감수성을 뽐냈다면, [The Notorious Byrd Brothers]는 그보다 사이키델릭와 컨트리에 방점을 찍은 앨범입니다.

-물론 그램 파슨스 가입 직후 나온 [로데오의 연인]처럼 '내래 본격 인민의 컨트리 락을 하깄어!'로 일관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좀 더 유연하고 진보적이라고 할까요. 마지막 'Space Odessey'에서 무그 신시사이저가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 그렇습니다. 전작 'C.T.A.-102'나 'Mind Garden'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 앨범이라고 해야 할까요. 누군가 이 앨범을 코스모-컨트리-사이키델릭 팝라고 정의했는데, 거의 일치합니다. 좀 더 풀어 설명하자면 알딸딸한 영적 기운이 느껴지는 목가적 쟁글 팝 앨범입니다.

-첫 트랙 'Artificial Energy'는 여러모로 전작의 첫 트랙이였던 'So You Want to Be a Rock 'n' Roll Star'를 연상시키게 합니다. 둘 다 힘찬 금관악기가 분위기를 띄운뒤 넘치는 훅으로 낚아채는, 바이브 넘치는 곡입니다. 하지만 분위기는 확연하게 다릅니다. 후자는 몽키즈를 조롱하던 신랄한 에너지로 가득찬 곡이지만, 전자는 마약/속도 중독으로 휘청거리는, 도취되어 있지만 즐겁지는 않은 곡입니다.

-이는 이어지는 제리 고핀/캐롤 킹 콤비가 제공한 'Goin' Back'에서 확실해집니다. '순수의 비가'인 이 곡은 '그녀의 얼굴을 보았나요'라고 외치는 전작의 두번째 트랙하고 확실하게 다릅니다. 이후 이어지는 곡들 역시 다소 내향적인 곡들인데 'Draft Morning', [이지 라이더]에 삽입된 'Wasn't Born to Follow'나 인상적인 도입부를 지닌 'Old John Robertson', 사이킥한 'Dolphin's Smile'까지 분위기는 전반적으로 침잠해 있습니다.

-이 차이는 곧 [Younger than Yesterday]하고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고, 베트남전이 얼마나 당시 미국 청년들의 마음을 우울하게 만들었는지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또는 앨범 제작 도중 퇴출된 데이빗 크로스비와 마이클 클락 때문에 싸했던 밴드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일지도요. 끊어지지 않고, 하나의 메들리로 흘러가는 60년대 팝의 만가라는 점에서 이 앨범은 [Abbey Road]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물론 로저 맥귄의 쟁글쟁글한 기타는 여전히 인상적인 멜로디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Goin' Back' 같은 다른 사람이 제공한 곡도 자기만의 것으로 소화해내고 있으며, 사이키델릭과 컨트리, 포크 록 등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이런 결과는 버즈 뿐만 아니라, 전작부터 참여한 프로듀서 게리 어셔를 찬양해야 마땅할 듯 싶습니다. 그는 버즈의 조지 마틴이였는데, 딱 적당한 수준의 스튜디오 기술(테이프 루핑, 에코, 소리의 벽 등등...) 을 통해 원래 버즈가 가지고 있던 에너지와 훅에 중용의 미학을 아는 인상적인 사이키델릭을 덧입혔습니다. 전작 [Younger than Yesterday]와 더불어 이 작품은 그가 만든 버즈의 앨범 중 최고라 할 만합니다.

-정리하자면 [Younger than Yesterday]가 버즈주의Byrdsism의 우파에 속하는 밴드들의 교과서가 됬다면, 이 앨범은 버주주의의 좌파에 속하는 밴드들의 교과서라 할 만합니다. 전통적인 기타 팝보다, 사이키델릭한 팝을 하는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준 앨범입니다.

-데니스 호퍼의 명복을 빕니다.

of Montreal - [Satanic Panic in the Attic] (2004, Polyvinly)

of Montreal - [Hissing Fauna, Are You the Destroyer?] (2007, Polyvinly)


-자 그래서 이번엔 위의 앨범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밴드의 앨범 두 개에 대한 감상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오브 몽레알입니다.

-오브 몽레알을 알게 된 것은 3년 전 L모님이였는데 그 땐 제가 관심사가 다른데에 있어서 구입을 못했습니다. 최근에 MGMT 리뷰 쓰다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오브 몽레알이 없다는 걸 알게 되고 구입을 결심하게 됬습니다.

-먼저 2004년작 [Satanic Panic in the Attic] 이야기를 해봅시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위의 버즈 앨범에 우울함 대신 낭만적인 멜랑콜리와 키치한 매력을 대체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XTC와 플레이밍 립스, 그리고 벡의 혁명을 거친 네오 사이키델릭과 인디 팝, 신시사이저의 언어로 번역했다고 할까요. 실제로 스튜디오 기술을 이용해 사이키델릭을 만들어내는 방법에도 연결고리가 보입니다. 직접 들어보시면 압니다.

-AMG에선 디비스DB's도 언급하고 있는데,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디비스의 수많은 곡들 중에서도 'She's Not Worried'나 'Cycles Per Second' 같은 크리스 스태미의 실험주의에 영향을 받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물론 'How Lester Lost His Wife'처럼 하드 록 같은 다른 장르를 이끌어들이는데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오브 몽레알이 이 앨범이 제공하는 사이키델릭은 굉장히 만화적이고 유희적입니다. 유머러스하다고 할까요. 'Rapture Rapes the Muse' 나 'My British Tour Diary', 'Your Magic is Working' 같은 곡들은 디오니소스적인 방탕한 쾌락과 사이키델릭으로 가득합니다. 왕가위와 그리스 신들, 루이스 브뉘엘, 아폴리네르와 바타이유를 언급하는 가사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은 세대가 쓸 법한 유희로 가득합니다. 그러면서도 'Disconnect the Dots'나 'Eros' Entropic Tundra', 'City Bird' 같은 단아한 멜랑콜리에도 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07년작 [Hissing Fauna, Are You the Destroyer?]의 기본적인 재료과 지향성(미쳐날뛰는 글램 인디 팝)은 사타닉 앨범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이를 좀 더 종합화하고, 곡 구조의 복잡화을 한 앨범입니다. 프로그레시브하다고 말할 수 있을겁니다. 11분짜리 대곡 'The Past Is A Grotesque Animal'이 그렇습니다. 심지어 'Gronlandic Edit'에선 일렉트로닉클래시 영역으로 미끌어들어갑니다.

-비교는 애시당초 할 생각이 없었지만, 개인적으로 팝이라는 명제에 충실한 사타닉 앨범에 정감이 갑니다. 호오는 둘째치고 오브 몽레알이라는 이름은 아무래도 이 바닥에서는 전설로 남을 듯 싶습니다.

-그나저나 정말 케빈 반즈를 보면 '후로게이 쩐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는... 스웨덴인 아내에 딸까지 있는데, 정말 거침 없는 모습을 보면 정신이 안드로메다로... 그 모습과 별개로 존경합니다. 형님. (뭐)


괴물들이 사는 나라
감독 스파이크 존즈 (2009 / 미국)
출연 맥스 레코드, 캐서린 키너, 마크 러팔로, 로렌 암브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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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st Within

스파이크 존즈의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모리스 샌닥의 동화를 원작으로 한 영화다. 40쪽의 단출한 이 원작 동화책은 맥스라는 말썽꾸러기 소년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 어느날 그는 어머니랑 다툰 뒤, 저녁을 굶고 방에 갖히는 벌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방에서 환상적인 과정을 거쳐 괴물들이 있는 이상한 섬으로 간다. 거기서 괴물들의 왕이 된 그는, 그들과 함께 야수성을 거침없이 폭발시킨다. 하지만 그 야수성도 질린 그는 결국 괴물들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는 밥이 차려저 있었다. 모리스 샌닥은 이 동화책을 통해 우리 모두의 야수성과 성장에 대한 우화를 들려준다.

이 동화책은 장편 실사 영화으로 풀어내기엔 어려운 원작이였다. 우선 동화책이 들려주는 이야기 스케일은 장편에 풀어내기엔 너무나 짧다는 점이 있었다. 그 예로 이 영상화가 두 번째인데, 최초로 영상화 됬을 때 고작 7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이였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필연적으로 각색이 필요한데, 잘못 덧대었다간 실패할 것이 뻔했다. 동화가 제공하는 단출한 환상 역시 극장용으로 하기엔 스케일이 작았다.

스파이크 존즈는 이 어려운 과제를 성공해냈다. 비록 조금은 아슬아슬하고, 몇몇 장점들을 희생하는 댓가를 치뤘지만 그는 원작의 핵심을 잘 잡아내면서도 자신만의 비전을 담아냈다.

우선 영화와 원작의 큰 차이점을 꼽으라면 캐릭터에게 분명한 개성이 부여됬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얼굴도 보이지 않았던 맥스의 어머니는 캐서린 키너라는 배우의 몸을 빌려 코니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났고, 누나인 클레어 캐릭터가 추가되었다. 이들을 통해 맥스의 반항도 간결하지만 분명한 당위성을 부여받게 되었다. 괴물 쪽도 변화가 있는데, 원작에서는 그저 별 개성 없는 무리였던 괴물들 역시 각각의 이름을 부여받게 되었다.

스파이크 존즈가 이런 식으로 개성을 부여해 만든 드라마는 원작의 성장 구조를 따르면서도 복합적인 깊이를 부여했다. 영화는 맥스의 분노의 원인을 무척이나 오이디푸스적이며, 그 나이 어린아이들이라면 가질 법한 소유욕과 파괴욕, 그리고 관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사로잡혀있는 걸로 묘사한다. 누나의 친구들과 이혼한 어머니의 새 남친 사이에서 좌절감에 시달리던 그는 자신만의 환상 세계로 도피하여 괴물들을 자신의 지배하에 놓고 싶어한다.

하지만 맥스는 여러 사건을 통해 자신이 가졌던 모든 계획들과 감정들이 부질 없다는 걸 깨닫게 되고, 한 뼘 성숙하게 된다. 이 점에서 원작과 영화는 큰 차이점을 보이는데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게 원작과 영화 모두 등장하는 마지막 괴물들의 한 대사의 뉘앙스다. 원작에서는 그저 맥스가 떠난다는 사실에서 단순한 분노의 의미였던 대사가, 영화에서는 이해와 교감을 나누는 의미로 변화했는데, 조금은 전형적이지만 핑 눈물이 돌게 만든다. 이 점에서 영화가 원작보다 성숙하고 사려깊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과정을 표현해내는 스파이크 존즈의 판타스틱한 연출력과 야심찬 영상미도 좋다. 그는 이 영화에서 화려함 대신 정감가는 환상을 추구하려고 했으며, 그 계산은 대부분 맞아떨어진다. 특히 괴물들의 묘사는 푹신푹신 귀엽지만 절대로 만만히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였던 원작의 괴물에 충실하게 다가서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카터 버웰과 뉴욕 출신 록 밴드 예예예스의 보컬 카렌 오가 만든 영적이면서도 천진난만한 음악 역시 독특한 아우라를 만들어낸다.

물론 영화의 개작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누나인 클레어 캐릭터는 낭비된 듯한 느낌이며, 원작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흔적이 종종 사족같은 부분을 만들기도 한다. (마지막 결론이 그렇다. 원작에선 저녁밥이 무척 중요한 소재로 등장하는데, 그것을 언급하려다 보니 살짝 감흥이 늘어진다는 느낌이였다.) 영화 눈높이도 원작에 비해 조금 높다는 것도 약점이다. 적어도 아이들이 다 이해할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괴물들이 사는 나라]는 여전히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영화다.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어린 시절의 순수함과 야수성이라는 주제는 보편적이며, 영화는 이 점을 잘 건드리고 있다.


감독 이창동 (2010 / 한국)
출연 윤정희, 이다윗, 김희라, 안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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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미학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영화 [시]는 정직한 제목을 가진 영화다. 이 영화는 정말로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너무나 간결한 제목과 달리, 영화가 전해주는 주제의 진폭은 쉽게 무시할 수 없다. 영화는 시를 통해 인간의 윤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경기도 소도시, 양미자 (윤정희)는 부산으로 간 딸을 대신해 손자를 데리고 살고 있다. 그녀는 다소 소녀적인 감수성과 옷차림을 하고 있는, 조금은 독특하지만 평범한 할머니다. 어느날 동네 시 강좌를 듣게 된 그녀는 시를 어떻게 쓸 것인지 고민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 병 진단과 손자가 강간한 소녀의 자살은 그녀의 평범한 일상을 뒤흔들어놓는다.

미자라는 캐릭터가 독특한 이유는, 그녀가 세속이나 타락하고 다소 거리가 먼 캐릭터이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런 캐릭터가 잘 드러난 장면을 꼽으라면 바로 피해자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일 것이다. 기범 아버지가 합의하라고 그녀를 보냈지만 정작 그녀는 피해자 어머니하고 날씨나 경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고 오고 만다. 적당히 세속적으로 타락한 다른 이들과 달리, 그녀는 세속적으로 타락하지 못한데다 윤리적 가치를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남들처럼 적당히 타락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 그녀는 세상하고 괴리감과 단절감을 느낀다. 아무리 다그쳐도, 죽은 소녀의 사진을 보여줘도 손자는 오락실에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게임을 하고, 가해자 아버지들은 (가해자 쪽에서 여자라고 할 만한 인물이 미자 밖에 없다는 것도 주목할만 하다.) 소녀의 불행보다도 자식의 안위를 걱정하고 있으며, 기범이 아버지는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겪고 있는 미자에게 돈을 달라고 성화다. 미자의 딸은 돈 버느라 종욱에 대해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이 속에서 미자는 고독감과 죽음 의 두려움 속에서 힘겹게 싸워나간다.

미자의 캐릭터는, 이창동 감독의 여성 캐릭터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캐릭터다. 확실히 그녀는 감독의 전작 [오아시스]나 [박하사탕]의 문소리처럼 순수하지만 흐릿한 이상형으로 존재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미자는 [밀양]의 신애처럼 행동의 주체가 되는 여성이다.

다만 영화 내내 가학적으로 시달리고 자기 기만에 빠져있는 (이유는 있었지만) 신애와 달리, 미자는 지극히 일상적인 고통을 겪으며, 자기 기만에 빠지지 않고 그것을 해결해간다. 이런 점에서 좀 더 공감가는 인물이라 해도 될 것이다. 이런 점진적인 변화는 이창동 감독이 여성 캐릭터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이 달라졌다는 걸 암시한다. 하지만 미자의 행동이 종종 이해할 수 없는 영역으로 넘어간다는 점 (특히 중후반부 미자의 행동과 그 동기는 다소 모호하게 묘사된다. [님은 먼 곳에]의 순이만큼은 아니지만.)에선 이창동 감독이 완벽하게 미자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다는 것을 드러낸다.

그렇다면 시 쓰는 행위는 이런 괴리감과 캐릭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을까? 이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시 강좌 마지막 시간에 시를 제출한 사람이 미자 혼자라는 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왜 그녀만이 시를 써낼 수 있었던 걸까? 바로 수강생 중 그녀만이 도덕적인 날카로움과 예민한 미적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동시에 자기 나름대로 타락한 세상에 대한 윤리적인 해결책을 내놓는다. 이 해결책이 영화 내에서 흘러가면서, 미자의 시도 같이 낭송된다. 바로 죽은 희생자의 세례명에서 나온 ‘아녜스의 노래’다.

그동안 이창동은 영화적인 감수성이 다른 한국 영화 감독들에 비한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비판을 종종 받아왔다. 다시 말하자면 영화보다 소설에 가까운 구조를 보여줬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의 결말은 그런 비판을 묵살시킬만한 ‘영화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미자라는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실종되고, 무수한 이미지들의 파편과 시를 낭송하는 목소리로 이뤄진 이 영화의 결론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태양은 외로워]의 결말과 흡사하지만, 이창동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그 한 발짝은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간결한 방점이다.

솔직히 이 영화는 [밀양]의 고통스러울 정도로 강렬한 멜로드라마적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미자의 고통은 신애보다 상대적으로 덜 고통스럽고, 영화의 내용과 연출 역시 미자의 고통보단, 그녀를 둘러싼 환경을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 크리스티안 바소가 음악을 담당했던 [밀양]과 달리, [시]에서는 음악이 전혀 쓰이지 않았다. 다소 독특한 억양과 순진한 분위기로 일관하는 윤정희의 연기 역시 화려하기보단, 정갈하다. 

이 차이는 후반부 정신적 고난에 맞닥트렸을때의 둘의 반응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밀양]의 신애는 그 위기 앞에서 울부짖고 폭력을 휘두르고, 섹스를 하고 끝내 자해한다. 하지만 [시]의 미자는 고통을 받고 있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듯이 손자와 함께 일상을 보내고, 조용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한다. 이런 차이는 곧 두 영화가 가지고 있는 태도의 차이이기도 하다.

하지만 [시]는 그 흡인력을 대신할 만한 것들을 가지고 있다. 윤정희의 연기는 미자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온전히 담아내고 있으며, 그 뒤를 받쳐주는 연기자들 역시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무엇보다 한결 편해진 분위기는 [밀양]보다 덜 고통스럽게 사유를 할 수 있게 숨을 틔운다. [시]는 이창동 감독의 또다른 수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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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the Metal Gear, You Have the 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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