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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게임 (110)
더 라스트 가디언 [人喰いの大鷲トリコ / The Last Guardian] (2016)

(누설이 있습니다.)

우에다 후미토는 걸작 [완다와 거상]을 내놓은 뒤, 10년 이상을 침묵해왔다. 그의 신작 [더 라스트 가디언]은 원래 PS3로 나올 게임이었으나, 계속 미뤄졌다. 심지어 PS4 런칭작으로도 선정되지 않았을 정도니깐. 우에다 후미토 본인은 이미 개발을 다 해뒀다고 말했지만, 게이머들에게 [더 라스트 가디언]은 불로초나 다름 없는 존재였다. 다행히 2015년부터 발매 계획이 잡히기 시작하더니, 2016년 본격적으로 공개되었고 그해 연말 게임이 나왔다.

우선 우에다 후미토 팬들이라면 이 게임이 [이코]와 [완다와 거상] 어디에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답은 [이코]다. [완다와 거상]은 극도로 단순화된 오픈 월드에 플레이어를 던져놓고 보스를 차례대로 찾아가는 과정 자체를 퍼즐화하는 신선한 시도를 취했다면, [더 라스트 가디언]은 [이코]처럼 고립된 신비로운 무대를 배경으로 선형적으로 이어지는 스테이지와 퍼즐을 풀어가는, 전통적인 퍼즐 어드벤처의 구조를 취하고 있다. 심지어 주인공을 잡아 이끄는 그림자 괴물에 이은 적 골렘 병사도 건재하다. 우에다 후미토가 장르를 창조하는 게 아닌, 장르를 재발명하는 타입의 게임 개발자이긴 해도 [더 라스트 가디언]은 명백히 [이코]의 정신적 후속작에 가깝다.

하지만 [더 라스트 가디언]은 [이코]의 자기복제하는 게임은 아니다. 두 게임은 '동반자'라는 요소를 공유하지만, 접근하는 방식은 다르다. [이코]의 요르다는 신비한 동반자라는 개념을 내세웠지만, 궁극적으로는 주인공과 같은 위치에서 행동하는 인간이었다. 요르다는 RPG 게임의 NPC 동료를 재해석한 캐릭터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더 라스트 가디언]의 동반자 식인 독수리 토리코는 다르다. 그러니깐 정말로 보기 힘든 타입의 상호작용을 하는 동반자다.

우선 이 토리코는 엄청나게 '크다'. 실제로 토리코를 보게 되면 그 크기에 흠칫 놀라게 될 것이다. 프레임에 꽉 들어찬 토리코는 그 자체로도 스펙타클이다. 우에다 후미토는 전작에서 거상을 만들듯이 토리코라는 생물을 만들어간다. 플레이어는 토리코를 풀어준 이후, 토리코를 데리고 다니며 유도해야 한다. 토리코를 타고 올라 발판으로 삼거나 날아서 이동하며, 퍼즐 도구로 쓰이거나 그림자에게 공격받는 플레이어를 대신 지켜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집에서 키우는 동물과 같이 행동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고질라나 킹콩처럼 행동하는 이 생물은 정말 특이한 감흥을 안겨준다. 개새라는 말은 적어도 제대로 짚은 셈이다. 토리코는 창작물 통틀어 독특하게 만들어진 괴수다.

우에다 후미토와 소니 재팬 스튜디오가 이 게임에 오랫동안 매달렸던 이유도, 이 토리코라는 생명체를 게임에 어떻게 유기적으로 연결할지에 대한 고민 때문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직관적인 게임은 아니다. 우에다는 각 상호 작용 포인트를 소비에트 몽타주 이론가들이 숏을 이어붙이는 것처럼 '법칙은 있되 설명은 없이' 배치한다. 그리고 조작을 최대한 단순화한 뒤, 인물들의 반응에서 그 상호 작용 포인트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도록 유도했다. 때문에 우에다 후미토 게임을 플레이를 플레이어는 끊임없이 스테이지에 배치된 상호 작용 지점을 학습하고 상상해야 한다. 여기까지는 우에다 후미토가 이전에서 선보였던 게임들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캐릭터 그 자체로 레벨 디자인이 되는 [더 라스트 가디언]에서 플레이어가 상상해야 하는 부분은 더욱 정교해졌다. 요르다랑 달리 토리코는 그 크기 때문에 이동할 수 없는 구간이 있고, 반대로 토리코 혼자서 이동 가능한 구간이 있다. 토리코의 속성에 맞춰 고안된 퍼즐들라던가 실상 지극히 단순한 조작 체계도 한 몫한다. 플레이어는 이런 다양한 지점들을 끊임없이 생각하며 토리코를 조종해야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동료 NPC를 위해 배치된 불가능과 가능의 경계를 움직이는 레벨 디자인와 결합하는 실험을 하는 게임이다. 

와중에 [더 라스트 가디언]은 서스펜스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우에다 후미토는 개별 스테이지마다 토리코와 소년을 떼어놓으려고 애를 쓴다. 좋은 호러 게임이 그렇듯이 [더 라스트 가디언]은 위협으로 스스로 들어가도록 플레이어를 유도하고, 거기서 빠져나올 방법을 생각토록 하게 한다. [이코]에서 고안했던 서스펜스 설계를 답습하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몇몇 지점에서 우에다 후미토는 무성 영화만이 가능한 순수한 서스펜스에 도달하는데 성공했다. 음향과 조명, 캐릭터의 동선과 액션을 배치하는 것으로 우에다 후미토는 비디오 게임의 액션이 어떻게 이뤄져야 할지 질문한다.

변함없이 좋은 부분도 있다. 우에다 후미토는 1급 비주얼 아티스트도 꿀리지 않을 자기만의 세계관과 미적 일관성이 있으며, [더 라스트 가디언]에서도 여전하다. 그는 여백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아는 시각 예술가다. 첫 풀 HD 게임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우에다 후미토는 그 드넓은 공간을 자유자재로 늘렸다가 줄인다. 탑 밖을 빠져나와 거대한 절벽과 텅 빈 허공으로 둘러싼 성을 토리코와 함께 보고 있으면 그 원초적인 풍경에 눈물이 더럭 날 정도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장대한 프레임을 살릴줄 아는 몇 안되는 게임이라 할 수 있다.

서사는 어떠한가? 후미토 특유의 쓸쓸한 느낌의 전개부터 설명 없이 상상하게끔 만드는 부분은 여전하다. 사실 [이코]랑 크게 다를 게 없는 [더 라스트 가디언]의 서사를 독특하게 만드는 부분도 괴수 장르에서 비롯된다. 우에다 후미토는 로딩 화면에 단서를 던져두었다. 16세기 박물학 서적에서 가져온 이 가상의 생물 일러스트들은, 과학이 막 움트던 시절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상상과 현실이 뒤섞인 모습을 띄고 있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자연의 법칙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없는 세계가 어떤 공포과 미신을 만들어냈는지, 회상을 통해 보여준다. 이때 마을 사람들의 반응은 공포보다는 체념이 가깝다.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시스템에 대한 원망과 체념. 

사실 이 체념은 우에다 후미토 전작을 장악하고 있는 감정이기도 하다. 그는 고립된 공간에 자리잡고 있는 부조리한 세계의 법칙을 개인이 파괴하는 이야기에 계속 끌린다. 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은 그 법칙 때문에 고통받으며, 소년들은 그 법칙을 파괴하는 모험을 떠난다. 제물로 바쳐진 이코는 같이 나가기 위해서 기어이 요르다의 어머니인 여왕를 죽여야 했고, 완다는 위험과 파국을 무릎쓰고 부조리하게 죽은 소녀를 살리기 위해 기어이 악마를 부활시켜야만 했다. 하지만 두 작품과 달리 [더 라스트 가디언]은 더 나아간다. 파괴 이후 마무리짓는 두 작품과 달리, [더 라스트 가디언]은 내부의 법칙을 파괴한 그 이후의 삶을 짧게지만 다루고 있다.

이미 [더 라스트 가디언]의 결말은 정해졌다. 토리코와 소년의 우정은 지속될 수 없다. 일련의 모험 끝에 악습을 파괴했더라도, 그들은 두 종족 간의 경계선상에서 헤어져야만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의 결말이 그토록 처연한 멜로드라마로 다가온다면, 고립된 공간에서 성립한 피해자-가해자의 우정이 세계의 인습과 화해불능이라는걸 명백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우에다 후미토는 부조리한 법칙이 만든 피해자와 가해자를 억지로 화해하게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파국의 카타르시스에 탐닉하지 않지 않는다. 그는 서로의 영역에서 삶을 이어가도록 암시하게 한다. [더 라스트 가디언]이 좀 더 성숙해진 작품이라면, 부조리한 법칙이 만들어낸 한 사회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대하는 태도에 있을 것이다.

[더 라스트 가디언]의 단점은, 우에다 후미토 뇌 속에서 이뤄진 정교하고 복잡한 사변들이 매끄럽게 구체화 되지 못하는 지점에 있다. 그는 토리코의 조작에 시뮬레이션의 흔적을 보이지 않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과감한 생략을 가했다. 그 결과는 비디오 게임스럽지 않은 불편함과 피곤함을 감수해야 한다. 토리코를 불러와 지시하는 과정은 단순하지만 직관적이지는 않다. 그 불편함을 받아들일 수 있냐, 없냐에 따라 [더 라스트 가디언]에 대한 평은 갈릴 것이다. 그리고 오랜 개발 기간 동안 누적된 소스 코드의 복잡함으로 쾌적하지 못한 플레이라는 점도 아쉽다. 도중에 버벅거리는 부분이라던가 팝인 같은 부분은 긴 개발 끝에 지쳐서 다듬지 못한 부분이 있다고 본다.

[더 라스트 가디언]은 어찌보면 타이밍을 놓친 불운한 게임이다. 이 게임이 예정대로 PS3 시절에 나왔다면, 기술적인 문제는 크게 걸림돌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이와 별개로 효율적이지 않은 명령 체계 역시 게이머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하지만 우에다가 이 게임을 버리지 않고 개새를 깎은 이유도 납득이 되긴 한다. 적어도 [더 라스트 가디언]처럼 과감하게 레벨 디자인과 NPC 동반자, 인간과 비인간 캐릭터 간의 실험을 밀어붙인 게임은 보기 힘들다. [더 라스트 가디언]이 우에다 후미토 최고 걸작으로 꼽히지는 않겠지만, 10년이라는 세월 동안 공치진 않았다는 증거로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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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 스위치 한국 정식발매

http://nintendo.co.kr/PR/press_list.php?cPage1=1&cPage2=1&idx=274&press_div=P

으아니 챠! 휴가 들어가기 전에 이런 뉴스가 뜨다니! 게다가 12월 발매라니!

...뭐 전 이미 가지고 있으니깐 애타게 기다리진 않지만, 나오는 김에 제대로 나와줬으면 좋겠군요. 한닌 요새 규모도 축소된 것 같던데.

++아마 추석 휴가 동안엔... 에또...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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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펜슈타인: 뉴 콜로서스 첫 공개 예고편

땜빵~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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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헌터 월드 신규 예고편

한동안 휴대용 콘솔을 전전했던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거치형 콘솔로 복귀작이라고 합니다. 내년 봄 발매.

일단 HD 화질도 그렇고 모델링부터 시작해 뿌리부터 뜯어고친건 확실합니다. 과연 이 시리즈는 우려먹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것인가? 제가 보기엔 또다른 우려먹기의 시작 아닌가 싶기도 한데... 일단 재미는 보장하겠죠. 어떤 식으로 시리즈를 이어갈지 궁금하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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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헌터 더블 크로스 닌텐도 스위치 Ver 예고편

땜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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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플래툰 2 런치 예고편

제가 스위치를 선물받은 것은 이 게임을 하기 위해서였다

...여튼 진짜 재미있습니다. 자세한 소감은 훗날 적을수도 있고 아닐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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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다의 전설: 브레스 오브 더 와일드] 예고편

발매일이 얼마 안 남았네요. 이번엔 진짜 나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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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닛 코스터!

요새 제가 [디스아너드 2]랑 더불어 제일 기대하고 있는 게임입니다. 제가 롤러코스터 타이쿤 시리즈를 엄청 좋아하서 말이죠. 놀이공원은 자주 안 가면서 이런건 좋아한단 말이죠. 

롤러코스터 타이쿤 월드가 대차게 망한 지금, 파키텍트와 더불어 유일한 희망입니다. 다음달에 프리오더 걸면 알파 잡아볼 기회가 있을 것 같은데 하필이면 그 기간에 부산영화제 가는지라... 으으... 잠깐 잡을수 있을 것 같긴 한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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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차티드 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 [Uncharted 4: A Thief's End] (2016)

전편의 성공에 빠르게 나왔던 [언차티드 3]와 달리 우리가 [언차티드 4]를 보게 된 건 5년이라는 시간이 걸러셔였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일어났다. 너티독은 [언차티드] 시리즈에서 벗어나 좀비 아포칼립스 [라스트 오브 어스]라는 게임을 내놓았으며, 이 게임은 많은 상을 휩쓸며 PS3 말기를 장식하는 게임이 되었다. 그리고 시대는 PS4로 넘어왔고, 너티독은 [라스트 오브 어스: 리마스터]와 [언차티드: 네이선 드레이크 콜렉션]으로 본격적으로 PS4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들 손에는 [언차티드 4: 해적왕과 최후의 보물]가 쥐여져 있다. 우선 간략하게 살펴보자. [언차티드 4]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게임이 되었으며, 리마스터링을 제외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PS4 언차티드 게임이 되었다. 제작진도 대폭 변경되어 지금까지 언차티드 시리즈를 담당해왔던 에이미 헤닉이 아니라 [라스트 오브 어스]의 성공을 이끌었던 닐 드럭먼이 제작을 담당하게 되었다. 그래봤자 얼마나 차이가 있겠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언차티드 4]는 전작들과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으면서도 인상이 다른 게임이다.

사실 게임 디자인은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 [언차티드 4]는 너티독 나아가 [언차티드] 시리즈에게 기대할법한 콘솔 "시네마틱" TPS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엄청난 디테일과 물량, 편집증적으로 계산된 자유도 제로의 스크립트 연출로 승부하는 3인칭 슈터 게임 말이다. 그래픽이나 사운드 같은 기술의 발전이 비약적으로 이뤄져 연출이 훨씬 자연스러웠졌다는걸 제외한다면 [언차티드 4]는 전작과 대동소이하다. 다만 [언차티드 4]는 [언차티드 3]가 다소 급하게 내놓은 아이디어들을 깔끔하게 정리한 뒤, 갈고리 밧줄과 거기서 파생된 아크로바틱한 파쿠르 액션, 잠입 요소를 추가했다. 갈고리 밧줄 자체는 속도감이 살아있는 훌륭한 선택이였지만, 잠입은 [라스트 오브 어스]보다도 더욱 양념에 가까운지라 인상은 약한 편이다. 또한 증거물 살펴보기와 수집 요소가 대폭 비중이 늘었지만 이 역시 부차적인 수준이다.

여기서 질문. 여러분들은 [언차티드] 시리즈에게서 기대하는게 무엇인가? 아마도 땡땡의 모험에서 시작해 [리오에서 온 사나이]를 거쳐 [레이더스]로 이어지는 보물 사냥 영화들에게서 기대할법한 가볍고 날렵한 활극을 기반으로 무지막지한 디테일과 스케일로 무장한 블록버스트 TPS일 것이다. 심지어 [언차티드]는 보물 사냥하는 TPS를 시도한 최초의 게임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언차티드] 시리즈는 [툼 레이더] 시리즈의 벤치마킹에서 시작한 게임이다

그렇다면 [언차티드]가 [툼레이더] 벤치마킹에 그치지 않고 인기 게임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까지 언차티드 시리즈의 방향을 쥐고 있던 에이미 헤닉은 세 편의 언차티드 게임을 통해 활극의 문법을 완벽하게 꿰고 있었다. 에이미 헤닉은 [언차티드] 시리즈를 통해 뱀파이어로 대표되는 오컬트 고딕 판타지와 타락과 분노, 복수라는 어두운 감정들에 천착했던 [레거시 오브 케인]의 작가라 생각할수 없을 정도로 활극적 재미에 치중해왔다.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황당한 오컬트 반전 요소, 능글맞은 유머와 대담한 생략이 돋보이면서도 동시에 세심하게 조율된 캐릭터 메이킹, 선악의 구분이 명백하지만 동시에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어왔던 착취적으로 다뤄진 살육과 타 문화 묘사... 이 모든 것들은 때마침 열린 PS3의 하드웨어 혁명과 맞물려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하지만 [언차티드 4]는 그런 불경스러울 정도로 뻔뻔하고 말초적인 재미가 많이 줄어든 편이다. 4를 시작하자마자 [언차티드] 시리즈가 제공하던 모험의 세계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 난 플레이어들은 초반부에서 뭔가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언차티드 4]의 도입부는 전작들과 달리 분량이 상당한데다 은근히 꼬여있는 편이다. 그리고 컷신 연출 역시 상황 설명이 아니라, 인물 간의 미묘한 공기라던가 복선, 성격 설명 같은 부분에 치중해있다. 엘레나와 네이트가 집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을 봐라. 여기서 닐 드럭만은 '일상의 권태와 모험의 매료'라는 주제를 기조로 두 사람의 미묘한 감정선을 잡아내려고 애쓴다.

단순히 연출 뿐만이 아니라 [언차티드 4]가 내세우는 서사의 모든 방향은 '일상의 권태'와 '비일상의 어두운 이면'이라는 주제 위에 세워져 있다. 이야기의 중핵을 이루는 형 새뮤얼 드레이크와 에이버리의 보물이 그렇다. 그들은 일상에 반대쪽에 서서 네이트를 유혹하고 끝내 유혹하는데 성공하지만 정작 그 유혹은 신기루 위에 세워져 있는 존재라는게 드러난다. 

문제는 이게 너무 '닐 드럭만'식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드럭만은 [언차티드 4]에서 전작들이 가지고 있던 허풍스럽지만 예스러웠던 화술의 매력을 모조리 제거해버린다. 대신 드럭만은 [언차티드 4]를 인간들의 욕망을 이야기의 동력으로 최대한 "리얼리스틱"하게 전개했던 [라스트 오브 어스]처럼 만든다. 오컬트는 등장하지 않으며, 레이프와 에이버리 해적단의 파멸은 욕망과 오만의 산물로 묘사되고, 갈등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배태된다. 보물에 신경쓰지 않고 하드보일드한 태도를 견지하며 빠져나가는 나딘은 그 점에서 [언차티드 4]의 방향 전환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캐릭터다. 전작의 악당들의 최중요 목표가 보물이였던걸 생각해보라. 이건 매우 중요한 변화다. 심지어 폐허나 유적을 묘사하기 위해 동원된 장치들도 [언차티드]스럽지 않고 [라스트 오브 어스]스럽다. 이끼와 물, 식물들로 채워진 쇠락한 문명의 흔적은 오파츠적이라기 보다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가깝다.

이러다보다 캐릭터나 배경 연출들도 꽤나 이질적으로 변했다. 전작들에 비해 상당히 수다스러워졌다고 할까. [언차티드 4]의 등장인물들은 게임 내에서도 [라스트 오브 어스]식으로 쉴새없이 잡담하며 네이트는 와중에 유적을 보며 메모를 한다. 이런 부분들은 인물 간의 드라마는 이입할수 있는 정도로만 남겨두고 액션에만 치중했던 전작들과 대조되는데, 썩 좋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서사가 지나치게 비대해져 게임의 영역을 침범한다고 할까. [언차티드 4]는 이전까지 생략되어왔던 감정 묘사를 위해 [라스트 오브 어스]식으로 많은 대사를 게임 플레이 도중에 집어넣는데 이게 꽤나 산만하다.

새로이 추가된 네이트의 과거도 꽤나 사족스럽다. 네이트가 매력적이였던 이유는, 온전히 밝혀지지 않고 조금씩 드러나는 사실에서 비롯되는 미스터리함이 캐릭터의 노련함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1편의 도입부를 보라. 시작부터 네이트는 이미 능숙한 모험가였고 그 이상의 정보는 필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엘레나를 통해 그를 소개받은 뒤, 네이트를 따라 모험을 하면서 그의 능글맞은 캐릭터에 흠뻑 젖어들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미 [언차티드 3]와 기타 미디어 믹스 전개를 통해 이미 알만큼 알았다. 한마디로 이번편의 네이트의 과거는 순전히 이야기 전개를 위해 급조된 느낌이다.   

드럭만이 개입해 추가한 부분들이 내적인 논리를 갖추고 있다는건 인정한다. 어차피 이야기가 완벽하게 막을 내려야 한다면 급조스러운 설정 추가는 필요했을 것이다. [언차티드 3]에서 네이트는 겨우 얻은 안정감을 잃을까 두려워하던 상처받은 소년에서 과거를 인정하고 나아가는 어른으로 정신적으로 성숙을 마친 상태였고 네이트와 엘레나의 결혼은 그런 성장의 증거로 제시되었다. 따라서 새로이 이야기를 꾸려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방법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럴거면 굳이 [언차티드 4]를 만들지 않고 [언차티드 3]의 결말을 그대로 놔두는게 낫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결말에 이르면 더 그렇다. 네이트와 주변 사람들이 비일상을 떠나 평범한 삶을 살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은 시리즈를 따라온 팬으로써 보기 좋지만, 순전히 결말을 내기 위한 결말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납득은 되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있었을까? [언차티드] 시리즈가 대단한 메세지를 전파하는게 아닌, 활극의 재미에 치중했던 시리즈라는걸 생각해보면 그렇다.

무엇보다 [라스트 오브 어스]와 [언차티드 4]에 이르러서 너티독이 내놓는 고도의 스크립트 연출에 기댄 시네마틱 TPS라는 디자인 전략이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걸 지적해야 되겠다. 답보 상태에 머문 게임 디자인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어떤 근사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어 평자들과 게이머들을 여럿 홀렸다는 점에서 너티독은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나 니콜라스 윈딩 레픈의 [드라이브]에 대한 오독된 칭찬들을 떠올리게 한다. 즉슨, 너티독은 큐브릭이나 레픈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자신이 수백개의 시선과 아이디어를 갖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을 속이며 게임을 만들고 있다. 그리고 이건 창작자에겐 매우 좋지 않은 버릇이다.

[언차티드 4]는 분명 [언차티드 3]이 급하게 내놓은 비전을 좀 더 차근히 다듬고 너티독의 물오른 기술력을 한껏 맛 볼수 있는 "잘 만든" AAA 게임이긴 하다. 하지만 잘 만든 게임인것과, 그들의 비전에 동의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다. [언차티드 4]는 전 멤버가 만든 명곡을 노련하지만 자기 멋대로 편곡해 연주하고, 이에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그건 그렇고 우리가 앞으로 새로 내놓을 앨범이 개쩌니깐 기대해도 좋아."라고 멘트하는, 매너리즘에 젖은 록 밴드 리더를 보는듯한 게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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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이후 밀리터리 게임 미디어에서 소모하고 있는 ‘미국 본토 침공’이라는 외설적 환상에 대해

(과제용으로 제출한 걸 그대로 올립니다. 따라서 오류가 많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에서 터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을 향한 테러는 궁극적으로 미국의 정신 체계를 바꾸어놓았다. 9.11 테러는 멕시코 혁명 도중 판초 비야가 이끌었던 멕시코 혁명군의 뉴멕시코 주 침공과 2차 세계 대전 때 있었던 일본의 진주만 침공 이후로 이뤄진 미국 본토가 공격받은 사태라 그 충격은 컸다. 곧 2000년에 갓 집권한 조지 W. 부시가 이끄는 정부 시책들하고 연결되어 국가주의적인 상상력을 발동하기 시작했다. 부시는 이 시류에 힘입어 패트리어트 액트Patriot Act라는 법령을 발휘해 국가 위기 사태에 대해 대비할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국토안보부라는 초법률적인 기관이 만들어졌다. 곧이어 미국은 테러 집단의 배후로 지목된 알 카에다를 없애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공격해 전쟁이 일어났고 순식간에 두 나라는 미군의 새로운 장비의 시험대가 되었다.

그 중에서도 흥미로운 부분이 있다면 9.11 테러 직후 펜타곤에서 헐리우드 작가들을 데려와 가능한 모든 본토 침공 시나리오를 작성하라고 요청한 것이다. 동시에 9.11과 비슷한 상황의 침공 시나리오를 다뤘던 미국 군사 소설가 톰 클랜시의 [적과 동지]TV 시리즈 [론건맨]의 한 에피소드가이 뒤늦게 주목받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영상 매체의 엔터테인먼트와 스펙타클을 위한 상황 조작을 위해 만들어지며 침공 시나리오가 갑자기 실재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된 것이다. 이런 실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만들어내는 공포는 지금까지 클린턴 시대를 거치면서 행복감에 젖어들었던 미국을 갑작스러운 테러에 허둥대며 괴로워하게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미국의 붕괴라는 실재하게 된 위기에 대한 공포와 그에 대한 상상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는 곧 지젝이 지적했던 것처럼 이데올로기적 국가 기구를 작동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그 와중에 최근 영상 문화에서 새로운 유행으로 떠오르기 시작한 컴퓨터 게임업계도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바로 밀리터리 게임의 유행의 시작이였다. 물론 이전부터 [윙커맨더][레인보우 식스] 같은 게임들이 있었지만 본격적인 유행의 효시라 할 수 있는 게임은 [하프 라이프]라는 게임의 모드로 시작했던 2000[카운터 스트라이크]라는 게임이였는데 초기엔 기술적 문제 때문에 스토리라인 없이 단순히 테러리스트와 경찰특공대 간의 대결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게임계의 판도를 뒤집은 이 게임은 곧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게 되고 곧 미국의 게임회사들인 일렉트로닉 아츠의 [배틀필드] 시리즈와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라는 게임이 2002-2003년에 발매되었다. 허나 이들이 본격적으로 9.11 이후 미국을 상상하게 된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콜 오브 듀티] 시리즈에서 2007[콜 오브 듀티 4: 모던 워페어] (이하 [모던 워페어])라는 게임을 내놓으면서 부터였다. 물론 9.11 이후의 국제적인 신경전을 다룬 현대전은 [모던 워페어]가 최초는 아니다. 이미 2005년엔 [배틀필드] 시리즈가 내놓은 [배틀필드 2]는 미국과 중국, 가상의 연합인 중동연합과 싸운다는 설정을, [배틀필드 2142]에선 영국을 주축으로 한 EU와 러시아와 중국과 인도를 주축으로 한 PAC 간의 대립이라는 설정은 내놓은 바가 있다. 그리고 위에서 언급한 톰 클랜시의 이름을 달고 나온 [고스트 리콘] 시리즈도 들 수 있다.

하지만 [배틀필드 2][배틀필드 2142]에서 이 대립은 애매한 상황과 캐릭터와 플롯의 부재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어떤 영상매체적으로 해석하기엔 미묘한 부분이 있었다. 이런 추상적이고 모호한 묘사는 [모던 워페어] 이전 밀리터리 게임은 테러리스트와 경찰 집단이라는 상황을 다루면서도 모호하게 처리했던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패러다임에 비롯되고 있다는걸 보여주는 예기도 하다. [고스트 리콘] 시리즈 자체는 그렇게 인기 있는 시리즈가 아닌데다 초기작에선 기술적인 문제로 영상적인 연출은 거의 없다시피했다. 결정적으로 [고스트 리콘] 시리즈 초기작의 스토리들은 미국의 붕괴에 대한 공포보다는 9.11 이전 다국적성을 가장한 미국적 패권주의에 가까웠다. 외려 미국 붕괴에 대한 공포는 오히려 톰 클랜시 이름을 단 게임인 [스플린터 셀] 시리즈가 강한 편이다.

[모던 워페어]에 들어서면서 이런 대립 상상은 본격적으로 영상과 몰입의 힘에 입게 된다. 우선 분명한 개성을 가진 캐릭터들이 등장하게 되었고 게임 연출 면에서도 수동적으로 감상해야 하는 기존 영화 형식의 컷씬 대신 플레이어가 전장 속에서 직접 조작하면서 쫓아가는 스크립트 형식의 게임 진행을 통해 플레이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전쟁 속에 플레이어들을 체험할 수 있게 했다. 무엇보다 그런 연출을 통해 풀어나가는 이야기 전개에서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들이 상대해야 하는 주요한 적들은 미국을 치려고 하는 것은 블라디미르 푸틴 체제 이후 미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러시아 극우주의자들이다. 이런 설정들은 뒤이어 나온 [배틀필드] 시리즈나 [메달 오브 아너] 뿐만 아니라, 이런 밀리터리 게임을 만드는 큰 기여를 한 톰 클랜시의 게임 시리즈에도 역으로 수입 되었다. 즉슨 [모던 워페어]의 전쟁 묘사와 연출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 것이다.

[모던 워페어]에 등장한 전장의 영상적 연출은 중요한 패러다임 전환이였다. 게이머들이 무기를 가지고 전쟁놀이를 즐기기 위해 특정한 상황만 가정하고 플레이하게 한 모래상자Sandbox’를 만든 [카운터 스트라이크]의 패러다임이 실제와 거기서 발생할 가상적 위기와 공포들을 상상하고 거기에 플레이어를 영웅적으로 동참하게 만드는 [모던 워페어]적 체제로 들어서게 된 것이다. 이런 체제 성립은 지젝이 지적했던 9.11 이후 일어났던 공포에 대한 탈현실화와 동일하게, 전장의 공포와 잔혹함이 탈현실화되어 안전한상품으로써 판매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사실 [모던 워페어]의 이런 실재적인 이미지와 상황 설정은 게임의 본질하고는 거의 무관계한 것이다. 라프 코스터가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에서 내린 게임의 정의에 따르면 비디오 게임을 위시한 게임은 기본적으로 패턴을 해독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것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이런 해독과 해독 방법을 즐기는 학습이 게임의 기반을 이루고 있다고 보고 있다. [모던 워페어]의 게임 디자인은 전작 [콜 오브 듀티]1인칭 시점으로 총을 쏴서 적을 없애고 점수를 얻는다는 기본적인 디자인을 발전 계승하는 쪽으로 이뤄졌으며 본질적으로는 게임 플레이 자체는 [하프 라이프]에서 시작된, 스토리를 따라가는 1인칭 시점 슈터 게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영화적 연출이라는 당의정을 벗기고 보면 [모던 워페어][카운터 스트라이크]의 구조는 그리 다르지 않다. 이는 [모던 워페어]로 대표되는 FPS 장르 뿐만이 아니라 영화적 연출로 대표되는 영상적인 스펙타클을 제공하는 타 장르의 게임에도 거의 비슷하게 적용된다.

요컨대 제작진이 의도한 [모던 워페어]의 영상적 스펙타클 연출은, 게임의 본질에 더욱 쉽게 접근하고 몰입할 수 있기 위해 동원된 당의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런 연출 때문에 (PC를 제외한) 게임용 콘솔쪽 누적 합계만 해도 1335만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리면서 게임 문외한조차 [콜 오브 듀티]의 이름을 알고 게임을 살 수 있게 하였다. 하지만 그런 밀리터리 게임에 도입된 영상적 연출이 궁극적으로는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했던 이미지의 현실적 침입이라는 9.11 테러의 실재적인 문제점과 그것이 가져올 공포마저 소재로 착취하면서 탈현실화해 외설적인 가상의 영역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고 싶다.

이 외설적 쾌락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은 수동적인 관람에 그쳤던 기존 전쟁 영화를 지닌 영상 이미지들보다 (3D 폴리곤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성은 떨어질지 모르지만 플레이어/수용자를 그 외설적인 환상에 실재적으로 동참하게 한다는 점에서 훨씬 위협적이다. 이는 단순히 시점상의 문제가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게임 속에 등장하는 전쟁 이미지를 바라보는 플레이어의 위치를 영웅적인 위치에 놓기에 발생하는 문제다. 그렇기에 이런 영화적 연출을 가진 밀리터리 소재 게임의 선구주자로 1인칭 슈팅 게임인 [모던 워페어]를 그 시조로 놓긴 했지만 앞으로 다룰 밀리터리 소재 게임들은 단순히 [콜 오브 듀티]와 그 아류들이 속해있는 1인칭 슈팅 게임 뿐만이 아닌, [스플린터 셀] 같은 3인칭 슈팅 게임과 [비욘드: 투 소울즈] 같은 밀리터리 소재는 차용만 했을 뿐더러 슈터하고는 큰 관계가 없는 장르도 포함할 것이다.

먼저 [모던 워페어]의 게임 구성은 [하프 라이프] 스타일의 내러티브가 깔린 1인칭 시점 슈터에서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고 적었지만, 이들과 달리 한 가지 명백하게 달라진 점이 있다. 스펙타클을 바로바로 빠르게 제공하기 위해 자유도가 극도로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 [모던 워페어]는 특정 지역에서 플레이어가 전진하지 않으면 적을 마구 쏟아내는 AI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플레이어의 심리적으로 자극하는 피가 1인칭 시점 화면 튀는 연출, 폭파음, 총 효과음, 고함 소리가 가세한다. 거기에 플레이어가 움직이는 캐릭터 대부분은 현대 병기의 최첨단을 달리는 미군과 영국군이기 때문에 몰려나오는 적들은 난이도가 높지 않으면 적당히 피하면서 총을 쏘면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기에 플레이어는 궁극적으로 전지전능한 위치에 서서 전진하며 기어나오는 적들을 하나씩 파괴되는 건물과 엄청나게 쏟아지는 현대 병기들의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영상에 담긴 외설적인 쾌락에 빠지게 된다.

이런 [모던 워페어]가 가지고 있는 일직선적인 영화적 연출속에 담긴 외설적 환상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조장한다는 문제는 후속작이 나오면 갈수록 더욱 복잡하게 심화된다. 후속작인 [모던 워페어 2]‘No Russian’ 미션을 보자. 이 미션은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다는 점에서 악명을 떨쳤지만 사실 이 미션은 미국인들을 상대하는 미션은 아니다. 오히려 [모던 워페어 2]의 악역인 러시아 극우주의자와 그들 사이에 잠입한 미국인 CIA 요원이 공항에서 무고한 러시아 민간인을 학살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플레이어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 나가면서 전진하면서 자신들을 향해 공격하는 FSB 알파 팀들과 민간인에게 총을 쏠 수 있는 것 뿐이다. 플레이어는 여기서 무수히 죽어가는 민간인들과 FSB 알파 팀을 학살하는 영상적 이미지의 향연에 빠지게 된다. 전작 [모던 워페어]에서는 전장이라는 현상에 대한 탈현실화를 통한 외설적 환상 생산과 수동적인 섭취 강요는 군인과 전장에 국한 되었다면 [모던 워페어 2]는 직접적인 테러 현장마저 그 탈현실화에 대한 대상으로 삼아버렸다. 이런 연출은 명백히 문제적이였기에 발매 당시에도 무수한 비판을 받았고 제작진들도 스킵하도록 가능하게 했다. 심지어 일부 국가에서 나온 버전에서는 민간인을 쏠 수 없게 설정해놓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다.

하지만 ‘No Russian’의 진정한 문제점은 9.11 테러의 직접적인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고도 충격적인 이미지와 몰입을 제공함과 폭력의 대상과 실행자를 러시아인으로 설정한 뒤 궁극적으로는 타국의 미국 침략이라는 이미지를 얻기 위해 전장의 현실을 착취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방법은 다르지만 소수의 테러리스트들이 다수의 민간인을 학살하고 궁극적으로 국가 시스템에 충격을 유도한다는 점 (이 미션은 서사로 보자면 후일 악역들에게 미국인(=주인공인 CIA 요원)의 테러로 포장되어 러시아가 미국을 침공할 빌미를 주게 된다.)에서 ‘No Russian’의 구도는 9.11 테러하고 유사점을 공유하고 있다. [모던 워페어2] 제작진은 이 미션에서 9.11 테러가 미국인들에게 안긴 공포를 가져와 그 대상을 타자들을 향해 돌리면서 테러가 가지고 있는 잔혹한 실재를 탈현실화한 뒤 외설적인 환상으로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이 외설적인 환상은 러시아가 미국의 주권에 대한 위협을 가하고 애국적인 미군과 그 우방의 군인들이 그걸 막는다라는 국수주의적 태도에 정당성을 확보한다는 점에서 충분히 문제적이다.

이런 [모던 워페어 2]‘No Russian’처럼 9.11 테러와 타국의 미국 본토 침공이라는 위협을 탈현실화해 외설적인 환상을 만들어 소비를 하는 현상은 곧 단순히 영상적인 연출 이외에도 서사와 캐릭터 만들기에도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가장 가까운 예로는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자극적인 영상 연출에 힘입은 [콜 오브 듀티] 시리즈의 또다른 파생 시리즈인 [블랙 옵스 2]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얼핏 보기엔 이 [블랙 옵스 2]는 비슷하게 근미래의 국가 간의 충돌을 다루고 있지만 기존 [모던 워페어] 시리즈에 등장하는 타국인에 대한 편견으로 가득찬 미국을 노리는 적들과 다른, 인간적이고 개인적인 사연과 원한을 지니니 남미인 캐릭터와 미국을 싫어하는 타국의 대중들이 나온다. 그런 점에서 [블랙 옵스 2]은 일견 전작들에 비해 진보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정작 게임 속에서 그들이 미국을 싫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이유는 그렇게 크게 부각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블랙 옵스 2]는 그런 복잡하게 설정한 캐릭터들을 등장시키고도 여전히 그들이 왜 분노했는가에 대한 대답을 회피한다는 점에서 결국 미국 침공이라는 외설적인 환상을 위해 동원된 기능적인 캐릭터들과 상황으로 남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분노와 원한은 결국 선량하고 나라를 지키려는 애국적인 미군 주인공에게서 "헛소리하는 가여운 늙은이"라는 평을 듣고 다시 실패에 빠지게 된다.

[모던 워페어 2][블랙 옵스 2]에서 보이고 있는 문제점을 보이고 있는 다른 작품으로는 [스플린터 셀: 블랙리스트]이 있다. 이 게임은 1인칭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닌 3인칭으로 진행되는 미국 첩보원 주인공이 미국의 붕괴를 막기 위해 전 세계를 왔다갔다 하면서 미션을 수행하는 밀리터리 게임인 [스플린터 셀: 블랙리스트]는 먼저 미국을 공격하는 세력을 영국계 파키스탄인으로 설정한 뒤, 그에 협력하는 인물들을 미국인이 아닌 타자로 설정한다. 이 중 이란 특수부대 건물에 침투하게 되는 미션이 있는데, 호메이니 혁명 이후에 미 대사관을 특수부대 건물로 쓰고 있는데 미션을 하기 위해 지나가던 특수부대원들이 미국 침공을 시뮬레이션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No Russian’과 달리 플레이어의 직접적인 공격에 동참하는 내용은 아니지만, 서사와 영상 연출을 통해 은연중에 플레이어로 하여금 이란과 이란의 특수부대를 미국=주인공=플레이어의 주적으로 설정하게 하는 서브리미널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이 두 게임에 담긴 메시지 속에는 9.11 테러 이후 전세계가 미국을 싫어하며 그렇기에 언젠가 미국을 공격할 것이라는 타인에 대한 몰이해가 담긴 히스테리적이고 비이성적인 공포를 영상적인 연출로 자극적으로 전달하고 있다는 점에 비판받을 수 있다.

이런 밀리터리 소재 게임들을 통해 게임이 영화의 영상적 연출를 가능할 수 있게 되면서 발생한 자극적인 영상적 언어와 해독과 학습, 몰입이라는 게임의 특성을 통한 9.11 테러의 충격과 거기서 파생된 미국 붕괴에 대한 두려움을 외설적인 환상으로 재상품화라는 문제는 비단 언급한 사례 말고도 상당하다. 아예 [모던 워페어] 시리즈의 이야기 구조와 진행 방식을 카피하다시피한 2007년 이후 [배틀필드] 시리즈, 북한의 미국 침공이라는 소재로 애국적인 미국인들의 저항을 다룬 [홈프론트], 비슷하게 북한과 미국의 대립이라는 소재를 다룬 [크라이시스], 미국에 반대하고 나아가 추월해 선도국의 지위를 얻기 위해 연구를 하는 가상의 동양적성 국가 (황화론으로 가득찬 시선으로 묘사된)의 계획을 막는 전개가 나오는 [비욘드: 투 소울즈] 등이 그렇다. 하지만 얼핏 이런 밀리터리 게임들이 가지고 있는 연출을 그대로 쓰고 있으면서도 이를 비판적으로 고찰하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 게임이 하나 있다. 바로 [스펙 옵스 : 더 라인]이라는 게임이다.

[스펙 옵스: 더 라인]은 두바이에 고립된 사람들을 찾아가는 미군들을 주인공으로 한다는 점과 1인칭 슈터 게임이라는 점에서 [콜 오브 듀티] 같은 평범한 밀리터리 게임으로 보이지만 설정부터 차별화하고 있다. 우선 주인공들이 상대해야 하는 적들은 옛 전우들이며 게임이 진행될수록 주인공들이 하는 행위는 절대적인 진리나 선한 가치를 얻지 못하고 오히려 학살에 가까운 행위로 변해간다. 특히 플레이어가 조종하는 주인공 일행들이 전선을 넘기 위해 백린탄을 쏟아붓지만 되려 아무런 죄없는 피난민들이 처참하게 학살되는 장면은 ‘No Russian’하고 비슷한 충격을 안겨주지만 그 주체가 주인공 일행이라는 점에서 플레이어 자신의 행동과 결정에 대한 죄책감과 우울함을 안겨주고 있다. 같은 학살과 폭력의 의미라도 전혀 다르게 외설적 환상 그 자체를 비판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이 때문에 [스펙 옵스: 더 라인]은 플레이어를 전쟁 영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닌 최악의 학살범으로 만들어버림으로 지금까지의 밀리터리 소재 게임이 무비판적으로 소모했던 외설적인 환상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을 가능케 한다.

물론 [스펙 옵스: 더 라인]이 모든 밀리터리 소재 게임들의 이상향이 되야 된 다는 것도 아니며 궁극적으로는 1인칭 슈팅 게임의 장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한계점도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스펙 옵스: 더 라인]은 전장과 폭력을 외설적인 환상으로 포장하는 현 게임업계의 안이함을 플레이어의 주도권과 주인공 캐릭터들의 윤리적 모호함으로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분명 성공적이였으며 향후 대안적이고 비판적인 밀리터리 소재 게임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 분명하다.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을 고찰하면서 끝낼까 한다. 현재 E3 등 유명 미국 게임 행사는 미군이 상시 주목하고 있으며 심지어 아메리카스 아미라는 홍보용 1인칭 슈팅 게임을 개발해 완전 무료로 배포하거나 Pro vs GI joe 같은 행사를 통해 미군이 소유한 병기와 군인들의 실력을 관객들에게 보여주는 이벤트를 펼치며 모병 홍보를 한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은 미군을 비롯한 각 나라 군대들이 밀리터리 게임이 가지고 있는 외설적 환상과 이미지에 대한 무비판적인 수용을 이미 빠르게 눈치채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쓰고 있다는 걸 방증하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게임 개발자와 영상 문화 비평가들이 이런 우려스러운 현상에 대해 심도있는 새로운 고찰과 비판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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