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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극장판 (3)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クロラ / The Sky Crawlers] (2008)

오시이 마모루의 [스카이 크롤러]는 극도로 인공적인 설정에서 출발한다. 이 애니 속 세계는 대리전이 실제 전쟁을 대체했다. 그리고 대리전을 담당하는 것은 영원히 늙지 않는 킬드레라는 10대 소년소녀들이다. 10대 소년소녀들은 전투기를 몰아 상대편 세력과 전쟁을 벌이는 동안 사람들은 그걸 보면서 안심하면서 평화를 유지한다. 절대로 현실적이라 할 수 없는 이 기본전제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스카이 크롤러]는 [공각기동대]보다도 훨씬 더 사변적인 세계를 밀어붙이는 애니메이션이다.  이런 분위기는 모리 히로시의 동명 원작의 공이 컸을거라고 본다.

[스카이 크롤러]는 구조의 애니메이션이다.  먼저 오시이 마모루는 자신이 다루고 있는 세계가 어떤 식으로 구축되어 있는지를 파악한 뒤 대립항적인 두 공간의 차이를 강조한다. 원작과 달리 배경을 동유럽 어딘가로 이동시켜버린 것도 이를 위해서였을 것이다. 땅에서 이뤄지는 킬드레의 일상은 위축되어 있다. 색감은 칙칙하며, 등장 인물들은 말을 많이 하지 않는다. 욕정의 순간도 짧고 조용히 처리해버리고, 인물들의 시선은 종종 먼 곳을 응시한다. 장소들은 비슷비슷하며 노골적으로 인물과 사건의 반복이 암시된다. 

원작에 대한 단편적인 정보를 참조하자면 오시이 마모루가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이유는, 설정 자체가 알랭 레네의 [지난해 마리앵바드]를 연상케 하는 구석이 있기 때문 아니였을까 생각해본다. [지난해 마리앵바드]가 그랬듯이 [스카이 크롤러]도 시간이 멈춰버린 공간에 머물고 있는 여자에게, 과거를 상기시키는 남자가 찾아오고 그 남자 때문에 어떤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말이다. 다만 서사 자체를 파편화하고 미로를 만드는 식으로 굴레를 보여준 [지난해 마리앵바드]와 달리, [스카이 크롤러]는 사소한 소도구와 언행의 반복, 세계를 작동케하는 법칙의 생략으로 굴레를 보여준다. (이 애니를 보고 난 뒤, 어떤 식으로 세상이 돌아가는지 파악할 관객은 없으리라 본다.)

땅의 세계를 보여줄때 오시이는 브레송의 시네마토그라프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스카이 크롤러]는 평범한 일본 애니메이션이 보여주지 않는 정렬된 샷과 몽타쥬를 보여주려고 애쓰는 드문 애니메이션이다. 사실 어느 정도 이름을 얻은 애니메이션 감독들을 보면 샷과 샷 사이의 흐름을 실사로는 불가능할 정도로 마음껏 주무르는 방식으로 주목받는 경우가 많다. 콘 사토시와 유아사 마사아키, 실벵 쇼메와 얀 츠반크마이어 작품들이 그렇다. 하지만 오시이는 그런 주무름 대신, 시네마토그라프의 군살 없이 집중력 높으면서도, 정직한 이미지를 2D 애니메이션의 평면성에 이식하려고 한다.

그 결과 [스카이 크롤러]는 무드 피스라고 할만한 샷들이 이어진다. 매춘부와 섹스 후 옷 매무새를 다듬는 유이치, 볼링장 시퀀스의 무덤덤한 공기,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세계의 구조에 대한 비평, 권태로운 드라이브 시퀀스... 그 중 가장 섬뜩하게 조형된 장면은 킬드레를 관람하러 오는 평범한 사람들과 킬드레를 교차해 보여주는 시퀀스일 것이다. 이 시퀀스에서 오시이는  사회에서 유리될 수 밖에 없는 군상 킬드레와 일반인들 간의 섬뜩한 대조를 보여준다. 오시이 마모루의 힘은 어려운 사상을 중얼중얼 대사로 풀어냈다는데 있지 않고, 그 사상이 어떤 식으로 '영상화'되는지 비롯된다.  [나루토]나 [닌쿠]로 유명한 니시오 테츠야가 제공한 캐릭터 디자인은 일본 분라쿠 인형을 연상시키는 무표정함과 카와이 켄지의 절제된 음악도 여기에 한 몫한다.

반대로 하늘로 넘어가면 다르다. [스카이 크롤러]에서 하늘은 땅과 달리 역동적인 에너지가 넘치는 공간이다. 기술적으로도 흠잡을 때가 없지만, [스카이 크롤러]의 액션이 강렬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바로 땅의 세계를 지배하던 정렬된 감성이 폭발하기 때문이다. [스카이 크롤러]에서 하늘은 말그대로 생과 사의 경계에서 가장 치열하게 살아가는 자들의 것이다. 오시이는 이 간극을 분명하게 보여주면서, 왜 킬드레가 하늘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그 곳에서만 킬드레들은 자신의 존재를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스카이 크롤러]를 관통하는 중요한 아이러니다. 쿠사나기 스이토가 지적했듯이 사람들을 전쟁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서 엔터테인먼트화했지만,  정작 그 엔터테인먼트화된 전쟁조차도 '누군가'에게는 진짜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그 굴레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곳도 하늘이며, 거기서 죽어도 그들은 기억을 잃고 새로운 존재로 태어날 뿐이다. 오시이는 샷을 쌓는 방식의 대조로 그런 운명의 가혹함이 가져다 주는 처연함을 강조한다. 그 점에서 [스카이 크롤러]는 일본 서브컬처의 루프물 흐름을 받아들인 [지난해 마리앵바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카이 크롤러]는 실패한 혁명을 얘기하는 애니기도 하다. 성장하지 못하는 킬드레를 최종 보스인 티처와 싸운다는 후반부 전개는 일본 만화나 애니계에서 자주 우려먹혔던 '어른에게 반항하는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스카이 크롤러]의 킬드레가 다른 '어른에게 반항하는 아이들'에서 더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아이들이 왜 반항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실존의 문제랑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인류사에서 실패한 혁명이 보였던 논리를 체화하고 있다.

그렇기에 클라이맥스에서 등장하는 직설적인 감정 폭발 역시 그렇게 느끼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는 앞의 샷과 시퀀스에서 감정의 절제가 이뤄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시이가 관객들에게 성공적으로 인물을 얽매고 있는 세계의 구조를 설득시켰기 때문이다. [공각기동대]에서 모토코가 자신의 정체성에 고민하면서 한없이 가라앉을때도 그 유장한 호흡에 지루함을 느낄지 몰라도 모토코의 감정을 이해할수 있던 것처럼, 우리는 킬드레를 얽메고 있는 억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굴레에서 좌절하면서도 기어이 탈출하고, 살아가고자 하는 킬드레들의 욕망과 사랑은 사뭇 감동적이다.

어쩌면 오시이는 이 애니를 만들때 좀 감상적이었던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결말 뒤에 붙는 쿠키가 대표적인 증거다. 또다른 반복, 그러나 변화를 암시하는 이 쿠키는 꽤나 의견이 분분했다. 솔직히 이 부분은 일본 만화 특유의 '오카에리나사이'가 가져다 주는 느끼함이 없다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스카이 크롤러]가 [공각기동대]처럼 오시이를 언급할때 선두에 나설 수 없는 작품이 된 중요한 이유기도 하고. 하지만 [스카이 크롤러]의 감상적인 맺음은, 쉽사리 내칠수 없다. 그 감상은 어떤 냉소보다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난 내 개에게만 관심있고 인간 따윈 상관없다'라고 말하며 후배들의 작품을 깎아내리는 "지루한 작품만 만드는격 더러운 영감" 오시이의 숨겨진 의중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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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썸머 워즈] 한국 개봉
애니메이션 '썸머워즈' 8월13일 국내 개봉 (by 다나와 뉴스)

6개월 개봉 텀이 있을줄 알았는데 정말 빨리 개봉하네요. (일본은 8월 1일 개봉)  벌써 포스터가 완성되어 있는 걸 보면 불법 다운로드를 막기 위해 재빨리 개봉하는 거일지도 모르겠군요. (시달소의 인기를 얻어가려는 것도 있겠지만.) 좋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합니다.

그나저나 내용은 지금 처음 보게 됬는데... 전뇌 코일? 무슨 내용이 될지 궁금해졌습니다.

여튼 이 기회에 주제가를 부른 야마시타 타츠로가 주목받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인기를 받더라도 타츠로 옹 전작 (全作) 라이센스는 이뤄지지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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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반게리온: 서 [ヱヴァンゲリヲン新劇場版:序 / Evangelion 1.0: You Are (Not) Alon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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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처음부터 다시...그 첫번째

때론 전설은 그 자리에서 박제화 되버리는 경우도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설을 만들어 놓고, 그 뒤로 쓸쓸히 사라졌던가. 대신 남은 사람들은 그 전설을 기억하고, 칭송한다. 그것이 박제화인것이다. 좋게 말하면 시간과 관계없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존재이고, 나쁘게 말하면 현재와 무관한 과거의 유물이랄까.

에반게리온 역시 그 길을 걸어갈듯 싶었다. 일본 애니메이션 시장은 점점 미소녀물로 도배되어가고, 에반게리온이 던졌던 화두들(비록 설익은 느낌도 있었지만.)은 점점 구시대의 유물로 전락해가고 있었다.

그런데 2007년 안노 히데아키 감독은 이 작품을 다시 제작하기로 하겠다고 발표했다. 솔직히 전설을 다시 살려내겠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냥 재탕 아니야,하고. 하지만 영상과 스틸 컷이 공개 되면서, 에반게리온을 처음 보던 시절의 설레임이 되살아 났다. 다음 화가 있는 DVD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허탈함과 미국판 DVD이여서 한국어 자막도 없이 구극장판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기억도.

이번에 새로 만들어진, 에반게리온: 서는 에반게리온을 전설로 박제화 시키지 않겠다는 안노 감독의 분명한 의지가 돋보인다. 우선 기본적 틀은 살리는 대신, 곁가지나 설정들을 과감히 생략하거나 변화시켰다. 이런 변화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세계를 구축하겠다는 의도이고, 실제로도 성공했다. 보면서 재탕했다는 느낌은 많이 들지 않았으며, 마지막의 '그' 장면은 속된 말로 에반게리온의 떡밥은 아직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었다.

다만 원작과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 나머지, 괜찮은 장면이 다수 잘려나고, 처음 보는 이들에게는 불친절해졌다는 점은 단점이라 들 수 있다. 만약 원작 TV시리즈을 보지 않은 이들이 있다면, TV시리즈 중 6화까지 보거나 구 극장판인 데스 & 리버스를 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존의 멋진 장면들이 파워업 된 부분들도 많다. 조그마한 TV로 보면서 덜덜 떨었던 에바 첫 기동 및 폭주는 신극장판에서는 거의 사람을 쥐었다 폈다하는 수준으로 변했고, 본작의 하이라이트인 야시마 작전은 마지막에 허허하고 웃을 수 밖에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화면, 소리 모두 돈 들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아직까지는 안노 히데아키가 전하고 싶어하는 메시지는 다소 불투명한 것 같다. 물론 부분부분 그 단초들은 찾아 낼 수 있다. 그 중 하나가 전반적인 분위기의 변화이다. 원래 에반게리온의 분위기는 갑갑함이였다. 물론 이 기조는 신극장판에서도 이어지지만, 그에 따른 등장 인물들의 리액션은 좀더 적극적으로 변했고, 거기다가 미래를 긍정하는 대사와 상황들이 들어갔다. 하지만 이런 단편적인 가지고는 확실히 말할 수 없다. 이야기 자체가 본궤도에도 오르지 않았으니 말이다.

안노 히데아키가 '다시 처음부터 다시'를 외치며 만드는 새로운 에반게리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아까도 적었듯이 아직은 단정할 수 없다. 하지만 새 에반게리온은 전설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박제를 깨고 나올 것인지, 아니면 더 깊은 박제가 될 것인지는 마지막 4편에서 밝혀지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첫 시작은 상당히 괜찮게 출발했으니 기대를 걸어보고 싶다.

감상일 2008.2.4 강변CGV 5시 30분 (2008년 처음 극장 가서 영화보다.)



덧. 우타다 히카루의 주제가는 좋다. 그러니 엔딩 크레딧은 꼭 놓치지 말고 보시길.(심지어 다음 예고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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