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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기예르모 델 토로 (3)
악마의 등뼈 [El Espinazo Del Diablo / The Devil's Backbone] (2001)


악마의 등뼈 (0000)

The Devil's Backbone 
8.2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마리사 파레데스, 에두아르도 노리에가, 페데리코 루피, 호세 마누엘 로렌조
정보
공포 | 멕시코 | 106 분 | 0000-00-00

기예르모 델 토로의 [악마의 등뼈]는 유령의 기원과 감정을 논하며 시작한다. 그는 여기서 "죽은 건 어쩌면 살아있는 것처럼 보인다."라고 정의한다. 도입부의 내레이션에서 알 수 있듯이 델 토로의 유령들은 구로사와 기요시의 유령들처럼 산 자의 장소와 자신의 흔적을 서성이며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그렇다면 왜 [악마의 등뼈]의 유령 소년 산티는 산 자의 공간을 서성이고 있는 것일까?

확실히 집어야 할 부분이 있다. 기요시의 유령들이 지극히 도회적인 공간에 배치되어 있었다면 델 토로의 유령들은 역사의 공간에 배치되어 있다. [악마의 등뼈]는 1930년대 스페인 내전 도중 고아원로 찾아간다. 후견인과 함께 살던 카를로스는 고아원에 맡겨진다. 조만간 찾아오겠다고 말하는 후견인이지만 우리는 그의 말이 이뤄질수 없는 거짓말이라는걸 알고 있다. 카를로스를 따라 들어온 관객들은 고아원 마당에 떨어진 폭탄을 발견한다.

그 후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익숙한 이야기들이다. 적어도 [소공자]라던가 [몬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19세기 유럽 대중문학에서 자주 나왔던 소재들이다. 기숙사의 우정, 숨겨진 비밀, 극도로 콘트라스트가 뚜렷한 악역, 억울한 죽음과 누명... 하지만 [악마의 등뼈]는 활극보다는 한숨과 멜랑콜리로 가득찬 영화다. 유령 이름부터가 한숨 짓는 아이가 아닌가? 물론 탐색과 모험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 모험이 가지고 있는 활기는 곧 폭탄과 손괴의 이미지와 무력함으로 무너져내린다.

전작 [크로노스]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그걸 받아들이는 담담함을 생각해보면 이런 델 토로의 시선은 그리 놀라운건 아니다. 하지만 [악마의 등뼈]에선 미국과 멕시코(라틴 아메리카) 간의 정치적인 은유가 인물들 설정 사이에 은밀하게 숨겨진 [크로노스]랑 달리 무력함의 근원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카를로스는 전쟁으로 부모와 후원자를 잃어버리고, 다른 아이들도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다. 하신토는 전쟁을 통해 이득을 챙기기 위해 무자비하게 폭력을 휘두르고 아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어른들은 하나둘씩 죽어간다. 마지막 안식처였던 고아원조차 무너진다.

산티는 그 속에서 희생당한 제물이다. 물론 산티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스페인 내전하고 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산티의 죽음은 어떤 탐욕과 무자비한 폭력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에서 프랑코 정권이 민중들과 좌파 투사들에게 가한 폭력을 떠올리긴 어렵지 않다. 동시에 떨어진 불발탄은 폭탄의 그 기능을 잃었지만 여전히 아픈 폭력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점에서 산티의 유령과 닮은 점이 있다. 그렇기에 산티는 폭탄처럼 끊임없이 산 자의 공간을 방황한다.

이런 산티에 대해 가지고 있는 하이메의 죄의식은 그런 무력함을 조장하게 하는 세상에 대한 대항이다. 죽은 자를 기억을 하는 것으로 자신보다 강한 악행을 용서하지 않고, 망자를 추모하고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려는 행위인 것이다. 카를로스는 그의 고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어른으로써 자라게 된다. 그러나 하이메나 카를로스 역시 아이이기 때문에 저항은 우울하고 때론 실패로 돌아가며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가득하다. 결국엔 그에 대한 처벌 역시 그들의 손이 아닌,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한숨 짓는 유령'에게 넘어간다. 그리고 아이들은 떠나간다. [악마의 등뼈]는 이런 아이들이 도무지 할 수 없는 무력함과 슬픔으로 가득하다. 

심지어 그 무력함은 악당인 하신토에게도 언뜻 언뜻 그늘을 드리운다. 성적 욕망에 충실하고 금괴라는 실재적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 가차없이 행동하는 하신토는 그러나 고아로 출발해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는 하신토는 실제 민중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인 욕망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정말로 사랑했던 연인 또한 죽이고 싶지 않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죽이는 비극적인 면모를 품고 있기도 한다.  그렇기에 동료들에게 미친 놈 소리 듣고 유령에게 익사하는 하신토의 최후는 카타르시스를 담고 있으면서도 씁쓸하다. 하신토는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으로 망가져버린, 현실적으로 있을법한 캐릭터이기 떄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은 산 자인 아이들이 떠나고 죽은 자의 공간으로 화한 고아원을 지키는 새로운 유령인 카사레스의 모습으로 막을 내린다. 아이들은 이제 죽은 자의 영토를 떠나 산 자가 있는 곳으로 정처없는 여정을 떠난다. 하지만 영화에서도 언급되듯이 고아원과 마을은 꽤 먼데다 황폐한 길을 거쳐 가야 한다. 아이들의 슬픔과 고통은 고아원을 떠나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카사레스는 남아서 쓸쓸히 그들을 떠나는 걸 지켜본다. 델 토로는 이에 스페인 내전에서 패한 민중들과 좌파들의 암울한 미래를 암시함과 동시에 그들을 위로하고 있다. 

[악마의 등뼈]는 델 토로의 뿌리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는 영화이며 역사의 비극을 기초로 한 애잔한 감정과 고전적인 모험/고딕 호러로 쌓아올린 수작 고딕 호러라 할만하다. 동시에 [벌집의 정령]에서 비롯된 전후 스페인 영화에 담긴 환상적이면서도 억압된 분위기가 녹아있는 영화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이 사려깊은 기운은 델 토로가 [크로노스]와 [미믹]을 거치며 얻은 성장과 사려깊음이 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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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시픽 림 [Pacific Rim] (2013)



퍼시픽 림 (2013)

Pacific Rim 
7.4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찰리 헌냄, 이드리스 엘바, 키쿠치 린코, 찰리 데이, 로버트 카진스키
정보
SF | 미국 | 131 분 | 2013-07-11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의 메인 포스터엔 캐릭터나 배우가 등장하질 않습니다. 로봇들이 등장할 뿐이죠. 이 포스터 디자인에서 영화는 목표를 명백하게 잡아두고 있습니다. '우리는 배우로 승부하는게 아니라 로봇으로 승부하겠다'고. 실제로 퍼시픽 림의 캐스팅은 [바벨]로 유명해진 키쿠치 린코를 제외하면 대부분 그렇게 유명한 배우들은 아닙니다. 키쿠치 린코 역시, [상실의 시대]나 그런 영화에 주연으로 어울리지 이런 대형 블럭버스터를 견인할만한 배우는 아니고요.


그렇다면 퍼시픽 림의 스토리는 어떠한가요? 이 역시 그리 중요하지 않습니다. [퍼시픽 림]의 스토리는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이나 특촬물을 본 사람들이라면 반복해서 봤을 그런 종류의 클리셰니깐요. 갑작스러운 심해 생물의 침략과 멸망하는 세상, 거대 방벽, 그 생물에 맞서 제조된 대형 로봇 병기, 싱크로률, 복수에 불타는 쿠노이치 비주얼의 여주인공과 형을 잃은 금발벽안 남주인공 간의 교감, 재수없는 라이벌, 병에 든 대장, 위기의 순간 자폭...  [톱을 노려라!]나 [에반게리온], [마징가 Z], [자이언트 로보]에서 자주보던 그런 설정들이 줄줄이 나오고 또 거기서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덕후라면 한 10분만에 어떻게 될지 눈치 채실수 있으실거고 결말을 알고 가도 별로 상관없을 정도입니다.


그런 점에서 [퍼시픽 림]은 동인지 블럭버스터라 할 수 있습니다. 어렸을때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를 보고 자란 덕후 소년들이라면 한번쯤은 꿈꿔볼만한 프로젝트인거죠. 단지 영화는 이를 헐리웃의 자본과 기술력을 빌려 크고 거대한 스케일로 해치웠습니다. 우선 로봇 디자인을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의 리스펙트로 차 있지만 나태하지 않게 아주 근사하게 뽑아냈고 (팔이 여섯개 달린 크림슨 타이푼! 가슴에 핵융합로가 달린 집시 데인저!!) 그에 따른 세계관의 비주얼도 매혹적입니다. 무엇보다 영화는 그런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에 대한 리스펙트로 가득찬 마음을 꿍얼거리지 않고 아주 당당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거대 괴수와 거대 로봇의 대결이라는 순수하게 시청각적인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기 오면 헐리웃에서 (멕시코라고 해야 되겠지만) 가장 재능있는 덕후인 델 토로는 신이 난듯이 해치우고 있는걸 확인할수 있습니다. 특히 영화의 클라이맥스를 차지하고 있는 홍콩 대결에서 집시 데인저가 부서진 배를 들어 거대 괴수에 박아넣고 하늘 끝에서 칼을 휘둘러 반토막 내는 장면은 로봇 매니아가 아닌 사람조차도 콱 몰입해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다만 확실히 인간 드라마가 약하긴 합니다. 키쿠치 린코의 영어가 씹히다던가 ([바벨]을 보면 이 배우가 연기를 못하는 배우는 아닌데 여전히 영어 연기에 약한것 같더라고요.) 배우들 연기도 딱 기능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무엇보다 델 토로가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하지 않고 갑자기 들어와서인지 클리셰를 그대로 두는 수준에만 만족하고 있다는 점도 그렇고요. 아마 델 토로나 각본가 트래비스 베컴는 예술가로써 혜안보다는 덕후의 로망이 더 앞선던 것 아닐까요. 그리고 델 토로 터치가 가장 약하게 들어간 영화이기도 합니다. 물론 마코의 과거사를 빅토르 에리세의 [벌집의 정령] 영향으로 채운다던가 (로봇 애니메이션을 보고 로봇과 로봇 파일럿을 만난 아나Ana?) 크툴루와 고질라에서 따온 거대 괴수 설정은 분명 델 토로 스타일이지만요.


[퍼시픽 림]이 델 토로 대표작이 될 가능성은 적다고 봅니다. [크로노스]라던가 [판의 미로]라는 위대한 걸작들이 있으니깐요. 하지만 [퍼시픽 림]은 자기의 동인지적인 위치를 잘 알고 영리하지만 겸손하게 굴며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블럭버스터입니다. 이 영화에 만족하냐 아니냐는 개인차겠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이 로봇 덕후가 아니라면 만족도 싱크로는 떨어질겁니다.) 적어도 [디워]나 [서커 펀치]처럼 나대지 않는다는 점에서 델 토로가 잭 스나이더나 심형래와 달리 성숙하고 똑똑한 감독이라 할 수 있을겁니다. 개인적으로는 비싼 값을 준 재미를 느낀데다 로봇의 로망이 뭔지 다시 깨우쳤다는 점에서 만족스러웠습니다. 


P.S.1 개인적으로 로봇 취향은 좀 얄쌍한 풀 메탈 패닉의 암슬레이브나 에우레카 7의 LFO입니다. 아 물론 톱을 노려라!에 나오는 건버스터나 디스누프도 좋아합니다만.

P.S.2 아이맥스로 보는걸 강력 추천드립니다. 큰 스크린에 빛을 발하는 영화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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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예모르 델 토르의 퍼시픽 림 예고편

기예모르 델 토로는 진짜 성공한 영화 덕후의 표본인듯 합니다. 칸 영화제 경쟁 부문으로 레드카펫을 밟고 흥행작도 보유하고 있고 자기 덕질을 마음껏 드러낼수 있다니 진짜 부러워요.

퍼시픽 림은 그 덕질의 정점인듯 합니다. 거대로봇+괴수물+GLaDOS이라니 진짜 덕후의 로망을 그대로 실현시키는 델 토로... 저같은 씹덕은 보면서 쿵쾅거릴 정도입니다. 아무리 실망스러운 영화라도 언제나 기본은 하는 델 토르이기 때문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데 게임 프로젝트 InSane은 어떻게 되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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