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린 램지 (3)
You Were Never Really Here 예고편

2012/09/03 - [Deeper Into Movie/리뷰] -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2013/07/16 - [Deeper Into Movie/리뷰] - 모번 켈러의 여행 [Morvern Callar] (2002)

린 램지 신작이 마침내! 내용도 마음에 들고, 예고편도 마음에 듭니다.

근데 한국 개봉은 언제죠....

'Deeper Into Movie > 잡담' 카테고리의 다른 글

You Were Never Really Here 예고편  (0) 2018.01.16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예고편  (0) 2017.11.08
[희망의 건너편] 예고편  (0) 2017.10.20
[잃어버린 도시 Z] 예고편  (0) 2017.09.03
[로건] 공식 예고편  (0) 2016.11.09
그래비티 예고편  (0) 2013.09.08
0  Comments,   0  Trackbacks
모번 켈러의 여행 [Morvern Callar] (2002)




모번 켈러의 여행

Morvern Callar 
0
감독
린 램지
출연
사만다 모튼, 캐슬린 맥더모트, 루비 밀튼, 돌리 웰스, 린다 맥과이어
정보
드라마 | 영국 | 97 분 | -


큰: 오래간만이군요. 폴라곰 씨.

폴: 예에. 휴가도 못가고 땀띠나 죽겠는데 본지 좀 된 영화 리뷰나 같이 하게 됬군요. [퍼시픽 림]은 혼자서 리뷰하고. (투덜투덜)

큰: 워워 그러지 마시고...

폴: 그럼 호러 영화 리뷰나 같이 좀 하죠. 씨원하게.


큰: 네네 알겠습니다. 나중에 이탈리아 호러 영화나 한 편 보죠. 이번에 같이 리뷰할 영화는 [모번 켈러의 여행]입니다.  

폴: 뭐 정보를 잠시 나열하자면 [케빈에 대하여]로 유명한 린 램지의 2002년 영화죠. 사만다 모튼이 [마이너리티 리포트]로 유명 배우로 자리잡고 난 뒤에 찍은 영화입니다. 원작은 스코틀랜드 작가인 알렌 워너가 썼고요.

큰: 물론 이야기의 주인공이 제목의 모번 켈러라는 건 폴라곰 씨도 보기전에 눈치 채셨겠죠. 알렌 워너와 린 램지는 시작하자마자 관객에게 이 모번 켈러가 시체를 더듬는 장면을 던져놓습니다. 관객은 당연히 당황합니다. 곧 관객들은 이 시체가 제임스 길레스피이며, 모번의 남친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폴: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관객들은 남친이 왜 죽었는지 설명을 기대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램지와 워너는 알듯말듯한 남친의 유서만 던져놓고 곧 잊어버립니다. 'Be Brave'라니 도대체 이 제임스라는 사람 여친 조롱하는겁니까?

큰: 뭐 추리 소설로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설정의 도입입니다만 램지와 워너는 추리로 나가지 않습니다. 이 두 사람이 관심이 있는 부분은 바로 모번 켈러입니다.

폴: 이 모번이라는 여자도 좀 이상한 거 같습니다만. 시체를 무슨 이케아 가구처럼 전시해놓고 있어요.

큰: 모번도 그리 정상적인 인물은 아니죠. 영화는 모번의 비정상적인 행동을 쫓아갑니다. 그 중 몇 개는 정말 심각한 범죄여서 서스펜스물이나 범죄물로 발전하기도 충분하죠. 하지만 영화는 그런 서스펜스에도 무관심합니다. 모번의 범죄들은 적어도 영화가 끝날때까지 들통나지 않습니다.


폴: 그렇다면 이 영화의 정체는 뭡니까.

큰: 심리 드라마라 봐야죠.

폴: 제임스처럼 모번의 행동을 추측할 수 있는 내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이 거의 나오지 않는데요?

큰: 없다곤 할 수 없습니다. 모번이 외간 남자의 호텔방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다가 섹스를 하는 장면처럼 좀 노력이 필요하긴 하지만 단서들은 나오고 있죠. 무엇보다 모번에 대조되는 라나라는 캐릭터가 옆에 있습니다. 라나는 여러모로 모번과는 정반대의 캐릭터입니다. 스코틀랜드 중하류층 여성인 라나는 하루 벌이에 고민하며 놀기 좋아하고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죠. 여러모로 미스터리에 빠져 있는 모번과 달리 라나는 관객의 시선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알기 쉽습니다. 아니 사실상 이 영화를 해석하기 위한 모든 실마리는 라나와 모번의 관계에서 나옵니다.


폴: 모번도 욕망에 충실한 캐릭터라 할 수 있지 않나요?

큰: 그렇긴 합니다만 방향은 다릅니다. 라나는 딱히 현실을 개변할 의지도 없고 그럴만한 도구도 없는, 모험보다는 안정에 빠져 있는 캐릭터입니다. 스페인에서 라나는 클럽이나 그런데 놀러다니며 즐기지만 정작 '모험'이라 할 만한건 하지 않습니다. 모번 때문에 호텔을 뛰쳐나와 이상한 남자를 만나 히치하이킹 하고 길가에서 노숙할때 화내는 장면을 보면 라나는 모험에 익숙하지 않으며 익숙해질리도 없다는 걸 명백하게 보여줍니다.

모번은 다릅니다. 시체를 발견하고 장례식 비용을 빼서 스페인 여행을 가고 남친 소설을 자기 이름으로 팔아 넘깁니다.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고, 낯선 남자의 차를 하이재킹하고 예정에 없는 관광지를 가고...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지만 내심 일탈을 추구하고 있었고 남친의 자살은 그 트리거가 된 겁니다.


폴: 그렇다면 큰뿌리님은 이 영화의 주제가 '일탈'이라 생각하는 거군요.

큰: 네. [고스트 월드]가 그랬듯이 모번의 여행은 산문적인 세계에 일탈이라는 운문적인 요소를 뿌리려고 하는 시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때문에 모번은 이니드처럼 묘하게 19세기 프랑스 대중 소설의 안티 히어로 (헤로인이라고 할까요) 느낌도 납니다. 무도덕적이고 오싹하지만 매혹적인 면도 있는 그런 캐릭터죠. 영화 마지막에 알듯말듯하게 클럽을 유유히 스쳐지나가며 조용한 음악을 듣는 장면은 그 점을 요약했다고 볼 수 있겠군요.


폴: 영화는 전반적으로 졸립더라고요. 약간 흐릿한 정신으로 봐서 그런지.

큰: 맞습니다. 이 때문에 사실은 이 모든게 모번의 망상 아닐까라는 의문마저 품게 하죠. 여기에 대한 힌트도 없다시피하니 그야말로 추측의 영역이지만요. 영화에 나오는 알듯말듯한 모번의 "주관"으로 처리된 호텔 섹스 장면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겁니다. 이 장면은 현재의 시점일수도 있고, 제임스를 만날 당시(를 회고하는 모번)일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말이 되죠. 

폴: 설명이 마치 린치 영화 같네요. 그래도 린치 영화는 호러적인 요소라도 있어서 쫄깃하게 하는 맛이 있었는데.


큰: 근데 사실 호러 테이스트가 아예 없는 건 아니에요. 

폴: 어떤 식으로 말이죠?

큰: 은근히 유령들린듯한 분위기라고 해야 할까요. 특히 제임스가 영화 내내 스토리에도 영향력을 미친다는 걸 지적하고 싶군요.

폴: 제임스가요? 어떻게 죽은 사람이 그게 가능하죠?

큰: 음악입니다. 영화는 모번의 심리를 설명하지 않는 대신, '죽은자가 남긴 흔적, 음악'이라는 요소를 전면에 부각시킵니다. 이 영화에서는 죽은 자가 남긴 음악을 듣는 행위가 자주 등장하고 나아가 중요한 극적 모티브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때론 분위기마저 바꾸기도 합니다. 보통 "남친 시체를 욕조에서 조각내는 모번의 피부에 하얀 피가 튄다"라는 장면의 들으면 왠만한 스플래터 영화 뺨치는 긴장감 넘치는 시추에이션을 상상하겠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나오는건 평온하고 애달픈 감정입니다.


폴: 으으... 그거 제대로 보여줬다면 어지간한 호러 영화 뺨칠듯요.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나른한 'I'm Sticking With You'이 강렬하긴 했죠. 여튼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느꼈지만 린 램지의 선곡 솜씨는 뛰어난것 같아요.

큰: 그렇죠. 린 램지의 영화에서는 음악은 중요한 원동력입니다. 다만 [케빈에 대하여]는 단지 상황에 맞는 음악과 불길하게 습격하는 자니 그린우드의 스코어가 흘러나오는 정도였다면 [모번 켈러]는 음악을 듣는 행위와 이야기 바깥에 존재하는 외재적 음향과 내재적 음향으로 넘어가는 연출이 상당히 자주 등장합니다. 


폴: 말 꼬지 말고 좀 쉽게 설명해줘요.

큰: 걍 모번이 제임스가 남긴 음악 테이프를 눌러서 듣는 장면이 유달리 많이 나온다고요. 그리고 주인공이 있는 '서사'와 서사 바깥에 있는 '연출 영역' 간의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할까요. 이런 반복적인 행태 때문에 영화는 강신굿처럼 보입니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의 흔적에 집착하고 나아가 죽은 자가 남긴 음악을 통해 강령술을 행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마치 이유도 없이 덜컥 자살을 선택한 제임스를 기리듯이 말이죠. [케빈에 대하여]에서 에바가 막판까지 그 진상을 알 수 없는 "과거의 사건"에 벗어나지 못하고 발작적인 플래시백을 일으키는 것과 유사한 맥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폴: 근데 의미나 매력은 알겠지만 영화가 너무 불친절하지 않나요?

큰: 뭐 초기작인 [쥐잡이]나 뒤에 나온 [케빈에 대하여]와 달리 너무 그 구조에 집착한 한 편이 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있습니다. 한마디로 무드가 강조되서 불친절해져버력 한 편이라고 할까요. 모번은 매혹적인 캐릭터지만 감정 이입하기는 어려운 캐릭터고요. 린 램지의 몇 안되는 커리어 중에서도 전형적인 "예술 영화"적 외연에 가까운 영화 아닐까 생각합니다.


폴: 까말 지루했어요. [케빈에 대하여]처럼 손톱을 잘근잘근 뜯어먹는 마력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사만다 모튼은 제대로 캐스팅된 배우였다고 생각해요.

: 보통 이런 연기들은 소위 말하는 "명연기"와 다른 체질의 연기를 필요로 한다고 생각해요. 감정 표현 같은게 거의 차단되고 오로지 한정된 채널로 연기해야 하니깐. 잘못하면 멍청한 표정만 짓다가 끝날수도 있는 역이였는데 모튼은 그 어느쪽에도 빠지지 않고 위태위태한 감정들을 잘 끄집어냈다고 봅니다.

폴: 모튼이 일반적으로 이쁜 여배우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컨트롤]에서는 제법 매력적입니다.) 그 독특한 마스크에서 풍겨저 나오는 굳건한 방벽 같은 느낌이 있는데 감독이 이걸 제대로 써먹고 있더라고요. 배우 얼굴만으로도 영화가 되는 케이스가 있는데 이 영화도 그 중 하나 아닐까 생각합니다.

큰: 라나 역의 캐슬린 맥더모트도 모튼을 잘 받쳐줬어요. 다만 일반적인 명연을 구경하기엔 미묘한 영화라 생각합니다. 감독이 워낙 인물 자체를 오브제처럼 정교한 미장센 속에서 다뤄서.


폴: 여튼 [모번 켈러]는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인 구석이 있었지만 지루한 구석도 보이는 그런 한 편이라 생각합니다. 이후 나온 [케빈에 대하여]를 생각하면 아직 모색/발전 단계 아니였나 그런 생각도 듭니다.

큰: 그래도 그 지루함 속에서도 번쩍하면서 황홀한 순간들이 있었다는 건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아요.

폴: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 보는 느낌이였어요. 느리고 숨막히는 분위기와 템포로 일관하지만 마지막까지 다 보고 나면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게.

큰: 여튼 여기까지 리뷰하시느라 수고하셨고, 다음엔 장르 영화나 한 번 해보죠.

폴: 네.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하세요.

0  Comments,   0  Trackbacks
케빈에 대하여 [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케빈에 대하여]의 원제는 We Need to Talk About Kevin이다. '우리는 케빈에 대해 이야기 해봐야 한다.' 라이오넬 슈라이버와 그녀가 쓴 소설을 각색한 린 램지 감독의 영화는 이 제목을 통해 케빈을 우리들의 주목 대상으로 놓는다. 그래서 그 주인공 케빈은 어떤 인물인가? 케빈은 여행가로 유명했던 에바의 아들이자, 고등학교에서 학살극을 펼쳐 소년범이 된 인물이다.

이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케빈에 대하여]는 [엘리펀트]나 [볼링 포 콜롬바인], [인 블룸]처럼 콜롬바인 학교의 비극에서 비롯된 학교 학살극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케빈에 대하여]는 저들과 정 반대로 나간다. 학살극이 있었던 그 순간, 학살범과 피해자들의 모호하고도 복잡한 심리와 행동들을 엮은 [엘리펀트]나, 단도직입적으로 총기 소유 문제로 들어가는 [볼링 포 콜롬바인], 그리고 피해자의 심리에 집중하는 [인 블룸]과 달리 [케빈에 대하여]는 가해자의 가족-정확히는 엄마-이 중심이다.

방금 케빈을 주목 대상으로 삼긴 했지만, 사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엄마인 에바다. 영화 역시 실제 사건의 진상에 대한 떡밥을 던지면서 그 사건 이전과 이후의 에바의 삶을 교차해서 다루고 있다. 영화가 보여주는 '그 이후' 에바의 삶은 지옥이기 그지없다. 집은 언제나 페인트 테러로 당해있고 길거리에서 뺨맞기 일쑤며 새로 얻은 직장에서는 흑심을 품은 동료에게 욕을 듣곤 한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생활 따윈 없다. 한마디로 에바는 자신의 자식이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대답을 얻지 못한채 매일매일 고통받으며 살아가야 하고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다면 '그 사건' 이전의 에바는 어땠나? 여행가라는 자유로운 직업으로 살던 에바는 어느날 애인과 충동적인 섹스로 원치 않은 임신-케빈-을 하게 된다. 그 충동적인 상황으로 에바는 어머니라는 역할을 '맡게' 된다. 영화가 가장 흥미로워지는 지점은 여기서부터다. 에바는 자유로운 삶에 익숙해져있지 책임을 지는 삶에 대해서는 익숙해 있지 않다. 단적으로 둘째 셀리아의 출산과 첫째 케빈의 출산 장면을 비교해보면 쉽게 알수 있다. 일그러진 병원의 스테인리스 이미지에 비친 출산 장면부터 시작해 휑하다 싶을정도로 흰색으로 도배된 병원에서 전신 샷으로 잡힌 출산후 에바의 표정은 그야말로 망연자실한 표정이고 케빈의 탄생에 대해서도 그리 기뻐하지 않는다. 오직 아버지만이 옆에서 귀여워할 뿐. 반대로 셀리아의 출산은 제법 가까운 컷에 찍혀 있으며 에바의 표정은 행복해보이는 표정이다.

이 간단한 장면의 차이를 통해 영화는 에바의 모성성이라는게 자연적으로 생기지 않았다고 말한다. 우리는 아이를 가지면 모성성과 부성성을 자동적으로 가진다고 생각하곤 한다. 하지만 영화의 이 장면은 그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그리고 그걸 받침하듯 얼마 안 있어 케빈의 대사가 이어진다. "익숙한거랑 좋아하는거랑은 달라. 엄만 그냥 나에게 익숙한거야." 이 대사는 영화의 중요한 메세지를 관통하고 있다. 에바는 모성성에 '익숙'해졌지 그것을 완벽하게 체화한게 아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아이마저 깨달을 정도다. 

이 뒤로 그 익숙함을 어떻게든 자신에게 안으려고 하면서도 예전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얻으려고 하는 에바와 그것을 방해하는 케빈의 대결이 이어진다. 케빈은 '자기만의 방'을 주장하는 엄마에게 맞서 페인트로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고, 일부러 '관리하기 귀찮은 아들' 행세를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들은 린 램지 감독의 인상적이고도 강렬한 시청각 공격으로 등장한다. 에바는 그런 과정에서 케빈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게 되고 그 틈을 점점 벌어지기 시작해 마지막의 비극을 만들어낸다. 사실 영화는 진상을 하나 더 숨기고 있으며 그것은 케빈의 행동을 추측할수 있는 단서를 만든다. 힌트를 더 주자면, 케빈의 행동들이 매우 자기과시적이고 엔터테이너스럽다는걸 주목하라. 그는 쇼맨십이 강한 아이다.

그렇다. [케빈에 대하여]는 사실 [모성에 대하여]로도 번역할 수 있는 것이다. 에바는 모성에 '익숙'해지려고 했지 완전히 '좋아'하는건 아니였다. 아이가 시끄럽게 우는걸 공사장 소음으로 뒤덮으려는 장면이나 에바가 불만을 토로하는 장면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에바는 케빈을 사랑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른다. 거기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겪는 피로함과 짜증스러움도 상당하고 표출된다. ("너가 태어나기 전에 엄마는 더 행복했다") 그런 마이너스 에너지는 점점 멈추지 않고 "포인트는 없어. 그게 포인트야."로 대표되는 케빈의 광기에 가중된다.-어찌보면 이 점에서 [케빈에 대하여]는 키오 시모쿠의 만화 [지옥프리]하고도 일맥상통할지 모른다. 갑작스러운 임신과 전혀 귀엽지 않은 아이가 안겨주는 육아의 고통을 통해 여자가 겪는 당황스러운 심리를 포착한다는 점에서 말이다.-그런 긴장감과 실패들은 결국 '그 사건'을 터트리면서 에바를 지옥으로 밀어넣는다. 에바는 나름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지옥에 빠진것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여성이 직접 겪는 심리와 불안들을 표현하면서 모성의 판타지를 해체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이 떄문에 개인적으로 나는 남자들도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남자들은 아무래도 이런 쪽에 판타지가 강할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을 통해 소설과 영화는 어머니도 한 사람의 여자이자 사람이며 모성은 자동적으로 생기는 것은 아니다, 라고 말한다. 이 메세지는 상당히 '여성'의 시선이 강하게 담겨져 있기도 한데 실제로 원작자 라이오넬 슈라이버와 린 램지 감독 모두 자신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기혼 여성이다. 특히 린 램지 쪽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 영화 개봉전에 가진 인터뷰로 기혼자로 아이를 가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했던 인터뷰가 있다. 

그렇지만 [케빈에 대하여]는 에바를 단죄하거나 케빈을 소위 말하는 단순한 싸패로 만들지 않는다. [케빈에 대하여]는 인간이 가진 한계가 만들어낸 비극과 그걸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한 어머니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화다. 작중에서 암시하듯이 에바는 나쁜 엄마는 아니다. 다만 그런 삶에 대해 익숙하지 않았고 두렵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랐을뿐. 그리고 그 두려움과 당혹감은 케빈의 돌출 행동으로 더욱 강해진다. 여자로써 자신과 어머니로써 자신을 양립하려는 시도는 자꾸 실패로 돌아가고 그 과정에서 에바가 느끼는 좌절감과 당혹감은 그대로 관객에게 전해진다. 에바는 그저 약한 인간이였을 뿐이다. 

영화의 전반적인 비전은 상당히 암울한 편이다. 에바의 삶은 한 두장면-피해자 아이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에바를 걱정해주는 장면-빼곤 수난과 모욕으로 점철되어있고, 더 나아질 기색도 없어보인다. 에바는 더 이상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수도 없고 앞으로 나아갈 구원도 없다. 그리고 케빈이 왜 그랬는지 평생 질문을 하며 살아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후반부부터 조금씩 빛을 보여준다. 에바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받고 있는 어머니의 손을 잡아주고 케빈의 옷을 입고 케빈의 방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에바는 자기가 뭘 했는지 전혀 모르고 혼란스러워하는 케빈을 안아준다. 

어찌보면 통속적, 이다 할수 있는 결말이지만 무척이나 먹먹하게 만드는 결말이기도 하다. 에바의 비극은 인간이 겪을수 있는 비극이다. 우리 역시 에바처럼 인간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종종 그 한계 때문에 끔찍한 비극을 저지르곤 한다. 그런 한계 때문에 비극의 수렁에 빠진 에바는 마침내 구원의 빛을 얻을수 있을까? 영화는 조용히 예.라고 말한다. 영화는 그것은 자신 스스로 찾아내는것이라 말한다. 마치 [헤비 레인]의 망가져버린 에단이나 [밀양]의 신애가 갖은 수난을 통해 마침내 스스로 사랑하는 법을 찾아냈듯이 말이다.

린 램지가 동원하는 연출들은 상당히 MTV 세대의 감각하고 닮아있다. (실제로도 긴 휴지 기간동안 영국 밴드 도브스의 뮤비를 찍은 경력이 있으니 틀린것도 아니다.) 강렬한 이미지들과 상징적인 미장센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미장센을 하나 꼽으라면 주변 가구들로 포위된 에바의 병원 장면이다.)들에 곁들어진 [데어 윌 비 블러드]로 무시무시한 실력을 발휘한 조니 그린우드의 기괴하게 비틀어진 음악과 음향효과들은 관객의 신경줄을 벅벅 긁는다. 긴장도로 따지자면 거의 데이빗 핀처의 [세븐] 수준이다. 그리고 짧은 인서트 컷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들과 직설적이고도 아이러니하게 쓰인 기성 삽입곡들은 케빈과 에바의 긴장관계과 인물들의 심리과 주제들을 포착해낸다. [쥐잡이]로 새로운 세대의 영국 감독으로 주목받았던 그녀는 9년동안의 공백을 설욕하듯이 완숙하고도 강렬한 연출을 선보인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재기작이라 할만하다.

물론 영화를 이끌어가는 틸다 스윈튼과 에즈라 밀러의 연기도 빼놓을수 없다. 스윈튼 특유의 중성적인 마스크로 퀭한 눈빛과 단정한 직장인 여성, 혼돈스러워하는 엄마를 오가며 복잡미묘한 불안함과 고통을 덤덤하지만 매끄럽게 다루는 솜씨는 놀랍다. 하지만 진짜 '발견'은 에즈라 밀러다. 그는 [데어 윌 비 블러드]의 폴 다노가 그렇듯이 날이 선 광기를 무지막지하지만 정교하게 구성된 에너지로 표출하며 스윈튼과 팽팽한 긴장감을 형성한다. 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신인이다.


[케빈에 대하여]는 편한 영화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우리가 이야기를 나눠봐야 할 이야기들과 주제들을 다루고 있는 영화다. 린 램지 감독은 9년만에 차곡차곡 쌓아온 공력으로 라이오넬 슈라이버의 강렬한 소설을 바탕으로 굉장한 파워를 지닌 영화를 내놨고, 이는 우리가 계속 이야기 나눠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케빈에 대하여 이야기 해봐야 한다.

0  Comments,   0  Trackback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