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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비치 보이즈 (4)
자유의 이차선 [Two-Lane Blacktop] (1971)

2016/12/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

2017/01/26 - [Deeper Into Movie/리뷰] - 복수의 총성 [The Shooting] (1966)

[자유의 이차선]은 이전작처럼 길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길 위에 선 몬테 헬만의 인물들은 집으로 갈 생각이 없고, 어디론가 향해 가는 것으로 서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자유의 이차선]은 전작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먼저 시대가 현대로 변했고 주인공 자리엔 잭 니콜슨 대신 비치 보이즈의 데니스 윌슨과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가 대신하고 있다. (헬만이 사랑한 워렌 오츠는 계속 나온다.)

또한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길을 잃거나 도주해야 했던 이전작과 달리, [자유의 이차선]의 주인공들은 아예 목표 의식이 희박해져버렸다. 부조리한 상황 역시 훨씬 은밀하게 영화 속으로 스며들었다. 영화가 시작하면 운전수와 정비공은 드래그 레이스를 한다. 그러다가 경찰이 등장해 도망쳐 어디론가 달린다. 대체 얼마나 달렸나 싶을까 잠시 차를 멈춰세웠을때 한 여자가 몰래 차를 탄다. 하지만 운전수와 정비공은 여자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운전수와 정비공이 G.T.O를 만나면서 헬만은 그만의 기이한 실존주의를 슬슬 펼쳐가기 시작한다. 운전수와 정비공과 달리 나이가 많아보이는 G.T.O는 굉장히 수다스러운 캐릭터다. 그는 히치하이킹하는 사람들을 상대로 수다를 떨어대며 끊임없이 자신의 신분을 위장한다. 그는 여자에게 영영 떠돌수 없다고 말하며, 스피드에만 집중하는 주인공 일행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끊임없이 말을 바꾸며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는 주인공 콤비랑 별반 다르지 않은 캐릭터다. 그의 수다는 오로지 자신을 위한 것이다. 헬만은 G.T.O.와 주인공 일행을 대조시키면서 캐릭터들이 취하고 있는 삶의 태도에 대해 관객이 재고하도록 한다.

이들이 뉴욕을 향해 경주 내기를 걸면서 [자유의 이차선]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자유의 이차선]은 모든 요소들은 헬만 특유의 완만한 리듬에 배치한다. 먼저 등장하는 장소들은 비슷비슷하기 그지 없다. 저예산의 한계였을수도 있겠지만, 헬만이 선정한 공간들은 유달리 시간이 고여 흐르지 않는 곳들이다. 모텔, 휴게소, 농장, 주유소, 불법 드래그 레이싱, 한적한 시골길... 길과 길 사이엔 아무것도 없거나 무덤덤한 사건들 뿐이다. 가끔 등장하는 불법 드래그 레이싱 역시 그런 무덤덤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는 질주와 휴식 이 두 개의 행위를 오갈 뿐이며, 그 이상의 요소들은 집어넣지 않는다.

요컨데 [자유의 이차선]은 익명의 영화다. IMDB 가서 확인하면 알 수 있겠지만 이 영화에서 이름이 있는 캐릭터는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워렌 오츠가 맡은 G.T.O처럼 가명으로써 기능할 뿐이다. 그들에게 개성을 부여하는 것은 미국 머슬카 문화와 거기서 파생된 레이싱, 기계 부품들이며 상대방에 대한 관심 역시 이 연장선상에 있다. 그 점에서 이 영화는 자동차와 길 위의 열정을 그려냈던 [길 위에서] 같은 비트 기행 문학을 오마주/패러디한 영화라고도 할 수 있다. 잭 케루악이 [길 위에서]에서 그렸던 저항과 흥청망청한 열정은 밋밋한 미국 중서부 풍경 속에서 가라앉아버리고, 프리 섹스의 대안 공동체는 동승객에 대한 덤덤함으로 대체된다. 이 영화에는 섹스는 암시로 처리된다.

헬만은 대신 음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대중음악부터 시작해 자동차 음향이 스크린을 채우고, 음향은 조용한 인물들과 밋밋한 풍경을 대신해 리듬을 그려간다. 기이하게도 이 순간 헬만은 로베르 브레송과 닮아간다. 이 영화의 연기는 제한적이다. 비전문 배우인 제임스 테일러와 데니스 윌슨은 물론이고, 적극적으로 말하며 연기하는 워렌 오츠조차 많은 연기 언어를 쓰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브레송이 그랬듯이 공허함과 침묵의 공기를 잡아내는데 성공한다. 어둠에 묻혀있다가 점점 밝아오는 와중에 등장하는 인물의 클로즈업 쇼트들의 감흥은 쉽사리 잊기 힘들다.

대놓고 코믹한 영화는 아니지만 [자유의 이차선]은 은근 무성 코미디스러운 구석이 있는 영화다. 주인공 일행과 G.T.O가 벌이는 경주는 사실상 전 재산을 걸고 벌이는 도박이지만, 헬만은 이 경주를 아무렇지 않게 처리하기 때문에 은근히 가볍게 다루고 있다. 운전수랑 정비공은 그닥 잃어도 별 상관은 없어보이고, 여자는 애시당초 제 3자다. 심지어 이 경주에 안달복달해야할 G.T.O조차도 종종 사람들과 얘기하느라 정신 팔린 모습을 보인다. 캐리커처화된 히치하이킹 승객들도 그렇고 고작 앞섰다 싶으면 자동차가 고장나 뒤따라온 경쟁 상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연출하면서 헬만은 전지적 작가의 권능을 활용한 뒤 슬쩍 웃는다.

[자유의 이차선]이 작가로써 몬테 헬만을 파악할 수 있는 영화라고 하면, 은유적이었던 서부극과 달리 좀 더 본격적으로 196-70년대 미국 청년 문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일단 주역 둘 캐스팅이 1960년대 미국 록 음악에 중요한 뮤지션이다. 또한 이 영화에 빼곡히 등장하는 자동차에 대한 디테일들은 히피즘과 결합된 자동차 개조 문화인 커스텀 컬처를 반영하고 있다. 어느 정도 상업적인 고려도 있었겠지만, 헬만은 팝 문화의 아이콘과 당대 로드 무비 장르를 끌어들여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실존적인 침묵 (실제로 헬만은 연극 무대에 있을땐 [고도를 기다리며]를 올리기도 했다.)으로 가득찬 여정에 시대상을 반영하려고 한다. 그들이 서부에서 시작해 뉴욕으로 가는 이유도 헐리우드에 대한 환멸과 뉴욕의 현실을 얘기하고 싶어했던 당시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한편 여성 캐릭터의 활용도 눈에 띈다. 다른 주인공들처럼 이름이 없는 이 여성 캐릭터는 [바람 속의 질주]와 [복수의 총성]에서 밀리 퍼킨스와 함께 발전시킨 도발적인 여성 캐릭터 활용과 맥이 닿아있다. 이 여자는 무심하게 남자들의 경주를 지켜보며 관계를 가지고 차를 바꿔탄다. 그녀는 애초에 어느 남자에게도 종속되지 않는 캐릭터며, 자기 흥미와 욕망에 따라 여정을 함께 한다. 마지막에 이 여자가 떠나는 것으로 경주가 마무리되는 것도 흥미롭다. 여자는 마치 자동차가 질렸다듯이 휴게소에서 만난 바이크를 탄 남자랑 같이 떠나버리고 두 남자들의 경주는 흐지부지된다. 

G.T.O.는 여느때처럼 다른 손님을 태우며 자신의 차가 방금 전에 있었던 두 남자와의 경주에서 땄다고 거짓말한다. 한편 운전수와 수리공은 드래그 레이싱을 하러 간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들은 뉴욕에 가지 않고, 서부로도 돌아가지 않는다. 그저 그 사이의 황야를 방황할 뿐이다. 몬테 헬만은 196-70년대 미국 도로를 달린다는 것, 나아가 청년으로써 살아간다는 것은 무덤덤한 황야를 떠돌아 다니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방황이 마냥 무기력한건 아니라고 헬만은 생각한다. 영화의 마지막은 드래그 레이싱이 시작하기 전 불타오르는 필름이다. 이 불타오르는 필름이 [바람 속 질주] 마지막에 등장하는 질주하는 말과 주인공의 쇼트에서 확장된 건 명백하다. 헬만에게 196-70년대 미국 청년들의 삶은 과묵한 불꽃처럼 다가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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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each Boys - I Get Around

비치 보이즈: 나의 계절이 돌아왔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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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nnis Wilson - [Pacific Ocean Blue] (1977)

비치 보이즈의 멤버였던 데니스 윌슨의 처음이자 마지막 솔로 앨범 [Pacific Ocean Blue]는 펑크의 해에 태어난 앨범이였지만 펑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앨범이다. 오히려 펑크가 파괴하고 싶어했던 모든 것이 담겨있었다고 할까. 하지만 동시에 [Pacific Ocean Blue]는 그 파괴하고 싶어했던 것에 대한 환멸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모순되어있고 자기분열적인 걸작인것이다.

이 앨범은 구조상으로 보면 비치 보이즈가 기틀을 잡은 웨스트코스트 팝스의 구조에 충실하다. 데니스는 가스펠 합창단, 신시사이저, 혼섹션, 소리 콜라주 등 풍윤한 소리들로 덧대어 장중하면서도 복잡한 팝을 만들어낸다. 야심만만하게 열어제치는 'River Song'은 앨범의 가치를 증명하기 충분한 멋진 곡이다. 하지만 이 앨범엔 비치 보이즈나 그 동료들이 가지고 있던 긍정적이고 풍요로운 감수성은 찾아볼수 없다. 블루스의 거칠고 끈적한 질감을 재현하는 데니스 윌슨의 목소리는 고통스럽기 그지 없고, 'Moonshine' 같은 곡은 처연하고 고요하다. 심지어 보사노바를 시도한 'You and I'에도 조용한 멜랑콜리로 담겨져있다. 감수성으로만 따지자면 이 앨범은 오히려 데릭 앤 도미노스의 [Layla & Other Assorted Love Songs]나 이글스의 [Hotel Califonia] 같은 앨범에 가깝다.

그럴수 밖에 없을것이다.  로큰롤에 열광했던 베이비 부머 세대들도 30대가 접어들어가면서 세파에 찌들어가는 기성 세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로큰롤은 더 이상 신선한 '그 무언가'가 아니였다. 오히려 로큰롤은 신격화가 이뤄지고 그 신격화엔 마약이 뒤따랐다. 60년대에 꿈꿨던 이상향은 점점 멀어지고 68혁명이 낳은 자유는 뜻모를 나태와 방종로 변했다. 사람들은 자기 속으로 도피했다. 게다가 [Pet Sounds]와 [Smiles]가 엎어진 이후 비치 보이즈는 비틀즈에 비해 그리 빛나지 못한 편이였다. 업적이 떨어진다 그런건 아니지만 팀내 상황은 좋지 않았다. 데니스는 이 앨범 속에서 술과 약물, 향략에 절어있는 자신을 돌아보고 절절히 토해낸다. 

한마디로 이 앨범은 로큰롤이 원래의 소박함이 사라지고 화려한 금박과 아우라가 덧입혀졌던 시절에 나온 아름다운 고통의 초상이다. 자기모순적이면서도 아름답다. 데니스는 그 자괴적인 순간에 자신이 느꼈던 솔직한 감정들을 풍요로운 웨스트코스트 팝스로 역설적으로 잡아냈다. 하지만 이글즈가 호텔 캘리포니아 이후로 별다른 빛을 보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듯이, 데니스 역시 비슷한, 아니 더 심한 자기파멸의 길을 걸었다. 그는 차기작을 준비하던 도중 익사했다. 그의 죽음 이후 영국과 미국에서 펑크의 시대가 도래했지만 이 앨범은 살아남아 '풍요로 잡아낸 절망의 풍경'이라는 독특한 미학적 가치를 획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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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an Wilson - [Smile] (2004)

이런 스마일이라면 유료라도 좋습니다

예정된 기간을 한창 넘어서도 발매가 되지 않는 물건들을 사람들은 베이퍼웨어라 부릅니다. 베이퍼웨어의 끝은 굉장히 극단적인데, 포티쉐드의 [Third]나 황보령의 [Shines in the Dark]처럼 왕대박이 터지거나 듀크 뉴켐 포에버처럼 막장으로 끝나버리던가 둘 중 하나로 결판납니다. 문제는 전자의 확률은 극히 낮다는거죠.

비치 보이즈의 음악적 두뇌였던 브라이언 윌슨의 [Smile]도 그 악명 높은 베이퍼웨어 중 하나였습니다. 무려 37년이나 걸렸으니깐 이쯤되면 듀크 뉴켐 포에버조차 넙죽 엎드리고 절할만한 경지입니다. (허나 성 가족 대성당나 대한민국의 통일에 비하면...) 원래 1966년의 걸작 [Pet Sounds] 차기작으로 기획됬던 이 작품은 엄청난 스트레스로 머리가 휙 돌아버린 브라이언 윌슨이 스튜디오 불 지르고 동료들하고 싸우고 잠적해버리는 바람에, 원래 구상은 영원히 묻혀버렸습니다. [Smiley Smile]라는 앨범이 대타로 나왔지만 그리 만족스럽지 않았나봅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슬슬 이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더니 기어이 2003년 시동이 걸려 2004년 나오고 말았습니다. 비치 보이즈라는 이름 대신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요. (이 때문에 음악계 최고 베이퍼웨어는 건즈 앤 로지스로 넘겨졌고, 지금은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이 가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럼 이 앨범은 왕대박인가 아니면 막장인가? 물론 전자입니다. 이 앨범은 40년전, 비틀즈의 후추 상사에게 밀린 그 한을 풀려는듯이 황금비를 이루고 있는 기가 막힌 팝 멜로디와 기이한 음향 효과로 청자를 앨범 속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전반적으로 음향 작법 노선은 [Pet Sounds]하고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60년대와 2000년대 사이에 일어났던 엄청난 음향 기술의 성과를 흡수하려는듯, 소리의 층이 꽤 높아진데다 대담해졌습니다. 아카펠라, 보컬 하모니, 하프시코드, 하와이 풍부터 시작해 다양한 스타일을 섭렵하는 기타, 신시사이저, 현악기, 관악기... 심지어 브라이언 윌슨 슨샘은 전자 드릴까지 동원합니다! 이 때문에 이 앨범의 소리들은 굉장히 풍성합니다. [Pet Sounds]조차 검소해 보일 정도입니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이라면 역시 노래입니다. 여러분 [Pet Sounds]의 매력이 뭔지 기억하십니까? 바로 브라이언 윌슨의 탁월한 송라이팅입니다. 첫 구상때도 참여한 반 다이크 팍스Van Dyke Parks와 공동 작업한 앨범의 노래들은 정말로 감동적입니다. 'Heroes And Villains' 같이 떼창을 유도하게 하는 흥겨운 곡부터 'Cabin Essence'나 'Wonderful'처럼 덧없는 슬픔과 상념 그리고 신비함을 안겨주는 곡, 'Mrs. O'Leary's Cow'같은 악몽같은 사이키델릭 곡까지 브라이언 윌슨은 다양한 곡들을 다루지만, 거의 황홀할 정도의 일관성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가히 다시 태어난 미니 오페라입니다. 가사 역시 1급이라고 하는데 이 쪽은 현지인이 아니여서 포기했습니다.

다만 시대가 지나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윌슨 할배의 보컬입니다. 물론 팔세토도 능숙하게 소화해내시고 하모니도 기가 막히게 넣으시지만 들으면서 펫 사운드와 스마일 사이에 엄청나게 긴 시간이 흘렀구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비치 보이즈 시절의 혈기방성함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세월의 무게와 인생의 상처가 느껴지는 목소리라 할까요. 하지만 이 목소리 때문에 'Cabin Essence' 같은 곡이 더욱 완전해진걸지도 모르죠.

브라이언 윌슨의 [Smile]은 2000년대 가장 감동스러운 재발굴의 현장 중 하나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바시티 버넌.) 게다가 이 재발굴의 현장에서 나온 유산들은 정말 대단합니다. 애니멀 콜렉티브과 그리즐리 베어는 이에 비하면 밥상에 겨우 반찬만 차지했을 뿐입니다. (싫어하는거 아님. 오히려 반대입니다.) 여튼 여러분, 고전적 팝의 유산들이 깨어나 새 옷을 입고 신명나는 굿판을 벌이는 이 자리를 포기하고 싶습니까? 전 아닙니다.

P.S. 2000년대의 음반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건... 제가 미련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 이젠 슬슬 준비해야죠. 정 안 되면 1~2월 쯤에 따로 특집을 준비하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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