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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영화리뷰 (148)
실물보다 큰 [Bigger than Life] (1956)


니콜라스 레이의 [실물보다 큰]은 코티즌 중독과 부작용으로 고생했던 어느 초등학교 교사의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영화다. 여튼 실화로만 보면 [실물보다 큰]은 휴먼 드라마가 되야할 영화다. 불치병와 정신병과 싸우던 아빠 끝내 일어서다! 이런 식으로. 하지만 결과물로 나온 영화는 실화 근처도 가지 않는다. 외려 실화에서 멀리 떨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다. 


사실 실화에 대해서는 딱 피상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자세한 비교는 잘 못하겠지만 현실에서는 절대로 영화가 들려주는 대로 일이 전개되지 않았을거라는 확신이 있다. 한마디로 이 영화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터무니없게 극적이고 화려하게 과장되어 있다. 딱 멜로드라마 (단순한 남녀간의 연애 드라마가 아니라, 감정이나 사건 그런게 과잉되어 표현되는 드라마 장르) 스타일으로 말이다. 아무리 에드가 인정받는 교사인데다 1950년대라고 백번 양보하더라도 저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면 벌써 짤렸을것이다. 한마디로 [실물보다 큰]은 사실적인 전개하고는 거리가 멀다.


그게 단점이냐고 묻는다면 아니라고 대답하겠다. 사실주의만이 유일한 미학적인 답이 아니지 않은가. 더글라스 서크의 멜로드라마가 그랬듯이 [실물보다 큰]은 화려하고 과장된 외양 뒤에 숨어있는 움틀대는 발톱이 중요한 영화다. 근데 솔직히 내 의견을 말하자면, 사실 [실물보다 큰]은 멜로 드라마를 넘어섰다. 이건 공포물이다.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화려한 꽃다발 속에 발톱을 숨겼던 더글라스 서크와 달리 니콜라스 레이는 그냥 그 발톱을 화려한 스크린 앞에 꺼내버린다.


그 결과 영화는 굉장해진다. 어떻게 굉장해지는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선 에드를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분명히 해둬야 할 점이 있는데 코티즌이 멀쩡한 에드를 미치게 만든게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는 초반부를 에드의 일상을 보여주는 것에 할애해 분명하게 에드의 심리와 사상은 미치기 전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노라고 못박아두고 있다. 얼핏보면 에드는 좋은 선생님이자 가장으로 보인다. 세계지도와 나라/도시 이름이 온 집에 붙어 있는 미장센이라던가 (전형적인 미국 마초의 상징인) 미식축구공은 어떠한가. 이를 통해 에드는 관객들에게 '나는 에이버리 가라는 작은 '세계'의 지배자이며, 한땐 훌륭한 미식 축구 선수였던 멋진 아버지이자 싸나이에요. 어때요. 부럽지 않아요?'라고 관객들에게 말한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그는 단조로운 미국 교외를 벗어나지 못한채 몰래 택시 운전수로 벌어먹으며 살며. 그런 에드의 이중성 폭로는 '사실은 유명 선수는커녕 보결 선수인데다 미식 축구공엔 바람 빠져 있었음ㅋ'에서 결정타를 날린다. (덧붙여 에드가 체육 선생인 친구 윌리에 비해 남성성으로도 딸린다는 점도 영화 내내 암시되고 있다. 이런 묘사는 에드의 의처증과 윌리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에드는 그런 현실을 절대 인정 못하고 가족들에게 거짓말만 한다. 감독과 각본가들이 에드의 불안한 허세를 이죽거리는게 스크린 밖에서도 들릴 정도다. 이쯤되면 작정했다고 말할 수 밖에.


이렇게 가려져 있었던 위장은 병세와 함께 폭로된다. 살날은 얼마 남지 않았고 가장의 위신은 추락한데다 돈은 부족하다. 막다른 골목길에 몰린 에드는 어떤 방법이든 선택할 기세고 때마침 자신에게 내려온 동앗줄 코티즌을 맹신하게 된다. 이 점에서 [실물보다 큰]의 에드는 비슷하게 허세를 부리다 아무런 탈출구도 없이 무력하게 무너졌던 [도쿄 소나타]의 류헤이와는 완벽하게 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렇게 자신감을 얻은 에드는 자신의 가부장적인 위신과 철학을 무시하는 사람들에게 '복수'하고 '정화'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에드의 광기를 뒷받침해주는 철학이 구약이라는 점에서 에드는 [사냥꾼의 밤]의 해리하고도 비교해볼만하다.) 그리고 그렇게 에드는 서서히 미쳐버린 폭군이자 잔혹한 구약의 신이 되어가며 주변인들을 압박한다. 무척이나 화련한 볼거리이지만 동시에 우리는 에드가 왜 그러는지 이해하게 된다. 에드의 광기는 그렇게 먼 곳에 있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를 표현하는 제임슨 메이슨의 연기는 하나의 오페라 수준이다. 영화는 그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으며 그에 보답하듯이 메이슨은 예의바른 신사이자 "좋은" 선생님(이지만 속내는 전전긍긍하는)였던 초반부를 지나 점점 자신감에 가득차고 끝내 미쳐버리는 과정을 훌륭하게 소화해낸다. 물론 그런 거대한 시한 폭탄인 메이슨을 받쳐주는 조역들 연기 또한 훌륭하다. 특히 바바라 러쉬는 에드의 아내 루가 겪는 난처한 처지들을 섬세하지만 강렬한 필치로 묘사해내면서 메이슨의 좋은 상대가 되고 있다.


니콜라스 레이가 동원한 2.35:1 시네마스코프 화면비는 그런 배우들을 위해 거대하고 화려한 무대를 세팅해주고 있으며 테크니컬러를 동원한 색감은 더글라스 서크 영화스럽게 공격적으로 무대를 채색한다. 조명 설계도 필름 느와르나 표현주의 영화들 수준으로 극단적이다. 리치가 에드에게 보충수업 받는 장면에 등장하는 에드의 그림자를 보아라. 이 장면에서 에드의 그림자는 루와 리치를 잡아먹어버리고 있다. 이런 과장되고 쏘아대는 연출는 마지막 에드가 리치를 죽이려는 장면에서 정점을 이룬다. 신경질적으로 쏟아져 나오는 극중 텔레비전의 음악과 비틀비틀거리는 카메라와 조명, 그리고 거기에 오버랩되는 기괴한 붉은 영상들은 무척이나 사이키델릭하다. 너무 앞서 나간거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실물보다 큰]은 인상적인 비주얼과 연출로 1950년대 미국 사회 분위기를 포착함과 동시에 사회가 억지로 만든 기준에 적응하기 위해 발악하는 개인의 무서움을 낱낱이 까발리는 걸작 공포 영화다. 그렇기에 영화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지만 정말이지 아이러니한데다 암담하기 그지없다. 문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고 절대로 되지 않을것이라는 걸 아주 명백하게 못 박은 뒤 그냥 냅다 회복됬으니 경사났네 경사났어 모드로 결론을 내버린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고 할까. 정말이지 소름끼치게 냉소적이고 종말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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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냥꾼의 밤 [The Night of the Hunter] (1955)



배우인 찰스 로튼의 유일한 감독작 [사냥꾼의 밤]은 뭐라 말할수 없이 기이한 영화다. 데이비스 그럽이 실화를 바탕으로 (해리 파워스라는 살인마에게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쓴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줄거리 뼈대는 그렇게까지 특이하거나 독창적인 내용은 아니다. 여기 해리 파웰이라는 범죄자가 있다. 그는 감방 동기가 가지고 있던 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돈이 탐난 그는 곧 전도사 행세를 하며 감방 동기의 미망인 가족에게 접근한다. 미망인과 주변 사람들은 거기에 홀라당 속아넘아가지만 미망인의 아들 존은 거기에 속지 않고 곧 긴장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하지만 영화는 그 뼈대를 괴상하게 비틀어버린다. 우선 로버트 미첨란 훌륭한 배우를 통해 육화된 해리라는 캐릭터는 정말이지 인상적인 악역이다. 그는 단순히 흔해빠진 연쇄살인마가 아니다. 일단 그 손가락 마디에 새겨진 사랑(LOVE)과 증오(HATE)라는 문신! 그것만으로도 일단 점수를 먹고 들어간다. 그 손가락 문신이 주먹을 쥐어야지 제대로 드러나게 된다는것도 재미있다. 거기다 그 문신을 통해 들려주는 사랑과 증오의 대결에 관한 창세기적인 우화는 또 어떤가? 그 이야기를 들려주는 미첨의 연기는 우스꽝스럽지만 동시에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면모가 있다. 이 영화에서 미첨은 파충류같이 느물느물 번들번들거리며 미묘한 눈빛과 목소리 변화로 상대를 아무렇지 않게 압박하는 멋진 악역 연기를 보여준다.


물론 그가 돈을 얻기 위해 전도사를 '연기'하고 있다는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 '연기'엔 나름대로 신념이 담겨져 있다. 한 예로 신혼여행에서 잠자리를 원하는 윌라를 부정한 여인이라고 싸늘한 조소를 퍼부으며 동시에 윌라를 복종시키는 해리의 달변은 완벽히 전도사의 설교하고 일치한다. 하지만 그는 전도사와 달리 사랑을 믿지 않는다. (이건 조금 궤변일지도 모르겠지만) 즉 그는 돈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증오'하는 '아이들'을 이길수 있다고 믿는다. 광신도와 잔학한 살인마, 신사가 섞여 만들어진 '신의 대리인을 가장한 괴물' 해리는 분명 흥미진진한 구석이 있다.


그런 괴물과 대적하는게 무력한 아이들인 존과 펄이라는게 더욱 흥미롭게 만든다. 그들은 어머니를 잃은 후 아버지라 자칭하는 해리를 피해 조각배를 타고 도망친다. [사냥꾼의 밤]을 지배하는 기독교적인 미의식은 여기서 다시 드러난다. 세상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신의 사역자를 자처하는 악마에게 쫓기는 어린양들의 조각배에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배를 실려 이집트로 떠내려온 구약의 모세와 잔혹한 헤롯의 학살을 피해 도망치는 신약의 예수의 이미지가 하나로 합해진다. 영화는 거기에 해리를 거부하던 존이 마지막에 울먹이며 아버지라 부르는 장면이라던가 루비와 해리의 롤리타-험버트적인 관계("그는 날 여자로 대해줬어요!")를 얹어 음험한 기운을 불어넣는다. 부모가 부재한 아이들은 어른들의 성과 폭력 앞에서 두려워하면서도 그걸 갈구한다.


그렇다고해서 [사냥꾼의 밤]이 어떤 거창한 걸 말하는 영화는 아니다. 그런 접근은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을 파악하지 못하는 접근이다. 외려 [사냥꾼의 밤]는 어떤 주제나 발언과 관계없이 어린 아이들이 겪는 잔혹하고도 아름다운 모험을 영화란 매체가 가지고 있는 마술로 풀어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영화가 도입하는 마술은 바로 빛과 그림자다. 독일 표현주의의 유행이 끝난지 제법 뒤에 나온 영화이지만, 이 영화의 조명 설계는 탁월하다. 그림 동화에 등장하는 마귀의 집 같은 분위기마저 풍기는 하퍼네 집과 지하실, 아이들이 농장 헛간으로 숨어드는 장면, 최후의 습격 장면들은 그림자와 빛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활약하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해리의 재판이 끝난 후 성난 군중들이 몰려드는 장면에서 프리츠 랑의 [M]의 영향이 느껴졌다.) 


[사냥꾼의 밤]은 그 비이성적인 요소 때문에 때론 허헛하고 실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동시에 강한 서스펜스(강가에서 오누이와 해리가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의 리듬감은 탁월하다.) 다른 영화와 차별되는 독자적인 미적 세계를 구축하고 있으며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기괴하지만 부인할수 없는 매력이 배어나오는 잔혹동화 느와르다. 어떤 사람들은 "애가 나오는데 어떻게 느와르냐"며 느와르라는 말에 이의를 달지도 모른다. 하지만 팜므파탈과 필립 말로와 뒷골목 대신 애들과 미시시피 강이 나온다고 해서 느와르가 되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는가. 이 영화는 인간의 어두운 욕망과 잔혹한 면들을 빛과 그림자의 마법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느와르의 자격요건을 훌륭하게 갖추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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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 [Pieta] (2012)


김기덕 감독의 영화 [피에타]는 제목이 원래 가지고 있던 특정한 이미지에서 출발하는 영화다. 이탈리아어로 '자비를 베푸소서'를 뜻하는 '피에타'는 예수의 죽음을 슬퍼하는 막달라 마리아의 이미지를 품고 있는 예술적 주제다. 남을 위해 대신 자신을 희생한 '아들' 예수의 숭고함과 그걸 알고 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슬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어머니' 막달라 마리아의 비극적인 대비는 여러모로 예술가의 영감을 자극해왔다.


하지만 영화 [피에타]에는 얼핏 보면 그런 숭고함하고는 거리가 멀다. 사채업을 하면서 주인공 '아들' 이강도의 삶은 그야말로 암담하고 폭력이적이다. 그는 숭고함은 커녕 밑바닥에 끝없이 자신을 구르는 남자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 부분을 할애해서 보여준다. 이런 삶도 어머니를 자청하는 미선의 (이름이 있지만 끝내 불려지지 않는다.) 등장으로 달라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미선은 한가지 비밀을 가지고 있었다.


[피에타]는 뒤늦은 속죄극이라 할만한 영화다. 강도는 악함에 전염되어 죄책감도 모르는 '짐승새끼'이다. 김기덕은 그의 짐승성을 그가 채무자들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날것을 그대로 잡아먹는 장면들로 체화해낸다. 이런 짐승성은 미선에게 자신의 살덩어리를 먹이는 장면에서 정점을 찍는다. 동시에 강도는 어른이 되지 못한 아이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첫장면의 자위 시퀀스와 미선 겁탈 시퀀스, 후반부에 수음 시퀀스는 이 사람이 제대로 된 여자 관계를 맺지 못했다는걸 암시한다. 그렇게 등장한 미선이 엄마 행세를 하면서 강도에게 들어서는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미선은 한마디로 강도에게 이상화된 '어머니'다. 미선은 강도에게 날것 대신 음식을 해주고 밖으로 나가 밥을 사먹인다. 그리고 나무를 심어달라고 한다. 처음엔 이상한 여자라고 거부하던 강도는 미선의 막무가내적인 애정에 점점 사람이 바뀐다. 무척이나 전통적인 남성 중심의 모성 찬양 신화처럼 보이지만 이런 애정엔 항상 위태위태한 구석이 있다는걸 강도는 알고 있었다. ("불안해. 갑자기 사라질것 같아서.") 그 말 그대로 미선은 갑자기 사라진다. 강도는 미선을 찾아나서는데 여기서 영화는 잠시 템포를 늦추고 미선의 진실을 관객에게 알려준다. 예측가능한 수준이긴 하지만 미선의 사연은 제법 흥미로운 해석틀을 만든다. 그녀의 행동들과 생각의 기반은 전통적인 모성 찬양 신화이라 하기엔 너무나 극단적이다. 되려 무섭다. 이 점에서 이 영화는 [마더]하고도 흥미로운 연결고리를 만든다.


그 와중에서 김기덕은 진실을 모르는 강도를 자신이 폭력을 행사한 채무자들과 대면시킨다. 채무자들은 욕을 쏟아붓지만 강도는 그 욕을 묵묵히 듣는다. 여기서 [피에타]는 속죄극이라는 자신의 본색을 드러낸다. 강도는 어머니라는 존재를 통해 속죄의 길을 찾아냈지만 이미 그는 그 죄의 늪에 깊숙히 빠져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헤어나올수 없었다. 따라서 그런 강도가 맞는 결말은 파국이다. 김기덕은 마지막 장면을 통해 평생을 짐승으로밖에 살아오는 법을 몰랐던 악인이 용서받을수 있는 길은 예수처럼 자기 희생일지도 모른다. 라고 질문을 던진다. 예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골고다 언덕을 올랐지만, 강도는 자신의 죄를 위해 골고다의 언덕에 올랐다는게 다르달까.


[피에타]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이기 때문에 테크닉이 깔끔하지는 않다. 주지하다시피 김기덕은 기본적으로 영화 학교 같은데서 체계적으로 영화를 공부한 사람이 아니며 스스로 독학하며 영화를 만든 사람이다. 이 때문에 장면장면을 보면 거칠거칠한 부분들이 눈에 띈다. (특히 카메라 테크닉. 기본적으로 편집도 안정적이지 않다.) 하지만 이 깔끔하지 않은 테크닉은 영화의 기묘한 매력을 만드는데 큰 일조를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장면을 꼽으라면 동물들과 관련된 장면이다. 상징들이 투박하지만 매력적이다. 그리고 기묘하게 뒤틀어진 로케이션들 역시 앙상하고 삭막한 분위기를 확연하게 잘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대사의 톤은 조금 심각하다. [피에타]는 청계천을 배경으로 기계상들과 깡패라는 한국 하층민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이런 배경이라면 대사가 가지고 있는 현실감 같은게 상당히 중요하다.  유감스럽게도 [피에타]의 대사는 위태위태하게 흔들린다. 전반적으로 캐릭터들이나 배경하고 톤이 잘 맞지 않거나 종종 거슬리게 심리 설명조로 변하는 부분이 있으며, 장면이나 인물들 심리에 걸맞지 않는 대사가 갑자기 튀어나오곤 한다. (특히 자살하려는 노인을 막는 강도의 "죽으면 보험 처리가 복잡해집니다" 대사는 이전 장면들의 잔인한 모습과 다르게 너무 급작스러워서 캐릭터 붕괴마저 느껴질 정도였다.) 이 때문에 영화는 배경이나 소재와 어울리지 않게 인공성에 빠지며 (비슷한 소재를 다룬 양익준 감독의 [똥파리]와 비교해보면 알수 있을것이다.) 응당 가져야 할 정서적 힘도 잃곤 한다. 특히 이 때문에 피해를 많이 본 배우는 바로 주연 이정진인데, 전반적으로 대사 때문에 캐릭터가 풀파워를 발휘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이런건 저예산과 관계없이 조금만 세심한 터치가 있었다면 훨씬 나아졌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그런 점에도 불구하고 [피에타]는 울컥하게 하는 힘이 있다. 먼저 조민수는 그 아쉬운 대사들 속에서도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붓으며 명연기를 펼친다. 조민수는 기본적으로 자신을 적게 드러내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위엄을 풍기며 관객을 압도할줄 안다. 특히 사건의 진상이 드러날때 냉장고를 보며 그 기묘한 냉정함을 흐트러트리며 펑펑 우는 장면은 울컥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냉정하게 따지면 민폐지만) 끔찍하지만 기묘한 평안함은 분명 독특한 미를 가지고 있다.


[피에타]는 걸작, 이라고 하기엔 조금 약할지도 모른다. 일단 연기를 다루는 테크닉이 종종 거친 것을 넘어서 위태로운 수준이라는게 못내 마음에 걸린다. 차라리 전작들처럼 말을 극단적으로 줄여버렸다면....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조민수의 연기와 앙상한 미장센에 힘입어 모성 신화를 뒤틀어 만들어낸 이 기묘한 속죄극은 쉽게 무시할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마지막 결말은 진짜 좋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수작이라고 할만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물론 모성에 대한 영화의 접근은 여러 분분한 해석을 만들기엔 충분하지만....


P.S. 김기덕이 의도한것은 100% 아니고, 어쩔수 없긴 하지만 영화에 담긴 서울 청계천의 암담한 미장센은 여러모로 서구 관객들의 별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니깐 '동양 소국의 암울하고도 이국적인 풍경' 이런 식으로 오리엔탈리즘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고 할까. 사실 이건 비단 김기덕만의 문제도 아니긴 하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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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고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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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폭력의 역사] 리뷰 코멘트에 대한 일종의 답변격 되는 글입니다.)

제 리뷰에 대해 비판적인 코멘트가 하나 달렸습니다. 대략 요지는 글이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굉장히 난삽하다는 이야기인데....

안 그래도 이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솔직히 요즘 리뷰를 쓰면 쓸수록 명쾌해지기는 커녕 점점 핵심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 밖에 안 들더군요. 비판의 대상이 된 [폭력의 역사] 리뷰 역시 쓰면서 '내가 뭘 이야기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건 제 잘못입니다. 솔직히 그동안 제가 영화 리뷰 쓴 게 나름 호평을 얻어서 좀 자만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직 전 소인에 불과한가 봅니다. 그런 칭찬을 들으면 제 자신을 채찍질을 해야 했는데, 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좀 더 절차탁마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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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치 드렁크 러브

1.

2002년 한국은 노장 임권택 감독의 영화 [취화선]이 칸에서 감독상을 수상한 것에 대해 매우 들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상식장, 임권택 옆에는 젊은 감독이 함께 서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폴 토마스 앤더슨입니다. 그리고 상을 받은 작품이 바로 이 영화입니다.


2.

영화는 매우 이상하게 시작합니다. 아침, 창고처럼 생긴 회사에서 푸른 색의 옷을 입은 남자가 어디에다 마구 전화를 겁니다. 마일리지에 대해서 마구 질문하던 남자는 쉴려고 회사에서 나옵니다. 그때 차 사고가 나고 다음에 밴에서 사람들이 내려 풍금을 버리고 갑니다.

다음 왠 여자가 찾아와 자동차를 수리 할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남자는 허락하고 여자는 그에게 열쇠를 맞깁니다. 그다음 그는 풍금을 들고 들어옵니다.


지금까지 본 오프닝 중에서 가장 이상한 오프닝이였는데,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


3.

다음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푸른 정장의 남자는 베리(아담 샌들러)라는 중소기업 사장이였고, 그에게 차를 맏긴 여자는 레나(에밀리 왓슨)라는 여자이며 그를 오래전 부터 사랑해왔다고 고백합니다. 남자와 여자는 곧 사랑에 빠집니다. 하지만 베리에게는 성격 문제와 외로워서 전화를 건 폰 섹스 업체에게 협박을 받는 위기에 빠져 있습니다. 결국엔 모든 위기를 극복하고 그들은 평생동안 쓸수 있는 마일리지로(상당히 깸) 여행을 갑니다.


4.

보통 로맨틱 코미디들은 한결같은 스토리를 띄고 있습니다. 그게 한번이면 좋지 여러번이면 사람들은 매우 식상해 합니다.

[펀치 드렁크 러브]는 그런 문제를 한 방의 펀치로 날려 버립니다. 로맨틱 코미디의 구성을 따르는 듯 하다가 결국엔 그것에 벗어나는 이야기와 대사("당신 얼굴은 망치로 묵사발을 만들고 싶을 만큼 예뻐"가 보통 로맨틱 코미디에 나옵니까?)로 해결합니다. 저는 이런 식의 영화가 좋습니다. 음악도 매우 아름답고,중간중간에 나오는 색도 멋있습니다.

하와이 호텔 로비에서(한국판 포스터에 있는 그 장면) 키스 하는 장면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5.

단점이라면 후반부의 베리가 좀 더 세게 밀고 나갔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건 별로 개의치 않습니다. 어쨌든 아담 샌들러는 이 영화로 바보 같이 웃는 영화 말고도 다른 영화를 할수 있다는 걸 알려 줬으니깐요.


6.

결론을 말하자면 [펀치 드렁크 러브]는 매우 재미있고 유쾌한 영화입니다. 색다른 사랑에 대해 보고 싶다면 추천을 해드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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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어

내용

도쿄에서 연쇄살인이 일어납니다. 특이한 점은 피해자 목에는 X자가 그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범인들도 범행을 순순히 자백합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범인이 범행을 스스로 자백한다니... 이 사건을 의심한 다카베 형사,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스포일러가 수두룩 합니다.)


다카베가 지목한 범인은 바로 심리학을 공부하다가 사라진 대학생 마미야입니다. 하지만 마미야는 멍한 표정과 모호한 말로 다카베의 속을 긁어 놓습니다. 하지만 다카베는 마미야의 어두운 모습에 점점 끌리기 시작하는데..


마미야는 영화 내내 "당신은 누구야?","당신 이야기를 해달라"라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름,직장,가족관계를 말합니다. 하지만 마미야는 그게 아니라고, 진짜 당신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마음속에 꼭꼭 숨겨두어 놨던 어두운 내면을 드러나게 합니다. 결국엔... 누군가를 죽이거나 자살하게 되는 거죠.


결말 부분에서는 다카베와 마미야가 하나로 됬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카베가 마미야를 죽이고 전도사가 된거죠. 아내를 죽이고, 여종업원에게 살인을 시키는 장면. 정말 인간은 어쩔수 없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마지막 장면은 좀 자세히 지켜봐야 될듯 싶습니다. 후딱 지나가거든요.)


영화에 대한 느낌

구로사와 기요시 감독의 영화는 처음 볼때는 아무런 느낌이 없습니다. 불가해하다는 생각만 들뿐입니다. 그러나 하루하루가 지나갈수록 영화 속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배우,대사,행동,결말이 떠오릅니다. 불안도 함께 찾아옵니다. 그리고 다시 기요시 영화를 찾아서 봅니다. 반복이죠.


영화는 정직하게 말하면 밋밋합니다. 아무런 시각적 충격도 없고, 사건들도 그저 그렇게 지나갑니다. 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서 살인을 벌이는 장면은 불가해하고 불안한 느낌이 듭니다. 경쾌한 피아노 반주와 함께 벌어지는 파출소 살인 장면과 공공화장실 살인 장면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습니다.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갑자기 총을 쏴 죽여버리는 것(총소리도 매우 거슬리게 들립니다.)이나 아무런 광기 없는 얼굴로 남자의 배를 가르는 여자를 보면서 섬뜩함을 느꼈습니다.


일반적인 영화에서 보는 스릴은 없지만, 다른 면으로 정말 무서운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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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로 [回路/Kairo]


1.
내가 컴퓨터라는 것을 처음 접한 것은 바로 4~5살 때였다. 당시 집에는 DOS가 깔린 486 컴퓨터가 있었다. 그런데 기억을 더듬어 보면 나는 컴퓨터를 두려워 했던 것 같다. 컴퓨터를 하는 것을 나는 문 뒤에 숨어서 보곤 했다. 인터넷이라는 것을 제대로 써본 것은 4년전 일이다. 그전에도 접해 봤지만, 그때는 접속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초고속 인터넷이라는 것을 만나고 난뒤에야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왜 인터넷을 하는가 라고 누군가 물어보면, 아마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어서 라고 나는 대답할 것이다. 솔직히 나는 친구관계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그렇지만 인터넷에서는 나의 성격이 그렇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하지만, 걱정도 있다.
-이런 관계들이 나중에 끊어지면 어쩌지?

나는 사람들 관계가 깨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 한다. 그런데, 인터넷 이라는 것은 언제든지 관계를 쉽게 맺고 끊을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아직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지만, 나중에 상처받고 끊어지면 어떻게 될까라는 생각을 하면 정말 아찔하다.

2.
'죽은 뒤에 나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본적 있다. 그 뒤에 나의 정신은 어디로 가버릴까(아 생각만 해도 힘들다.)라는 것에 도달 하면 정말 찝찝한 느낌이 든다. 죽은 뒤에는 영원히 홀로 일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다 살아 있는데, 아무도 죽은 내곁에 있어주지 못한다라는 아찔한 깨달음.

3.
[회로]는 죽음과 고독, 미지에 대한 공포다. 세계는 멸망하고 주인공들은 고독과 유령의 유혹과 맞서 싸워야 한다.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내가 컴퓨터를 두려워 했던것과, 죽음에 대한 상념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죽음은 영원한 고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나마 나에게 위안을 주는 것은 바로 나를 기억해주는 이가 있다는 점이다.

아마 살아있는 동안에도 적용이 될지도 모르겠다.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공포는 앞으로 더욱더 커질 것이다. 사이버 스페이스는 더욱더 깊이 들어 갈수록 알수 없는 것이 더욱더 늘어나므로. 게다가 새로운 것이 또 등장할지 모르는 세계에 우리가 살고 있으므로.

*이외에 더 적고 싶은게 있었지만, 더 적으면 혼란스러워질까봐 적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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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용문객잔 [不見/Goodbye, Dragon Inn]

대중적이지 못한 영화를 보러 가면 편하게 볼수 있다. 아무도 부스럭 거리지 않고 떠들지 않는다. 다들 쥐 죽은듯이 영화에 집중한다. 극장 시설만 좋으면 발을 쭉 뻗고 영화를 볼수 있다.(광화문에 있는 시네큐브는 극장시설이 상당히 좋아서 편한 자세로 감상가능하다. 이렇게 적고 보니 광고문 같다.) 그러나 때로는 관객이 없는 참담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 [노 맨스 랜드]라는 영화를 볼때였다. 약간 늦게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글자 그대로. 나는 '적어도 20명 들어오겠지'라고 생각했지만 영화내내 들어온 관객수는 단 5명이였다.
사람들에게 인기를 많이 끈 영화를 보러 갈때는 완전히 다르다. 일단 들어올때부터 감각으로 느낄수 있다. 우선 사람들이 바글바글 하다. 그리고 떠드는 소리,팝콘 씹는 소리,쑥떡대는 소리가 들린다. 팝콘,콜라 냄새도 맡을수 있다. 영화가 끝나고 난 뒤에는 도대체 무엇을 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다.

이번에 본 [안녕, 용문객잔]은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것들에 관한 영화다. 문을 닫는 극장에는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비만 주룩주룩 내린다. 영화 용문객잔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던 무협물. 그러나 마지막 상영에는 영화처럼 변두리 인생들로 보이는 혼들이 쓸쓸히 배회하고, 매표소 직원과 영사기사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한다.  감독은 웃음을 연발하는 상황들을 집어넣지만, 그것은 지독한 쓸쓸함을 불러올 뿐이다. 마지막에 홀로 집에가는 매표소 직원을 보면서 이상한 기분까지 느꼈다.

용문객잔이 끝나고, 극장은 텅 비어 있다. 나는 그 장면을 보면서 큰 영화에 밀려 주목받지 못하는 그런 영화들을 생각했다. 그 느낌은 마치 유자차의 달콤함이 끝난뒤 씹는 유자씨의 씁쓸함이였다. 아마도 그런 느낌을 계속해서 느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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