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울버린 (5)
울버린, 혹은 [로건]을 위한 사적인 플레이리스트

2015/02/08 - [Go To Fly/만화] - 울버린 [Wolverine] (1981)

2015/07/20 - [Deeper Into Movie/리뷰] - 더 울버린 [The Wolverine] (2013)

2017/03/12 - [Deeper Into Movie/리뷰] - 로건 [Logan] (2017)

이 블로그 구독하시는 분이라면 알겠지만, 제가 울버린/로건을 좀 좋아합니다. 그래서 [로건] 개봉에 앞뒀을때 음반 사는게 아메리카나 뽕이 좀 쩔었습니다. 원래 포크나 컨트리, 스웜프 뮤직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로건] 개봉을 의식하기 시작하면서 이런 음악만 듣고 싶어지더라고요. 집에 컨트리 음반도 없었던 것도 부채의식에 한 몫하기도 했고 심지어 [로건] 개봉 직전에 [맥케이브와 밀러 부인]과 [내시빌]을 보는 바람에... 그러다보니 이 글은 로건을 생각하면서 자주 들었던 음악의 일부를 기록하는 글이 되었습니다.

쭉 보니 남성적이고, 컨트리나 포크 같은 스웜프 뮤직이나 약간 올드스쿨 장르의 곡들이 선정되었네요.


Johnny Cash - The Man Comes Around, Lumberjack, Bury Me Not on the Lone Prairie

역시 이 분을 빼놓을 수 없겠죠. [로건] 엔딩 크레딧을 장식했던 그 분. 아마 이 곡을 [킬링 소프틀리]에서 처음 만났을거에요. 그땐 묘하게 흥겨운 느낌이였는데, [로건]에서 들으니깐 참 어안이벙벙하면서도 묘하게 가슴 푹푹 찌르는게.... 

제가 그래서 [로건] 대비용으로 음반을 몇개 사긴 했습니다. [At Folsom Prison]이라던가 [Ride This Train], [Sings the Ballads of the True West], [American IV]... [At Folsom Prison]은 명성만큼 훌륭했고 [Ride this Train]이나 [Sings the Ballads of the True West]가 좀 골때렸습니다. 이 앨범들은 대부분 곡 앞에 자니 캐시의 나레이션이 들어있는 앨범이에요. 곡은 좋은데 영어 실력이 미천한 저로써는 이것은 좋은 듣기교재다 이러면서 듣고 있고... [로건] 컨셉으로는 잘 어울리긴 하는데 (특히 올린 곡은 고전 카우보이 민요 커버곡이라 더 잘 어울립니다.) 좀 난감한 앨범이더라고요. 자니 캐시 앨범 다른거 추천해줄수 있는 분들 좀 추천 부탁드립니다. [American IV] 같은 경우, 어느새 죽음을 앞두고 덤덤하게 과거와 현재를 반추하는게 마음 아프더라고요. 

사실 자니 캐시는 저희 형도 꽤나 좋아하는 뮤지션인지라, 앞으로도 꾸준히 탐구해볼 생각입니다.


Willie Nelson - Can I Sleep in Your Arms?

내친김에 윌리 넬슨의 [Red Headed Stranger]도 샀습니다. 이것도 '실연당한 무법자'를 내세운 컨셉 앨범이긴 한데, 다행히 나레이션은 없어서 쉽게 친해질수 있었습니다. 윌리 넬슨을 알게 된건 죽기 전에 들어야 하는 1001개 앨범였는데, 나중에 미드 (CSI였던가)에서 얼굴을 뵙게 되었죠. 그때까진 그렇게 생각은 없었습니다. 이 앨범을 산것도 순전히 아 그러고보니 컨트리 가수 중에 그런 사람이 있었지, 평도 좋으니 들어볼까 샀습니다.

사실 아까 말했던 [Ride This Train], [Sings the Ballads of the True West]보다는 이 앨범이 좀 더 빠르게 감수성에 박히더라고요. 찾아보니 196-70년대부터 컨트리계에도 '무법자 컨트리'라는 장르가 형성되었다고 하는데, 윌리 넬슨과 자니 캐시도 그런 부류에 속한다고 하더라고요.

이 곡 자체는 커버곡이긴 하지만, 쓸쓸하게 열어젖히는 윌리 넬슨의 마초적인 고독에 뻑하고 반해버렸습니다. 자니 캐시에서 만족했던 감수성이 여기에도 느껴졌다고 할까요. 악기를 적게 활용하면서 목소리에 집중하는 편곡도 좋았고요. 올드 스쿨 미국 마초의 순정이 담긴 멋진 곡입니다. 


Gram Parsons - Return Of The Grievous Angel

버즈의 멤버였던 그램 파슨스은 록과 컨트리의 중간자로써 큰 역할을 했던 뮤지션입니다. 사실 앨범은 딱 두 장 남겼는데, 두 장 다 좋아요. 하지만 역시 방랑하는 자의 고독과 위안의 정서라면 [The Grievous Angel]이 더 강하죠. 플라잉 뷰리토 브라더스와 버즈를 거치면서 완성된 그램 특유의 컨트리에 대한 애정과, 감수성이 흥겹지만 우울하게 새겨진 멋진 곡입니다. 기타를 뒤로 물러두고 피아노와 피들에 집중하는 편곡도 좋고요.


David Crosby - Cowboy Movie

버즈 멤버의 컨트리 록하니깐 이 곡이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급 서부극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과 영, 스틸스, 내시 간의 관계를 암시한 곡으로 유명하지만, 그런 메타포 빼고 서부 무법자의 생태를 반복적이고 지난한 리듬을 지닌 컨트리 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운 곡이라 생각합니다. 날카롭고 걸걸한 크로스비의 기타와 보컬이 만들어내는 70년대의 분위기가 동시대 서부극들의 텁텁함을 떠올리게 하고요.

Neil Young - Mellow My Mind

하지만 역시 울버린를 다루면서 캐나다를 빼놓을 수 없겠죠. 전 울버린에게 어울리는 뮤지션은 항상 닐 영이라 생각했습니다. 거칠게 울부짖으면서도 포크와 블루스, 록, 컨트리을 인용해 섬세하게 영혼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70년대 초 닐 영의 음악들은 정말이지 가슴을 먹먹하게 치죠. 너무 잘 어울려서 막상 [로건]을 보고 나온 직후엔 닐 영을 듣는걸 꺼렸습니다. 안 그래도 이전부터 듣고 있노라면 마음이 갈갈이 찢겨지는데 로건 떠올리며 들으면 흑... 

이 곡과 [Tonight's the Night]은 역시 기타와 하모니카가 엄청난 청승을 읇어댐에도 목이 쉬는걸 부끄러워하지 않고 자신의 거칠지만 유약한 영혼을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이런 정서는 상술한 윌리 넬슨이나 자니 캐시랑 닮아있기도 하고, 후배인 펄 잼으로 이어지는 고통과 상실, 치유에 대한 의지가 담긴 정서기도 합니다.

근데 이 앨범인 [Tonight's the Night]는 정녕 새 리마스터 CD는 안 나온단 말입니까.


The Band - Tears of Rage, Across The Great Divide

또다른 캐나다 명뮤지션 밴드의 곡입니다. 최근에서야 [Music from Big Pink]를 사서 들었는데 역시 제가 왜 [The Band]를 듣고 이 밴드를 좋아했는지 알게 해준 좋은 앨범이였습니다. 닐 영이 개인의 고통스러운 내면을 투영하기 위해 컨트리와 포크 영역에 들어섰다면 더 밴드는 좀 더 넓게 박물지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 유명한 'Across the Great Divide'에서 보여주는 정착과 모험에 대한 동경과 갈등이 서부극의 한 장면을 떠올리기 충분하고요. 

하지만 'Tears of Rage'처럼 "Come to me now, you know we're so alone"라고 중얼거릴때에도 더 밴드는 빛납니다. 우리는 외로우니 내게 와라라는 말은 정말 사무치는 구석이 있죠.


Cowboy Junkies - Misguided Angel

이것도 캐나다 밴드의 곡이네요. 닐 영과 더 밴드, 자니 캐시와 윌리 넬슨을 거쳐 80년대 말에 도착한 카우보이 정키스의 이 곡과 [The Trinity Session]은 정말로 보석같습니다. 추운 교회 한 구석에서 구식 히터 앞에 앉아서 온기를 느끼는 앨범이라고 할까요. 마고 티민스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가 얼터너티브 컨트리에다 공간감이 느껴지는 녹음과 겹쳐져 90년대 청춘들의 소외를 예견케하는 쓸쓸한 아름다움이 휘감고 있습니다. 


Nick Cave and the Bad Seeds - There Is a Kingdom 

휴 잭맨느님이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이니. (웃음). 여기 선정된 다른 곡들과 달리 컨트리라기 보다는 좀 더 틴 팬 앨리적 피아노 중심의 카바레 뮤직에 가까운 곡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구원과 다시 오지 않을거라는 낙담의 감수성은 닮아있습니다. 개인적으로 [Murder Ballads]는 그 가치와 훌륭함에 탄복하면서 그 살벌함 때문에 자꾸 손이 가는 앨범은 아니였는데, [The Boatman's Call]은 그런 살벌함이 덜해져서 빨리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Spooner Oldham - Will the Circle Be Unbroken?

마지막은 스푸너 올드햄의 영가 커버입니다. 아마 게이머들은 [바이오쇼크 인피니트]로 처음 접했을 곡이죠. 사실 이 분은 세션 뮤지션으로 더 유명합니다. 밥 딜런, 조 코커, 잭슨 브라운, 캣 파워 같은 쟁쟁한 뮤지션 세션 해준 분이거든요. 정작 그거 때문에 솔로가 가려지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사실 이 앨범은 스웜프 뮤직에 대해 잘 몰랐을 시절에 무작정 앨범을 사서 들었던 앨범입니다. 짧긴 했지만 이 사람 연주력이라던가 감수성 해석하는게 대단한데?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훗날 수록곡을 편곡을 80년대 풍으로 다시 내놓은 앨범도 있는데, 첫 앨범 마지막 곡으로 실린 이 곡이 짱이라 생각합니다. 도입부의 아련함은 상술한 카우보이 정키스를 연상케하는 부분이 있고요. 


2  Comments,   0  Trackbacks
로건 [Logan] (2017)

이정표가 될 가지를 들고 그 발밑에 떨어뜨리자. 맞은편 언덕에 있는 아이가 헤매지 않도록. 
작은 둥지를 만드는 이 날개로, 태어나는 아이들을 연결하기 위해 살아가자.

-이시카와 치아키, 'Little Bird'
(강력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로건]의 첫 샷은 차 안에 누워있는 로건의 얼굴을 하강하면서 보여준다. 이 샷은 밀폐 공간에 클로즈업으로 이뤄져 있기에 로건이 무언가에 짓눌듯한 인상을 준다. 가히 질식할듯한 이 미장센을 흔들어깨우는 건 외화면에서 깡패들이 때려부수는 소리다. 제임스 맨골드는 영화가 시작하기도 전에 이 때려부수는 소리를 암전 크레딧에 올리면서, 공포스럽고 긴장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그 공포스러운 분위기로 나오는 피곤에 쩔어있는 로건의 등장 샷은 두 다리 클로즈업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여기엔 활기참이 없다. 밀폐공간에서 겨우 밖으로 나왔지만 로건은 [용서받지 못한 자]의 윌 머니처럼 비틀거린다. 그리고 뒤이어 살짝 과잉되었지만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폭력이 이어진다. 제임스 맨골드는 이 도입부를 통해 [로건]의 영화적 공기와 그가 겪을 여정을 설명해낸다. 

많은 사람들이 [로건]의 도입부를 보고 당황했을 것이다. 이건 [엑스맨]이나 슈퍼히어로 영화의 도입부가 아니다. 차라리 1970년대 도회적이고 삭막하게 돌아버린 미국 액션 영화의 도입부에 가깝다. 이 시작에서 맨골드의 관심사는 일반적인 슈퍼히어로 영화를 만들려고 하는데 있지 않다는걸 알려준다. 심지어 그는 전작에서 분명 이어져야 할 시간대나 사건의 인과관계마저 모호하게 처리한다. 살아남은 자는 동료들이나 악당, 멋진 사건이나 끔찍한 비극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맨골드는 이 영화가 다른 세계관과 이어진다고 얘기했지만 차라리 완전히 평행세계라는 휴 잭맨의 발언이 더 솔직하게 이 영화의 관점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로건]은 울버린 코믹스에서 끔찍하고 비참한 에피소드 (원작이 된 [올드맨 로건], [웨폰 X], [울버린의 죽음], [레드 라이트 핸드])에 담겨있는 비관주의와 그 속에서 피어나오는 희망을 영화사 전통을 연결시키려는 영화다. 그리고 거기에 방해되는 장애물은 가차없이 치워버린다. 그래도 의문이 있다면 "대체 이 꼴이 나도록 전지전능한 진 그레이는 뭐하고 있나?"라는걸 생각해보자.

[로건]이 출발점으로 삼은 곳은 놀랍게도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코스모폴리스]가 다뤘던 종말로 향하는 리무진이다. 다만 [코스모폴리스]의 에릭과 달리 로건은 뒷좌석에 앉아 폼을 취하지 않는다. 뒷좌석에서는 [코스모폴리스]처럼 이어지는 향락으로 부패한 자본주의와 국가주의의 이미지가 넘실거린다. 맨골드는 버림받은 영웅의 왜소한 샷과 자본주의의 비대한 향략을 한 공간에 압축하는 것으로 질식할것만 같은 부패의 순간을 담아낸다. 하지만 [로건]은 [코스모폴리스]보다 더 끔찍하다. 어떻게든 리무진 안에 침투하려는 바깥 사람들의 발악을 보여준 [코스모폴리스]와 달리, [로건]의 리무진 바깥은 아무도 안쪽을 공격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코스모폴리스] 결말에서 열어젖힌 끝날것 같지 않은 자본주의 지옥의 이미지가 [로건]의 세계를 잡아먹어버렸다. 

맨골드가 이 영역에서 들여오는 것은 서부극이다. 먼지로 가득한 리무진이 찰스 교수가 사는 은신처로 들어오는걸 롱 샷으로 보여주는 순간, 우리는 [로건]이 [매드 맥스]와 맨골드 자신의 [3:10 투 유마]를 거쳐 서부극의 세계로 들어설거라는 징조를 받는다. 맨골드는 뒤이어 아예 작심하고 온갖 서부극적인 도상을 차용한다. 멀리서 지나가는 기차, 옥수수밭, 농장, 서부 복장.... 그 중에서는 그 유명한 [셰인]도 있다. 이런 맨골드가 인용하는 서부극적 도상과 연계된, 인상적인 샷이 하나 있다. 도주중이던 로건 일행은 무인 트럭에 휘말려 꼼짝도 못한채 말을 농부 먼슨 가족을 만난다. 먼슨 가족을 도와주는 과정을 그리는 동안 맨골드는 아무렇지 않게 말들이 휘적거리며 고속도로를 방해하는 모습을 집어넣는다. 문명을 잠시나마 방해하며 자유로워지는 말의 이미지에서 맨골드는 숨기지 않고 서부극 장르에 대한 강한 애정과 로맨티시즘을 표출한다. 서부를 향한 맨골드의 로맨티시즘은 자본주의 지옥에 저항하는 도구다.

과격하긴 해도 맨골드의 비전은 상당히 정확하다.  울버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 캐릭터는 19세기 서부 개척 끝물에 '캐나다'에서 태어나 현대와 미래까지 살아남은 캐릭터였다. 서부 시대의 마지막 생존자라 할 수 있는 존재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서부극의 징조는 더 명확해진다. 로건에게 양부로써 자신과 공동체의 관계를 추구하고 지키고자 하는 보안관의 정신이 아로새겨져 있다. 오랫동안 상처주고 받으며 살아온 그는 찰스 자비에 교수를 만나 구원받은 뒤, 찰스의 뒤를 따라 양부의 길을 걷는다. 상처 따윈 아무렇지 않게 회복하며 살아왔지만, 상처의 깊이를 알기에 아이들의 침묵과 고통에 동참하고 지켜주려는 양부.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에서 와이어트 어프가 초반부에 동생 무덤 앞에서 했던 대사를 그대로 가져와도 될 정도다. 

하지만 역사를 헤쳐나오기 위해 체득해버린 폭력성은 그런 그의 양부로써 사랑과 긴장관계를 이루면서 복잡한 깊이를 가지게 되었다. 무수한 전쟁과 살육의 현장에서 의미없는 죽음에 익숙해져버린 지친 남자. 여기다 코믹스 울버린은 심지어 몰랐다지만 자기 양아들마저 죽여버리고, 친아들의 오해로 가득찬 경멸어린 저주과 독기를 품고 살아가고 있는 캐릭터였다. 여기서 그의 어둠이 서부 무법자 특유의 야만적 폭력성이 히어로 만화에 접목되어 나온 거라는걸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그 점에서 맨골드의 서부극에 대한 애정은 울버린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그는 울버린이 어디서 왔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 울버린은 1970년대에 나왔던, 좀 더 과격하고 극도의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신화의 종말에서 멜랑콜리를 끌어내는 서부극 영화의 아들이다. 여기에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회고적 서부극과 페킨파의 마초적 애도의 서부극이 따라나서는건 당연하다.

맨골드의 전작이기도 한 [더 울버린]은 그런 서부극적 도상이 PG-13적 수위에 수용되어 일본 찬바라물과 결합된 독특하지만 일정한 선이 있는 영화였다. 하지만 [로건]은 다르다. 차라리 이 영화는 국경수비대와 카르텔 서부극의 살벌함을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여기다 마이클 만 특유의 프로페셔널들이 또렷한 콘트라스트 아래서 벌이는 건조하고 서늘한 긴장감도 녹아있다. 심지어 맨골드는 4K 카메라를 마치 마이클 만이 디지털 카메라를 쓸때 썼던 특유의 빠른 프레임으로 그려내기도 하다. 어느 쪽이든 맨골드는 고전 서부극의 품위있는 도상을 1970년대 이후 장르 영화가 끌어왔던 건조한 콘크리트를 연상케하는 어법과 만나게 하고 있다.

그 만남 사이엔 ‘죽음’이 있다. [로건]이 왜 [엑스맨] 영화를 대부분 치워버리고 [코스모폴리스]를 끌어왔는지에 대한 답도 여기서 나온다. 맨골드와 각본가가 바라보는 미국은 정말 끔찍하고 살맛 안 나는 곳이다. 그 속에서 삶과 죽음은 무의미한 것으로 그려진다. 캐나다로 대표되는 목적지까지 거쳐야 하는 미국은 멕시코를 착취하며, ‘우리는 가난하지만 바보는 아니다’라는 절규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다음날 시체로 발견된다. 숭고하지만 무의미한 죽음을 맞이한 시체는 자본주의의 재료로 사용된다. 종말이 일상을 대체한 풍경. 여기엔 무의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간신히 힘을 모아 바깥으로 향하는 아이들이 있다. 맨골드가 그려내는 미국은 몬테 헬먼의 실존주의 서부극의 무기력함이 묻어나온다.

이 세상에서 아이들에게 품을 내어줄 양부 히어로들은 무력하다. 찰스로 대표되는 리버럴 지식인은 옛날의 총기를 잃고 양자 로건과 칼리번의 도움에도 죽음을 기다리고 있으며, 그 지식인들에게 감화받았던 로건과 칼리번은 찰스의 믿음이 실패한것 아닌지, 자신들 역시 초라한 소멸을 맞이할지 회의하고 번민한다. 이 과정이 너무 아프고 괴롭게 그려지기에, [로건]은 다른 히어로 영화들이 못했던 영역에 들어선다. 맨골드가 근심하고 잇는 영역은 아오야마 신지가 기타큐슈 삼부작에서 근심하던 영역과 비슷하다. 그들은 다만 맨골드는 아오야마가 두려워했던 친부 친자의 실패와-원작 로건이 그런 실패가 그려지는 캐릭터임에도-어머니의 불가해함을 꺼내지 않는다. 아오야마와 달리 과거와 혈연에 대한 불신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지나치게 많아진다고 생각해서일까.

대신 맨골드는 양부들 자신의 어둠에 집중한다. [로건]의 여정은 심리 서부극 그 자체다. 영화는 로건을 이뤄왔던 죄악과 분노, 고통과 사랑을 모조리 끄집어내 안소니 만이 [서부의 사나이]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리스 비극처럼 확장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확장은 로건뿐만이 아니라 칼리번이라던가 찰스에게도 적용된다. 범죄를 저지르며 자신을 용서해준 동료를 팔아치웠다는 절망감에 자폭하는 칼리번이라던가 공동체 붕괴의 원흉이였음에도 살아남아 죄책감에 빠져드는 찰스 역시 심리 서부극의 그림자에서 어른거린다. 당신을 죽인게 내가 아니라는 로건의 애절한 고백에도 불구하고 맨골드는 X-24를 휴 잭맨의 1인 2역으로 맡기면서 결국 그 역시 자신의 일부였다고 못을 박는다. 여기엔 분명한 죄악이 있으며, 등장인물들은 거기서 자유롭지 못하다.

[로건]은 그 그림자 속에서 이뤄지는 회의와 번민, 죽음을 육체의 이미지로 표출한다. 로건의 사라진 힐링 팩터는 심각하게 베어진 살점들과 엉망이 된 다리로 나타난다. 초반부 몸에 박힌 총알을 스스로 뽑아내며 멍하게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로건의 샷에서 우리는 마음이 찢어질 수 밖에 없다. 로건/울버린은 누구보다도 하드 바디가 자신의 정체성이던 캐릭터였다. 그 캐릭터에게 하드 바디 이미지가 사라지는 순간 거기엔 자크 오디아르가 선호했던 피로와 우울에 젖은 남성 영웅이 드러난다. (아마도 [디판]과 [러스트 앤 본]이 이번 로건에게서 제일 가까울 것이다.)  아들의 도움이 필요한 찰스의 무기력한 육체는 그 점에서 더 비참하다. 칼리번은 뱀파이어처럼 햇빛 아래에서 피부가 불타고 괴로워한다. 심지어 이런 쇠잔함과 거리가 먼 로라 역시 자신의 분노를 온 몸에 담아 표현한다. 이들의 반대에 있는 캐릭터인 도널드 피어슨이 기계 육체를 과시하는 점은 그 점에서 흥미롭다.

[로건]의 액션이 에너지와 피와 눈물이 흘러넘치는 것도 이상한건 아니다. 과격한 수위로 묘사된 이 영화의 액션은 멜로드라마적 먹먹함과 피곤함이 인물들을 적시고 있다. 로건이나 로라, 그리고 후반에 등장하는 뮤턴트 아이들의 액션은 그야말로 살고 싶다는 처절한 악에 받쳐 육체를 잘게 조각낸다. 이 영화의 액션은 그 몰아붙이는 듯한 카타르시스에도, 너무나도 육중하고 슬프다. 그리고 그 슬픔은 삶의 버거움에 죽음조차도 제대로 애도할 수 없다는 흐느낌이 담겨 있다. 무서울 정도로 팽팽한 영화적 공기를 내세운 영화를 엄청난 예산을 들여 만들수 있었다는게 신기할 정도다.

하지만 [로건]은 살벌하고 팽팽하게 건조된 공기에서 놀랍게도 모든 것이 빛나는 아름다움을 끌어내는 영화다. 시작은 다시 가족이다. 맨골드 본인은 귀엽지만 현실의 아픔과 무게를 무시하지 않은 가족 드라마 [페이퍼 문]이나 [미스 리틀 선샤인]을 예로 들었고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오히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족의 정경은 차라리 수평적인 공동체에 가깝다.  육체적 능력과 물질적 능력을 소진했지만 어떻게든 아이들을 보호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려는 양아버지들의 쓸쓸한 모습과 더불어 황폐하고 버려지고 공간, 말없지만 아직 생명력이 있는 소녀를 죽어가는 몸을 이끌며 쫓아가는 ‘오해받는 무법자’의 이미지는 [유레카]를 (나아가 존 포드의 [수색자]) 떠올리게 하고, 특수한 능력을 지닌 아이를 데리고 도주하면서 수평적인 신뢰와 믿음으로 구성된 미국적 가족상을 구축하는 과정은 [미드나잇 스페셜]이나 [퍼펙트 월드]를 언급해야 할 것이다. 어느 쪽이든 절박하고 단단하게 ‘이 땅’에 매여있으려는 시도들로 가득하다. 언급한 영화들이 서부극의 영향이 강한 작품이라 생각해보면, [로건]의 수평적인 공동체는 서부극의 일부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것조차도 [로건]에서는 버겁게 그려진다. 양아들의 양부는 죄를 양아들의 그림자에게 고백하고 초라하고 비통한 죽음을 맞이해야 하며, 로라를 내보낸 양모 가브리엘라와 친절을 베푼 먼슨 가족은 모조리 죽어나간다. 엑스맨으로 대표되던 가족과 공동체에 대한 강한 믿음이 사라진 세계에서 무엇을 할것인가? 아이인 로라는 답을 원하지만 로건은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 대답을 얻을 공동체가 어떻게 사라졌는지 알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두 사람 역시 죽어버렸고 공동체에 대한 대답은 픽션인 만화책과 자신으로만 가능하다. 로건이 그렇게 열심히 엑스맨 만화책을 부정했던 이유는 거기 있다. 불로불사가 가져오는 피로함과 유일한 증인으로써 죄책감, 자학심이 ‘이 땅’에 매여있고자 하는 시도에 회의감을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어차피 사라질 것이라면, 조용히 있다가 사라지는게 낫지 않을까 ?

여기서 접촉의 문제가 개입된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를 "접촉의 금지, 그리고 떨어져 있을 것에 대한 요청, 그것은 이야기를 시동케 하는 능동적인 기호”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말을 [로건]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엑스맨] 세계관에서 로건이 처음 만난 뮤턴트가 접촉 금지를 요청하는 소녀 로그 (마리)라는 점을 생각해보자. 맨골드는 [엑스맨 1]의 초반부 구도를 다시 뒤집어 만들고 있다. 이 영화에서 로건은 계속 다른 인물들에게 ‘떨어져 있으려고’ 한다. (유사) 부녀 지간을 다루면서도 로라와 로건 사이엔 신기할 정도로 거리감이 느껴진다. 그것은 로라가 로건에게 종속적인 위치가 아니기도 하고, 맹렬한 위험함을 지녔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들은 혈육이지만 혈육이 아닌 서로의 거울쌍이다.

그렇기에 로건은 직접적으로 접촉 금지를 요청하지 않지만 어떤 거리감을 두고 로라를 대한다.  이제 접촉을 요청하는 사람은 사내가 아니라 소녀이며 사내는 소녀의 접촉을 밀어내려고 한다. 이 거리감과 접촉 거부 때문에 이 영화는 비슷한 내용의 액션 영화하고 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그것이 매정하기 보다는 슬프게 다가온다면, 로건의 비극과 피로함, 그럼에도 숨길수 없는 사랑을 맨골드는 이해하고 있고 관객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서로 거리를 두면서도 절박하기에 조금씩 서로에게 다가간다. 후반에 등장하는 로라의 무릎에 평온하게 잠든 로건의 샷과 악몽에 대한 로건과 로라의 대화가 그렇다. 맨골드는 늙고 지친 미국 무법자 윌리엄 머니를 닮아있는 휴 잭맨의 얼굴과 슬픈 무표정을 지닌 스페인 소녀 아역들의 매력을 간직한 다프네 킨의 얼굴, 꺼져가는 총명함을 어떻게든 잡아보려고 하는 영국 신사 패트릭 스튜어트의 얼굴에서 많은 질료들을 빌려온다. 그리고 그들이 한 프레임에 있는 순간들은 매우 훌륭하다.

[로건]의 먼슨 가족의 죽음은 로건이 왜 접촉을 거부하는지를 설명하는 에피소드다. 그들은 접촉의 평안함을 안겨주었지만 정작 그들은 소수자이자 약자며 매우 허약한 존재다. 맨골드는 로건 일행이 오지 않았더라도 구조적으로 이 가족은 파국으로 향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그 절대적인 파국에서 히어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먼슨 가의 가장이 총부리를 대는 순간, 로건은 다시 상처받는다. 로건은 자신의 존재가 저 평범함에 스며들수 없다는걸 안다. 그렇기에 그는 떠돌아다녔다. 오히려 로건이 자주 접촉하는 대상은 찰스 자비에다. 유머가 섞이긴 했지만 찰스와 로건의 화장실 시퀀스는 둘의 접촉이 어떤 의미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찰스가 엑스맨이라는 공동체를 파괴했다는걸 알았음에도, 그는 찰스를 돌본다. X-24이 학살한 자리에서 로건이 로라를 찾아가지 않고 찰스를 먼저 찾아가는 과정은 매정하지만 지극히 논리적이다. 왜냐하면 찰스는 엑스맨의 이상인 '양가족' 그 자체이며, 진정한 첫번째 '양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찰스가 죽은 이후로, 로건 역시 죽어간다.

[로건]이 놀랍고 슬픈 이유는 파국을 내재한 접촉과 무법자가 그걸 두려워해 접촉을 거부함에도 공동체 내 일상과 사랑을 존중하고 그려내는 신중한 흐름의 샷과 대화로 로건과 로라, 찰스의 영혼에 접촉하는 과정을 잡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로건이 가족을 연기하는 장면의 샷과 리버스 샷을 보라. 우리는 그게 유머를 담은 연기라는걸 알면서도 눈물을 흘릴수 밖에 없다. 거짓이지만 가짜는 아니기 때문이다. 불행에 가려졌지만, [로건]에서 로건이 지난 시리즈동안 느껴왔던 공동체의 사랑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라고 말한다. 접촉은 필연적으로 파국을 낳지만, 그 접촉이 남긴 위대함은 심지어 파국이 지나간 이후에도 명징하다. 찰스의 회한에 찬 넋두리는 그 양가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로건]은 무의미와 접촉 거부 속에서도 공동체와 관계로써 ‘완벽한 순간’을 계속 찾으려고 한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메타픽션'으로 그려낸다. 로건은 픽션은 현실에서 성립될 수 없다고 줄곳 주장하지만 정작 그 역시 썬시커라는 이뤄질 수 없는 공동체 공간에 집착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공간'이 아닌, '사람'이 가족을 이룬다는걸 알고 마침내 그걸 지켜내는데 성공한다. 그 과정은 너무나도 힘겹고 간신히 이뤄진다. 이뤄질수 없다는걸 알면서 부정하면서도 그 ‘완벽한 순간’을 찾으려고 하는 이 시도들은 울버린 자신의 캐릭터성과 들어맞는다.

[로건]은 무의미 속에서도 '관계로써 완벽한 순간'을 찾고자 하는 인물들의 애처로운 갈망과 헛발질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애도와 치유의 여정을 결합한다. 줄곳 표류하고 있던 캐릭터가 무의미와 소멸에 대한 불안감을 해소한 뒤 정착과 안식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이번작의 로건은 [해안가로의 여행]의 유스케를 닮아있다. [해안가로의 여행]에서 기요시는 유령은 여행을 하며 정착하면 사라진다, 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 대사는 어딘가 서부의 무법자를 닮지 않았는가. 로건은 계속 여행을 하고, 정착을 하는 것에 두려움을 표했다. 맨골드 역시 영화 속 로건이 망자의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듯 하다. 즉 처음부터 로건은 상징적으로 죽어있다. 상술한 영화의 시작이 깨어남이라는 걸 주지해보자. 리무진 운전 시퀀스의 생기없음부터 시작해 후반부로 갈수록 로건의 영화적 여정은 기면증적인 컷과 장소 점핑, 생략과 암전, 깨어남과 같은 비약으로 이어진다.

재미있는 점은 [해안가로의 여행]과 달리 [로건]은 '해안가로의 여행'을 떠나려다가 '호숫가로의 여행'으로 끝난다는 것이다. 맨골드가 바다로 향하지 않고 모래와 흙, 가파른 경사길을 종국의 물가에서 떼어놓으려고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먼저 로건 일행이 원하는 요트 썬시커를 보자. 엑스맨은 재건될 수 없고 상술했듯이 남아있는 뮤턴트들 역시 왜소하고 초라한 죽음만이 기다릴 뿐이다. 아마 로건이 예정한 죽음은 찰스와 칼리번이 소멸한 뒤, 애도해줄 사람 없이 조용하고 쓸쓸하게 과다한 물 이미지에 스며드는 것였을 것이다. 썬시커는 그 점에서 평온한 죽음이지만, 애도하는 이 없는 쓸쓸한 소멸 그 자체다. 하지만 그가 꿈꾼 소멸의 여정은 로라의 등장으로 사라지고 반대로 그는 사막과 들판, 도시를 거쳐 캐나다 국경의 산맥으로 향한다.  

맨골드가 호숫가로 여정을 선택한 이유는 땅에 뿌리박고 살았던 공동체의 소멸을 지켜본 뒤 애도를 완수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모래와 흙, 가파른 경사길은 그 점에서 [엑스맨] 시리즈에서 엑스맨들이 거쳐야만 했던 지난하고 고된 여정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거기서 마지막으로 남은 엑스맨 멤버들은 아이들을 조금씩 더 아름다운 곳으로 데려가면서 소멸한다. 첫 징후는 "호수도 있는 곳"에 묻힌 찰스다. 찰스의 죽음은 곧 닥쳐올 로건 자신의 죽음을 예견게 한다. 여기서 로건과 로라는 호수가 있던 자비에 학교로 대표되던 이상주의의 끝을 애도한다. 그리고 로건이 묻히는 공간 역시 호숫가 근처 숲이다.

그렇기에 덤덤하게 이뤄지는 로건의 죽음은 너무나도 아름답게 빛난다. 그들이 도달한 곳은 지극히 평범한 숲이다. 하지만 여기서 이뤄지는 접촉의 숭고한 아름다움이 프레임 속 모든 존재를 빛나게 한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다시 [해안가로의 여행]의 마지막을 떠올릴 수 밖에 없다. 접촉의 거부에서 시작한 여정이 마무리되는 순간, 분명한 접촉이 새겨지기 때문이다. 미즈키와 유스케가 그랬듯이 로건과 로라는 여정을 통해 서로에게 동화되었고 끝내 접촉으로 충만한 사랑을 나눠가지게 된다. 그 순간 로건은 저주받았다고 믿었던 기나긴 시간 속에도 이런 접촉이 있었으며, 상실의 고통과 애도 역시 하나의 접촉이였음을 깨닫는다. 다만 어떻게 설명해야지 몰랐을 뿐. 무의식적으로 사랑을 나눠주면서도 자신은 접촉할 수 없는 존재라 자학했던 영웅에게 정말로 다정하고 따뜻한 결말 아닌가. 찰스-로건-로라로 이어지는 연속된 애도의 완수가 역설적으로 엑스맨과 사랑으로 이뤄진 이상적 공동체를 영원하게 만든 셈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아이들에겐 ‘분노’가 부족하다고 비웃는 악당들의 가치관을 정면으로 부순다.
 
[로건]은 마지막에 본성은 이길수 없고 총소리가 없어지기 위해서는 영웅은 사라져야 한다는 [셰인]의 추도사를 인용한다. 하지만 맨골드는 픽션과 풍경들, 공동체의 아름다움, 접촉의 숭고함을 통해 영웅에 대한 애도를 완수해 빛나게 만든다. 로건의 애도가 찰스를 영원하게 만들었듯이, 로라의 애도는 로건을 영원하게 만든 셈이다. 그리고 0의 순간에서 바다가 아닌 육지로 향하는 미즈키가 그랬듯이 로라 역시 애도를 완수하고 다시 시작하기 위해 프레임 밖으로 사라진다. 그 사라짐은 절대로 무의미하지 않다. 그렇기에 우리는 로건과 찰스, 칼리번, 가브리엘라의 본성이 부당한 세상에서도 순진하게도 따뜻한 집과 사랑하는 사람들의 행복을 꿈꿨던 작고 조용한 사람들에 가까웠노라고 확언할 수 있다.

당신은 그 이름에게서 무수한 사람들의 이름을 붙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확언은 매우 벅차오르는 눈물을 동반한다. 로라가 만든 X가 역설적으로 O이 되었기 때문이다. 결국엔 이 영화 역시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후발 히어로 영화들에 종속되겠지만 (울버린은 최고 인기 캐릭터고, 휴 잭맨이 없더라도 어떻게든 이어갈 것이다. 게다가 아직 로라에게도 할 얘기가 남아있다.) 제임스 맨골드는 몹시도 감동적인 인본주의 서부극 영화를 극우 포퓰리즘 시대의 세상에 가져왔고, 길이 남을 것이다.


0  Comments,   0  Trackbacks
[로건] 공식 예고편

2015/07/20 - [Deeper Into Movie/리뷰] - 더 울버린 [The Wolverine] (2013)

개인적으로 울버린을 꽤 좋아하기도 하고, 휴 잭맨도 좋아하는 배우인데다 [더 울버린]이 생각했던 것보다 꽤 괜찮은 영화였기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일단 변종 서부극스러운 분위기에 플러스. [올드맨 로건] 원작으로 한다고 했을때 울버린 이미지가 너무 늙게 나오는거 아닐까 걱정했는데...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 영화가 휴 잭맨 마지막 울버린이라는게 아쉽긴 하지만... 뭐 이후 제작진들이 알아서 잘 하겠죠. 여튼 정말 그는 울버린 그 자체였습니다.


0  Comments,   0  Trackbacks
더 울버린 [The Wolverine] (2013)


더 울버린 (2013)

The Wolverine 
5
감독
제임스 맨골드
출연
휴 잭맨, 오카모토 타오, 후쿠시마 릴라, 사나다 히로유키, 스베틀라나 코드첸코바
정보
액션, SF | 미국 | 129 분 | 2013-07-25

2015/02/08 - [Go To Fly/만화] - 울버린 [Wolverine] (1981)

제임스 맨골드의 2013년작 [더 울버린]은 [라스트 사무라이]처럼 일본 무사도 정신을 주 소재로 다루고 있는 영화다. 한국 제목에서는 알 수 없지만 일본에서는 SAMURAI라는 제목을 붙이면서 그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더 울버린]은 어떻게 그 정신을 구체화하고 있는가?

먼저 [더 울버린]은 [엑스멘]이라는 마블의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한 실사 영화 시리즈의 스핀오프 영화라는걸 밝혀둬야 되겠다. [엑스멘]은 뮤턴트라는 초능력자들을 소재로 한 액션 만화로, 1960년대에 처음 등장한 뒤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면서 주목 받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점은 [액스멘]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하고 울버린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한게 저 일본 문화가 본격적으로 서구 문화에 침투하기 시작한 197-80년대라는 점이다. 미국 만화의 아이콘이라 할 수 있는 [엑스멘]이 일본 문화의 세 불리기와 그 시기와 공유하고 있다는 점은 여러모로 흥미로운데, [더 울버린]의 원작이 된 프랭크 밀러와 크리스 클레어몬트의 1981년 원작 [울버린]을 보면 이 두 지점이 서로 만나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서문에서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프랭크 밀러는 울버린이라는 캐릭터를 ‘실패한 로닌’이라고 규정했는데, 이 언급이야말로 [엑스멘]으로 대표되는 미국 코믹스 문화가 어떻게 일본 사무라이와 무사도 문화를 받아들였는지에 대한 단초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28년이나 지나 만들어진 (심지어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9년이나 지난) [더 울버린]에서는 원작의 접근은 어떤 식으로 해석되고 있는가? 우선 캐릭터 조형이 많이 달라졌다는걸 지적해야 되겠다. 유키오 같은 경우 팜 파탈적인 성격이 많이 사라졌으며, 마리코 같은 경우엔 여전히 명예와 의무에 매여있고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나오지만 심리적 묘사 같은건 훨씬 자세해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하게 달라진 부분이 있는데, 바로 원작에서 다뤄지지 않았던 불사의 문제가 무사도 정신과 관련되어 전개된다는 점이다.

[더 울버린]의 첫 장면이 죽음으로 가득찬 태평양 전쟁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여기서 울버린은 일본군의 포로로 잡혀있다가 우연히 핵폭발을 피해 도망치려는 마리코의 할아버지인 군인 야시다 이치로를 구하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건 야시다 이치로가 살게 된 까닭이 소위 ‘무사답게’ 죽으려는 할복을 거부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야시다 이치로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의연하게 할복하는 가츠모토랑 다른 캐릭터며 이 차이는 [더 울버린]이 무사도 정신을 형상화하는데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걸 알 수 있다. 그렇게 우물로 들어온 이치로는 울버린의 경이적인 초재생 능력을 통해 살아남는데, 이치로는 그 재생 능력에 감탄하며 울버린에게 자신의 일본도를 넘겨주려고 한다. 하지만 울버린은 그걸 거절하고 돌아선다. 사무라이를 상징하는 일본도를 타인에게 넘겨주려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이치로가 울버린이 무사도의 정신을 체화하고 있다고 보고 있으며 반대로 울버린은 그 평가를 거부했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동시에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군이 강조해왔던 ‘귀축영미를 물리치기 위해 사무라이답게 죽어라’라는 카미카제식 군기가 얼마나 부질없고 생존에 대한 욕망을 가진 평범한 개인과 그런 욕망을 가진 개인을 지키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정신이야말로 진정한 무사도 정신이라고 영화는 정의하고 있다.

현재 시점으로 넘어오면 이 무사도 정신에 대한 질문은 다른 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제 일본 제일의 기업인이 된 이치로의 생존에 대한 욕구는 울버린의 초재생 능력에 집착하는 쪽으로 욕망이 발전하게 된다. 반대로 울버린은 그런 생에 대한 욕망이 지나치다고 생각하고 떠나려고 한다. 재미있게도 현재 시점에서 울버린은 정신적으로는 무사도 정신을 제대로 실현시키기 매우 어려운 상태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엑스맨 3]에서 울버린은 진 그레이를 죽였고 [더 울버린]에서도 그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죽거나 떠나는걸 보면서 그는 영원불멸한 삶을 사는 자신의 존재 가치에 회의를 느끼고 있는 중이다.

울버린이 초재생 능력을 잃은 뒤 이어지는 야시다 마리코와의 로맨스는 그 점에서 원작 [울버린]과는 다른 지향점을 지니게 된다. 마리코와 함께 과거의 이치로를 만났던 나가사키로 내려간 울버린은 마리코가 명예와 의무에서 자유로워져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걸 알게 된다. 그리고 마리코가 예전에 할아버지에게서 자신을 도와준 울버린=쿠즈리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하며 그에게서 용기와 희망을 얻었다는걸 알게 된다. 이런 각성의 과정이 도쿄에서 떨어진 나가사키 어촌의 야시다 가문의 일본식 저택에서 이뤄진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리코가 기모노를 입고 있으면서 일본 문화에 대해 가르쳐주는 장면도 빼놓으면 안 된다.) 이때 즉 [더 울버린]에서 무사도 정신은 일본인 캐릭터이 무사도를 체화하고 있는게 아니라 무사도를 이미 체화하고 있는 서구인 캐릭터가 일본인과 일본적인 배경과 공간을 통해 제의를 거치면서 그것이 ‘무사도 정신’이라는걸 다시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렇게 울버린이 제의의 과정을 거친 뒤 아무리 봐도 할복을 의도한 장면이 나온다는 것이다. 울버린은 자신의 심장에 이상이 있다는 걸 느끼고 심장에 있는 벌레를 스스로 꺼내기로 한다. 이때 죽는다고 할복을 말리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미래를 볼 수 있는 일본인인 유키오다. 하지만 울버린은 끝내 그 과정을 실현시키고 기절해 있다가 자신의 회복 능력을 얻어 다시 살아나 신겐을 물리친다. 일본인에게 할복은 혼의 결백과 애정이 뱃속에 담겨있으며 그걸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는 김효순의 지적을 생각해보면 이 장면은 두려움을 떨치려는 울버린의 혼의 결백과 애정을 보여주기 위한 무사도적 정신과 동시에 싸움에서 살아남기 위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띄고 있다. 이 할복 과정 도중 맨골드는 울버린의 심장 박동 그래프가 벌레를 빼낸 뒤 멈춘 뒤 다시 살아나는 걸 보여주는데. 이는 그가 무사도 정신의 제의를 매우 슈퍼 히어로적인 형식으로 통과해 다시 탄생했다는 걸 의미한다. 결말에 이르면 울버린은 생에 대한 집착으로 회복 능력을 빼앗으려는 실버 사무라이라는 갑옷을 입고 나온 이치로를 물리치는데 성공한다.

생에 대한 집착으로 과욕을 부리는 이치로가 악당으로 설정되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더 울버린]의 무사도 정신이 어떤식으로 이뤄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이치로는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하지만 동시에 그것을 제어할수 있는 가치관이 없는 캐릭터이다. 반대로 울버린은 생에 대한 의지의 극단으로 발현된 초재생 능력과 그에 수반된 불사 능력를 가지고 있음에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모를 경계하고 자신의 내면을 바르게 정립하려고 애를 쓴다. [더 울버린]은 무사도 정신이 내면 정립이라 정리하고, 불사 능력을 얻고도 그것의 어두움과 고통을 알고 거기서 자신을 정리할 수 있는 울버린이 진정한 사무라이이자 슈퍼 히어로라 할 수 있다고 정리한다. 그렇기에 그는 심장을 할복을 하고도 살아남아 신겐과 이치로를 물리치고 마리코를 정상적인 위치로 돌려놓을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더 울버린]은 [라스트 사무라이]랑 달리 사무라이와 무사도 정신을 다른 문화 간의 충돌이 아니라 한 개인의 내면의 정립이라는 문제로 놓은 뒤 그것을 슈퍼 히어로적인 가치관과 결합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더 울버린]은 상술한 ‘이화’ 효과가 나타났던 [라스트 사무라이]랑 달리 그다지 ‘이화’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 서구인들이 모르는 일본 문화의 기묘한 부분에 대해서는 오리엔탈리즘적 호기심을 드러나긴 하지만 (어김없이 등장하는 닌자나 러브호텔에 들어와 당황해하는 마리코와 전혀 모르고 들어서는 울버린이 대표적이다.) [더 울버린]은 애시당초 그런 ‘이화’로 무사도 문화를 형상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더 울버린]은 [킬빌]이나 [신 시티]처럼 서양인 캐릭터 내면이나 외형에 무사도 정신과 문화를 심는 쪽으로 무사도 정신을 구체화하고 있는 부류의 영화라 것이다.

0  Comments,   0  Trackbacks
울버린 [Wolverine] (1981)


울버린

저자
크리스 클레어몬트 지음
출판사
시공사(만화) | 2013-04-25 출간
카테고리
만화
책소개
엑스맨 가운데 가장 인기 있는 캐릭터 울버린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가격비교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프랭크 밀러의 [울버린]은 소위 프랭크 밀러의 초기 시절에 나왔던 만화책이다. 울버린 1-4 이슈와 언캐니 액스맨 172-173 이슈를 묶었다고 보면 좋다. 대체적으로 울버린이라는 마블 내 최고 인기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면 [울버린 웨폰 X]와 이 책을 드는 경우가 많고 2013년에 나온 영화 [울버린]도 이 만화책에서 많은걸 빌려왔다. 여기서 유의해야 할것은 [울버린]은 오해와 달리 프랭크 밀러가 혼자서 글 쓰고 그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크리스 클레어몬트라고 엄연한 글작가가 붙어있다. 하지만 [울버린]을 소개할때 프랭크 밀러의 이름은 반드시 언급되는데, 이는 프랭크 밀러의 작가적 개성이 [울버린] 이후로 크리스 클레어몬트를 압도할 정도가 되었다는걸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울버린]은 프랭크 밀러의 대표작인 [다크 나이트 리턴즈] 이전에 나온 시리즈다.) 물론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클레어몬트가 생각했던 울버린과 밀러가 생각했던 울버린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져가서 시너지 효과를 보였던 것도 있다.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매력은 무엇인가라는 점에서 [울버린]과 [울버린 웨폰 X]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짐승 병기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뮤턴트의 투쟁기다. 다만 개별 요소는 다르다. [울버린 웨폰 X]는 존 카펜터의 [괴물] 같은 한정된 공간 내에서 벌어지는 몬스터 서스펜스/호러물, 프랑켄슈타인 풍의 실패한 창조주, 실내극의 요소를 도입해 극한 상황에 짐승이 되어가지만 인간이길 포기하지 않는 로건이라는 캐릭터의 내적 갈등에 집중했다. [울버린]은 좀 더 울버린이 캐릭터들이나 배경하고 어떤 관계를 맺는가에 집중한다. 여기엔 사이클롭스나 스톰 같은 엑스맨 멤버들도 등장하고 그 유명한 야시다 마리코도 등장한다.

크리스 클레어몬트와 프랭크 밀러가 끌어오는 배경은 다름 아닌 일본이다.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일본은 현실의 일본하고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울버린]이 그려내는 일본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퍼시픽 림]이나 소피아 코폴라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같이 일본인이 그려낸 일본을 본 외국인들이 그려낸 일본에 가깝다. 그래도 교묘하게  일본 서민들의 삶을 다룬 고전 일본 영화들 속에 자신의 고상한 취향을 은밀하게 섞어놓은 [사랑에 빠진 것처럼]이나 현대 일본 팝 문화가 존재하는 일본의 현실을 그려낸 쪽에 가까운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와 달리, [울버린]은 [퍼시픽 림]처럼 일본 팝 문화가 그려내는 세계를 그대로 현실에 이식하는 쪽에 가깝다.

[울버린]의 일본 문화에 대한 애정은 당시 1980년대라는 특수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 당시 일본의 경제적인 발전에 따라 미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관심과 경계심이 커졌다. 사실 예전부터 일본은 서구권에 많이 노출되온 나라기도 했지만 그 문화가 본격적으로 서브컬쳐에 스며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부터 쿠로사와 아키라가 서구권에서 환대를 받고 쿠로사와의 빠였던 [스타워즈]가 사무라이 이미지를 이용해 제다이라는 희대의 서브컬처 아이콘을 만들면서부터다. [울버린]에서 보여주는 사무라이에 대한 이미지는 [7인의 사무라이]나 [요짐보], [인의 없는 전쟁] 같이 꾸준히 쌓여져 왔던 일본 사무라이 영화나 (소위 인협이라 불리는) 야쿠자 영화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 물론 [블레이드 러너]나 [뉴로맨서]에서 볼 수 있었던 '도래한 미래'로 볼 수 있는 일본 도시 조경에 대한 충격도 담겨있다.

그렇다면 왜 하고많은 일본 문화 중에서도 '사무라이'인것인가? 그 점을 지적하기 전에 울버린 캐릭터의 기원이 서부극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걸 알아둬야 할 것이다. DC의 슈퍼맨이나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로 대표되는 미국식 정파 히어로와 달리 울버린은 DC 배트맨과 더불어 다크 히어로로 분류되는 캐릭터다. 이런 현대적인 다크 히어로의 이미지는 보통 서부극의 무법자와 느와르의 탐정에서 비롯되었다는걸 주지해야 할 것이다. 야생엔 무법자가 있다면 도시엔 탐정이 있다고 할까. 이 중 배트맨이 탐정 이미지를 가져갔다면 울버린은 무법자를 가져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울버린의 탄생이 1880년 캐나다 서부 앨버타 주라는걸 생각해보면 그가 서부 개척사 시절에 몸을 담그고 있는 캐릭터라는건 쉽게 알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그의 기원은 안락한 집을 떠나 정처없이 세상을 방황한다는 서부극 무법자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방랑 클리셰 중 하나로 시작된다. 그렇기에 그가 프로페서 X가 이끄는 엑스맨에 가입한다는 초기 설정은 그가 오랜 방랑 끝에 자신을 받아주는 공동체에 들어서는 익숙한 서부극의 서사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최근 전개된 울버린의 죽음 이슈에서 그가 스스로 만든 공동체를 떠나는건 그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어찌보면 두 작가가 울버린에게 일본 사무라이 문화를 붙여준 것은 서부극 화법에서는 그다지 잘 다뤄지지 않았던 (사실 서부극 자체도 산업혁명이 진행된 뒤에 나타난 장르라 이 부분은 "인디언"이 아니면 깊게 다뤄지진 않는다. 단적으로 서부의 무법자들은 '총'을 쓴다.) 울버린의 '야수성'을 보듬어줄 단초를 발견했던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무사도나 추신구라에서 보여주는 폭력과 그것이 어떤식으로 작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유교의 인의예지에 기반한) 주장들은 분명 매혹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물론 역사책을 들여다보면 일본의 사무라이는 어떤 고상한 전사가 아닌 그냥 먹고 살기에 바빴던 평범한 공무원들이라는게 명백히 드러나지만 (이미 일본 작가와 영화감독들이 탐구한 영역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는 야마나카 사다오의 [인정 종이풍선]와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하나], 야마다 요지의 [황혼의 사무라이]가 있다.) 적어도 사무라이 문화가 '이상'으로 삼고 있는 폭력과 절제의 조합은 여러모로 미국의 만화 작가들에겐 '이국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울버린]은 타자의 문화에 대한 순진한 편견과 이해, 폭력, 시적인 고독을 품은 굉장히 이상한 매력을 지닌 만화가 된다. [울버린]은 로키 산맥에서 사람에게 다쳐 죽어가면서 발광하는 곰을 처치한 뒤 씁쓸해하는 무법자라는 서부극의 영역에서 출발해 일본에서 있었던 짧은 연에서 찾아온 비극적인 정혼 소식에서 비롯된 암투라는 사무라이/야쿠자물의 영역으로 넘어가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 와중에 울버린은 폭력과 타자의 문화가 가지고 있는 외부인에 대한 배척 (의외로 이 부분은 작가들은 일본인이 외국인 보고 내뱉는 가이진外人라는 단어를 제법 예리하게 쓰이고 있다.)를 맞닥트리면서 자신의 야수성과 인간다움에 대한 고뇌를 하며 답을 얻는다. 

이 과정 속에서 두 작가들은 미국 히어로와 서부극의 무법자, 일본 사무라이과 닌자, 야쿠자를 한껏 뒤섞으면서 거기서 튀어나오는 혼종을 즐긴다. 사무라이의 명예를 중얼거리며 답답하게 고집 부리면서도 아버지를 처단하는데 동의하는 마리코와 자신의 욕망에 따라 행동하는 이국적 팜 파탈 닌자 유키오로 대표되는 일본 여자 캐릭터들과 서부극 히어로 울버린이 맺는 [나비부인]적 관계가 그럴것이다. 그들은 현실적이지 않고 지극히 장르적으로 과장 왜곡되어 있지만 동시에 상당한 깊이를 지니고 있는 흥미로운 캐릭터들이다. 그리고 그런 과장되고 왜곡된 서사와 캐릭터들은 1980년대 미국 만화 특유의 현란한 색감과 장면을 설명하는 독백, 독특한 타이포그래피, 도쿄와 미야기를 오가며 마천루와 일본 성과 정원, 닌자와 사무라이 간의 액션을 단칼에 그려내는 프랭크 밀러 특유의 잉크선 굵은 화풍으로 구체화된다. 한마디로 1980년대 미국 아니면 낳을수 없었던 시각 예술인것이다.

[울버린]은 그 점에서 당시 동료들과 달리 후발주자로 출발했던 (울버린은 1974년에 나온 캐릭터였고 동료들과 달리 갓 10년째 되던 신생 캐릭터였다.) 울버린이라는 캐릭터의 개성을 확고하게 자리잡게 한 수작이며 이후 [다크 나이트 리턴즈]로 꽃 필 프랭크 밀러의 마초 미학의 단초를 찾아볼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랭크 밀러의 다른 대표작인 [로닌]과 더불어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닌자 슬레이어]가 가지고 있는 '일본이 본 서구가 받아들인 일본'라는 이상한 매력이 어디서 기원했는가를 찾아볼수 있는 중요한 단서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마블의 상술 때문에 결말이 클리프행어로 끝나 단권 완결성은 부족해 이후 이어지는 내용은 결국 마블 언리미티드를 끊어서 봐야 한다는 점이 문제지만.

'Go To Fly > 만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울버린 [Wolverine] (1981)  (0) 2015.02.08
시도니아의 기사 읽는 중  (0) 2014.10.30
디멘션 W 1권 감상  (0) 2014.02.27
키스우드  (1) 2011.02.10
지어스 11권 감상 / 노리린 1권 잡담  (2) 2010.10.12
Pros & Cons about Paint it Rock. 1  (4) 2010.04.04
0  Comments,   0  Trackbacks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