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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책 (9)
도적 떼 [Die Rauber] (1782)


도적 떼

저자
프리드리히 폰 실러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09-11-3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독일 고전주의 문학의 거장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처녀작이자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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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서 내 직업이 보복이라고 말해라

프리드리히 폰 실러의 [도적 떼] (aka. 군도)는 데뷔작이자 질풍노도 문학의 대표작으로 불리는 희곡이다. 질풍노도는 독일 문학 사조 중 하나로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뒤섞인 독특한 사조를 말한다. 폭압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향한 열망 (계몽주의), 그리스 로마 시대에 대한 재발굴 (고전주의), 숙명적인 비극 (낭만주의)이라는 점에서 [도적 떼]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질풍노도가 어떤지 확인할수 있는 희곡이다. 한마디로 휘몰아친다. 하지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달리 [도적 떼]는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사회적인 영역에도 손을 대고 있었기에 다른 개성을 가지게 된다. 비슷한 작품이라면 하인리히 폰 클라비스트의 [미카엘 콜하스]를 들 수 있겠다.


발표 당시 굉장한 필화 사건을 일으켰던 [도적 떼]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과 [오셀롯], [리처드 3세]를 섞어넣은듯한 작품이다. 한마디로 영주 아들 카를이 밑바닥 생활 끝에 음모로 쫓겨 난 뒤 도적이 되어 군주가 된 폭압적인 동생 프란츠를 향해 그리 깨끗하지만은 않은 혁명을 일으킨다는 내용인데, 궁중 내 암투와 음모를 꾸미는 인물, 밑바닥 삶에 대한 애정부터 시작해 문체와 대사까지 여러모로 실러가 셰익스피어에 영감을 받았다는게 느껴진다. 다만 [도적 떼]는 어디까지나 일반론적인 인식과 비판에 머물렀던 (그래서 범용성이 높은 '고전'이 된거지만) 셰익스피어와 달리 훨씬 시대 상황과 맞닿아있다. 프랑스 혁명 직전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던 변혁의 징조가 곳곳에 감지된다고 할까.


[도적 떼]의 주역들을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는 한마디로 그리스 로마 시절부터 시작한 르네상스 시절에 대한 향수와 복권이다. 카를을 비롯한 도적 떼들은 인간을 억누르는 종교와 구습을 추방하고 (특이하게도 이 희곡에서 가톨릭 신부는 부정적으로 그려지지만 반대로 개신교 목사는 악역의 악행을 비판하면서도 구원을 바라는 긍정적인 인물로 그려진다.) 인간의 가치를 복권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기존의 체제는 부정된다. 당시 독일은 중앙집권체제가 완성된 프랑스나 다른 나라들과 달리 개별 영주가 권력을 차지하고 있었고 영주가 전횡을 저지르는게 가능했던것도 이런 사회적 부조리에 한 몫하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한마디로 남들보다 뒤떨어져 있다는 젊은이들의 사회 인식 자체가 도적질이라는 극단적인 행동을 가능케한 것이다. 심지어 이 잘못된 시스템 때문에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건 악역인 프란츠에게도 적용되는데, 그는 장자 상속으로 인한 부당함에 삐뚤어져 음모를 꾸민다.


하지만 [도적 떼]는 혁명의 성공을 다루는 희곡이 아니다. 오히려 그 혁명의 실패를 다루는 희곡이다. 결말을 말하자면, 카를의 도적질로 통한 혁명은 반쪽만 성공한다.프란츠를 몰아내고 복수하는데 성공하지만 카를은 모든 것을 잃은 상태다. 불행히도 카를의 정신상태는 현명하기에 자신의 상태를 쿨하게 무시할수 없는 지경까지 몰리게 된다. 이런 파괴와 약탈을 계속하자는 도적들을 카를은 모든 것을 버려버린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 조차도. 카를의 이런 유약하고도 섬세한 내면과 도피적인 행각과 이로 인해 촉발되는 비극은 독일 낭만주의의 일면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은 무겁고 이상적인 도원향을 향해 나아가고 싶지만 그 행동은 극단적인 쪽으로 촉발되고 결국엔 파국으로 이른다. 어찌보면 카를과 프란츠는 매우 바이런적인 캐릭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도적 떼]는 매우 다크 히어로/안티 히어로적인 작품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도적 떼]는 지금 보면 매우 모순적인 작품이 된다. 독자가 지금 현재에 도래한 미래를 꿈꾸는 혁명을 얘기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이뤄질수 없을거라고 체념하고 좌절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끓어넘치는 에너지가 꺾이고 쓰러져가는 '허무'가 강하게 남는 작품이라고 할까. 카를이 아말리아를 죽이게 되는 것도, 모든 것을 잃었기 때문에 벌인 체념이라는 인상도 강하다. 원래 [도적 떼]가 결말이 카를의 행위를 정당화하는걸 끝난걸 보면 지금의 [도적 떼]는 타협의 산물일 가능성도 크다. (그럼에 실러는 한동안 도피 생활을 해야 했었다.) 실러가 후일 귀족 작위를 받은 것도 어찌보면 그런 현실에 대한 체념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실러는 혁명가라기 보다는 혁명을 꿈꾸던 문학가였기에 가능했던 행적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도적 떼]는 보편적인 진리를 꿈꾸며 극을 마무리하게 된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다. 카를이 자신을 희생하는 방법은 자세히 뜯어보면 체제의 투항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순교에 가깝다. 배고픈 농부 가족에게 자신을 맡기는 그 단순하지만 슬픈 희생은 이 단순한 체념이 실은 세상의 부조리함에 던지는 마지막 폭탄 아니였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점에서 [도적 떼]는 검열의 칼날 속에서도 지금도 고전으로 남게 된 것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적 떼]는 여러모로 첫 작품 답게 야심과 서투름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몇몇 장면 묘사는 미진한 부분이 있으며 아말리아 캐릭터는 실제하는 여자라기 보다는 이상적인 여성상에 가까운 존재로 그려진다. 시대적 한계로 인한 검열의 흔적도 쉽게 찾아볼수 있다. 그 하지만 실러는 이를 굉장한 에너지와 설득력으로 풀어낼 재주가 있었으며 몇몇 대사들은 그 에너지만으로도 기억할만한 가치가 있다. 완벽한 작품은 아니더라도 기억할만한 데뷔작으로 기록될 자질은 충분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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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Dying Words] (2009)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저자
니컬러스 에번스 지음
출판사
글항아리 | 2012-06-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지난 십 년간 나온 사라진 언어에 관한 모든 책 중에서 지적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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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컬러스 에번스의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한 언어학자가 희귀 언어를 발굴 복원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시작은 호주에 있는 카야르딜드어를 추적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 언어가 가지고 있는 특징들을 지적하면서 촘스키가 만든 언어학의 주류적인 해석이였던 '보편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그리고 이것이 세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관으로 이어진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고 저자는 이 언어들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고 있다는 사실을 쓸쓸하게 적어내리면서 하나의 언어가 단순히 문화를 담아내는 것 이상의 복잡함을 지니고 있으며 이런 언어들이 사라진다는 것은 세계 하나가 사라지는 것과 다름없다고 말한다.

이 도입부에서 볼 수 있듯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주류 언어와 다른 소수 언어들의 세계와 그것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현실에 있는지 독자들을 알려주려고 한다. 다만 이 책은 단순히 언어의 소개와 단상에 머물지 않고 언어학에 대한 심도 있는 접근을 취하고 있는 책이다. 그러니깐 책 전체 기조가 근본적인 언어의 '구조'가 어떻게 인간의 정신과 문화에 어떻게 결착되어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한다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가볍게 읽기엔 다소 어려운 책이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언어학의 지식이 있어야지 이해하면서 읽을수 있다고 할까.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언어학이 문학하고는 완전히 다른 논리학과 프로그래밍의 영역에 걸치고 있다는걸 드러내는 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그런 일견 난해해보이는 언어 구조가 실은 그 자체로 무수한 매력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보편성으로 환유될 수 없는 체득된 문화가 배어 있는지 꽤나 감동적으로 설득하고 있는 책이기도 한다. 저자는 호주의 아넘랜드 사회의 무수한 언어들과 언어를 사용하는 자들의 양태, 그리고 아넘랜드 언어의 구조와 갈라져 나간 과정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어떻게 독특한 부족의 영역을 구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나아가 왜 "이 언어들이 그렇게 좁은 영역에 많이 남아있는가"가 아니라 "왜 그렇게 많은 언어들이 사라졌는가"에 대해 질문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왜 그렇게 많은 언어들이 사라졌는가?"

저자는 그것이 어느정도 인류의 진화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영토 팽창주의자들의 야욕이 강했던 단일 문화/세력권의 등장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보고 있다. 그런 단일 문화/세력권의 언어는 통치의 유용함을 위해 여러 정책들을 이용해 언어를 통일하거나 잠식하는 과정을 거쳐 일종의 언어 권력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국 무수하게 남아있던 언어들을 사라지게 하는데 저자는 일조했다고 보고 있다 또한 언어에 대한 이해와 연구가 비교적 늦게 시작되었다는 점, 지속적인 형태로 말을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이 늦게 등장했다는 점도 들고 있다. 비록 구술 언어로써 흔적이 문자 언어에 남아있다고 해도 이것을 재현하고 보존하는건 힘든 일이며, 그 보존 방법에 대해서도 단순히 녹음을 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영상 촬영을 해 구술하는 그 순간도 보존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상당히 논쟁이 있다고 밝힌다. (일단 저자는 후자 쪽에 가까운 편이다.)

이런 사례 연구들과 더불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언어학자가 겪는 희귀 언어 연구 과정의 고충과 사연들을 담담히 털어놓는다. 간신히 살아남은 언어, 제대로 잊혀져가는 언어, 멸절한 언어.... 기적적으로 생환한 언어에 대한 이야기를 써내려가는 에반스의 서술은 차분하면서도 희열에 가득차 있다. 그리고 그런 언어의 보호는 무엇보다도 실제 그 언어를 쓰는 화자의 인식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사례들을 설명하면서 덧붙인다. 그렇다면 왜 이런 희귀 언어를 보호해야 하는가? 물론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희귀언어의 보호가 문화적 다양성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기본 명제를 깔아두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에서 인상깊었던 부분이라면 희귀 언어로 쓰여진 문학이 어떻게 운문 문학의 구조하고 연결되어있는지였다. 쿠와루어로 지어진 서사시 [톰 아야 캉게]의 시적 구조를 분석한 부분에서 저자는 "정연하게 상호 연관된 정형구들"과 "음보와 음조 변화"를 서술하면서 이 운문 문학이 언어적 구조와 어떻게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는지 서술하고 있는데, 실제 화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그 매력을 이해시키려고 하는 저자의 노력과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나름의 구조가 매우 감명깊게 와닿았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는 일견 어렵고 난해해보이는 언어의 구조가 한 인간과 나아가 그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다는 걸 보여주면서 그 언어의 가치를 통해 희귀 언어가 왜 보호되어야 하며, 그 희귀 언어를 쓰는 자들과 연구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 있다. 물론 편안하게 읽기 힘든 책이고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나름의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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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그리고 도시의 여성 산보자: [사진의 작은 역사], [구경꾼의 탄생], [시네마 테크노 문화의 푸른 꽃]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사진의 작은 역사 외

저자
발터 벤야민 지음
출판사
| 2014-0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 / 사진의 작은 역사 외』는 철학,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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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의 탄생 - 세기말 파리, 시각문화의 폭발

저자
바네사 R. 슈와르츠 지음
출판사
마티 | 2006-01-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마릴린 먼로도, 노 대통령도, 욘사마도…, 정말로 똑같다고?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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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마.테크노문화의푸른꽃

저자
김소영 지음
출판사
열화당 | 1996-09-05 출간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책소개
상태 상급관련서 조니 뎁(일본어번역서) 고어영화 영화기호론(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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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사진의 작은 역사], [구경꾼의 탄생], [시네마 테크노 문화의 푸른 꽃] 세 책을 읽고 제출한 독후감을 약간 수정해서 내놓은 글입니다.)


발터 벤야민의 ‘사진의 작은 역사’는 사진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자본주의가 흔들리게 된 지금, 사진의 산업화와 역사, 미학적 변화를 통해 사진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저작이다. 그는 일단 지금까지 사진 예술의 미학을 논의할 때 적용되던 기존의 속물적인 예술 개념에 대해 ‘아둔한데다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고 비판하면서 사진이 가지고 있는 본질, 즉 기술에 대해 재인식을 요구한다.

벤야민은 이 와중에 초기 사진들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말기 초상 회화에서 등장했던 빛과 그림자에 대한 감각을 가지고 있던 복제기술인 메조 틴트 기법을 주목하면서 초기 사진들이 가지고 있던 어떤 분위기(후술하겠지만 이것은 아우라다)에 대해 주목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현대 (1930년대) 사진들은 그런 분위기가 붕괴하면서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논의를 할 수 있게 됬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기술과 예술, 아우라에 대한 논의는 후속작인 ‘기술 복제시대의 예술작품’으로 이어져 확장한다. 그는 이 글에서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에 대한 분석을 기도했을 때 자본주의는 아직 초기 단계에 있었다”라고 말하며 글의 서문을 열고 있는데 이는 벤야민의 매체미학이 단순히 미학에만 머물지 않고 어떤  역사적 경제적인 발전 양태와 관계있어왔다고 보고 있다.

벤야민은 이어 자본주의 아래에서 있었던 생산 조건의 변화들이 어떤 형식으로 나타나게 됬는지 지금에서야 파악이 가능해졌다고 보고 있다. 벤야민은 이런 생산 조건의 변화를 파악하는 방식을 현재의 생산 조건에서의 예술의 발전 경향들을 파악하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그가 고른 것은 ‘현재’의 예술의 발전 경향은 바로 예술의 기술적 복제다. 벤야민은 이를 파악해 예술의 발전 경향과 사회적 변화, 나아가 어떤 철학적인 질문에 대해 던지고 있다.

벤야민은 일단 예술작품은 원칙적으로 항상 복제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예술 작품의 기술적 복제는 새로운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이 기술적 복제가 역사적으로 긴 간격을 두고, 그러나 점점 더 강도를 더해가면서 관철됬다고 보고 있다.

그는 인쇄 기술을 예로 들면서 석판 인쇄부터 이 인쇄 기술이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이 석판 인쇄의 간편함은 곧 일상의 모습을 담아내기 시작했으며 영상의 복제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지만 수십 년도 지나지 않아 사진 매체가 등장해 완전히 근본부터 뒤집어 엎는 혁명을 일으켰다. 벤야민은 이 혁명을 ‘손에서 눈으로 예술적인 임무가 옮겨졌다’, ‘그것은 예술의 작업방식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표현하며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찾아보려고 한다.

이어 벤야민은 가장 완벽한 복제에도 예술작품의 여기와 지금으로서, 곧 예술 작품이 있는 장소에서 그것이 갖는 일회적인 현존재가 빠져있다고 적고 있다. 이 현존재는 지금 여기 존재한다는 사실이며 따라서 복제품에는 예술 작품이 가지고 있던 진품성의 영역 전체는 기술적 복제 가능성에서 벗어나 있고 다른 어떤 복제의 가능성에서도 벗어나 있다. 하지만 간단히 위조품으로 낙인 찍을수 있는 기존 복제와 달리 기술적 복제는 그렇게 쉽사리 낙인을 찍을 수 없는데 벤야민은 그 이유로 기술적 복제는 원작에 대해서 수공적 복제보다 더 큰 독자성을 지니고 있으며 원작이 도달할 수 없는 상황에 원작의 모사를 가져다 놓을 수 있다.

이렇게 기술적 복제로 복제된 예술작품은 예술 작품 존속 자체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제로는 예술 작품의 진품성이라는 핵심 부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벤야민은 이를 아우라라 불렀는데 그는 예술작품의 기술적 복제 가능성 시대에서 위축되고 있는 것은 예술작품의 아우라라고 보고 있었다.

이 아우라라는 개념이야말로 벤야민의 철학을 관통하는 개념으로 아까 언급한 ‘사진의 작은 역사’에서 먼저 주창한 개념이지만 이 ‘기술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한층 확장되어 예술 전반까지 아우르려는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이 아우라를 특수한 형식의 지각으로, 기술과 대상의 상호작용에 따라 결정적으로 규정되며 이런 아우라가 일종의 제의적인 숭배 태도를 가진 것이라고 보고 있었다. 하지만 대량복제 기술이 예술에 적용되면서 이 일회적인 가치를 가진 아우라는 붕괴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에 따라 아우라가 새로운 수용 맥락을 요구하게 됬다.

재미있게도 벤야민은 이 아우라의 붕괴가 부정적인 것이 아닌, 예술이 제의적인 기능과 의식에서 해방되어 정치에 바탕을 두게 된다고 보며 긍정적인 현상으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런 아우라는 사실 자료를 파시즘적으로 재가공할 위험이 있다고 그는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벤야민의 주장은 그가 몸담고 있던 사회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즉 벤야민은 기술복제라는 새로운 상황이, 예술의 아우라라는 부르주아적인 현상을 해방시키고 나아가 정치적인 실천을 실현시킬수 있을 것이라 보았다. 하지만 벤야민은 동시에 이런 실천을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가 필요하다가 못을 박아두었다. 그는 당시에도 있었던 스타 숭배를 사이비 아우라라 비판하면서 이를 해체하고 다른 이상을 위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고찰했다.

벤야민의 이런 기술 복제에 대한 관점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다소 순진하고 미흡한 부분도 있다. 그는 2차 세계 대전에 죽었기 때문에 전후에 있었던 미디어 기술의 발전과 TV 방송 같은걸 예측하지 못했고 미디어 기술의 발전에 따른 개인이 영상을 대량복제하는 주체로 자리잡게 된 (유튜브로 촉발된 UCC) 돌발적으로 등장한 시대적인 질문에 대해서는 예측하지 못했다. 특히 후자의 질문은 후대 학자들이 풀어야만 하는 문제로 남겨졌다. 또 스타 아우라를 역으로 이용해 정치적으로도 산업적으로도 도발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을 한 장 뤽 고다르의 [만사형통] 같은 시도들에 대해서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우라가 파시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라는 지적에서 그는 무척이나 193-40년대에 등장한 레니 리펜슈탈이라던지 선전 영화의 위험성부터 시작해 1980년대의 MTV 문화로 인한 감각적인 영상, 1990년대 걸프 전쟁을 하나의 엔터테인먼트 (게릴라 전은 새로운 엔터테인먼트!)로 만들어버린 CNN, 2000년대 UCC 문화 같은 것들을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었으며, 이는 전후 세계의 모든 영화 감독들의 ‘아우라와 스펙타클이 가지고 있는 파시즘’라는 화두를 본격적으로 정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점만으로도 벤야민의 철학은 기술의 발전을 완벽하게 이해하진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체 철학의 대부로 자리 잡을수 있었다.

벤야민이 이런 고찰을 하게 된 계기는 19세기 파리의 시각문화와 깊은 연관이 있다. 파사주 프로젝트와 아케이드 프로젝트로 대표되는 벤야민의 도시 문화에 대한 연구는 비록 벤야민의 때이른 죽음으로 이 연구는 완성되지 못하고 메모 덩어리로 끝이 났지만 그래도 중요한 연구자료가 되고 있다.

바네사 R. 슈와르츠의 [구경꾼의 탄생]은 벤야민이 봤던 19세기 파리를 볼 수 있는 중요한 책이다. 슈와르츠의 [구경꾼의 탄생]은 19세기 파리에 있었던 스펙타클 몇 가지를 골라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정기간행물, 시체를 감상하는 산보자, 밀랍인형 박물관, 디오리마, 뉴스 영화가 나온다.

파리가 이런 식으로 스펙타클의 전시장이 된 이유를 저자는 오스망화로 보고 있다. 오스망화는 185-60년대에 파리에서 전개된 부르주아 사회질서의 상승과 관련된 심대한 경제적 문화적 변동의 약어로 이런 재설계로 인해 파리는 가장 먼저 모더니티의 전시장이 됬고 곧 파리는 현대 도시의 프로토타입같은 모습을 보이곤 했다.

먼저 나오는 것은 대로와 정기간행물이다. 이 대로는 건설되는 동안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곧 현대적 파리의 상징이 되어 카페, 극장, 신문 같은 유행하는 호사품들과 볼거리들을 제공되기 시작했다. 카페와 극장은 파리라는 도시의 스펙타클을 관람하기 위한 하나의 좌석이 되었으며 신문은 항시 도시에서 일어나는 스펙타클을 기사로 보도하거나 대중소설나 일러스트 같은 자체적인 스펙타클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파리는 이전에 없던 새로운 스펙타클을 하나 만들어낸다. 바로 시체를 관람하는 것이다. 이 파트에서 저자는 파리 모르그에 전시된 아이의 시체를 보러 파리 시민들이 몰려든 걸 묘사한다. 저자는 이 모르그를 실증주의 성지로 묘사하면서 과학의 발전을 통해 ‘선정적인 이야기 속에서 평범함과 일상이 묻어나고 삶이나 죽음마저도 구경거리가 된 파리와 어울렸다’고 보고 있다. 이는 죽음이나 병적인 것들과 동떨어져 있었고 오히려 쿨한 볼 거리에 가까웠다.

이 시체를 관람하는 행위는 곧 밀랍인형 박물관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밀랍인형 박물관은 시체전시라는 내용에 박물관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결합해 절묘한 방식을 만들어냈으며 상기한 모르그의 시체 관람이 전해주던 구경거리화된 현실을 재현했다는 점에서 당대 파리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게 된다.

이 밀랍 박물관은 단순히 인물을 배치하는 것 이상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는데 그레벵 박물관의 디오라마 같은 경우 하나의 시간과 사건, 그것이 가지고 있는 서사를 3차원으로 재현했으며 여러 위치에 전시물을 부여해 관객의 관심을 유도했으며 나아가 장면의 서사를 전개시키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삼았다. 이런 밀랍 인형 박물관의 전시 형태는 곧 관람객이 박물관 전시에 동작을 이입할 권력을 주었다. 즉 박물관 안의 산보를 통해 서사를 진행시키거나 그 서사를 찬찬히 들여다 볼 수 있는 접근법을 밀랍 박물관은 만든 것이다.

밀랍 박물관의 이런 식의 스펙타클의 형상화는 파노라마로도 이어진다. 우선 파노라마는 전체 풍경이라는 그리스어를 의미하고 있으며 그 말대로 전체 풍경을 보여주는 상영 체계였다. 이 파노라마의 장치 원리는 거대한 원형그림을 세워놓고 천장 틈새에서 들어오는 자연광을 그림에 비추어 자연의 환영을 보여주는 형식이였으며 관람객들은 어두운 통로로 들어와서 방 한가운데 있는 플랫폼 위에 선 채 끝이 보이지 않는 커다란 그림으로 둘러쌓여서 그림이 전해주는 스펙타클을 맛보았다. 이 때문에 관객들은 실제로 보이는 것과는 다른 시각적 착시가 가져오는 것으로 스펙타클을 느낄 수 있었다. 이 파노라마는 원래는 풍경 묘사로 시작했지만 세기말이 되면서 밀랍 박물관처럼 신문을 각색해 현실의 구성하기 시작했으며 이런 변모는 밀랍인형관의 전시 체계나 디오리마하고 많은 연관 관계가 있었다.

이 파노라마가 성공한 이유는 ‘완벽한 재현’이 아니라 재현이 만들어내는 환영을 보고 있는 관객을 현실이라 믿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환영이 만들어내는 강력한 설득력은 파노라마에서 싹트게 되다가 마침내 영화에서 활짝 꽃피우게 되고 파노라마의 자리를 빼앗게 된다. [구경꾼의 탄생]의 마지막 역시 영화의 등장이다. 저자는 영화와 영화적 경험을 연속이자 동시에 단절을 표시하는 매체라 말하며 대중 수용자인 관객과 현실을 구경거리로 전환시키려는 기술적 시도를 결합시켰다고 보고 있다.

이런 지난한 변화 과정을 설명하면서 저자는 파리라는 도시가 어떻게 새로운 형태의 스펙타클을 만들었으며 시체 관람과 거기서 영향을 받은 밀랍박물관, 디오리마, 파노라마를 거쳐 영화로 넘어가는 도시 스펙타클의 역사를 조감하고 있다.

[구경꾼의 역사]에서 개인적으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바로 시체 감상 부분이였다. 벤야민의 저작들을 보면 [구경꾼의 역사]가 소재로 삼고 있던 19세기 파리에서 살면서 시를 쓴 프랑스 시인 샤를 보들레르의 [악의 꽃]에 대한 인용이 많은데, 이 [악의 꽃]에는 시체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난다. 비록 이 시체의 이미지는 파리 구경꾼들과 보들레르가 전유했던 것과는 많이 달랐지만 (보들레르에서는 [구경꾼의 역사]에서 언급한 것과는 다른 탐미적인 이미지로 등장한다.) 그래도 시체 이미지가 당대 문화사적 맥락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웠다. 벤야민의 기술복제 논문에 담긴 논지들은 이런 지난하고도 변화무쌍한 19세기 파리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걸 확인할수 있었던 점도 인상 깊었다.

이어지는 김소영의 [시네마, 테크노 문화의 푸른 꽃]의 두 글은 이 발전상과 벤야민의 기술 복제가 예술에 끼치는 영향을 종합하고 있다. 먼저 ‘도시를 걷는 그녀, 플라네즈’에서는 이탈로 칼비노의 [보이지 않는 도시]를 인용하면서 시작한다. 글쓴이는 이 소설에서 도시 문화 속에서 여성의 존재, 나아가 역사적 주체성은 거의 없었다고 보고 있다. 글쓴이는 영화를 통해 이 주체성을 회복시키려고 하면서 서구의 텍스트들을 살펴 보고 있다.

첫 번째 단락에서 글쓴이는 플라톤의 동굴 이론과 현대 영화 이론의 공간적 수사학, 프로이트의 건축물을 들며 이것들이 어떻게 영화 평론 내에서 작동하는지를 환기시킨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내 이런 수사학들은 ‘고고학적 작업’으로 전락했다고 보면서 이를 대체할만한 동적인 관객을 상상해보자고 제안한다.

그리고 글쓴이가 드는 동적의 관객은 바로 [구경꾼의 역사]에서 들었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입에 있었던 도시인들이다. 이들은 도시에 매혹되어 있었으며 그 매혹과 영화는 역시 산업화된 대도시의 생산력을 토대로 발전했다고 보고 있다. 여기서 김소영은 발터 벤야민의 아케이드를 들고 온다.

위에서 [구경꾼의 역사]에서 주지했듯이 파리의 파노라마와 디오리마는 도시 대중의 시선이 가장 몰리는 곳인 ‘대로’에 놓여져 있었다. 글쓴이는 초기의 영화와 그것의 카메라 움직임은 이런 대로를 활보하는 대중의 시선을 따라 갔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확실히 초기 영화들은 철도라던가 (최초의 영화 제목은 ‘기차의 도착’이었다.) 이동하는 도시인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그 다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벤야민이다. 벤야민이 전개했던 기술 복제와 예술에 관한 논의는 위에서 전개했기 때문에 생략하기로 하고 벤야민이 저작활동을 했던 당시 영화의 흐름을 간략히 집자면 1920년대부터 영화는 고정된 위치에서 벗어나 카메라의 배치를 달리해 찍은 각각 이미지들의 연결을 고민하는 몽타주 기법이 도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몽타주들은 종종 도시문화와 스펙타클에 매혹된 산보가 (플라네르)하고 연관되고 했다.

러시아 혁명 이후 모스크바를 유토피아로 묘사하는 지가 베르토프의 [영화 카메라를 든 사나이], 베를린을 중심으로 한 [베를린, 대도시 심포니], 세계로 퍼진 마천루의 이미지를 가지고 미래의 도시를 상상한 프리츠 랑의 [메트로폴리스] 등 초기 몽타주와 카메라 기법을 이용해 19세기 파리보다 더욱 발전한 메트로폴리스라는 구경거리를 관람하는 구경꾼들의 시선과 매혹을 담아내고 있었다.

비록 벤야민 자신은 이 당시 영화보다는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곤 하지만, 이런 예술가-플라네르의 변화들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품]을 통해 19세기 ‘아우라’의 유물들인 아케이드, 파노라마, 산업도시들의 몰락과 동시에 20세기적인 ‘기술복제’의 아이이자 혁명의 파이오니어인 영화가 도래했다고 선언하고 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이 혁명의 아이가 잘못하면 파시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도 명백히 하고 있다.

김소영은 이제 여기에 여성이라는 존재를 놓기 시작한다. 우선 그녀는 도시의 여성 플라네르는 창녀라는 존재로 나타났다고 보고 있다. 이는 가정과 같은 개인적 영역을 여성의 공간으로, 그리고 거리나 공공 영역들을 남성의 공간으로 구획하는, 성차에  근거한 사적 영역/공적 영역의 이분법이 전제되어 있다. 이런 이분법은 곧 밤거리를 활보하는 여성들의 인권 운동을 통해 깨졌다.

이제 이렇게 자유를 얻은 여성 플라네르들 앞에 나타난 것은 바로 영화와 아케이드다. 여가 시간에 공적 공간에서 즐거움을 추구할 권리를 소유할 수 없었던 여성 주체에게 영화와 영화관은 그 권리를 안겨주었다. 물론 이 권리를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는 또 많은 시간이 필요했으며 지금도 온전하다고 하기엔 힘들다. 그리도 아케이드는 윈도우 쇼핑을 통해 영화와 비슷한 파노라마적인 쾌감을 여성 주체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런 둘의 공통점은 이미지를 소모한다는 점에 있었으며 여성의 근대적 정체성과 욕망이 부분적으로 형성되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런 와중에 등장하는 여성 감독이 있다. 바로 엘비라 노타리라는 감독이다. 비록 인정받진 못했지만 엘비라는 나폴리 지역의 영화문화의 초기 지도를 만들었으며 나폴리라는 도시의 매혹적인 파노라마를 펼쳐보였다. 엘비라 노타리의 영화들은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영화 이론에서 당연히 받아들여졌던 수인/관객이 아닌 동적이고 유목적인 성격에 주목하게 만든다. 나폴리는 전통적으로 동적인 스펙타클을 제공하는 도시였으며,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철도가 건설된 곳이다. 나폴리의 상영관은 그 모더니티의 중심인 아케이드에서 상영됬다. 따라서 나폴리 여성들에게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은 모더니티의 총화를 맛보러 간다는 것이였고 엘비라 노티라는 그 욕망에 걸맞는 영화를 만들어서 내보낸 것이였다. 즉 엘비라 노타라 같은 여성 영화 감독과 여성 관객들은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남몰래 어머니 도시를 배회하는 쾌락을 맛보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이 마냥 해방적인 것도 아니였다. 전쟁의 업화 이후 간신히 일어나는 중이였던 독일의 베를린은 사정이 달랐다. 전쟁의 피해를 복구하기 위해 여성들도 공장을 나가야 했다. 이런 공장은 모더니티와 성적 해방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노동량 강화라는 족쇄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해방조차 남성-파시즘의 등장으로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됬다. 하지만 글쓴이는 이런 여성들의 영화를 전유한 모더니티 항유가 현대 영화이론 중 수용이론에 대한 대안의 근거로 제시할만하다고 보고 있다.

‘영화 연구의 소지형도’는 상품으로서의 스펙타클과 그에 매혹된 관객과의 관계를 강렬하게 보여주는 이미지에서 출발한다. 19세기 파리와 20세기 초 벤야민의 시대를 거처 마침내 20세기 말엔 모든 삶이 거대한 스펙타클들의 축적이 되어버린다. 이 거대한 구경거리의 사회에서 문화는 점점 상품에 지나지 않게 된다. 글쓴이는 그에 따라 영화 연구는 이제 이미지가 정교하게 상품화되는 문화 전반에 대한 학문이 되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현 시대를 전자복제 시대라고 보고 있다.

글쓴이는 남성과 여성의 텔레비전 시청 스타일을 들면서 이 곳에서도 사적인 것을 개인적인 것과, 공적인 것을 사회적인 것으로 연관짓는 사고가 가정을 일터와 분리하기 시작하는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시작됬다고 보고 있다. 허나 소비사회가 등장하면서 이 엄격한 구분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글쓴이는 비디오 테이프와 텔레비전이라는 전자 복제 시대의 대표적인 매체를 비교하면서 이 구분이 어떤 식으로 흔들리고 있는지 설명하고 있다. (리모컨을 통해 독서를 하는 것처럼 영상을 받아들인다던가.)

이를 통해 글쓴이는 영화 관람이 특정한 오해에 기반하고 있는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적자면 지금까지 영화 관람은 내러티브에만 집중하고 있었던 것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글쓴이는 이어 영화 연구의 첫 번째 과제로 관객들이 영화 카메라가 탐사해 열어 주는 시각적 무의식의 세계를 또바로 읽는 힘을 부여해줘야 하며 나아가 동시대의 모든 복제 이미지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김소영의 [시네마, 테크노의 푸른 꽃]에 실린 두 편의 글은 1996년이라는 시대적 상황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읽어야하는 글이다. 1990년대 한국은 민주화 이후 페미니즘 이론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졌으며 기존의 문예영화 스타일의 내러티브 중심의 비평을 배격하고 새로운 비평 형식을 찾고자 했다. 그런 점에서 첫 번째 ‘도시를 걷는 그녀, 플라네즈’는 그런 페미니즘적인 접근으로 모더니즘에 대한 여성적 스펙타클에 대한 고찰과 파악을 통해 영화 이론의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고 있으며, 두 번째 ‘영화 연구의 소지형도’는 그렇게 정리한 화두를 가지고 어떻게 새로운 미디어 시대의 영화 비평을 할 것인가에 대해 방향을 제시하는 글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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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외 [Белые ночи / White Nights]

백야 외

저자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스끼 지음
출판사
열린책들 | 2010-06-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19세기 러시아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표도르 도스또예프스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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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리뷰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기본으로 했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는 [가난한 사람들]로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등장한 초기와 유배 생활에서 풀려나 [죄와 벌]이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걸작들을 쏟아내던 후기 사이에 끼어있는 시절에 쓰여진 소설이다. 그렇기에 이 소설들은 [죄와 벌]이라던가 [악령],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만개한 특유의 도덕론이라던가 어마어마한 스케일과 문장들은 제거된, 소품에 가까운 소설들이 모여 있다.

대부분은 [백야]를 기대하고 책을 샀을것이고, 그 기대는 배반하지 않는다. [백야]는 그야말로 몽상가의 짝사랑 이야기다. 해가 지지 않는 상트페테르스부르크의 여름, 주인공은 즐거운 사람들 사이에서 우울과 몽상으로 소일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루하루를 거리를 쏘다니면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고독에 빠져 여러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주인공은 상심해있는 나스첸카를 만나게 되고, 짝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나스첸카는 이미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주인공의 짝사랑을 모른다.

[백야]의 사랑은 한마디로 철저히 정신적인 것이다. 낮도 밤도 아닌 그 공간에서 주인공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공간에 갇혀 살아간다. 초반의 이야기와 상관없는 장황한 독백도, 사실은 그 공간에 갇혀있는 사람의 심리를 표현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주인공은 그야말로 19세기 등장한 도시 문화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산보자인 것이다. 허나 이 산보자는 백야 속에서 혼자이기에 도시 속에서 고독에 갇혀 있다. 

나스첸카의 만남은 고로, 자신처럼 낮도 없는 근대적 공간에 갇혀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싹트게 하는 단초가 된다. 나스첸카는 첫 만남에서 할머니에게 말그대로 매여있는 존재다. 그런 나스첸카가 사랑에 빠진 상대는 집 밖에 있는 세상으로 나가게 할 수 있으며 교양있는 사내로 묘사된다. 그러나 그 사내는 또 나스첸카를 두고 어디론가 사라지고 나스첸카는 그 남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 남자는 돌아오지 않고 나스첸카는 사랑에 보답받지못하고 홀로 남겨졌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게 된다. 주인공이 나스첸카에게 매료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는데, 주인공은 나스첸카가 자신처럼 다른 사람들처럼 섞이지 못하고 혼자만의 고독에 갇혀있다고 보았고 거기에 공명한 것이다.

하지만 나스첸카와 주인공 간의 큰 차이가 하나 있다. 나스첸카의 보답받지 못한 사랑은 실제로 이뤄진 관계에서 답신 없는 정체 상태에 있다면, 주인공의 보답받지 못하는 사랑은 처음부터 끝날때까지 제대로 발신되지 못한다. 마지막에서야 도달하긴 하지만 나스첸카는 결국 그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가 기다리던 사랑을 선택하게 된다. 그렇기에 주인공과 나스첸카의 상처에 대한 공명은 불균형을 이루게 된다. 나스첸카에게 주인공과의 관계는 우정과 공명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반대로 주인공에게 나스첸카과의 관계는 공명하면서도 나스첸카가 자신만을 봐주기 바라는, 사랑의 감정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기에 [백야]는 꿈으로 끝날 수 밖에 없다. 한쪽이 받을 수 없는 사랑은 결국 무너질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스첸카의 선택에 주인공은 가슴아프지만 그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백야에 있었던 꿈같은 경험으로 그 기억을 간직한다. 마지막 독백은 그런 주인공의 심리를 극적으로 드러낸 셈이다. 이 점에서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과의 공명을 원하는 개인의 심리와 그것의 불가능함을 설파하면서 솜에 젖어 피곤한듯한 감수성으로 독자들을 매혹한다. 도스토예프스키 다른 소설들이 엄청난 스케일로 밀어붙인다면, '백야는 짧고 단아하지만 그 속은 격정적이고 어찌할수 없는 매혹적인 사랑의 우울이 무게있게 담겨있는 걸작이다.

다른 단편들을 리뷰하고 끝내자고 한다 '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는 배우자의 불륜을 희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소품이다. '약한 마음'은 모든 이들이 행복지기를 바라던 한 청년이 끝내 미쳐버린 이야기를 통해 아가페적인 사랑과 그것의 무거움을 다루고 있다. 타인과의 공명과 그 축축한 무드라는 점에서 '약한 마음'은 '백야'하고 연관해서 읽어볼만한 가치는 있을듯 하다. ' 와 연결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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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무지쿠스 [The World in Six Songs] (2009)


호모 무지쿠스

저자
대니얼 J. 레비틴 지음
출판사
마티 | 2009-12-20 출간
카테고리
과학
책소개
'음악 본능'이 진화에 관한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에 해답을 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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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니얼 레빈의 [호모 무지쿠스]는 음악과 뇌, 인지과학과 진화학을 넘나들면서 음악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은 음악을 여섯 종류로 나누면서 이런 음악들이 어떻게 분화되었고 어떤 식으로 음악이 만들었는지를 다루고 있는데 대니얼 레빈은 먼저 음악의 힘을 이끈 문화적 생물학적 힘은 무엇일까 추측을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먼저 레빈은 단일한 뇌 기제의 진화가 공통의 사고 양식을 만들어냈고, 이것이 밑거름이 되어 언어와 예술이 발달했다고 믿는다. 그리고 관점 바꾸기와 관계 짓기로 들고 있다. 레빈은 이런 관계의 이해는 음악 감상의 근본을 이루는 핵심이라 보면서 '옥타브 동치성'을 예를 들면서 모든 예술은 인간 경험의 어떤 측면을 표상하고자 하며 선택이 개입한다고 정리했다. 

대니얼 레빈은 그러면서 이런 창조적인 뇌가 자웅선택이 각광받던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이것이 자연선택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고 봤다. 그리고 이런 핵심은 예술가가 살아남는데 영향을 미쳤다. 이렇게 노래와 예술가가 살아남는 이유에 대해 정리한 레빈은 우애의 노래, 기쁨의 노래, 위로의 노래, 지식의 노래, 종교의 노래, 사랑의 노래로 구분한다.

먼저 우애의 노래에서 그는 인간이 노래를 통해 하나가 되고 단결하게 되는 과정을 설명한다. 사회적인 종인 영장류와 그를 이어받은 호모 사피엔스가 거대한 무리를 형성하고 그것을 유지하면 얻을 수 있는 이득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그 이득 때문에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 되었으며 음악도 거기에 레빈은 보고 있다. 인간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더 잘 반응하기에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는 전쟁과 사냥에만 국한되지 않는, 정치적인 구조를 만들어내는데에도 도움을 줬으며 하위 집단의 소외된 사람들을 단결시키는데도 큰 영향을 줬다.

두번째 기쁨의 노래에서는 음악을 연주하면 도파민 호르몬 수치를 조절할 수 있다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렇기에 음악을 연주할때 생기는 기쁨을 사회적 유대와 더불어 자신의 감정상태를 알리는데 유용하게 쓰였다. 이런 점은 상업적인 영역 뿐만이 아니라 지도의 영역에서도 큰 영향을 미쳤다.뇌는 특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독자적으로 발전해 온 진화와 적응의 산물인데 이는 보상과 처벌이라는 시스템으로 발전해왔는데 이것은 뇌의 복잡한 신경화학적인 상태하고 연관이 있다.

세번째 위로의 노래에서는 노래의 특정한 리듬과 선율 모티브의 반복이 예측가능성의 요소가 편안함을 안겨주는 것으로 시작해 자장가의 구조적 특성, 소외된 자들을 위한 노래에서 느껴지는 호르몬 분비의 문제와 심리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레빈은 이런 연대감을 돋보이게 하는 행동이 회복의 과정을 돕는다고 보고 있다.

네번째 지식의 노래는 음악의 구성적인 요소가 사회 전체가 꼭 알아야 하는 필수 지식을 나누고 막강한 기억의 도구가 되었기 때문에 지식의 도구로써 음악이 쓰였다고 정리하면서 이것이야말로 음악의 최초의 기능 아니였을까 보고 있다. 레빈은 지식은 감정이라 말하면서 지식을 골라 기억하고 전파하는 것은 감정에 따른 판단이라 말하고 있다. 그 점에서 지식의 노래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체득한 교훈을 최적으로 맞춰진 형식으로 만들어진 노래라 할 수 있다.

다섯번째 종교의 노래에서는 음악적 뇌의 발달과 관점 바꾸기의 일면인 자의식이 영적 열망이 일어나게 만들고 자신의 삶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욕망을 만들어냈다고 말하면서 이것이 종교, 제의, 믿음과 연관된 노래가 초창기 인류의 사회 체계를 만들어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다. 반복된 동작을 수반한 의식에 공통의 내러티브나 세계관이 결부된 종교의식에서 음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상당한데 이는 음악의 구조가 종교의식의 행위와 맞물려서 돌아가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노래에서는사랑과 그 신경화학적 작용이 장기적인 유대와 애착을 위해 세워졌다고 말하며 사랑의 노래는 우리의 감정을 명확히 드러내는데 도움이 된다고 보고 있다. 음악을 감상할 때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들은 세상에 대한 무의식적 지각의 일부를 이루는데 레빈은 음악이 정직한 신호라는 가설을 차용해 이 사랑의 노래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진화적 생물학적 유산이라고 보고 있다. 그것들은 신경화학적으로 우리를 자극하며 사랑하는 이와 정서적 연대를 이루게 만들게 한다.

[호모 무지쿠스]은 전문적인 이론보다는 사례들과 연구들을 통해 쉽고 편하게 음악과 진화생물학 간의 연계를 통해 왜 음악이 그렇게 인간의 삶에 일부가 되었는지, 그리고 명곡들이 우리를 감동시키는지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다. 물론 대니얼 레빈이 이 이상의 깊은 내용을 다루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음악과 인간 간의 관계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생각하기엔 좋은 책 아니였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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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2012)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

저자
이명준 지음
출판사
바오출판사 | 2012-07-02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주사파의 조직문화와 행동양태를 낱낱이 파헤치다!한 NL 운동가의...
가격비교

시대의 컴플렉스를 넘어서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는 영광의 1980년대 학생운동과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간 2000년대 학생운동 사이에 낀 1990년대 학생운동 세대의 회고록이다. 1980년대 학생운동 세대는 운동권 후일담으로 많이 다뤄진 바가 있고 2000년대는 더 이상 학생운동 시대가 아니기에 이 책에서 회고하는 1990년대 학생운동은 그들이 어떻게 몰락해갔는가를 알 수 있는 중요한 공백기의 기록이라 생각한다.

한마디로 [그들은 어떻게 주사파가 되었는가]는 '시스템이 완성된 후'의 학생운동의 모습과 그 사상, 구체적인 행태를 적고 있는 회고록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학파는 NL이고 따라서 PD계열은 간간히 언급될 뿐이다.

책은 신입생이 어떻게 운동권과 접하게 되는지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시작하고 있다. 동아리나 학과 미팅으로 신입생들과 접촉을 시작한 선배 운동권들은 곧 그들을 여러 시위와 농활들을 데려가면서 '의식화' 과정을 시킨다. 이 의식화는 NL의 경우 생각하지 말고 오로지 묵묵하게 '운동'이란 대의에 헌신해야 진정한 가치를 이룰 수 있다는게 골자다.

의식화 과정이 끝나면 인간관계가 운동권에 맞게 재구축이 되며 총학과 여러 학내 행사와 투쟁을 통해 하나의 운동권 학생으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이들은 처음으로 돌아가 신입생들과 접촉한다. 이 과정이 제법 상세하고 냉철하게 다뤄져 있기 때문에 의외로 인류학적인 시선이 강한 책이기도 하다. 더불어 왜 비운동권 학생회가 파행으로 운영되는지, 신입생이 NL이라던지 PD을 선택하는 이유도 흥미롭다. 

이 책의 다른 축은 바로 NL의 사상을 이루고 있는 주체 사상이 무엇인가이다. 주체 사상은 한마디로 완전한 주체를 따라 혁명과업을 달성하자는 이야기다. 송두율 교수가 주창한 북한에 대한 내재적 접근을 통해 완성된 주체인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상이다. 민족민중해방 투쟁과 자주국가 설립에 대한 믿음과 신념은 곧 이들이 "미제 꼭두각시에 불과한" 한국 사회, 나아가 미국에 대한 투쟁의 불길을 높일수 있는 주요한 원동력이 된다. 이런 접근은 곧 다른 분야로도 뻗어나가는데, 특히 NL이 문화를 바라보는 시점이 인상깊었다. 사실 루카치 죄르지의 사회주의 사실주의과 극단적인 카프-민족주의 문화론을 교조적으로 답습해 웃겼다는게 정확하겠지만.

물론 이런 과정에서 의문이나 비판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운동권 시스템은 용납치 않는다. 나오는건 오로지 혹독한 비판과 공허하고 소름끼치는 침묵 뿐이다. 이런 시스템의 탄압에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고 운동을 그만두거나 지지부진해지거나 혹은 더 악랄해진다. PD 이야기는 피상적으로 언급되지만 저자는 PD 또한 조금 나을 뿐이지 그 내부체계의 혹독함은 그닥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 괴물과 싸우다가 마침내 괴물이 되버린 것이다.

NL의 문제는 한마디로, 이상은 있으되 생각은 없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이 제국주의적인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고 한국 민주주의가 문제가 많다는 것도 사실지만, NL의 비판은 너무나도 단순하고 흑백론에 갇혀 있다. 그 사상을 고치려는 시도는 '불경하거나 혹은 반동'으로 낙인찍혀 시스템 내에서 완벽하게 차단된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가 악순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저자는 2012년 통진당 부정경선 역시 이런 고질적인 문제에서 나왔다고 진단하고 있다. 한마디로 통진당은 대학 운동권 문제가 고스란히 사회에 진출한 것이나 다름없다. 책에선 다루지 않고 있지만 요새 시끄러운 이석기 사태도 이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것이다. 적어도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그렇다. 한마디로 비판이 부재한 시스템이 만들어낸 비극, 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파시즘과 나치를 떠올렸는데 아니나 다를까 저자 역시 운동권 단결 대회를 다루는 부분에서 그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이들의 문제가 너무나도 인간적이고 고결한 이상에서 나왔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읽으면서 서글펐다. 세상이 엿같다는건 모두가 공감하고 이들은 그 엿같은 세상을 좀 더 낫게 하기 위해 온갖 발악을 했지만 불행히도 그 발악은 모두 헛발질에 민폐만을 끼칠 뿐이였다. 그리고 엿같은 체제는 그런 발악을 '국가보안법'이란 이름으로 킬킬킬 비웃으며 짓밟을 뿐이고 세상은 나날이 엿같아진다. 저자는 이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며 어떤 이념이나 새로운 새로운 진보가 한국에 도래하길 바라면서 끝내고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한국은 1990년대 민주화 이후론 이념은 더 이상 중요한 논쟁거리가 아니게 됬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2000년대 이후 한국 역시 세계적으로 도래한 테러리즘 시대로 들어왔다는 그런 느낌도 있다. 다만 북한 역시 동시에 테러리즘의 아이콘으로 갈아타는 바람에 (아직도 머리 위에 북한을 두고 있는) 우리 눈엔 여전히 이념처럼 보이도록 착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원래 인터넷에서 연재됬던 것을 연재종료 직후 조금 다듬어 부랴부랴 낸 수준이라, 냉정하게 따지면 책 자체의 가치는 '보존' 이상의 가치는 없다. 한 장 정도 더 있었으면 좋았을 뻔했다. 또 저자도 인정했지만 PD 계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시피하다. 하지만 내용 자체는 상당한 수작이며 한국 운동권이 어떻게 움직였고 어떤 문제가 있는가에 대한 정보를 얻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좋은 길잡이가 되줄만하다.

P.S.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다루고 있는 내용들은 굉장히 흥미로운 소스라 생각한다. 이걸 가지고 영화화한다면 90년대 쏟아져 나왔던 운동권 후일담과 다른 그런 물건이 하나 나올 것 같다. 실제로 저자도 이것으로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고백하며 일종의 해설서로 받아들이길 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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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A Theory of Fun for Game Design] (2005)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

저자
라프 코스터 지음
출판사
디지털미디어리서치 | 2005-10-31 출간
카테고리
컴퓨터/IT
책소개
세계적인 게임 개발자 라프 코스터가 밝혀낸 '재미'의 비밀을 전...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라프 코스터의 [재미이론]은 현직 게임 개발자가 쓴 책이다. 라프 코스터는 이 책을 통해 재미 나아가 게임의 정의를 내리고자 한다. 저자는 저자의 아이들이 틱택토에 몰입했다가 이내 금방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에서 출발한다. 아이들이 틱택토에 지루해하는 걸 보면서 라프 코스터는 재미가 어떤 식으로 발생하고 어떤 식으로 소모되는지에 대해 궁금증을 가진다.


저자는 게임을 재미와 학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다. 여기서 재미는 뇌의 구조로 보자면 엔돌핀이 뇌 전반을 돌면서 기분 좋게 말하는 것이며 모든 생명체가 기본적으로 추구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에서 재미를 느끼냐?라는 질문이 등장할법한데 라프 코스터는 기본적으로 패턴을 (물론 이 패턴은 무수하다.) 해독하는 것에서 재미를 느낀다고 보고 있다.


이런 해독 방법과 해독을 즐기는 것을 라프 코스터는 학습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물론 라프 코스터가 '학습'이라는 단어를 쓰는 것은 어떤 교육적인 의미가 아닌, 말 그대로 무언가를 배운다라는 가치중립적인 의미로 쓴 것이다. 이 점에서 라프 코스터가 생각하는 '어떤 게임을 만들어야 플레이어에게 오랜시간동안 큰 재미를 줄 수 있는가?'에 대한 뼈대가 잡히기 시작하는데, 라프 코스터는 게임이 끝날때까지 플레이어에게 만족스러운 학습과 그를 통한 최고의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이 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완성된 게임이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가? 라프 코스터는 이 재미와 학습에 대한 강론이 끝난 후 예술 파트에서 이 점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그는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에 대한 논쟁을 다루면서 그 논쟁의 공격과 방어가 모두 엇나간 방향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즉 폭력적인 게임에 등장하는 폭력적인 외피에 매혹되는 것이 아닌, 그 외피 속에 들어있는 재미와 학습에 매혹된다는 것이다.


물론 라프 코스터는 그런 폭력적인 외피를 긍정하고 옹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외피가 적절히 쓰이지 않으면 저급한 소재 활용 밖에 끝나지 않는다고 잘라 비판하고 있으며 이것이 게임의 예술화 혹은 대중화에 장애물이 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이 게임이 제공하는 재미와 학습이 지극히 한정된 타겟에 머물러있다고 그는 보고 있다. 그는 미래의 게임은 좀 더 많은 대상과 어른스러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정리하며 글을 맺고 있다.


라프 코스터의 재미 이론은 재미와 게임에 대한 이론서이자 수필이라고 할만한 책이다. 비록 재미에 대한 심도있는 고찰은 호이징어가 다 이뤄놓는 바람에 개론적인 부분에 머물러서 아쉽지만 이 정도면 척박했던 컴퓨터 게임 이론에 대한 첫 삽을 뜨는데 중요한 책이라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아버지가 게임이 폭력적이고 대상이 한정되어 있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이다. 요새 어머니가 빠져 있는 닌텐도 제작의 동물의 숲이라던가 대안적이고 참신한 게임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고 몇몇은 주류 돌파에 성공했다. (심즈 심시티가 그 예일 것이다.) 이에 여성 게이머들과 다양한 연령층이 등장하면서 라프 코스터가 지적했던 '다른 게임'에 대한 수요가 계속 늘고 있는 중이다. 또 다른 측면이지만 콜옵과는 다른 어른스러운 내용을 시도하려는 퀀틱 드림같은 제작사도 등장했다. 이런 게임업계의 시도들은 분명 결실을 맺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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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 요새 읽는 소설책
까라마조프씨네형제들(상)
카테고리 소설 > 러시아소설
지은이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또예프 (열린책들, 2009년)
상세보기

안녕내사랑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공포/추리소설
지은이 레이먼드 챈들러 (북하우스, 2004년)
상세보기


너무 책을 안 읽었다 싶어서 오래간만에 책을 빌려와 읽고 있는 중입니다. 사실 서적 분이 고프기도 했어요. 히히.

뭐 둘다 말이 필요없는 고전이죠. 다만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재미있긴 한데 두툼한 두께에 3권짜리 대하 소설여서 이걸 다 읽을 수 있을지 고민되고... 안녕 내 사랑은 그 정도는 아닌데 까라마조프 씨네 형제 때문에 미뤄지고 있는 중 ㅠㅠ

자세한 건 따로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둘 다 개별 포스팅으로도 부족할 것 같은 포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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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s & Cons about Paint it Rock. 1
PAINT IT ROCK. 1
카테고리 예술/대중문화
지은이 남무성 (고려원북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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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음악 역사에 대한 재즈 평론가 남무성 씨의 만화입니다. 도서관에 우연히 들어와 있더라고요. 그래서 빌려서 읽었습니다.

장단점을 요점 정리 식으로 적어보도록 하겠습니다.

Pros
1. 전반적으로 자세하고 친절하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2. 독자들의 구미를 적절히 당겨주는 에피소드와 록 음악사를 적절히 넣으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임.
3. 로큰롤의 정의로 시작한 건 정말 굿잡
4. 그림체도 무난하게 잘 그렸음. 카툰이라는 걸 고려해볼때 합격 수준임.
 -여담인데 시쳇말로 이 만화책에서 가장 모에한 캐릭터는 제퍼슨 에어플레인의 그레이스 슬릭. (이 분이 여자라는 걸 이 책 읽고 처음 알았음... 아무튼 그림을 보면 완전 여신임.) 남자 캐릭터는 에릭 클랩튼이 가장 보정을 많이 받는듯. 형님 간지가 철철 넘치십니다.
 -로버트 프립의 사우스 파크 캐릭터화는 좀 쩔었음. 
5. 블루스가 로큰롤에 영향을 준 부분에 대한 설명이 잘 정리되어 있음.
6. 프랭크 자파에게 한 장을 할애한 것도 GJ. 묻힐수도 있는데 잘 조명했다고 할까. (재즈 평론가라는 부분이 이점으로 발휘하는 순간입니다.)
7. 유머도 꽤 있어서 그리 딱딱하지 않음.

Cons
1. 문제는 그 유머 스타일이 너무 개드립
 -그 개드립도 종종 불쾌한 구석이... (비틀매니아들 (주로 여자들)을 지X로 표현한 부분은 이래도 되는건가...싶더라고요.)
 -그외에도 억지로 우겨넣은, 실패한 유머도 보임.
2. 버즈Byrds가 딸랑 2컷? ('밥 딜런과 함께 포크 록을 일으켰다. 딜런 곡 녹음했다. 끝.' 이들이 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다는 걸 생각하면 좀 푸대접... 심지어 아티스트 설명 페이지에도 없다!)
3. 개인취향이겠지만 프로그레시브 록 비중이 많다는 점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음.
 -뉴 트롤즈가 역사적인 밴드라는 건 알겠지만 영미권 록 역사를 주로 설명하는 책에서 이탈리아 밴드인 그들이 굳이 등장해야 했을까는 좀 갸우뚱. (성시완 씨의 영향력이 보이는 부분이라고 할까요.) 내용도 2007년쯤 내한 공연 당시 느꼈던 사담이 많은 것 같고.
 -(작가도 어느정도 인정하듯이) 록시 뮤직을 프로그레시브 단락에 집어넣은건, 좀 미스라고 사료됨.
 -브라이언 이노 초기작들에 대한 평가도 좀 오류. 사실 앰비언트 연작 이전 초기작들은 아방가르드 성향이 그렇게까지 심화되지 않았음. (서구권 평자들이 초기작들을 솔직한 팝록의 걸작이라고 말할 정도니 말 다했죠.) 그리고 프로듀서로써 활약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도 좀... 그보다 장 자체가 좀 뚝 잘린다는 느낌.
4. 어쩔 수 없는거겠지만 사진을 트레이스한 컷이 많음.
5. 비평적 오류라는 부분이 보임. 특히 마지막 장에 실려있는 뮤지션 연관도에서 Soul 항목에 슬라이 앤 더 패밀리 스톤을 넣은건 아무리 봐도 꽝임.
6. 데이빗 보위는 어디 갔어! (데이빗 보위는 2권에 나온다고 합니다.)
7. 막판에 가면 정리가 안 되서 허덕거리는 모습이 좀 보임. (게다가 2권 예고를 보면 90년대까지 포괄할 듯 한데, 그냥 3권으로 가시는게...)
 -그리고 책 순서가 좀 뒤죽박죽이여서 헷갈릴 가능성이 큼.
8. 지미 헨드릭스&슬라이 스톤-마일즈 데이비스의 영향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으면...

결론
단점이 좀 많이 적긴 했지만, 일단 록 음악에 대해 문외한이라면 읽을만 합니다. 요점 정리도 잘 되어있고, 중요 아티스트들은 왠만해선 다 알 수 있습니다. 입문서로는 추천합니다.

하지만 이미 록 음악에 대해 알고 있다면... 호불호가 갈릴 것으로 보입니다. 석원 님 말씸대로 유머가 좀 치명타라는 느낌이 강하더라고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2권도 볼 생각입니다만.

여담이지만 재즈 평론가가 그리는 록 만화라는 수식어가 좀 심하게 유니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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