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엔터 더 보이드 [Enter The Void] (2009)

엔터 더 보이드
감독 가스파 노에 (2009 / 이탈리아,독일,프랑스)
출연 나다니엘 브라운,파즈 데 라 후에르타
상세보기

THIS IS GOING TO MAKE YOU FREAK. BUT...

(본 리뷰는 영화의 성격에 맞게 다소 막장스럽게 작성됬습니다 (...))

가스파 노에의 7년만의 신작, [엔터 더 보이드]는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판타지 영화다. 도쿄에 살고 있는 마약 딜러 오스카와 스트리퍼 여동생 린다는 서로 끔찍히 아끼는 사이다. 그러나 영화 시작 10분 뒤 오스카는 경찰 총에 맞아 세상을 떠나고 린다만 세상에 남게 된다. 그러나 린다와의 약속을 잊지 못한 오스카는 허공에 부유하면서 린다의 주변을 떠돌며 도쿄를 관망하게 된다.

[엔터 더 보이드]는 여러모로 용감한 영화다. 우선 영상 언어부터 급진적이다. 정지 컷이나 정면 샷을 거의 배제한 채 부감과 롱 테이크, 핸드 헬드와 스테디 캠, (게임을 연상케하는) 1인칭 시점 등으로만 이루어진 카메라 앵글/워킹은 빠른 속도로 환락의 도시 도쿄를 조감한다. 물론 이 조감은 과도함으로 얼룩져 있는데, 영화 속 섹스와 폭력이 설정이나 표현 모두 과도하기 이를때 없다.

가스파 노에는 여기다가 한 가지를 더해 더욱 더 현기증 나게 만든다. 바로 사이키델릭이다. 60년대 사이키델릭 문화와 MTV, 레이브 파티의 영향이 느껴지는 원색 중심의 색 설계과 강한 콘트라스트와 빠른 점멸로 일관하는 조명 설계, 다프트 펑크 멤버 토머스 방갈테르이 제공하는 소리 효과만으로도 충분히 '사이키델릭'하지만 영화는 거기서 더 나아간다.

간단히 말하자면 이 영화는 사이키델릭/중독의 언어를 CG를 통해 ‘그대로’ 보여준다. 마약이 제공하는 환각, 죽음 이후 이어지는 환상들, 빠른 컷 전환과 눈을 공격하는 공백의 화면, 영혼의 이동에 따라 점멸되는 조명, 부감 롱테이크, 1초마다 껌뻑거리는 화면들은 뇌 속을 어지럽힌다. 분명한 것은 무척이나 인상적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의 영상에서는 컴퓨터 게임과 뮤직 비디오, 엑스터시 파티의 탐미와 광기가 느껴진다. [엔터 더 보이드]의 영상 미학은 [아바타]처럼 21세기가 아니면 불가능한 영상 미학을 보여준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영상 표현에 걸맞는 사상과 내용을 가지고 있냐면 그것은 의문이다.

이야기의 큰 줄기를 이루는 사상은 바로 불교-특히 티베트 불교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티벳 사자의 서를 언급하며, 이야기 구조 역시 티벳 죽음의 서의 윤회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특히 마지막 시퀀스는. 문제는 영화가 '티벳 사자의 서'를 이해하는 방식은 정말 피상적이다는 것이다. 비록 티벳 죽음의 서를 읽지 못했지만, 국내 번역된 서적 홍보 자료에 따르면 '본질을 깨달으면 더 이상 의식이 만들어낸 환영에 흔들리지 않고 영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라는 것'이 티벳 사자의 서의 주제라고 밝히고 있다. 티벳 사자의 서가 다루고 있는 죽음은 사후 세계의 환영이 아니라 그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라는 것은 확실해보인다.

그러나 [엔터 더 보이드]는 티벳 사후 세계의 환락적인 모습만 모티브에 따와 탐닉하는 모습만 보여준다. 오스카는 사후 세계 체험에서 주체가 아닌 방관자일 뿐이고, 그가 경험하는 사후 세계은 '화끈하고 후유증 심한 마약'이나 다름없다.  마지막에 주어지는 영적 자유 역시 본질의 깨달음이라긴 보다는 단순한 윤회에 가깝다. 이럴거면 굳이 티벳 사자의 서를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 아무리 등장 인물들이 티벳 사후 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캐릭터라고 백번 양보 해도, 감독까지 거기에 맞춰 놀 필요는 없었다. (의도가 어떻든) 가스파 노에가 이해하는 티벳 사자의 서는 수박 겉핧기나 다름 없어 실망스럽다.

티벳 사자의 서라는 껍질을 벗기면 남는 것은 낙오자들의 힘 센 멜로드라마다. 이 부분은 괜찮다. 근친상간 암시와 비극으로 얼룩진 오스카와 린다의 관계는 불편하지만 설득력이 있으며, 한 사람의 죽음이 가져온 후폭풍에 대처하는 주변 사람들의 모습은 정석적인 신파 멜로드라마를 만들고 있다. 종종 막장 드라마 컨벤션으로 (특히 빅터 엄마-오스카는 한국 아침 막장 드라마 판박이다...) 빠지긴 하지만, 이전 작들이 받았던 악명을 생각해보면 지극히 가스파 노에 답다고 할 수 있다. 배우들의 열연도 그 점을 잘 살려내고 있다.

허나 그렇게 쌓아놓은 드라마도 마지막 절정인 러브 호텔 시퀀스에서 꽤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이 장면의 표현 방식은 참으로 싸구려스러워서 B급 에로 망가를 보고 있는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문제는 이 장면의 의도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노에 감독은 분명 이 표현을 통해 섹스와 성스러움, 윤회를 저열하고 과격한 형식으로 드러내려고 했다. 위악적이지만 진지한 의도다. 

하지만 정작 눈에 보이는 것은 발광 전구를 '그곳'에 끼고 오르가즘을 느끼는 사람들 뿐이다. 한마디로 의도를 느끼기엔 지나치게 키치적이다. 힘센 멜로 드라마를 완성해놓고, 키치로 그 클라이막스를 장식하는 게 실험이라 생각했다면 유감스럽게도 틀렸다고 말하고 싶다. 마지막의 '그 장면' 역시 분명 용감했지만, 거기엔 뇌리를 탁 치는 지적 깨달음이나 일관된 감정적 흐름보다는 '난 존나 용감해. 닥찬양해라!'라는 허세력이 먼저 느껴져서 중지 손가락을 올릴까 잠시 고민했다. 

오리엔탈리즘의 혐의도 눈에 띈다. 배경인 도쿄는 오스카 남매가 막역하게 꿈꾸던 샹그릴라 혹은 네온 사인 지옥도에 불과하며, 일본인들은 섹스 대상이거나 외국인의 착취 대상이거나 죄없는 주인공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공권력이거나, 주인공 일당을 도와주는 조역에 불과하다. 그나마 마리오 정도만이 어느정도 캐릭터를 부여받고 있지만, 그 캐릭터는 철저히 버려지고 불쾌하게 묘사된다. 린다가 마리오의 아이를 낙태하고 알렉스의 아이를 낳는 설정은 그 혐의를 확증하게 한다. 뭐 알렉스도 마약에 쩔은 정키니 피장파장이지만, 적어도 작 중에서 알렉스는 공감할 법한 다정한 사람으로 그려진다.

[엔터 더 보이드]는 분명 자극적인 영화고 상당한 힘과 인상을 가지고 있는 영화다. 다만 그 힘은 진지한 사색과 고찰에서 나온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럭저럭 잘 짜여진) 막장 드라마의 힘과 아트하우스판 [아바타]라 불릴만한 엄청난 영상미, 굉장히 자극적인 수위에서 나온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요리로 비유하자면 엄청나게 짜고 독한 간으로 승부를 본 셈이다. 그래서일까 한 번 볼때는 집중하게 되지만, 왠지 뒷맛이 영 좋지 않다. 여운을 남기는 것하고는 다르다. [하얀 리본]의 엄격함과 절제, 통찰에서 배어나오는 힘과 무척이나 대조된다. 내공의 차이라 봐도 좋으리라.

마지막으로 말하자면, 영화가 지나치게 길다. 감독이 동어반복적인 장면을 마구 집어넣는 바람에 솔직히 중반부는 자리를 비워도 무리 없는 수준이였다. 알렉스와 린다가 어떻게 막장 시스콘-브라콘으로 탄생했는지 계속 강조할 필요는 없지 않는가? (아님 오스카라는 인물이 정말 답없는 시스콘이여서 '죽어도' 그 생각만 한다면 이해는 하겠다.) 뭐 지루하지 않게 이끌고 갔다는 점은 칭찬할만 하지만.

P.S.1. 영혼이 이동하는 장면을 보면서 왠지 [고스트 트릭]이라는 DS 게임이 생각났다.
P.S.2. 국내 수입은 무리라고 본다. 낙태된 아이야 전례가 있으니 어찌 넘어가겠지만 마지막의 그 장면은 정말...
P.S.3. 린다 역의 파즈 드 라 휴레타 신음 소리가 너무 리얼해서 민망했다. 정말 미안하지만 섹스 장면들이 포르노를 보는 것 같았다. 아무튼 대성할 자질이 보이는 배우다. 정진해주시길.

  Comments,   0  Trackbac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