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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용문객잔]과 [안녕, 용문객잔]의 결말에서 드러나는 장르적 구조과 감정

(과제용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호금전의 [용문객잔]과 이를 인용한 차이밍량의 [안녕, 용문객잔]은 동일한 결말의 구조와 샷을 공유하고 있다. 바로 사라짐이라는 샷이다. 그리고 이 사라짐이라는 샷에는 공통적으로 애잔함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데 이 애잔함의 대상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게 흥미롭다.


[용문객잔]의 결말에선 영화 내내 조소겸으로부터 충신 우겸의 자식들을 지키던 협객들이 동료의 희생을 겪으면서까지 조소겸을 물리치는 컷이 나온 직후 살아남은 협객들이 떠나가는 뒷모습이 나온다. 여기엔 어떤 내러티브적인 설명이나 이별의 대사도 없다. 심지어 그전까지 중요한 인물들이였던 우겸의 자식들을 비롯한 생존자들도 제대로 된 대사 없이 떠나는 사람들을 보고 있을 뿐이다. 살아남은 협객들은 왼쪽으로 향해 걸어가 사라진다.


 이런 [용문객잔]의 결말 구조는 미국 서부극의 구조에서 자주 사용하던 결말을 차용한 것이다. 존 포드의 [수색자]이나 [셰인]의 결말에서 집약되듯이, 서부극에서 커뮤니티의 위기를 해결한 영웅은 구원을 원했던 커뮤니티를 벗어나 자신이 왔던 자연 (예를 들면 모뉴먼트 밸리)과 그것이 제공하는 풍광으로 걸어들어가 천천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진다. 이런 지평선 쪽으로 사라짐은 곧 서부극의 영웅을 자연이 가지고 있는 원초성과 자유와 동일시하면서 동시에 자연=영웅과 문명 이 둘이 양립할 수 없다는 것도 은연중에 암시하고 있다, 문명의 전경에서 출발해 광활한 자연의 후경으로 사라져 가는 서부극 영화의 미장센은 곧 신화적인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자 하는 자들에게 이어졌다.  


다시 [용문객잔]의 결말로 돌아가면 이 장면은 와이드 샷으로 찍혔기에 인물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제대로 볼 수 없고 오로지 형태로만 등장한다. 그리고 이 장면엔 아무런 건물들도 등장하지 않고 강만 나온다. 협객들은 카메라와 멈춰서서 배웅하는 인물들이 있는 화면 오른쪽=전경에서 멀어져 화면 왼쪽에 있는 후경인, 아무도 없는 지평선으로 향해 사라진다. 이렇듯 [용문객잔]은 서부극의 결말 샷을 인용하면서 중국 무협의 신화성을 영화 속에서 만들어낸다.  [용문객잔]은 이를 통해 신화화된 무협의 세계 속에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인과 예를 지키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사라지는 강인한 영웅들을 찬양하고 동시에 애잔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다만 [용문객잔]의 신화성은 커뮤니티 자체보다는 충절 쪽 (무고하게 죽은 충신 우겸의 의지)에 방점이 맞춰져 있다.) 


[안녕, 용문객잔]에서도 얼핏 보면 이런 비슷한 구조의, 신화화된 공간과 사라진다는 결말을 취하고 있다. 문을 닫는 영화관을 뒤로 하고 일을 마친 영사 기사가 빗 속으로 사라지고 그 뒤로 절름발이 여자 역시 빗속으로 나서서 집으로 절뚝절뚝거리며 돌아간다.  그러나 [안녕, 용문객잔]은 [용문객잔] (나아가 서부극)의 어법을 차용하고 있으면서도 마지막 장면의 카메라 배치나 미장센, 나아가 그 의미는 인용의 대상이 된 [용문객잔]하고는 전혀 다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씬에서 절름발이 여자는 [용문객잔]처럼 카메라에서 멀어지는게 아닌 카메라가 있는 쪽으로 걸어오다가 화면 오른쪽 끝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빠져나간다. 그렇게 빠져 나간 후 화면의 후경에 남아있는 것은 내일이면 사라질 영화관이다.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용문객잔]과 다음과 같은 차이점이 있다. 먼저 문명과 생존자들에게서 벗어나 자연 속으로 걸어들어가던 용문객잔의 협객들과 달리, [안녕, 용문객잔]의 절름발이 여자는 자연=후경=영화관에서 벗어나 도시=프레임 바깥으로 편입되어 간다. (혹은 되었다.) 이렇게 보면 영화 속 절름발이 여자, 나아가 먼저 퇴장한 영사 기사는 협객이나 카우보이가 아니다. 오히려 그런 영웅들을 바라보고 있었던 문명에 속한 개인들이다. 따라서 자연히 영화 끝까지 프레임에 남아 있는건 ‘신화’ 정확히는 ‘신화의 공간’이다.


 즉슨 신화가 문명을 떠나는게 아니라, 문명이 신화를 스스로 떠나는 것이다. 이 영화 내용이 한때 신화를 상영하며 사람들을 기쁘게 했던 공간이 마침내 신화로 화하며 사라지는 걸 다루고 있다는 걸 생각해보면 [안녕, 용문객잔]의 결말의 미장센은 저물어가는 신화를 뒤로 하고 현실/일상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안녕, 용문객잔]은 신화인 용문객잔의 장면과 대사를 “그대로” 인용하고 그것을 보는 관객들을 보여주는 메타픽션적인 전개와 연출과 더불어 원작 결말의 미장센을 뒤집어놓으면서 [용문객잔]에 담겨있는 신화적인 퇴장과 고유의 가치관을 거꾸로 전유해 [용문객잔] 영화 자체가 가지고 있는 영화사 내의 신화성과 아우라, 그리고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구식 단관 영화관에 대한 메타픽션적인 추모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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