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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편지 [La lettre / The Letter] (1999)



편지

The Letter 
3
감독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
출연
키아라 마스트로얀니, 페드로 아브루노사, 안톤 쳅페이, 레오노르 실베이라, 프랑소와 파비안
정보
드라마 |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 107 분 | -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편지]는 보통 90년대부터 찾아온 올리베이라의 국제적인 전성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로 꼽힌다. 라파예트 부인의 [클레브 공작부인]을 현대로 각색한 [편지]의 서사는 표면적으로는 멜로 드라마의 관습을 취하고 있다. 상류층에 부담없이 살고 있는 드 사르트르는 보석점에서 만난 한 의사 자크 드 클레브와 약혼을 해 결혼에 성공한다. 하지만 동시에 드 사르트르는 그를 찾아온 로큰롤 가수 페드로에게 마음이 이끌리게 되고, 자크와의 사랑은 흔들리게 된다. 한편 드 사르트르에게는 수녀인 친구가 있는데, 그가 사랑에 흔들리때마다 드 사르트르는 수녀에게 찾아와 고백을 한다. 결국 이 기묘한 삼각관계는 자크의 죽음으로 파국을 맞게 된다.

[편지]의 특징이라면 영화에서는 열정이라는 걸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보통 멜로드라마의 중요 요소라면 과잉된 감정으로 인한 이미지의 폭발인데, 올리베이라의 카메라는 그런 과잉, 아니 감정을 빼버린다. 다들 감정을 보여주는 대사를 하고 있지만 정작 행동은 감정을 배제한 쿨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작 중 등장하는 미술 세트들도 상류층 사람들을 보여주고 있다지만 심심할 정도로 간결하다. 이미지 뿐만 아니라 인물들의 행동에서도 심지어 우리는 드 사르트르가 정말로 페드로에게 관심이 있는지조차 확신이 서지 않는다. 영화 내내 보여주는 사랑에 대한 애매한 드 사르트르의 태도도 그렇지만, 그나마 자크에게 애정이 없다는건 확실히 지적하고 넘어가고 드 사르트르가 페드로에게 호의적인 태도를 취하기 때문에 드 사르트르가 페드로에게 관심이 있나...라고 생각해볼수 있는 정도다. 이처럼 영화는 사랑이라고 느끼는 감정들과 이미지를 억누르거나 절제한다. 심지어 주요 인물들이 죽는 장면조차 올리베이라는 짗궃을 정도로 그 장면을 보여주지 않고 암시와 자막으로 처리해버린다. 이러니 영화에서 섹스 장면 같은건 등장하지 않는게 당연하다.

그렇기에 [편지]는 곧 연애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문제로 넘어가게 된다. 올리베이라 영화에는 갑작스럽게 서사를 방해하는 컷이 등장하곤 하는데, [편지]에서도 마찬가지다. 첫번째로 서사를 방해하는 컷으로는 드 사르트르의 어머니 장례식에 나타난 페드로가 석상에 숨어있다가 석상들을 보는 장면일 것이다. 그것들은 마치 중요한 무언가처럼 등장하지만 실제로는 서사에서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는다. 이후로도 이런 갑작스런 장면이 서사에 개입하는 연출들은 계속 등장한다. 수녀원을 방문한 드 사르트르와 수녀가 상담 도중 갑자기 석상을 보는 장면이라던가 드 사르트르와 클레브 친족들이 전쟁 뉴스를 뚱하게 지켜보다가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 사랑이 식어가는 걸 고민하며 이야기를 나누던 부부 앞에 뜬금없이 나타나 사회의 어두움에 대해 얘기하며 돈을 달라는 거지가 그렇다. 올리베이라는 그것이 영화의 서사와 관계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굳이 출현시키고 정작 중요한 감정선들은 자막으로 요약해버린다. 물론 이런 연출은 유성 영화 등장 전부터 활동해오면서 연극에 관심을 기울이면 영화를 만들어온 영화계에서도 매우 희귀한 올리베이라의 경력에서 기인된 것이지만 말이다. 한마디로 올리베이라는 누벨바그 이후 대두된 영상적 언어만으로 영화를 만든다는 방법에 대한 집착 없이 자신이 필요하다면 그냥 그걸 써버린다.

이런 뜬금없는 컷의 돌출과 감정의 절제와 요약은 영화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편지'로 정점에 달한다. 이 편지는 이야기 구조로 따지자면 결말을 담당하고 있는데 서사상으로 보자면 뜬금없다. 상류층의 멜로 드라마에서 멜로 드라마가 어느 순간 파괴되고 현실 문제와 사랑과 구원에 대한 코멘트로 넘어가니 말이다. 이 기나긴 편지에서 드 사르트르는 확신할수 없는 사랑에 해메고 있던 자신과의 결별을 선언하면서, 머나먼 타지에서 만난 조건없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명 멜로드라마적인 파국과 정서를 기대한 관객에게는 이는 당황스러운 결말이다. 하지만 방금전에 등장했던 뜬금없는 컷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이 결말은 의외로 일관된 흐름으로 진행되다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드 사르트르의 어조는 약간 헤메고 있긴 하지만 예전과 달리 어느 정도 분명한 목적 의식을 가지고 있다. 한마디로 [편지]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사적인 영역에 있던 확신할 수 없는 사랑이 어떻게 일면식 없는 타인에 대한 확신에 찬 사랑으로 변해가는지를 보여주는 걸지도 모른다.

드 사르트르가 영화 내내 페드로에 대해 애매한 태도를 취하긴 했지만, 적어도 그 과정이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먼저 드 사르트르가 맺는 관계들을 보자. 드 사르트르의 어머니는 드 사르르트가 의사와의 결혼 생활과 페드로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는걸 알아차리고 "남의 입에 오를 일은 하지 마라. 강하고 담대하게 처음엔 가파르고 험해보이는 길을 선택해라. 나중에 보면 더 쉬운 길이야."라고 한다. 이 말은 영화 내내 드 사르트르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영화 속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이, 드 사르트르는 자신을 사랑하는 페드로를 선택하게 되면 편하게 사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 사르트르는 끝끝내 자크를 포기하지 못한다. 자크는 부유층이긴 하지만 선량한 사람이고 사랑하진 않지만 인간으로써 유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드 사르트르의 행동은 매우 이중적인 도덕의 층위를 구성하는데, 이는 상류층의 허위적인 도덕관에 순종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지고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이기도 하다. 드 사르트르에게 남편에게 충실하라는 충고하는 수녀가 풍자적으로 그리지 않고 영화 마지막 드 사르트르의 편지를 읽는 화자로 남겨두는 것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결국 남편이 죽고 페드로만 남게 되면서 이 사랑과 도덕의 천칭은 다시 엉뚱한 방향으로 쏠려가기 시작한다. 자크의 죽음으로 드 사르트르를 옭아매던 도덕관은 이제 개인적인 사랑과 아가페적인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드 사르트르는 여전히 어머니의 말에 얽매여 있으니 페드로에게 선택이 돌아가지 않는건 당연하다. 삼각관계가 끝난 자리엔 개인과 인류라는 거창한 문제가 자리잡고, 드 사르트르는 결국 문명의 유럽을 떠나 변경의 아프리카에 도착해 아직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거기서 삶의 의미를 발견한다. 어찌보면 페드로라는 존재는 그 점에서 드 사르트르가 목적의식을 찾기 위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편지]는 그 점에서 상류층의 허위 도덕의식이 세상에 손을 내밀게 되는 기묘한 여정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이를 시선의 문제로 처리한다. 평론가들이 지적했듯이 감독은 드 사르트르의 시선을 잘 보여주지 않는다. 드 사르트르의 시선은 종종 등쪽에서 카메라를 잡는 방식으로 처리된다. 특히 연애 문제와 관련되면 드 사르트르는 고개를 숙이거나 회피하는 쪽으로 시선을 처리한다. 반대로 자크의 시선과 페드로의 시선은 명확하게 보여주는데 대체적으로 이 시선은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는 드 사르트르를 향한 것이다. (심지어 페드로는 자크와 드 사르트르의 대화를 우연히 훔쳐듣기까지 한다.) 여기까지만 하면 전형적인 멜로드라마의 시선 권력이라 할 수 있을것이다. 하지만 아까 서사를 방해하는 컷과 연관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자세히 뜯어보면 그 서사를 방해하는 컷 대부분이 어떤 종교적인 형상물이나 동상이라는 걸 눈치챌수 있을 것이다. 수녀에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던 드 사르트르는 말을 멈추고 그 시선하고 눈을 마주친다. 드 사르트르가 시선을 마주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영화의 이상한 순간이자 잊을수 없는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내밀한 시선의 교환은 신의 대리자인 수녀가 프레임에 존재하지 않는 자의 편지를 읽는걸로 정점을 찍는다.

결말에 등장하는 페드로의 콘서트도 (참고로 페드로 역을 맡은 배우는 포르투갈의 실제 유명 가수다.) 그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노래 내용도 충분히 본편의 내용을 담고 있지만 이 결말은 생각보다 복잡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선 공연의 시선 관계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생각해보자. 공연이라는 것은 공연하는 사람을 다수의 사람들이 쳐다보는 것이다. 물론 공연하는 사람은 관객들과 시선을 접촉하지만 그것은 1대 1 시선접촉이 아니라 1대 다수의 시선 접촉에 가깝다. 그런데 아까 드 사르트르의 편지를 다시 떠올려보자. 드 사르트르는 개인적인 사랑 대신 다수에게 사랑 주는 쪽을 선택했다. 그리고 이 결말에서 올리베이라는 관중석을 희미하게 처리하고 페드로도 선명하긴 해도 멀찍이서나마 보여주는 구도를 택하고 조명을 구성한다. 대중은 보이지 않고, 공연하는 주체가 작게나마 보여주는 이 구성에서 우리는 페드로도 어찌보면 드 사르트르가 선택한 아가페적인 사랑에 감화받은거 아닌가라는 묘한 여운을 안게 된다. 물론 연출상으로만 그렇다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편지]는 덤덤하고 쿨한 태도로 개인적인 사랑의 열정 대신 아가페적인 세상에 대한 사랑을 전파하는 다소 핀트가 어긋난듯한 멜로 드라마다. 그럼 한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올리베이라는 왜 이런 영화를 1999년이라는 세기말에 만들었을까? 아마 영화 중반부에 아무런 맥락없이 등장했던 전쟁 뉴스를 보는 장면에서 답을 찾을수 있지 않을까? 당시 환갑을 훌쩍 넘은 노인이 당시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던 (주지하다시피 코소보 사태가 이 시기에 일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이어지는 폭력과 비극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담고자 했던거 아닐까? 그 점에서 마누엘 드 올리베이라의 [편지]는 엉뚱하긴 해도 독특한 매력을 지닌 영화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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