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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팔로우 [It Follows] (2014)


팔로우 (2015)

It Follows 
6.5
감독
데이빗 로버트 미첼
출연
마이카 먼로, 린다 보스톤, 케어 길크리스트, 올리비아 루카르디, 제이크 웨어리
정보
공포 | 미국 | 100 분 | 2015-04-02

데이비드 로버트 미첼의 [팔로우]의 도입부는 그야말로 효율적이다. 우선 미첼은 디트로이트라는 분명한 공간을 설정해놓고 롱테이크로 애니라는 희생자의 동선을 집요하게 반복한다. 이를 통해 카메라가 따라다니고 있는 인물의 심리가 안정되지 못하고 무한한 반복을 통해 이 영화의 운동 이미지가 일종의 순환 구조를 이룰것이라는걸 명백하게 한다. (이 점에서 [팔로우]의 도입부는 철창 안에 갇혀 바이크 쇼를 벌이는 장면으로 열였던 데릭 시엔프렌의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랑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환 이미지 다음에 짧고 앞으로 나올 존재가 얼마나 무서운지 설명해주는 강렬한 충격을 집어넣으면서 [팔로우]는 리듬을 매우 효율적이고 강렬하게 정리한다.

[팔로우] 본편에 들어서면 미첼은 더욱더 신중하게 리듬을 확장해내간다. 영화는 제이의 산문적인 삶을 그려내면서 미국 북동부 디트로이트의  청춘의 풍경을 2.35:1 와이드스크린으로 그러낸다. 미첼은 작은 예산 속에서도 이 와이드스크린을 비우고 채우는데 매우 능수능란하다. 드 팔마식 360도 팬으로 '그것'을 각인시키는 방법이라던가 특히 마지막 클라이맥스가 이뤄지는 수영장의 음울함은 어떻게 찍었는지 신기할 정도다. [팔로우]에서 그려지는 디트로이트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집과 힘없는 청춘들이 돌아다니는 공간인데, 이 점에서 [팔로우]는 많은 평자들이 지적했듯이 미켈란젤로 안토오니오의 그림자를 찾아볼 수 있는 영화다. 안토니오니의 [붉은 사막]이 그랬듯이, [팔로우]의 살풍경한 공간들은 개인적인 영역마저 잡아먹을 정도로 압도적이며 동시에 쓸쓸한 시정을 안겨주고 있다.

하지만 [팔로우]는 공포 영화이기에 그 침착한 리듬을 끝까지 끌고가지 않는다. 제이의 산문적인 삶이 초반부에 나왔던 비현실적인 세계랑 접목되는 순간, [팔로우]는 그 침착한 리듬을 예리하고 냉정하게 풀어낸다. 충격 요법을 사용하는 방법도 그렇고, 무엇보다 [팔로우]는 많은 사람들이 상찬했듯이 괴물과 공포에 대한 상상력이 뛰어나다. (분명 예산 때문에 머리 쥐어매면서 고민했을)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법-미첼은 '그것'을 매우 물리적이면서도 기이한 분위기를 가진 존재로 그린다.-도 좋지만 (실은 몇몇 장면들은 예산이 좀 더 있었다면 더 괜찮게 나왔을건데... 싶은 장면도 없는게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것'은 단순히 팝콘 소비용 괴물이라기엔 관객들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고 있다. 좋은 코스믹 호러의 괴물들이 그렇듯이 [팔로우]의 '그것'은 이야기가 끝나고 난 뒤에도 계속 불쾌한 뒷맛을 남기는 쪽인데, 미첼은 '그것'에게서 인간적인 감정이나 설명을 제거하고 단순명쾌한 구조와 법칙을 보여줘 '그것'의 타자성을 강조한 뒤, 그 구조와 법칙을 가지고 캐릭터들을 몰아붙인다. 이 때문에 '그것'의 존재감은 '그것'이 나오지 않을때조차 나타날것 같은 불안감을 일으킨다. [팔로우]의 '그것'은 그 점에서 구로사와 기요시의 [회로]에 나오는 유령들의 절망감과 공유하고 있다.

미첼의 전작 [아메리칸 슬립오버]가 디트로이트 10대 청춘들의 삶과 사랑을 다뤘다는 정보를 새겨볼때 미첼 감독의 관심사는 미국 10대들인듯 하다. 그에 걸맞게 [팔로우]는 철저히 10대들의 세계에 맞춰서 전개된다. 하지만 일상적이고 소소한 영역에 머물고 있던 [아메리칸 슬립오버]랑 달리 [팔로우]의 세계는 위협과 공포, 절망감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미첼이 10대 캐릭터 묘사하는 부분들은 상당히 신중하게 이뤄지고 있다. 특히 장르적으로 과장되는 속성을 가진 그렉과 야라 같은 캐릭터를 묘사할때도 미첼은 자신이 전작에서 했던 방법을 따른다. 즉 장르에 캐릭터를 끼워맞추는게 아니라, 캐릭터를 존중하면서 장르를 구성하는 것이다. [팔로우]는 그 점에서 캐릭터를 존중해주는 요새 보기 드문 호러 영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헐리우드식 글래머함이 배제된, 인디 영화 타입의 캐스팅도 이런 질감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것'이 매우 섹스랑 연관있는 존재라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호러 영화와 섹스는 지루할정도로 흔하게 연결되긴 하지만, 미첼이 선택한 방식은 기존 영화가 선택한 방법들과는 다르다. 10대들의 섹스를 통해 퍼지는 질병과 우울한 파국을 다룬 찰스 번즈의 만화 [블랙 홀]를 떠올리게 하지만 (미첼 본인은 딱히 의식하진 않았지만 읽어보긴 했다고 했다.), [팔로우]는 [블랙 홀]이나 데이빗 크로넨버그식 끈적한 육체 변형과도 거리를 둔다. [팔로우]의 섹스는 차라리 건조하고 우울하다. 제이가 남자랑 섹스를 하고 난 뒤 읇조리는 덤덤한 독백이라던가, 경악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그것'이 취하는 행태나 살해방법, 중후반부에 이어지는 제이의 공포에 동참하기 위해 남자애들이 섹스에 참여하는 장면들에서 이 영화의 섹스는 쾌락보다는 알 수 없고 두렵고 무섭지만 소통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수단으로 그려진다. 

흥미로운 점은 이 영화에서 어른들은 배경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런 묘사가 미첼이 개연성을 까먹은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배제하고 있어서 그렇게 된거라는건 '그것'이 그렉의 어머니랑 제이의 아버지 모습으로 나타났을때 명백하게 드러난다. 10대들이 섹스를 하면 나타나는 괴물이 가장 극적인 순간에 어른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점에서 [팔로우]는 어른 세계와 10대들에 대한 관계에 대해 건드리고 있다고 볼 수 있을것이다. 그렇게 보면 [팔로우]의 결말이 안겨주는 절망과 멜랑콜리로 채워진 미묘한 감흥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미첼은 제이나 폴이랑 섹스한 어른 희생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의도적으로 배제해 그 관계를 명백히 한다.

그 점에서 [팔로우]는 제프리 유제니디스의 [처녀들 자살하다]의 영향력이 강한 영화기도 하다. 죽음과 쇠락의 기운이 넘실거리는 와중에 어른들의 세계에 속하지도 못한채 서로에 대한 성적 호기심과 섹스가 금기이자 유일하게 소통할 수단으로 자리잡은 소년소녀들의 우울한 드라마라는 점에서 말이다. (공교롭게도 두 작품 모두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주변 교외가 배경이다.)

[팔로우]는 구식 호러 영화에 대한 존경과 제프리 유제니디스와 표토르 도스토예프스키, 스티븐 킹, 모파상의 영감을 받아 만들어낸 독특한 호러 영화다. 영화내내 똑똑하고 침착하다는 점이 취향차를 가르긴 하겠지만 이 영화가 꼼꼼히 만들어낸 음울한 멜랑콜리만으로도, [팔로우]는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는 무뇌한 틴에이지 호러 영화에 일침을 가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의 깜짝 히트도, 그런 일침이 평자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는 뜻 아닐까?

P.S. 게임 [페즈]의 사운드트랙을 맡은 디제스터피스의 음악도 매력적이다. 197-80년대 일렉트로닉 사운드 리바이벌이나 그 당시 미국 호러 영화 사운드트랙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구해 들어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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