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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디판 [Dheepan] (2015)

2009/11/05 - [Deeper Into Movie/리뷰] - 예언자 [Un Prophete / A Prophet] (2009)

2013/05/21 - [Deeper Into Movie/리뷰] - 러스트 앤 본 [De rouille et d'os / Rust and Bone] (2012)

2014/02/19 - [Deeper Into Movie/리뷰] -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De battre mon coeur s'est arrêté / The Beat That My Heart Skipped] (2005)

스리랑카 내전과 타밀 타이거라는 반군 단체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크 오디아르의 [디판]의 도입부에서 어떤 절망감을 읽어내긴 어렵지 않다. 자크 오디아르는 저널리즘적인 설명은 일부러 배제한 채, 그저 패배라는 냉엄한 현실을 받아들어야 하는 (2000년대 중반, 기나긴 스리랑카 내전은 타밀족의 패배로 끝났고 그들은 무참히 학살당했다.) 사람들의 절망감만을 담아낸다. 하지만 이 절망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우리의 주인공은 불타오르는 시체의 산에다 지금까지 자신을 구성해왔던 타밀 타이거로써 증거들을 던져넣고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다음 시퀀스의 주인공은, 주인공 남자가 아니라 여자다. 여자는 미친듯이 난민촌에서 어린 소녀를 찾아다닌다. 마침내 부모를 잃은 고아 소녀를 발견한 이 여자는 소녀를 데리고 한 텐트로 가는데, 이때 오디아르는 소녀와 여성의 얼굴을 의도적으로 배재한다. 그들이 모녀로 위장해, 첫 컷에 등장한 남자를 만나 '가족'으로 위장하는 순간 오디아르는 이 두 여자의 얼굴을 다시 보여준다. [디판]이 흥미로운 지점은 여기에 담겨 있다. 영화는 주인공들에 대한 정보를 일부러 미스터리로 남겨둔 채, 그들이 처한 상황과 이에 대처하는 제스처를 보여주다가 그들이 디판, 얄리니, 일라얄이라는 가짜지만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한 순간에야 서사를 전개시키기 시작한다.

[디판]을 만들고 나서 오디아르는 "나는 내가 잘 알지 못하고, 잘 표현해낼 수 없으리라고 생각되는 디테일에 굳이 주목하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밝힌 바 있다. 왠지 변명처럼 들리지만, 사실이다. [디판]은 역사와 정치라는 소재를 다루면서도 개인과 개인과 사회 간의 추상적인 관계에 머물러 있는 특이한 영화다. 초반부가 지나면 영화는 잽싸게 프랑스로 옮겨가며 전쟁의 상흔은 가끔 등장하는 코끼리 몽타쥬 연출처럼 주인공을 압박하는 보조적인 장치로 머문다. 오히려 [디판]은 스리랑카 내전보다는 그 내전으로 어쩔수 없이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이민자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인다.

디판 가족이 중간 기착지로 선택한 프랑스 교외의 공공 아파트는 그 점에서 흥미롭다. [디판]의 허름한 공공 아파트는 이미 정착한 이민자와 막 도착한 이민자 사이에 계급적 격차가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디판에게 일을 소개하는 사람은 흑인이며, 그 아파트에 살고 있는 백인들조차도 가난과 범죄로 인해 유색 인종과 별반 다름없는 모습을 보인다. 디판 가족은 그런 바닥에서 시작해 차근차근 그들의 법칙을 배워나간다. [예언자]가 그랬듯이, 오디아르는 이 과정을 일견 사실적이면서도 강한 심리적인 이미지들을 이용해 응축시키고 터트리는 연출로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 아파트를 쥐고 있는 갱단 두목 브라힘에게선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에서 찾아볼수 있었던 늙고 지친 프랑스와 이민자랑 부대끼며 살아가는 젊은 프랑스라는 구도도 찾아볼 수 있다. 브라힘은 톰처럼 흑인들과 아랍인들을 상대하며, 반대로 브라힘의 아버지는 사실상 죽은거나 다름없이 제대로 소통도 못하고 이민자 얄리니의 손길에 받으며 살아간다.

다만 [디판]은 [위선적 영웅]에서 비롯된 '만들어진 정체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최종 기착지 영국이 아닌 프랑스에 불시착한 디판 가족은 진짜 가족이 되고자 발버둥을 치고, 현재의 차별과 과거의 상흔이 수시로 그들을 엄습해온다. 이 부분에서 [디판]은 명백하게 디판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다. 물론 얄리니와 일라얄 역시 이야기의 주체이며 그들이 새로운 환경에서 느끼는 불안감이 드러나고 있지만 상대적으로 디판의 불안감과 긴장보다 깊게 표현되지 않는다. 우리는 왜 일라얄이 교실을 뛰쳐나와 울먹이는지, 얄리니와 브라힘이 어째서 서로 공명하는듯한 모습을 보이는지 알 수 없다. 그것들은 추상화된 컷 연결에서 암시될 뿐이다.

반면 디판은 본명부터 시작해 얄리니와 일라얄보다 많은 뒷얘기가 공개된다. [디판]에서 제일 인상깊은 장면 역시 디판이 중심이 된 장면이다.. 프랑스에 은거중인 타밀 타이거 대장을 만나는 시퀀스에서 디판은 이전까지 묵묵하고 터프한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이, 무력하고 슬픔에 젖어있다. 그가 대장에게 폭행 당한 직후 강한 저항가를 부르는 장면은 그 표현주의적인 어둠과 연기의 (디판을 맡은 제수타산 안토니타산는 타밀 타이거 출신 작가로, 연기 경력은 한 편밖에 없는 비전문 배우다. 얄리니와 일라얄 역시 비전문 배우다.) 박력에도 불구하고 먹먹한 슬픔에 갇혀 있다. 

이 감수성은 분명 화장실에서 피떡이 된 채 덜덜 떠는 톰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이라던가 첫 살인을 저지르고 혼돈에 빠진 말릭 ([예언자]), 아들을 꺼내기 위해 미친듯이 주먹으로 얼음을 내려치던 알리 ([러스트 앤 본])에게서 찾아볼수 있는 멜로드라마적 감수성이다. 디판 역시 다른 오디아르 주인공들처럼 비극으로 끝났지만 불현듯 엄습해오는 과거와 각박한 현재, 안정감과 애정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가 후반부에 보이는 일련의 저들은, 그런 방황을 조금이나마 인간적인 방향으로 끌어오려는, 현실이라는 중력을 향한 저항이다. 오디아르는 그런 안정감과 애정을 얄리니의 육체와 따뜻한 공원 들판로 대표되는 관능적이고 탐미적인 이미지로, 현실이라는 중력과 그에 대한 저항을 필름 느와르와 액션 영화에서 비롯된 시끄럽고 콘트라스트가 뚜렷한 표현주의적 이미지로 나눈뒤 이를 배치하고 연결하는 방식으로 영화적인 에너지를 구성한다. 

이를 보듯 [디판], 나아가 오디아르가 끄집어내는 영화적 에너지는 과거에서 비롯된 시궁창같은 삶을 거칠게 뚫고 나가면서도 종종 어찌할수 없는 멜랑콜리와 탐미에 침잠하는 모습에서 비롯된다. 죽은 어머니로 대표되는 피아노 음악의 아름다움과 산 아버지로 대표되는 불법 부동산 세계의 지저분함에서 폭발적인 에너지를 품은채 살아가던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의 톰, 순수함을 품은 채 예리하고 냉정한 암흑가의 알 무알림으로 성장하는 [예언자]의 말릭, [러스트 앤 본]의 다리가 잘리고 난 뒤 오히려 관능적인 에너지를 얻어 불법 격투 시합에 관여하게 되는 스테파니와 순수한 사랑과 지저분한 정욕과 분노를 품고 살아가던 알리가 그랬다. 디판은 어둠 속에서 디판이 파는 싸구려 머리띠의 불빛이 켜지다가, 경찰에게 추격받는 장면으로 끝나는 [디판]의 타이틀 시퀀스는 그 점에서 매우 오디아르 특유의 강렬하면서도 멜랑콜리한 이미지의 집약적 폭격이라 할 수 있다.

[디판]이 선택한 폭력적인 클라이맥스는 어찌보면 지금까지 쌓여온 유약함과 불안을 터트리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 이르면 프랑스 하층민의 삶을 보여주던 다큐멘리적 카메라는 [칠드런 오브 맨]을 연상시키게 하는 거친 질감과 박력으로 연기로 둘러쌓인 아파트로 진입하는 디판의 동선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오디아르는 이 장면을 총소리와 연기, 쓰러지는 사람들, 계단을 오르는 디판의 운동 에너지 같은 추상적인 이미지로 배치해 표현주의적인 아름다움과 박력을 표현해낸다. 그리고 그 폭력을 절규와 껴안기라는 멜로드라마적 제스처로 마무리짓는다.

오디아르 영화들은 명확한 서사적 인과 없이 멜로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모호하지만 에너지로 들끓는 상황에 인물들을 던져놓고 끝내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는데, [디판] 역시 그렇다. 좀 더 자세히 분류하자면 소원성취적 결말이라는 점에서 [디판]의 결말은 [러스트 앤 본]에 가까운 편이다. 최종 목적지인 영국으로 추정되는 장소에 옷을 차려입고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디판은, 과연 현실인가, 환상인가? 오디아르는 그저 디판의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얄리니의 손을 클로즈업하는걸로 결말을 마무리 짓는다. 이 제스처의 아름다움 때문에 우리는 그들이 행복한 결말을 맞이했을거라고 믿는다. 즉 아름다움이 서사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마무리되었다고 (실제로는 그 인과성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도.) 믿게 되는 것이다.

[디판]이 지금까지 나온 오디아르 영화 중 박한 평을 받고 있는데, 아마도 이 멜로드라마적인 제스처와 폭력의 결합이 만들어내는 유약하지만 터질것만 같은 영화적 에너지의 결합이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서 아닐까 생각한다. 심지어 결말 부분도 그렇다. 남녀간의 애정과 가족애를 원동력으로 삼는건 이미 [러스트 앤 본]과 [내 심장이 건너 뛴 박동] 등에서 이뤄낸 것이며, 이민자의 불안한 심리를 범죄물이라는 장르에서 시적으로 표현하는 부분은 [예언자]에서 해낸 것이다. 또한 사회역사적 맥락을 배재하고 어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감정의 진폭을 쫓는 오디아르의 태도는 솔직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겉햛기여도 좋으니 디판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사회역사적 디테일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디판 가족은 말릭이랑 달리 프랑스 내에서도 친숙한 사람들이 아니니깐 말이다.

아마 [디판]은 지금까지 만든 오디아르 영화의 스테레오타입에 가까운 영화일것이다. 하지만 그런 도식성에도 [디판]은 종종 잊기 힘든 아름다움을 뽑아낸다. 오디아르가 이런 작법을 고수할지 아니면 다른 단계로 넘어갈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오디아르 영화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디판]은 나쁘지 않은 선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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