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서부극에서 총이 발사되기까지

최근 유행하고 있는 블리자드제 FPS 게임 [오버워치]에 등장하는 맥크리라는 캐릭터가 있다. 대놓고 서부극 무법자를 가져온 이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궁극기는 '황야의 무법자Deadeye'다. 무방비가 되는 리스크를 감수하고 화면에 있는 대상을 오랫동안 조준하고 있으면 한 방으로 처치하는 이 궁극기와 "석양이 진다.... It's High Noon."이라는 대사는 곧 인터넷 상에서 유행어가 되었다. 이 대사는 왜 유행어가 되었는가? 그것은 [오버워치]라는 게임이 빠른 스피드의 하이 테크놀로지를 배경으로 한 하이퍼 FPS의 흐름과 반대로 대상을 처치하기 위해 다소간의 뜸을 들어야 하는, 느긋한 호흡 때문이였다.

'황야의 무법자'가 보여주는 이 느긋한 호흡이야말로, 서부극의 리듬을 이해할수 있는 중요한 단서 아닐까? [오버워치]에서 맥크리를 플레이하는 게이머는 석양을 지기까지, 플레이어는 꽤 오랜시간 인고를 하면서 상대의 틈을 빠르게 파고들어야 한다. 즉 적대하는 상대를 향해 총이 발사되는건 한순간이지만, 그 발사되기까지 그 과정엔 어떤 텀이 있다. 

이런 느긋하지만 결정적인 한 방에 마무리되는 리듬은, 단순히 총이 등장하는 결투 뿐만이 아니라, 서부극 전체의 리듬하고도 연관되어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정오에 이뤄지는 1:1 대결도 대결이지만, 서부극은 총이 발사되는 그 순간이 아니라 총이 발사되기 이전까지의 과정이 중요한 장르다. 심지어 고전들보다 좀 더 자극적인 재미로 무장한 스파게티 서부극이나, 총이 발사되어 피부와 뼈를 찢는 순간에 천착하는 샘 페킨파의 서부극에서도, 세련된 대사를 온갖 문제에 대해 떠벌이는 요란스러운 쿠엔틴 타란티노의 서부극도 자세히 보면 총이 발사되기까지는 일반적인 액션 영화와 비교해보면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총이 발사되는 순간을 묘사하는 컷도 그렇다. 서부극에 등장하는 리볼버나 소총은 현대 액션 영화들의 기관총이나 자동권총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발사되지 않는다. 스피드 클립과 문 클립이 동원되더라도 서부의 사나이들이 들고 다니는 리볼버는 느긋하게 총알이 채워지고 발사된다. 그리고 이런 느긋한 리볼버라는 무기를 묘사할때도 리볼버에서 총알이 떠나는 순간을 과장하거나 극대화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서부극을 보는 사람은 그 느긋한 호흡에 먼저 익숙해져야 한다. 우리는 존 포드의 [황야의 결투]를 보면서 와이어트 어프가 죽은 동생의 복수하기까지 꽤 오랜시간동안 기다려야 하며,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서  [수색자]에서 에단이 조카 가족을 잃은 뒤 조카를 찾고 복수를 하기 위해 1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복수심에 불타는걸 바라봐야 한다. 안소니 만의 [서부의 사나이]에 닥 토빈이 옛 갱단 단원들에게 총을 들이대기까지 우리는 우스꽝스럽지만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 싸움과 처참한 겁탈을 지켜봐야 한다. 심지어 야심 없어보이는 버드 보티커의 [7인의 무뢰한]에서도 초반부 총격전은 시원스럽게 생략되고 벤이 뭘 하는지 궁금해하며 그의 행적을 뒤쫓는다.

이처럼 서부극은 총이 발사될때까지 왜 인물들이 총을 쏴야 하는지를 관객에게 보여주고 납득시키는 장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왜'는 감독들마다 다르게 나타난다. 존 포드의 인물들이 총을 쏘게 되는 과정과, 버드 보티커의 인물들이 총을 쏘게 되는 과정은 매우 상이하다. 포드의 [황야의 결투]나 [수색자], [리버티 밸런스를 쏜 사나이]에 등장하는 총을 든 사나이는 위태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또는 되찾기 위해 총을 쏜다. 안소니 만의 총을 든 사나이는, 과거에서 탈주하고 싶어하는 욕망과 과거 간의 충돌 속에서 총이 발사된다. 버드 보티커의 총을 든 사나이는 자신만의 신념을 위해 저항에서 총을 든다.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무법자들이 등장하는 샘 페킨파의 [와일드 번치]나 [관계의 종말], 멕시코인을 착취하는 고용주에게 총구를 돌리는 보안관이 주인공인 [빅 건다운]은 어떠한가?

좋은 서부극은 인물들이 왜 총을 들어야 하는지를 관객에게 납득시키고 동시에 그 납득에서 귀결된 액션에서 감흥를 안겨준다. 우리는 존 포드의 영웅들이 왜 공동체를 지키고 싶어하는지, 그 과정을 납득한다. 우리는 버드 보티커의 사나이가 가진 결투의 미학이 어떤 윤리체계로 작동하는지 납득하며, .안소니 만의 인물들이 어두운 과거에서 탈주하고자 하는 욕망을 이해한다. 라울 월시나 리처드 플레이셔, 앙드레 드 토스 같은 고전 서부극 감독부터 몬테 헬먼이나 로버트 알트만 같은 수정주의 서부극 감독들까지 필자가 미처 접하지 못한 영화들을 찾아보면 사례는 무수할 것이다. 

그렇기에 좋은 서부극은 총이 발사되는 순간만큼이나 그 이전, 주인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관계나 관계가 안겨주는 드라마도 느긋하지만 성실하게 다룬다. 그 점에서 서부극은 역시 총이 등장하긴 하지만 배배꼬인 상황과 욕망, 그리고 그 위에 드리운 살벌한 철근 콘크리트의 어둠과 씁쓸함에 집중하던 필름 느와르보다도 드라마와 유기적으로 엮인 액션의 순수함을 맛볼 수 있는 장르기도 하다.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