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미드나잇 스페셜 [Midnight Special] (2016)

giantroot 2017. 1. 13. 00:48

2013/05/10 - [Deeper Into Movie/리뷰] - 테이크 쉘터 [Take Shelter] (2012)

2013/12/04 - [Deeper Into Movie/리뷰] - 머드 [Mud] (2012)

제프 니콜스의 SF라는 얘기를 들었을때, [미드나잇 스페셜]이 어떤 영화가 될지 조금 상상이 안 가긴 했다. 2007년 [샷건 스토리즈]에서 출발한 제프 니콜스는 기본적으로 지역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의 영화는 카와세 나오미나 스와 노부히로, 아오야마 신지처럼 어떤 지역을 떠나면 성립하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니콜스는 테렌스 맬릭이나 리처드 링클레이터 같은 희귀한 사례를 제외하면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미국 중남부 서민-화이트 트래시들의 삶에 애정을 느끼고 거기서 출발한다. (심지어 아칸소는 맬릭이나 링클레이터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은 영역이다.) 아칸소 백인 하층민들을 소재로 삼았던 [샷건 스토리즈]와 [머드]. 오하이오와 버지니아라는 남부라는 문화적 친연성을 지닌 곳에서 영화를 만든 [테이크 쉘터]와 리뷰 예정인 [러빙]... 그가 지금까지 만들어왔던 영화는 영화 언어에 미처 포섭되지 않았던 문화와 역사가 담겨 있다.  그 점에서 제프 니콜스는 동시대 감독 중에서도 미국에서만 성립 가능한, 가장 미국적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그런 감독이 장르의 세계에 들어선다니 기대와 걱정이 앞설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드나잇 스페셜]은 생각보다 멀리가지 않았지만 상당히 넓어진 영화다. [미드나잇 스페셜]의 배경인 루이지애나 주는 전작들과 그렇게 떨어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야기나 연출 면에서 니콜스는 장 르누아르부터 시작해 테렌스 맬릭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자연주의 영화의 전통과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카펜터 같은 장르 영화의 거장들을 만나게 하고 있다. 즉 지역 영화가 가지고 있는 디테일을 품고 탈지역적인 장르 요소들을 도입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그의 전작을 보지 못했거나 평범한 관객들이라면 [미드나잇 스페셜]에서 장르로 대표되는 탈지역적 요소를 먼저 발견하고 심심하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 [미드나잇 스페셜]이 다루고 있는 장르적인 요소들은 너무나 구닥다리기 때문이다. 아니 시대가 언제인데 [E.T.]나 [스타맨]에 기독교 구세주 SF 설화를 도입하나? 비주얼은 왜 이렇게 안 멋져? 모름지기 SF 영화란 삐까번쩍 해야지! 이런 반응도 이해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는 지극히 논리적인 선택이다. 상술했듯이 니콜스는 아직은 완전히 다른 공간으로 떠날 생각이 없이, 자신의 땅에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즉 장르를 생각하고 지역을 생각하는게 아니라 지역에서 장르를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미드나잇 스페셜]은 지역이 품고 있는 문화를 장르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으로 장르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그 지역은 바이블 벨트와 늪지대, 황량한 모텔과 주유소, 신흥종교단체로 가득차 있다. [미드나잇 스페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르 영화보다는 지역 영화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니콜스는 장르를 사랑하면서도 자신이 지역 영화를 만든다는걸 명백히 인식하고 있다. 

그 결과 [미드나잇 스페셜]은 심심한 장르 설정과 익숙한 추격전 플롯에서 불구하고 단단하게 뿌리박은 영화 언어 속에서 생경할 정도로 낯섬과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그것은 대부분의 장르 영화들이 가볍게 여겼던 '공간'의 특성 (이는 지역적인 특성이기도 하며 시네마스코프 화면비와 같은 영화적 특성이기도 하다.) 이 강하게 대두되어서 생기는 부분도 있으며 (이 부분은 분명 존 카펜터에게 배운 것이다.), 한국에서는 생소한 미국 남부 고딕의 전통이 새로운 활력을 얻었기에 생기는 부분이 있다.

사실 이런 "공상과학"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비주얼 설계라는걸 생각해보면, [미드나잇 스페셜]이 보여주는 비현실적인 비주얼은 어떤걸 접하고 생각했기에 저런 리듬의 저런 비주얼이 가능한지 묻고 싶을 정도다. 어떤 부분은 바이블 벨트에서 자란 지식인이라는 이점에서 비롯되는 부분도 있다. 영화 마지막에 등장하는 특정 종족의 묘사는 분명 성경에서 비롯된 천사의 이미지를 연상케 한다. 하지만 어떤 장면은 단순히 문화적 이점이라고 넘길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주유소 시퀀스에서 알튼이 기적을 부리는 장면이 그렇다. 느긋하면서도 갑자기 비현실적인 상황이 관객 앞에 툭 떨어지는 이 시퀀스는 경이롭다.

이런 태도는 영화 속 샷과 몽타주를 구성하는 방식하고도 연관된다. 제임스 그레이의 영화들이 그렇듯이 제프 니콜스는 서사에 따라 차곡차곡 누적되는 샷과 몽타주의 구조를 믿는 고전적인 부류의 영화 감독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뉴욕 감독'이였던 제임스 그레이랑 달리 니콜스는 미국 남부 영화인이기에 가능한 느긋한 리듬이 있다.  도입부는 니콜스만의 느긋한 리듬을 잘 보여주고 있다.  시드니 루멧의 [허공에의 질주]가 그랬듯이 우리는 로이와 알튼 일행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도망가는지를 알려면 기다려야 한다.

이는 속도를 중시하는 장르 영화로써는 그렇게 효율적인 방법은 아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미덕이 있다. 니콜스는 자신만의 샷과 몽타쥬 방식으로 천천히 쌓아올리면서 인물들의 불안과 상실, 기쁨과 긴장 같은 감정들은 신중하게 끌어낸다. 그렇기에 니콜스가 선택한 샷엔 신기할 정도로 헤아릴수 없는 인간을 위시한 피사체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가득하다. 마이클 섀넌을 비롯한 연기진들의 연기는 그런 확고한 믿음으로 세워진 샷에서 시작한다.

그 점에서 그는 F.W.무르나우의 [선라이즈]와 장 르누아르에서 발원한 자연주의/휴머니즘 영화의 충실한 후예기도 하다. 우직한듯 보여도 [미드나잇 스페셜]의 인물 관계나 묘사는 어떤 위악이나 아이러니가 담겨있지 않다. 알튼, 로이와 사라의 가족 관계라던가 어딘가 어벙해 보이는 연구원 폴 세비어, 회의주의자 루카스 모두 단단한 존재들이다. 제프 니콜스의 영화가 가지고 있는 강점 중 하나가 바로 위악이나 비극으로 빠질 수 있는 캐릭터에게 단단한 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미드나잇 스페셜]은 아마도 니콜스의 바이블 벨트적인 성향을 가감없이 고백하는 영화기도 할 것이다. 상술하기도 했지만 기적을 일으키는 알튼과 알튼이 속한 특정 종족은 성경에 등장하는 천사와 사도, 신을 떠올리게 한다. 그 점에서 무신론자에게 [미드나잇 스페셜]은 거슬릴 수도 있다. 하지만 [테이크 쉘터]에서 니콜스는 지식인으로써 현실을 근심하면서도 미국 남부인 특유의 독실하게 뿌리박힌 어떤 '믿음'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고자 했다는걸 잊으면 안된다. 

누설 때문에 적을 수 없지만 [미드나잇 스페셜]은 구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던지는 영화기도 하다. 인간 관계에서 이뤄지는 믿음과 사랑에서 출발해 '믿으면 지옥 같은 이 세상에서 구원받아 천당간다' 식의 구약식 죄의식과 맹목적인 믿음을 부정하고 이 지구가 그렇게 나쁜 공간이 아니라는 믿음으로 새로운 구원의 가능성을 열어둔다. 이 점에서 [미드나잇 스페셜]은 '백인의 의무식 구원주의'에 빠진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와 다르다. 제프 니콜스의 지역 영화적 특색은 여기서 다시 한번 발휘한다. 이 땅을 떠나지 않더라도 행복해질수 있다고, 그건 당신들도 마찬가지라고. 니콜스는 그렇게 믿고 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루카스 같은 회의주의자/무신론자인 글쓴이마저도 긍지를 가지게 할 정도로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