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우리 손자 베스트 [Great Patrioteers] (2016)

[우리 손자 베스트]가 처음 공개되었을때, 이 영화에 대한 반응은 소수의 호평 사이에 대다수의 거부감으로 나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불공정한 사람들의 패악질을 주인공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개빻은 한남"인 어버이연합과 일베 이용자를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불러일으켰으며, 그 결과는 흥행 실패였다.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정녕 그렇게 단순하게 내쳐야 하는 영화인가? 이 영화에 대한 비판들을 읽으면서 어딘가 핀트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현실을 반영했다고, 자동적으로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다. 그런 믿음은 루카치의 순진한 믿음이나 다름없기도 하니깐. 하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놀라운 점은 그동안 [잉투기]나 [불청객]처럼 디씨 문화권에 있는 영화들이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도록 제거되었던 불경함과 천박함을 (그게 잘못되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안고 돌파하려는 정치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런 돌파가 성공적이였나는 비판은 가할 수 있겠지만, [우리 손자 베스트]가 돌파한 길은 어느 누구도 가지 않았던 영화다.

초반부에서 모두가 혐오를 표한 장면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교환이 피씨방에 들려 [리그 오브 레전드]를 플레이하다가 옆자리에서 백남기 시위 영상을 보는 남자를 발견하고, [리그 오브 레전드]의 김상현 성우 목소리와 합성한 결과물을 화면 위에 크게 틀어놓는 장면 말이다. 나 역시 이 장면을 보면서 불편하기 그지 없었다. 다른 평론가들도 지적했지만 이 장면은 게임의 유희가 현실의 무거움을 희화화시켰기 때문이다. 디제시스 바깥에 덧붙여진 김상현 성우의 목소리는 디제시스 안 영상에 담긴 현실의 폭력성을 무화시키고 현실의 시공간을 [리그 오브 레전드]의 소환사의 협곡과 같은 하나의 가상으로 만들어버린다. 당연히 정상적인 가치를 지닌 사람이라면 혐오감을 표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 장면이 없었다면 [우리 손자 베스트]가 지금과 같은 강력함을 지닐수 있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이 장면이 의미가 있는 이유는 [우리 손자 베스트]가 강력한 주관적인 세계로 진입한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 주관의 세계는 민주화를 모욕으로 사용하는 일베/디씨의 세계기도 하며, 어버이연합의 세계기도 하다. 포챈이나 디씨, 2채널로 대표되는 이 세계는 유희의 감각으로 모든 심각한 사건을 일그러트리고  자신의 왜곡된 신념에 따라 이미지를 조작하고 퍼트린다. 합필갤과 무수히 널려있는 노알라 짤과 고인 모독적인 짤들을 떠올려보라. 그 짤들은 기본적으로 '조롱'과 '유희'를 무장하고, 사회가 합의한 가치를 훼손하면서 현실의 가치를 흔드려고 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그런 짤들이 가지고 있는 '클로즈 업의 폭력성'을 차용해 첫 시퀀스를 구성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지아장커의 [세계]의 가짜 랜드마크 공원처럼 왜곡된 시뮬라크르로 넘쳐나는 세계다.

그렇기에 [우리 손자 베스트]는 자신만만한 합성 몽타쥬를 지난 이후로는 클로즈 업 대신 풀 샷을 쓰면서 그들의 진짜 정체를 파악하기 시작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가 내세우는 문제의 핵심은 바로 '발기불능'이다.  먼저 교환을 살펴보자. 그는 섹스에 환장하지만 정작 제대로 섹스를 하지 못한다. 야동이 백그라운드로 깔리면서 여성기 짤을 찾아 합성하는 장면이라던가 잠자고 있는 여동생의 팬티를 찍어 올린다던가, 우연히 만난 여자랑 섹스를 하다가 야동 신음 소리를 흉내내는 장면에서 감독은 교환의 세계가 열화복제된 시뮬라크르로 가득차 있으며, 그에게 '섹스'와 '오르가즘'은 타인과 절대로 함께 할 수 없고 오로지 차용하고 왜곡해야만 누릴 수 있는 행위라는 걸 보여준다.

교환이 어머니가 다른 남자랑 섹스하는 장면을 훔쳐본 뒤, 근친상간적인 상상을 하는 장면은 불쾌하지만 문제의식의 핵심을 건드리고 있다. 교환은 어머니의 욕망 이미지를 왜곡해 자신을 그 위치에 '배치'하는 것으로 왜곡된 성욕을 충족시킨다. 김상현 성우의 목소리가 백남기 시위 장면에 덧붙여지면서 타인의 죽음을 협곡의 전투로 만든것처럼 교환은 타인의 섹스 장면에 자신을 '편집'해 집어넣는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의 욕망은 교환에게 아무런 상관이 없어진다. 그 장면에 어머니가 아니라 모르는 여자와 아버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교환 자신의 '자위'다.

이렇기에 교환이 그 왜곡된 편집과 이미지에서 벗어나 실제적인 행위로 넘어가면 초라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우선 그는 테러를 결심하면서도 먼저 온 사람에게 선수치기를 당하며, 그나마 행한 납치 역시 후술하겠지만 우스꽝스럽게 끝난다. 인간적인 교류를 할 수 있는 상대 티파니는 전화 너머 영어를 쓰며, 만나는 것은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다. 당연히 그는 티파니를 찾아가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한남충"이기에 자신보다 약한 박카스 할머니에게 욕과 폭력을 휘두르는 것 밖에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숙희에게 화를 낸 이유도, 약자에 대한 본능적 혐오과 더불어 자신의 자위라는 마지막 보루를 숙희가 마음대로 침입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친절하게도 감독은 벌거벗은채 성기만을 가린 교환을 찍은 뒤 킬킬거리며 사라지는 여성과 교환이 자기 성기를 빨려는 행위를 통해 교환의 발기불능과 초라한 남근을 강조한다.

교환이 정수에게 끌리는 이유도 정수가 교환과 달리 실제적인 폭력을 휘두를줄 아는 틀딱 어버이 연합이기 때문이다. 정수가 교환의 카메라 렌즈를 부러트리는 장면은 분명한 남근의 메타포다. 즉 교환은 자신의 남근을 부러트린 정수에게 발기 가능성과 자신의 수컷성을 회복할 롤모델을 발견한 것이다. 이런 정수의 모습은 교환의 파탄난 가족을 대체할 강력한 가부장상이기도 하다. 교환의 아버지가 운동권 세대이면서도 가정에 무력하며 나아가 아예 가족 해체를 자연스럽게 여기는 모양새를 보이는것과 대조된다. 일련의 매우 유아적인 발상이기에 그들이 만난 후 일련의 조우가 우스꽝스러운 코미디로 흘러가는건 영화적으로 당연하다.
 
하지만 영화는 정수 역시 교환과 다를바 없다는 것도 폭로한다. 정수가 집착하는 남근은 국가 유공자 메달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정수는 국가 유공자 메달을 받지 못하고, 자랑하려고 데려온 진짜 손자는 짜증내며 사라진다. 정수의 이런 모습은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 보여주는 발기불능성은 국가와 파시즘의 문제로 확장된다. 교환이 넘쳐흐르는 자극적인 시뮬라크르에 목을 매며 현실을 왜곡한다면, 정수는 파시즘 국가의 인정에 목을 매며 현실을 왜곡한다. 그렇기에 그들의 만남과 친목은 코미디임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절박해보이고 슬퍼보인다.

그들이 절박하고 슬퍼보이는 이유는, 이미 영화 안에서 답이 제시됨에도 그걸 거부하기 때문이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초장에 프레임 가득히 채워진 일베/디씨 언어가 가지고 있는 왜곡된 시뮬라크르가 가지고 있는 저열한 폭력성을 돌파할 방책을 서사 내에서 제시하고 있다. 김수현 감독은 서브플롯에서 김상현 성우를 본인 역으로 출연시킨다. 이 순간 [우리 손자 베스트]는 메타적인 요소를 함유하게 된다. 한국 리버럴을 상징하는 김상현 성우가 등장하면서 초반부의 파괴되고 모독된 성우의 목소리는 분명한 육체를 가지게 된다.  그 점에서 상현이 교환을 경찰서에서 불러내 교환에게 써내린 댓글을 스스로 읽게 하는 장면은 매우 상징적이고 기묘한 통쾌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기 기묘한 통쾌함은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교환의 납치 실패극으로 이어진다. 교환은 납치해온 상현에게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메시지를 읽도록 협박한다. 자신이 만들어낸 "화면 가득히 덜렁거리는" 파시즘 시뮬라크르와 맹신하며, 그 시뮬라크르의 재료를 제공한 현실의 인물이 자신 아래 굴종하도록 협박하는 셈이다.  하지만 상현은 아무렇지 않게 해낸다. 직후 상현은 교환에게 반격해 자신이 했던 행위를 다시 돌려준다.

당연한 일인게, 상현에게 교환의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상현은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고 우아하고 신랄하게 교환과 교환으로 대표되는 일베충들의 발기불능성을 확인시켜준다. 어찌보면 성우의 목소리만을 시뮬라크르로 포섭하려는 짝퉁 파시스트를 향한 육신을 지닌 성우 자신의 유물론적인 반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점에서 [우리 손자 베스트]는 연대와 신념, 사랑을 추구하는 가치가 어째서 '대안 현실'이니 '위선'이니 같은 공격에도 왜 쉬이 꺾이지 않는지 독특하게 증명하고 있다.

이처럼 상현 뿐만이 아니라 [우리 손자 베스트]의 여성 캐릭터들은 발기 불능된 남성들과 달리 최소한 긍지를 지키고 있다. [우리 손자 베스트]은 다양한 여성 캐릭터들이 가지고 있는 긍지를 하나씩 꺼내보인다. 그건 교환의 어머니처럼 성적 대상화와 딸에게 폭행을 당하고도 [새드 베케이션]의 치요코를 연상케하는 소름끼칠정도로 순수한 모성애이기도 하며, 교환의 여동생 미선이나 티파니처럼 어떤 가치로도 재단되지 않는, 주체적인 에너지와 욕망을 지니며 살아가는 현대 한국 여성의 초상이기도 한다. 그 캐릭터성에 대해 비판할 점이 없다는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우리 손자 베스트] 내에서 그들은 정수와 교환처럼 긍지를 잃거나 추잡해지지 않는다. 

이 여성들 속에서 가장 흥미로운 여성은 숙희다. 박카스 아줌마인 숙희는 정수에게 학대당하고 교환에게도 뺨을 맞으며 욕을 듣는 밑바닥 여성이다. 하지만 숙희는 절망하지 않으며 계속 살아간다. 정작 정수와 교환이 발기불능성에 우울해하는 동안, 숙희는 자신을 좋아하는 할아버지에게 고백을 듣고, 그와 함께 일생을 같이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잡게 된다. 이를 알게 된 정수의 반응은 욕설과 폭력이다. 그 장면 이후 그들은 등장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렇게 모멸받은채 사라지는 것인가? 아니다. 그들은 정수와 교환과 달리, 서사 내에서 관계의 가능성을 확인받았으며 정수의 폭력이나 욕설과 상관없이 어떤 식으로든 관계를 지속해 갈 것이다. 그렇기에 직전 할아버지의 대사는 사무친다. "우리 평생 패배자로 살았잖습니까. 남은 일생이라도 승자로 살아가봅시다."

하지만 정수와 교환은 그런 승리 방법을 승리라 생각하지 못하고 그들을 모욕하며 클라이맥스에 돌입한다. [우리 손자 베스트]는 이 순간부터 갑자기 샷 간의 인과관계가 흐트러지며, 추상적인 결말로 달려간다. 정말로 정수는 암에 걸린 것일까? 교환은 정수를 죽인 것일까? 여기에 대답은 없다. 마지막에 남은건 우스꽝스러운 형식으로 자신의 죽음마저도 시뮬라크르로 교체한 정수와, '내가 찾은 팩트는 바로 나다.'라고 말하며 광장에서 어설프게 춤추는 교환의 풀 샷이다. 

이 결말에 이르면 영화는 다소 주저하고 있다는게 보인다. 김수현 감독은 이들이 어디로 갈지 확신하지 못한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인과관계가 불분명한 이 결말엔 모종의 아이러니가 있다는 점이다. 그들이 영화 내내 추구한 왜곡된 시뮬라크르로 가득찬 소극笑劇과 그 소극 속에서 피워낸 관계는 어떤 면에서 보자면 무의미했고 또한 절실하고 간절했다. 그들은 끝내 숙희나 상현처럼 '진짜' 관계를 맺을 수 없었지만, 그들의 관계는 자신이 만들어낸 시뮬라크르를 뛰어넘어버렸다. [우리 손자 베스트]라는 제목은 그 점에서 그 양면성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 제목엔 일간 베스트를 연상케 하는 왜곡된 가치관과 신념이지만, 동시에 정말로 '우리' '손자' '베스트'라는 칭찬을 담고 있다. 그런 칭찬 속에서도 일베충 교환은 여전히 왜소하고 작은 성기를 연상케하는 프레임 속에서 어설프게 춤춘다. 교환은 주어진 발기불능성을 딛고 정말로 행복해질수 있을까?

[우리 손자 베스트]에서 등장하는 교환이 일베충의 모든 모습은 아닐것이다. 영화 촬영이 끝난 뒤 일어난, (김상현 성우의 후배 성우가 겪었던) 끔찍한 사태와 집단 광기는 교환 앞에서 먼저 테러를 벌였던 또다른 일베충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 도사리고 있다는 걸 보여줬다. "그나저나 사회정의를 외친다고 밥줄을 끊는다던가 그런 일이 일어나는데..."라는 영화 속 김상현의 대사가 현실에서도 정말로 일어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영화 역시 나와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는 그들의 언어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그리고 그걸 어떻게 영화적으로 형상화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는가? 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 [우리 손자 베스트]는 그 질문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가 자신이 믿는 긍지라는 가치를 답으로 냈다.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