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eper Into Movie/리뷰

비디오드롬 [Videodrome] (1983)

giantroot 2009. 1. 2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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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어렸을때, TV에서 영화를 소개시켜주는 프로그램를 열심히 본 적이 있었다. 그 때 소개해 준 영화 중 가장 충격적이였던게 무엇이였냐 물으면, [비디오드롬]을 들 수 있다. 뭣도 모르는 초등학교 꼬마 남자애에게 살아 숨쉬는 비디오나 얼굴에 TV를 갖다대는 장면은 쇼킹했다. 그 후 영화에 눈 뜨면서 이 영화와 감독 데이빗 크로넨버그는 일종의 금기 및 신비로운 존재로 남겨져 있었다. 그리고 최근에 감상한 바로는 그런 금기와 신비로움이 절대로 허투로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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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주인공 맥스는 평범하지만 자신만만한 인물이다. 그는 자극을 팔아 장사를 하고 그것에 대해 자기합리화한다. 그 합리화에는 나름대로 자기 논리가 서있는데, 그가 운영하는 유선 방송은 자극적인 포르노와 다양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에게 선보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자극을 원하는 사람들이 그의 방송에 열광하고 있기 때문이다. 맥스는 시청자들을 보며 그들이 자기 손아귀에 있다고 생각하며, 자신은 그들을 관찰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비디오드롬에 집착한 이유는 장사가 될 줄 알아서이며, 그 잔인함에 호기심을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비디오드롬을 접하면서 그는 자극에 빠져들어가고 결국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며 그의 신체와 정신은 기괴하게 변형되기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그의 자신감도 끔찍하게 파괴되기 시작한다. 그의 자신만만함은 결국 착각이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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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의 변형은 일종의 제의 같다. 처음엔 환각을 보는 등, 정신적인 부분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배가 비디오 데크처럼 갈라지고, 총과 손이 결합된다. 자극이 강해질 수록 그의 변형은 가속화 된다. 그리고 그 결말은 파멸이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비디오드롬과 관련된 인물은 맥스와 비슷하게 파멸을 맞이한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인류보완계획처럼 인류를 새로운 종으로 진화시키고자 하는 할란과 베리는 결국 맥스에게 죽임을 당하고, 순수하게 중독되었던 브라이언과 닉키 역시 비디오드롬 속에서 죽는다. 결국 미디어에 중독된 인간의 결말은 파멸뿐이다. 맥스의 진화 역시 파멸을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크래쉬]의 등장 인물들이 자동차 충돌에 매달리지만 진정한 소통 없는 상태에서 어정쩡한 결말을 맞듯이, 새로운 자극과 신체는 인간을 궁극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

나는 이 영화가 무척 잔인할 것이라 생각했다. 막상 보니 잔인하긴 하지만, 그럭저럭 소화 가능했다. 25년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러서 일까? 하지만 이 영화의 잔인함은 무언가 달랐다. 불쾌하면서도 음산한 기운을 가지고 있었다. 애니매트로닉스 기술로 찍힌 H.R.기거 풍의 특수 효과들은 뚜렷한 부피와 존재감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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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에서 주제의 실마리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이 영화의 불쾌함과 잔인함에는 어떤 의미가 깃들어 있다. 생체병기처럼 뒤틀린 비디오 테이프와 권총, 신체 절단 및 변형, SM와 페티쉬의 향취가 느껴지는 섹스 신... 하나같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다. 절대로 허투로 삽입되거나 낭비되지 않는다.

그들이 비디오드롬에 중독된 이유도 바로 이런 의미와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다. 자극적인 내용에 면역되었다고 자부하는 맥스가 비디오드롬에 중독된 이유는 무엇인가? 단지 그가 보던 이전의 영상물보다 화끈해서? 절대 아니다. 비디오드롬은 자기 논리 체계와 주장이 있다. 그 논리와 주장은 사람들을 설득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다.

한가지 재미있는 점을 찾아보자면 논리 체계와 주장은 이상하게 종교의 그것와 많이 닮아있다. 중독된 사람들이 비디오드롬에 대해 찬양하고(ex.닉키) 그 논리에 따라 행동하는 것도 신도들과 닮아있다. 특히 맥스가 환상 속 계시를 듣고 사람을 살해하는 장면에서는 노골적이다. 즉 비디오드롬은 새 시대의 종교인 것이다. 기존의 종교와 다른 점이라면 이 종교에서 벗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고, 구원 따윈 없다는 것이다. 결국 공포 영화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 이 영화의 본질은 새로운 종교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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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빗 크로넨버그는 극단을 탐하지만, 그의 시선을 반대로 차분하고 정교하다. 비교적 초창기 작품인 이 작품은 종종 야심이 통제를 벗어나는 부분도 있지만(종종 2% 넘친 듯한 설명 컷) B급 호러의 잔혹함과 서스펜스를 주제 의식과 뒤틀린 미학을 연결시킨 그의 상상력과 야심은 충분히 대가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전혀 허세나 과장이 없이 간결하지만, 사람들을 골똘히 생각하게 하는 힘이 있다. (반대로 이야기 하자면, 그의 영화를 글로 풀어내기란 의외로 힘들다.)

[비디오드롬]은 상당히 불쾌하면서도 강렬한 힘을 가진 영화이다. 그 동안 강도가 쎈 영화가 나타나면서 잔혹함은 많이 사라졌지만, 크로넨버그의 의도는 잔혹함의 강도가 아닌 주제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이 영화의 주제는 거의 앞으로 다가올 묵시룩처럼 보이는데, 영화가 보여준 세상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PS1. 영화의 명장면이라면 악역이라 할 수 있는 베리가 뒤에서 죽어가고 있는 동안 맥스가 "Long Live With New Flesh!"라고 참석자들에게 신경질적으로 단말마를 외치고 마이크를 집어던지고 퇴장하는 장면일 것이다. 그 날 선 듯한 연기와 장면 편집(마이크 컷이 유달리 인상 깊었다.)이 훌륭했다.
PS2. 부모님하고 같이 봤는데, 아버지는 안 좋아하셨다.
PS3. 여담인데 크라이테리언 컬렉션(*DVD 제작 회사)의 센스는 절륜에 도달해 콸콸 넘칠 지경이다. 아 그 비짜 테이프의 센스를 DVD 커버로 그대로 재현하다니! 전집으로 질려줄만한 물건임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