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번째 창문
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아키 카우라스마키 (1)
과거가 없는 남자 [Mies Vailla Menneisyytta / The Man Without A Past] (2002)


과거가 없는 남자 (2005)

The Man Without a Past 
8
감독
아키 카우리스마키
출연
마르쿠 펠톨라, 카티 오우티넨, 후아니 니에멜라, 카이하 파카리넨, 사카리 쿠오스마넨
정보
코미디, 드라마 | 핀란드, 독일, 프랑스 | 97 분 | 2005-10-14
다운로드

키 카우라스마키의 [과거가 없는 남자]는 시작하자마자 캐릭터의 소개 대신 캐릭터의 정체를 지워버리는 것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그렇기에 영화는 내내 이 남자의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으로 이끌고 간다. 허나 영화는 그 대답을 계속 유보하면서 이 정체 없는 남자가 어떻게 밑바닥 생활에서 살아남는지를 주목하게 한다. 먹고 살기 위해 막노동부터 시작한 이 남자는 구세군에 속한 노처녀 이르마를 만나 연애 비스무리한 것을 시작하게 되고, 여러 일들을 거치며 다시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애를 먹는다.

아키 카우라스마키 영화들이 그렇듯이 [과거가 없는 남자]에 담긴 하층민 세계는 버스터 키튼과 찰리 채플린을 빌어온 부조리 코미디에 가깝다. 모든 사람들이 딱딱한 표정을 지으며 말 대신 음성학적인 흉내를 내는 그런 세계다. 물론 그 세계의 캐릭터들은 사실적이라기 보다는 과장된 톤으로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악당인것처럼 나오지만 사실은 착한 관리인 캐릭터라던지 은행 강도 에피소드들이 그렇다. 이 외에도 정갈할 정도로 1950년대 풍의 색감과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를 떠올리게 하는 약간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쓸쓸한 연기 지도와 인물 배치, 구식 로큰롤과 엔카들이 예전부터 쌓여져온 아키의 세계를 확고하게 하고 있다.

다만 [과거가 없는 남자]는 다른 카우라스마키 영화들과 달리 정체성의 문제를 개입시켜 역설적인 질문을 하나 던지고 있다. 과거가 없는 남자가 찾는 과거가 마냥 행복하거나 정당한 것인가? 영화는 이 질문을 극중 반전으로 통해 던지고 있다. 과거가 없는 남자는 후반부에 이르러서 허탈할 정도로 쉽게 과거를 찾아내는데, 그 과거는 그렇게 좋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박 중독에 옛 아내에게 불친절하고 때론 폭언을 퍼부었던 못난 남자였던 것이다. 그런 과거를 뒤로 하고 옛 아내는 새로운 애인과 함께 새 출발을 준비하려고 하고 있다. 이때 남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놀랍게도 그는 그렇게 원하던 과거를 선택하지 않는다. 옛 아내의 행복을 빌면서 그는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해 새로운 시작을 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렇게 찾던 과거로부터 내려온 자신의 정체성 대신 지금까지 새로이 만들어진 정체성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아이러니함은 곧 영화의 주제 의식하고도 관계가 있는데 카우라스마키는 정체성이라는 것도 결국에 유동적인 것이며 그런 확고한 과거에 대한 집착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0에서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을 통해 구원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구원은 구세군 설정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거가 없는 남자]의 이런 갱생 과정은 예수의 부활을 비롯한 기독교에 나오는 고난, 부활과 구원에서 상당히 많이 빌려오고 있다. 하지만 [과거가 없는 남자]의 고난, 부활과 구원은 인간의 세계에서 이뤄지고 있다. 재물을 빼앗으려는 악인들에게 고통받은 뒤 신분마저 삭제당해 '호모 사케르'가 된 결함많은 남자는, 거렁뱅이들로 대표되는 무표정하고 우스꽝스럽지만 선한 사마리아인들을 통해 구원을 받는 것이다. 

심지어 신의 위치에 가까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르마조차도 인간이 외로운 캐릭터로 묘사된다. 영화는 이 이르마에게 과거가 없고, 자신도 모르는 0의 존재인 M을 선사해 관계 맺기를 통한 구원을 추구한다. 이런 신성의 영역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내는 과정은 M이 구세군 밴드를 로큰롤 밴드로 개조시켜 거렁뱅이들의 찬사를 받는 에피소드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 밴드가 무표정하게 로큰롤과 종교적 메시지를 결합하는 부분은 웃기지만 동시에 거룩한 면모를 가지고 있다. 신성과 기적은 더 이상 하늘에만 머물지 않고 근현대적으로 규정되어 옥죄는 시민으로써 정체성과 그것이 만들어낸 호모 사케르적인 재난을 뛰어넘는 연대의 가능성으로 묘사된다. 이 점에서 [과거가 없는 남자]는 [망념의 잠드] 중반부에 다뤘던 기억을 잃은 아키유키가 겪는 치유 과정을 떠올리게 한다.

아키 카우라스마키의 영화들은 대체적으로 다양하다기 보다는 한 우물을 파내려가면서 거기서 주제를 담아내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다. 이후에 찍은 [황혼의 빛]과 비교해보자면 [황혼의 빛]은 좀 더 느와르 영화를 비롯한 고전 영화광적인 시선을 기반으로 쓰러지지 않는 인간의 의지를 강조하는 영화였다. [황혼의 빛]이 보여주는 고전 영화에 대한 독특한 변주도 인상깊긴 하지만 고통과 고난이 다소 인위적으로 조작됬다는 점이 호불호가 갈릴수 있다면, [과거가 없는 남자]의 근대 시민의 정체성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그것을 감싸는 인간적인 가능성에 대한 우스꽝스럽지만 따뜻한 고찰은 이견이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조작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의 대표작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Comments,   0  Trackbacks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