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157

아직 끝나지 않았다 [Jusqu'a La Garde / Custody] (2017)

영화의 시작은 이혼 소송을 위해 출근하는 조정위원들이다. 그들이 자리에 앉고 나면 카메라는 두 인물(과 그들의 변호사)을 병렬로 배치한다. 앙트완과 미리암. 미리암은 앙트완이 가족들에게 수시로 폭력을 휘두르는 남편이었다고 주장하며, 반대로 앙트완은 미리암이 믿을수 없는 아내였으며, 자식들을 협박해 자신을 피해 다녔다고 한다. 그 다음 부부의 성격에 대한 다른 이들의 증언이 나온 뒤 이야기는 부부의 아들인 줄리앙으로 넘어간다. 줄리앙의 증언은 부부의 소송에 영향을 미칠 중대한 증언이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입증되기 부족하다고 앙트완은 주장한다. 감독 자비에 르그랑은 주장을 하는 두 인물의 숏을 병렬적으로 배치하고 (둘은 시퀀스가 끝날때까지 서로 마주보지 않고 조정위원만 바라본다.) 주장이 끝났을 무렵 앙트완..

어둠의 표적 [Straw Dogs] (1971)

2018/01/30 - [Deeper Into Movie/리뷰] - 가르시아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 샘 페킨파의 [어둠의 표적]은 매우 이상하게 시작한다. 잠깐 어딘가 앉아있는 아이들을 보여주더니 갑자기 이미지를 흐린 뒤 타이틀을 띄운다. 그 흐릿한 이미지의 정체가 다시 밝혀지는 순간은, 타이틀이 다 뜨고 난 뒤다. 사실 그 이미지는 교회 묘지에서 놀고 있던 아이들의 모습이다. 곧 데이비드와 에이미가 도착한다. 감독 이름을 알지 못하더라도 재빠르고 잘라낸 시선 숏으로만 제시되는 에이미에게서 상당한 불쾌함을 느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노골적인 관음 숏이기 때문이다. 대상은 그 자신이 노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른채 성적인 이미지를 흘리며, 관음..

사느냐 죽느냐 [To Be or Not To Be] (1942)

저 유명한 햄릿의 대사에서 따온 제목을 보면 마치 거창한 영화처럼 보인다. 하지만 에른스트 루비치의 [사느냐 죽느냐]는 셰익스피어 영화가 아니다. 그렇다고 왕실 암투극인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영화의 시대는 1940년대 폴란드 극단, 즉 동시대다. 이 영화에서 사느냐 죽느냐는 나치 앞에서 이뤄지는 문제다. 그런데 이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는 거창한 레지스탕스 활동이 아니다. 영화는 마치 현재의 암울함과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모르는 것처럼 희극적 설정을 깔아둔다. 마리아와 요셉은 반 나치적인 풍자극과 셰익스피어를 연기하는 폴란드 배우 부부다. 요셉이 고뇌에 잠겨 있는 동안, 마리아는 자신의 팬인 소빈스키 중위를 만나게 된다. 마리아는 소빈스키에 푹 빠지게 되고 요셉은 우연히 그 사실을 알고 질투하게 된다. ..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 [Le lion est mort ce soir / The Lion Sleeps Tonight] (2017)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카메라가 돌아간다. 죽음을 맞이하게 된 배우는 테라스에 있는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이때 카메라는 늙은 배우의 얼굴로 다가간다. 스와 노부히로는 [오늘밤 사자는 잠든다]를 시작하면서, 의도적인 기만을 부린다. 사전정보 없이 이 영화의 도입부를 보게 된다면, 시퀀스 배치가 잘못된 것 아닌가라는 위화감을 받게 될 것이다. 누군가의 죽음을 시작으로 하다니. 당연하겠지만 이 장면은 극중극이다. 컷 소리와 함께 배우는 눈을 다시 뜨게 되고, 다음 시퀀스인 분장실로 넘어간다. 촬영을 종료하고 장은 스태프에게 말한다. 옛날 독립 영화는 원 신 원 컷으로 찍었고 다음이 없었다고. 스와는 여기에 동조하듯이 도입부를 원 신 원 컷으로 찍었다. 시간 이미지가 타임코드의 데이터로 기록되는 시대에서 스와..

은빛 지구 [Na srebrnym globie / On the Silver Globe] (1988)

한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쓰면서, 제작 당시 상황은 영화 속 샷과 시퀀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긴 하다. 현장에서 누가 싸웠다던가, 이 장면은 어떤 과정으로 찍었고 어떤 난항을 겪었는지 같은 정보는 샷과 시퀀스의 의중을 파악할 단서와 더불어 논리의 근거를 더해준다. 하지만 대부분의 영화에서 제작 당시 상황은 앞으로 펼쳐질 서사에 관여하지 않는다. 현실을 허구의 영역으로 끌어오는 순간 영화는 메타픽션의 미로가 되버린다. 그럼에도 제작 당시 상황을 영화로 끌고 왔다면 그래야만 했던 사정과 고백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가장 유명한 예로는 오손 웰즈가 있다. [위대한 앰버슨가]를 기점으로 만들어진 웰즈의 영화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무자비한 편집 가위와 관객들의 무관심 속에서 투쟁..

Deeper Into Movie/리뷰 2018.02.22 (2)

패터슨 [Paterson] (2016)

뉴저지 주 패터슨 시에 대해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구 10만명 정도 되는 이 소도시는 치안이 그리 좋지 않다는걸 제외하면 흔한 교외 지역이다. 하지만 짐 자무시의 눈에 이 평범함은 단점이 아니다. 오히려 강점이다. [패터슨]은 일종의 농담으로 영화를 시작한다. 패터슨 시에 사는 버스 드라이버이자 시인 패터슨 (아담 드라이버가 연기하는)이라는 말을 들으면, 보통 코미디 영화인가 싶을 것이다. 어느 정도는 유머기도 하다. 자무시가 유머를 싫어했던 적이 있었던가? 하지만 A-B-A 구조가 문학의 운율이나 리듬을 연상케하는걸 주의해보면, [패터슨]의 반복된 유머는 영화의 구조를 암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다르 이후에 데뷔한 영화 감독답게 구조를 생각하면서 만드는 감독이긴 했지만, [패터슨..

Deeper Into Movie/리뷰 2018.02.12 (1)

가르시아 [Bring Me The Head Of Alfredo Garcia] (1974)

[가르시아]는 연못에서 시작한다. 이 영화의 첫번째 샷은 위태롭다. 한 소녀가 연못 경계에 있는 나무에 누워 있다가,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일어서서 저택으로 돌아간다. 그런데 소녀는 마치 물에 빠질것처럼 누워있다. 왜 하필 물가에서 영화를 시작할까. 아마도 이 영화 감독이 샘 페킨파여서 그럴지도 모른다. 헤모글로빈과 슬로모션에 취한 성질머리 더러운 마초. 그 마초는 물의 죽음과 땅의 생명 그 사이에 잉태를 할 수 있는 여자를 배치하면서 영화의 주제를 제시한다. 죽음과 삶, 그리고 매장의 경계를 여인이 가로지를 것이다. 그리고 슬로 모션은 죽음을 끊임없이 지연시키며 기록할 것이다. 곧이어 소녀가 위태롭게 누워있었던 이유가 등장한다. "알프레도 가르시아의 머리를 가져와라." 멕시코 갱 제페의 선언으로 [가르..

바다의 침묵 [Le Silence De La Mer / The Silence of the Sea] (1949)

장 피에르 멜빌은 이전까지 없는 길을 만들면서 영화를 시작했다. 멜빌은 메이저 스튜디오에 들어가지 않고 존 카사베티스가 그랬듯이 개인 스튜디오를 차렸다. 멜빌은 장편 데뷔작으로 베르코르 (본명 장 브륄레)의 소설 [바다의 침묵]을 점찍었다. 멜빌이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던 도중, 런던 공습 아래에서 마음을 빼앗겼던 소설이었다. 하지만 당시 영화계가 그랬듯이 조합에 소속된 멜빌이 판권과 영화 제작 권리를 얻는건 힘든 일이었다. 결국 긴 투쟁 끝에 베르코르가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고 영화화하는데 허락했다. 그 조건은 바로 24명의 레지스탕스 멤버들에게 영화를 보여준 뒤, 투표를 해 공개 여부를 결정한다는 점이었다. 말이 결정이었지, 24명 중 1명이라도 반대했다면 감독 멜빌은 다른 데뷔작을 들고와야 할 상황이었다..

굿타임 [Good Time] (2017)

(누설이 있습니다.) [굿타임]의 시작은 뉴욕 상공이다. 사프디 형제는 그 상공에서 한 건물로 쭉 확대해 들어가다가 한 인물의 클로즈업으로 바꿔치기 한다. 이 도입부는 당혹스럽다. 뉴욕이라는 배경이 제시되자마자 마스터 샷 없이 한 인물의 내밀한 표정이 곧바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인물은 정상이 아니다. 닉이라 불리는 인물과 상담사와의 대화는 제대로 된 샷-리버스 샷 구조를 구축하지 못하고 계속 빗나간다. 부조리극 같은 오프닝 시퀀스에서 폐소공포증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굿타임]을 보는건 그리 적합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굿타임]은 이 장면 이후로도 뉴욕이라는 대도시를 배경으로 끊임없는 클로즈 업의 미로로 관객을 인도하는 영화기 떄문이다. 이 불편한 대화 시퀀스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형 코니에게 ..

자유의 이차선 [Two-Lane Blacktop] (1971)

2016/12/03 - [Deeper Into Movie/리뷰] - 바람 속의 질주 [Ride in the Whirlwind] (1966)2017/01/26 - [Deeper Into Movie/리뷰] - 복수의 총성 [The Shooting] (1966)[자유의 이차선]은 이전작처럼 길에서 영화를 시작한다. 길 위에 선 몬테 헬만의 인물들은 집으로 갈 생각이 없고, 어디론가 향해 가는 것으로 서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자유의 이차선]은 전작에서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먼저 시대가 현대로 변했고 주인공 자리엔 잭 니콜슨 대신 비치 보이즈의 데니스 윌슨과 싱어송라이터 제임스 테일러가 대신하고 있다. (헬만이 사랑한 워렌 오츠는 계속 나온다.)또한 부조리한 상황 앞에서 길을 잃거나 도주해야 했던 이전작과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