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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일본애니 (2)
돌아가는 펭귄 드럼 [輪るピングドラム / Mawaru-Penguindrum] (2011)


브레인즈 베이스, 킹 레코드, 마이니치 방송. 총 24화x25분. 화면비 1.78:1
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시리즈 구성/각본: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이카미 타카요伊神貴世 캐릭터 원안: 호시노 릴리星野リリィ 캐릭터 디자인: 니시이 테루미西位輝実
컨셉 디자이너: 나카무라 쇼코中村章子, 시바타 카츠키柴田勝紀  아이콘 디자인: 오사카베 와타루越阪部ワタル 음향감독: 이쿠하라 쿠니히코幾原邦彦, 야마다 요우山田陽 음악: 하시모토 유카리橋本由香利
프로듀서: 이케다 신이치池田慎一, 마루야마 히로오 丸山博雄 

캐스트:  키무라 스바루木村昴 (타카쿠라 칸바 / 펭귄 1호), 키무라 료헤이木村良平 (타카쿠라 쇼마 / 펭귄 2호), 아라카와 미호荒川美穂 (타카쿠라 히마리 / 크리스탈의 공주 / 펭귄 3호), 미야케 마리에三宅麻理恵 (오기노메 링고 / 우타다 히카리), 노토 마미코能登麻美子 (토키카고 유리), 이시다 아키라石田彰 (타부키 케이주), 호리에 유이堀江由衣 (나츠메 마사코), 코이즈미 유타카小泉豊 (와타세 사네토시), 토요사키 아키豊崎愛生 (오기노메 모모카), 아리나미 카즈사荒浪和沙 (나츠메 마리오), 와타나베 유이渡部優衣 (이소라 히바리)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은 어디까지 할 수 있겠습니까?

-종이접기 살인마, [헤비 레인]

(전략)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은 훨씬 강한 것
우리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우리보다 현명한 사람들의 사랑보다도
그래서 천상의 천사들도
바다 밑 악마들도 내 영혼을 
아름다운 애너벨 리의 영혼에서 떼어버리지 못했네.

-에드가 앨런 포우, ‘애너벨 리Annabel Lee’

공주가 다녀간 후 나무가 되살아나니 꽃을 보는 인간은 이 얼마나 기쁜가.
그녀가 지상에 남긴 흔적들은 어디를 봐야하는지 아는 자들에게만 보인다. 

-나레이션, [판의 미로]

이쿠하라 쿠니히코의 복귀작 [돌아가는 펭귄 드럼] (이하 펭귄드럼)의 도입부는 평범한 편입니다. 아예 학원-배틀만화 장르 클리쉐로 시작했던 우테나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평범한 판타지 미스테리물 도입부라 할만합니다. 병약한 여동생을 살리기 위해 여동생의 운명을 바꿀수 있는 핑드럼이라는 정체불명의 무언가를 찾아나서는 두 쌍둥이에 대한 이야기죠. 하지만 이런 명쾌한 미스테리는 3화만에 곧 미궁 속으로 빠집니다. 핑드럼은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주변 인물들의 음모와 비밀, 꿈이 마구 펼쳐지면서 이야기는 미궁속으로 빠져들어갑니다.

펭귄드럼의 이야기 전개는 데이빗 린치 영화의 그것과 비슷합니다. 나름 현실을 기반으로 진행되고 있는 척하곤 있지만 잘 보면 현실과 비현실의 구분은 모호한데다 과거의 망령들은 현재에 간섭하고 말도 안되는 설정들이 튀어나옵니다. 막판엔 아예 대놓고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부숴버리고요. 이 부숴버림은 어느정도 주제하고도 연관이 되어 있습니다. 증오로 가득찬 과거의 망령이 현재의 사람들을 조종해 자신이 싫어하는 현실을 공격하고자 하는거니깐요. 이런 점은 일본의 과거사나 지금 현실하고 묘하게 맞물려서 흥미로운 해석거리를 만들기도 합니다. 어찌보면 이 점을 보자면 펭귄드럼은 쿠로사와 키요시 같은 일본 호러 영화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현실에 영향을 미치고 파괴하는 망령'이란 화두하고도 연결되어 있는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펭귄드럼은 각본이 좋은 애니는 아닙니다. 논리는 종종 어처구나 없이 비약하고, 스토리 배분이나 템포는 문외한이 봐도 이상한데다 (초반 링고 비중이 지나치게 좀... 많은데다 짜증나죠. 하나하나가 나중에 다 도움이 되기 때문에 쉽게 빼긴 뭣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맥거핀 난무에, 시퀀스 간의 연결고리는 덜컹거리고 (타부키와 유리는 아무리 꿈의 논리로 봐도 조금 더 심리/장면 묘사가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충분히 캐릭터가 살아있긴 하지만.), 몇몇 등장 인물들의 심리는 다소 흐릿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려러니...하고 짚고 넘겨야 할 부분도 많아요. 대사들도 무척이나 인공적이고요. 절대로 영화학교 극작술 시간에서 다룰만한 이상적인 각본은 아니며, 이쿠하라 자신도 좋은 각본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우테나를 보고 있는데 에노키도 요우지가 얼마나 좋은 작가인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완벽한 균형을 찾지 못하고 실패했지만, 펭귄드럼이 풀어내는 꿈들은 이 때문에 오히려 더욱 강해집니다. 펭귄드럼이 펼치는 꿈은 그야말로 질보다는 양과 비논리의 힘으로 밀어붙이는 꿈들입니다. 우테나처럼 질서정연한 조각 같은 꿈이라긴 보다는 괴상하게 흐트러져 불쾌하지만 기묘한 매력을 안겨주는 불균질한 꿈인거죠. 거기에 [은하철도의 밤] 같은 일본 애들 특유의 동화적이고 시적인 슬픔과 아련함이 결합되어 있습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이를 위해 동원하는 장치들은 인상적입니다. [은하철도의 밤]의 모티브를 따온 동화적인 분위기와 그 뒤에 숨겨진 금기들이 겹처 만들어내는 잔혹동화적 무드, 부셔저 흩날리는 어린이 브로일러의 조각들, 애니메이션에서만 가능한 과장된 움직임 (생존전략 시퀀스가 그렇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연출과 액팅, 뜨악하고 캠피한 막장 유머, 픽토그램으로 단순화된 무채색의 엑스트라들과 그와 대비되는 호시노 릴리와 캐릭터 디자이너 니시이 테루미가 제공하는 쁘띠하면서도 탐미적인 캐릭터 작화, 원색과 무채색이 기묘하게 배합된 색채 디자인, 꽉 짜여진 초현실적인 미장센, 다재다능한 편집 기법과 이미지 배치, 얀 띠에르상(특히 [아멜리에] 사운드트랙에 영감을 받은 부분이 많습니다.)과 칸노 요코을 벤치마킹한게 분명하지만 상당히 인상적인 주제를 제공해주는 하시모토 유카리(+일본 글램 록 밴드 ARB 커버) 의 음악 등... 개별 요소들도 훌륭하고 그걸 조합해내는 이쿠하라의 센스도 상당한 편입니다.

게다가 아무리 설명이 부족하고 개별 요소가 이상한 각본이라도 펭귄드럼의 각본은 나름 꿈과 시적 논리가 서게 도와주고 주제가 뭔지 알 수 있도록 캐릭터 설정이나 감정선 같은 요소들이 교통정리가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적어도 뭔소리인지 모르고 막 씨부리며 '이건 시란다, 시 발싸! 켈켈켈' 거리는 애니는 아니에요. 그래서 생각보다 그 환상들이 조잡하거나 민망하진 않습니다. 대신 초반엔 환상의 패턴이 다소 단순했다는 점은 지적하고 싶습니다. 뭐 초반의 링고가 그만큼 단순했다는 반증으로 볼수도 있겠지만요.

펭귄드럼이 뭘 말하고 싶은가는 의외로 단순한 편입니다. 바로 1화에도 못박듯이 사랑 이야기죠. 하지만 펭귄드럼은 단순한 '남녀의 사랑'에서 벗어난 박애 이야기입니다. 사랑이 없어지고 인도하는 가치관이 없어지고 증오와 테러리즘, 광기가 난무하고 과거에 망령에 사로잡힌 21세기에서 서로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랑'을 찾아나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이야기죠. 링고가 일기의 정체를 모르고 있다던가, 막판에 밝혀지는 핑드럼의 정체도 그렇습니다. 이 점에서 펭귄드럼은 [하이바네 연맹]이라던가 무라카미 하루키나 미야자와 켄지같은 일본 '환상' 문학의 전통과 맞닿아 있습니다. (실제로 저 둘은 이 애니의 주제하고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메세지가 단순강렬한 편이기 때문에 꿈의 힘이 조금 반감되는 효과도 있지만 (주제 묘사도 조금 손해보는 면도 있습니다.) 대신 이 메세지가 굉장히 강한 정서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지라 일장일단이 있습니다.
 


주역 성우진들은 그냥 그렇습니다. 칸바 역의 키무라 스바루는 연기 자체는 그냥저냥인데 억양이 너무 강해서 깎이는 것 같고 (본토에선 놀림거리...), 히마리 역의 아라카와 미호는 확실히 어색해요. 묘하게 캐릭터하고 맞아떨어져 귀엽긴 합니다만. 주역 중에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사람은 쇼마 역의 키무라 료헤이와 링고 역의 미야케 마리에입니다. 그 중 경력이 있어 안정적인 연기를 들려주는 키무라 료헤이보다는 단역을 전전하다 이번에 발탁된 미야케 마리에가 가장 인상깊습니다. 얄밉고 짜증나는 캐릭터에서 극적으로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캐릭터로 변해가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냈다고 할까요. 심지어 1인 2역도 꽤 능숙하게 소화해냈습니다. 물론 녹음 테크닉이 좀 동원됬겠지만...

오히려 조역들이 뽕을 잘 뽑은 편입니다. 타부키 역의 이시다 아키라가 들려주는 부드러움 뒤에 감춘 광기는 이 성우가 역시 찐득한 광기 연기엔 탁월하다는 걸 느끼게 하고, 유리 역의 노토 마미코 역시 좋은 앙상블 연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래는 좀 깼지만 일부러 그렇게 한 것 같으니...) 그리고 마사코 역의 호리에 유이는 커리어 사상 가장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줍니다. 평소 쓰는 톤하곤 다른데다 엄청나게 망가지는 연기인데 상당히 노련하게 그걸 통제하고 있습니다. 한때 연기 못했다고 까였던 걸 생각해보면 격세지감이죠. 이쿠하라가 쉬고 있던 사이 데뷔했던 성우들이 캐스팅 되어 이쿠하라 극 연기를 들려주는 재미와 우테나 주역들의 카메오를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특히 토요사키 아키와 박로미, (위에도 적었지만) 호리에 유이는 꽤나 깨는 캐스팅였는데 의외로 극에 잘 녹아들더라고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쿠하라는 말하고 싶은 주제를 생각하고 그 다음 이미지를 맞춰가면서 이야기를 만든 것 같습니다. 적당히 자신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 표현하고 싶은 이미지를 만들고 그것이 주제와 말이 되게 연결한 느낌이랄까요. 적어도 펭귄드럼을 통해 뭔가 이치에 맞거나 논리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하려는 강박관념은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주어진 예산 내에서 즐겁게 장면을 만들고 사람들과 다양한 피드백을 하면서 이야기를 꾸려나간것 같습니다. 작업 현장이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쿠하라 자신은 재미있게 만들었을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청자들에겐 그렇지 않습니다. 펭귄드럼은 2010년대에 나온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상당히 불친절한 애니에요. 명확한 논리가 완전히 파괴된 채 마구잡이로 쏟아지는 이미지들과 미스테리들, 동성애나 근친, 스토킹 같은 금기 파괴를 받아들이는건 꽤 힘든 일이며 우테나가 추구한 차근차근하게 쌓아가며 만들어진 카오스와 구성미, 주제를 사랑했더라면 펭귄드럼의 (의도한건지 아닌지 잘 모를) 불균질한 카오스는 도무지 받아들이기 힘들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우테나 팬들 사이에선 꽤나 까이는 편입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마치 [올드보이]나 [복수는 나의 것]을 기대하고 보러갔다가 [박쥐]를 보고 나온 관객들 같은 심정일것이니.

하지만 펭귄드럼이 선사하는 꿈들과 이미지의 향연들은 신보 아키유키나 콘 사토시하고는 완전히 다른 테이스트를 제공하기 때문에 쉽사리 무시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쿠하라가 연극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곤 했지만 펭귄드럼은 연극이라긴 보다는 영상이 할 수 있는 특색을 잘 알고 있는 애니입니다. 이쿠하라 쿠니히코의 모든 매력을 드러내기엔 다소 투박하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강렬한 힘을 가지고 있는 애니라 생각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전 이 애니를 2011년의 일본 TV 아니메를 뽑아줄 용의가 있습니다.  2011년 일본 TVA계에서 불었던 오리지널 애니메이션 열풍 중에서 가장 '이단적'이고 '문제적'인 애니라 할만합니다.

P.S.1 이쿠하라 쿠니히코가 데이빗 린치와 작업하고 싶어했다는 인터뷰는 꽤 흥미로웠습니다. 펭귄드럼은 상당히 '데이빗 린치'스러운 애니거든요. 데이빗 린치보다는 훨씬 명확한 편이지만.

P.S.2 요새 우테나를 보고 있습니다. 근데 초반만 봐도 확실히 펭귄드럼하고 비교되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래서 살짝 추가해놨습니다. 리뷰 쓸 것 같지만 여기엔 안 올릴듯 합니다. 이 리뷰를 여기에 올리는 것은 펭귄드럼 감상글을 연재하는 것을 마무리 짓는 글이기 때문이여서... 참고로 새벽에 삘받아서 막 써서 글이 난잡합니다. 지적 허영심스러운 부분도 있고 (...) 블로그에 올라가는 글은 아마 더 다듬어지고 늦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볼 사람도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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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애니메이션 보고 워낙 이해안가는 부분들이랑 납득이안되는 부분이있어서..
    뭘 말하고싶은지를 모르겠는데 님이쓰신 리뷰를 보니 아, 이렇게 생각하면되는구나라는 부분이 참 많네요;... 잘보고갑니다
  • dk
    좋은 리뷰 잘 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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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앤 버니 [TIGER & BUNNY] (2011)


일본, 2011

선라이즈, 반다이 비주얼, 마이니치 방송. 총 25화x25분. 화면비 1.78:1

감독: 사토 케이이치さとうけいいち
시리즈 구성/각본: 니시다 마사후미西田征史
캐릭터 원안/히어로 디자인: 카츠라 마사카즈桂正和 
캐릭터 디자인: 하야마 켄지羽山賢二/야마다 마사키山田正樹 
메카 디자인: 안도 켄지安藤賢司 
음향감독: 키무라 에리코木村絵理子 
음악: 이케 요시히로池頼広 

캐스트: 히라타 히로아키平田広明 (와일드 타이거 / 카부라기 T. 코테츠) 모리타 마사카즈 森田成一 (버나비 브룩스 Jr.) , 코토부키 미나코寿美菜子 (블루 로즈 / 카리나 라일), 오카모토 노부히코岡本信彦 (오리가미 사이클론 / 이반 카레린), 쿠스노키 타이텐楠大典 (록 바이슨 / 안토니오 로페즈), 이세 마리야伊瀬茉莉也 (드래곤 키드 / 황 파오링), 이노우에 고우井上剛 (스카이 하이/ 키스 굿맨), 츠다 켄지로津田健次郎 (파이어 엠블렘 / 네이선 시모어) 카이다 유코甲斐田裕子 (아니에스 쥬베르), 후쿠다 노부아키福田信昭 (앨버트 매버릭), 히다카 리나日高里菜 (카부라기 카에데)


[TIGER & BUNNY]는 요새 '보기 드문' 일본제 아니메이긴 하지만, 장르 전체 역사에서 보자면 흔해 빠진 축에 속합니다. 당장 가까운데서 찾아보자면 커머셜/셀레브레티 히어로라는 같은 소재를 공유하고 있는 [초인동맹에 어서오세요!] 같은 한국제 라이트 노벨도 있으며, 멀리 가면 마블이나 이 주제를 본격적으로 화두화시킨 앨런 무어의 [왓치맨], 2000년대 들어 헐리우드에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은 ‘현실의 무게에 고뇌하는 히어로물’-2000년대 들어서 진행된 실사판 [스파이더맨], [배트맨] 시리즈, 이보다 조금 말랑한 느낌의 [인크레더블] (개인적으로 초인동맹보다는 이쪽하고 훨씬 가깝다고 생각합니다.)의 영역에 속해 있는 애니입니다. 이런 경우 자신의 아이디어에 대해 과대평가하고 가능성은 파지도 않는 작품들이 꽤 있는데 [TIGER & BUNNY]는 그런 몰상식한 작품은 아닙니다.

[TIGER & BUNNY]가 이 장르를 이용하는 방식은 정석적이지만 상당히 영리합니다. 이야기 자체는 장르 원형을 따르긴 하지만, 사토 케이이치 감독과 각본가 니시다 마사후미가 그려내는 주인공 히어로들은 평범한 회사원들입니다. 다소 셀러브레티 면모가 있는 회사원들이죠. 이 부분에서 타이거 앤 버니는 [오피스]나 [IT 크라우드] 같은 풍자적인 직장 코메디 장르를 끌어옵니다.

애니가 주로 코메디로 삼는 것은 커머셜 히어로와 거기에 관계된 업계인들의 캐리커처, 코테츠로 대표되는 그 나이 또래 아저씨들의 너절한 태도 (거기엔 오지랖과 다소간의 허세도 포함됩니다.), 버나비로 대표되는 뻣뻣할정도로 ‘히어로물 주인공’ 특유의 진지한 태도입니다. 이런 전략은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각자의 장르에선 익숙한 이야기들이 다른 장르의 화법을 통하니 전혀 다른 느낌으로 화학 작용이 일어나게 된겁니다. [인크레더블] 수준의 풍성한 텍스트까진 아니지만 히어로 장르에 대한 흥미로운 주석이라 할 부분도 존재합니다. 애초에 사토 케이이치 감독도 특촬물/히어로 덕후인데다, [시티 헌터], [빅오], [얏타맨], [마징카이저], [슈퍼 레인저] 시리즈 같은 특촬물이나 액션 장르 애니들을 만든 사람이니깐요. 적임자라 할수 있는 사람입니다.
 


사토 케이이치와 각본가 니시다 마사후미가 이를 위해 동원하는 다양한 소품들과 슬랩스틱 코메디들은 상당히 효과적입니다. 특히 2쿨 후반에 등장하는 코테츠의 커피 장면은 유머가 풍부한데다 서스펜스도 만만치 않습니다. 사토 케이이치의 전작들이 한없이 무겁고 시리어스했던 걸 생각해보면 당황스러울 정도입니다. (검은색 덕후를 가지고 개그를 치던 [빅오]가 있긴 하지만 직접 감독한 것은 아니니 제외합니다.)

하지만 타이거 앤 버니의 유머는 풍자적이긴 하지만 블랙 유머이거나 매섭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패기많고 날카로운 20대를 보내고 사회에 안착한 성숙한 30-40대 장르 예술가가 자신과 자신의 환경들을 관찰하고 훗훗하며 웃는 느낌입니다. 무엇보다 애니는 코테츠처럼 허당이지만 성실하고 진지하게 자신의 일과 가치관에 임하는 로맨틱한 이상주의자들에게 동정적인 편입니다. 이 애니의 악당들은 그 이상주의자들을 비웃는 사람들이죠.

이를 구현하기 위해 니시다 씨가 캐릭터 메이킹과 그것을 굴리는 과정, 써내려가는 대사가 상당히 능숙합니다. 우선 단순한 섹시 어필 캐릭터로 끝났을 법한 블루 로즈가 자신의 만들어진 캐릭터에 불만을 표하는 의외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상사와 계약 문제로 다투거나 찝쩍대는 오카마 캐릭터로 끝났을법한 파이어 엠블렘도 코믹 릴리프가 다소 과도하긴 하지만 꽤 유능한 경영인이자 조력자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성실한 어른으로 묘사됩니다. 아니에스도 단순한 훼방놓는 여성 상사 캐릭터를 넘어서 '자기 관리에 신경쓰는 프로 방송인'의 모습을 적지만 알차게 보여주고 있고요.
 


주인공 코테츠도 상당히 입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단순히 오지랖이 넓고 고지식한 캐릭터 에서 머무르지 않고 오지랖이 깨알같은 코메디로 치환되기도 하고, 자신이 던진 오지랖이 역으로 돌아와 상처받고 고민하기도 하며 반대로 자신에게 닥친 문제 때문에 자괴감에 빠져 있지만 남들을 위해 애써 숨기기도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코테츠가 자기가 생각하는 것만이 진리인줄 알며 턱에 힘만 주는데도 다들 어맛! 멋져! 하고 따르는 평면적이고 재수 없는 돌대가리 꼰대 캐릭터가 아니라 유머 감각이 있으며 나이스한 인물이라는 점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 점이 코테츠에 대한 시청자들의 감정 이입을 높이고 있거든요. 게다가 그에 대해 별로 알리바이를 주지 않고, 필요하다면 주저없이 여러 고난에 빠트리고 유머꺼리로 만드는 각본의 태도도 그 나이스함을 배가하고 있습니다.

담당 성우인 히라타 히로아키도 그 점에서 꽤 좋은 캐스팅입니다. 그 나이대에 있을법한 아저씨의 모습과 허세, 고민을 잡아내 그 속에 슬랩스틱 코메디부터 진지함 모두 담아내고 있거든요. 연륜에서 나오는 느긋하지만 성실한 목소리엔 어른의 매력이 묻어나옵니다. 연기할 건덕지가 많은 캐릭터라 녹음하면서 굉장히 즐기지 않았을까 추측해봅니다.

다른 주인공인 버나비는 덜 재미있습니다. 사실 얘는 무척이나 정통적인 '히어로물 주인공' 타입의 캐릭터거든요. 하지만 이 캐릭터의 고민은 상당한 당위성과 무게를 가지고 있으며 그 점에서 코테츠의 좋은 상대이기도 합니다. 코메디 상대역으로도 좋고요. 특히 각본이 저 ‘히어로물 주인공’이 으레 보이는 진지한 태도를 가지고 코메디를 만드는 부분이 상당히 뛰어납니다. (유명한 ‘네놈 반격인가!’이나 너무나 뻔뻔하게 그라비아 아이돌 촬영에 임하는 장면들은 정말 본인은 진지하지만 빵 터지는 부분이죠.) 모리타 마사카즈는 이 역을 맡을 수 있었던 또래 다른 남자 성우들보다 딱히 특출나게 잘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최소한 캐릭터를 잘못 해석해 뻣뻣하게 캐릭터와 겉돌거나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무게를 허세로 추락시키거나 반대로 너무 무겁게 만들거나 그렇진 않습니다. 아마 모리타 마사카즈 커리어에서 얼마 안 되는 빛나는 역일겁니다.

전반적으로 ‘늙다리’ 스러운 캐스팅이 돋보이는 애니인데, 다들 연륜답게 안정적으로 극의 연기를 끌고 가고 있습니다. 사이사이에 배치된 신인들도 기능적으로 알맞은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요. 성우 간의 화학 작용도 좋습니다. 아마 이런 훌륭한 앙상블 연기는 작년 가장 인상적인 성우 연기를 들려줬던 [다다미 넉장 반 세계일주]의 음향감독의 공이 클 것입니다. 물론 장르 특성상 코테츠를 제외하면 주인공 일행보다는 악역 쪽이 훨씬 인상적인 연기들을 들려주긴 합니다.
배경이 되는 슈테른빌트도 재미있는 곳입니다. 빅오의 패러다임 시티처럼 구식 미국 아니메의 모노톤의 묵직함과 전작 [카라스]와 [C]의 불야성의 대도시, 부글부글 끓어 넘치는 다양한 인종들과 사람들 묘사, 축음기나 [메트로폴리스] 같은 구식 SF의 향취와 스마트폰이나 화상통화 같은 현실 세계에 깊숙히 침투한 문명의 이기들이 공존하는 슈테른빌트 시의 묘사 는 매력적입니다.


아무래도 히어로물인지라 액션 액팅을 이야기해야 될 듯 합니다. 기본적으로 타이거 앤 버니의 액션은 서로 치고 받는 타격감과 무게감, 땀냄새를 강조하는 편입니다. (굿 럭 모드 연출만 봐도 알 수 있죠.) 전작 [카라스]에서 보았던 카라스장갑이 만들어내는 육중한 느낌과 타격, 그것과 대조되는 빠른 속도와 합이 만들어내는 장중한 느낌의 액션 연출에서 속도의 비중이 줄어든 느낌입니다. (예외라면 버나비 VS. 루나틱과 25화 막판 액션인데 이 장면들은 상당히 속도감이 있습니다. 스카이 하이도 예외에 속하는데 이 캐릭터도 상당히 빠른 액션을 선보입니다.) 그래서 얼핏 보면 심심하다 할 수 있는 액션 연출으로 느껴질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무와 액션의 합을 자세히 뜯어보면 상당히 리드미컬하게 잘 짜여져 있으며, 이를 통해 꽤 인상적인 장면들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13화 연막 작전, 16화 시스 전의 처절하게 퍽퍽 치고 받는 부분이라던가, 23화에서 버나비와 코테츠가 도개교에서 싸우는 부분, 25화 마지막 전투 씬은 아날로그 액션 특유의 육중함과 장중함이 배어 있습니다. 이런 느낌의 느릿하고 합의 리듬과 타격감을 중시하는 연출은 솔직히 요새 ‘아니메’ 액션 연출에서 보기 드문 연출이라 신기하기까지 해요. (*요새 아니메의 액션 연출들은 타격감 보다는 작화를 왜곡하면서까지 과장되고 현란한 액션 연출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심지어 아날로그 향취의 땀내나는 액션과 타격감을 아니메로 가장 잘 재현해내기로 유명한 제작사 본즈조차도 여러 가지 작화 기교를 이용해 양념을 뿌리고 있죠.) 다만 히어로 간의 연계 작전이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는 건 조금 아쉬웠습니다. 아무래도 이야기 전개상 서로 연계할 기회가 적었던 게 큰 이유겠죠.

가끔 너무 정석적인 전개를 한다던가- 조금 더 영악하게 굴어도 괜찮지 않았나 싶네요.-능력자물 특유의 매력이 적다는 등 소소한 단점들 때문에 소위 괴물같은 걸작은 못되지만 [TIGER & BUNNY]는 요새 본 활극 활동사진 중에서는 최고급이라 할만합니다. 정말 이만한 즐거움을 안겨주는 애니는 오래간만이여서 ([마법소녀 마도카 마기카]나 [그 날 본 꽃의 이름을... (아노하나)]도 이 경지까진 못 갔습니다.) 단점이 있더라도 전 관대하게 보고 싶습니다. 재기발랄하고 유머가 넘치고 아이디어도 잘 써먹는 장르 애니입니다.

P.S.1 리뷰 시스템을 바꿔봤습니다. 캐스트/크레딧을 추가했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런데 왠지 귀찮아서 다시 원래대로 복귀할것 같기도 하고 음 (...)
P.S.2 그런데 솔직히 좋은 애니라 생각하지만 이 엄청난 인기는 팬인 저도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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