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ليس هناك ما هو صحيح ، كل شيء مسموح به Nothing is true, Everything is permitted.
장르문학 (1)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 [The Spy Who Came in from the Cold] (1963)
추운나라에서돌아온스파이
카테고리 소설 > 영미소설 > 영미소설일반
지은이 존 르카레 (열린책들, 200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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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르카레의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첩보 장르에서 중요한 대접을 받고 있는 소설입니다. 르카레는 실제로 첩보원 생활을 한 사람이였고 (대사관 쪽의 화이트 스파이였다고 합니다.) 그의 경험은 소설의 중요한 뼈대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보통 스파이 소설이라고 하면 007처럼 간지나는 남자와 세계를 위협한 사악한 악당, 화려한 액션을 생각하기 마련입니다. 이 소설은 그런 환상을 철저히 제거합니다. 액션은 세 장면 정도 등장하고, 게다가 화려함 없이 처절하고 비루한 발악에 가까운 묘사로 표현됩니다. 첩보 장면도 철저히 심리전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주인공도 제임스 본드와 다릅니다. 앨릭 리머스는 그레고르 잠자나 아카키 아카키예비치의 첩보원 판이라 할 정도로 관료사회에서 천천히 마모되어 가는 중년입니다. 게다가 이야기는 작전의 실패로 좌천 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데 그 좌천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는 좌절을 보면 오히려 정리해고 당한 중년의 현시창 소설처럼 보입니다. "부채꼴 사북까지 뒷걸음질친 그는 지금 핑그르르 뒤로 돌아선다. 제정신이 든 눈에 비친 푸른 광장이 거기 있다."라는 광장의 구절이 생각난다고 할까요.

-이렇게 중반부까지 현시창 묘사가 이어지다가 중반부부터 다시 첩보물로 전환합니다. 관리관은 앨릭을 시켜 다시 한 번 동독으로 스파이로 보냅니다. 자신의 존재 의의 회복과 자신을 위기에 몰아넣은 부정한 존재 문트를 파멸 시킬 수 있다는 생각에 열의를 가지게 된 리머스지만 그 결과는 또 현시창이 됩니다.

-아까 소설의 첩보 장면이 철저히 심리전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는데, 이 심리전이 무척 재미있습니다. 앨릭은 첩보에 노련한 프로이며, 그 프로다움으로 심리전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정중하고 예의 바른 (게다가 양도 무척 많습니다.) 대화 속에 숨겨진 거짓과 기만, 그리고 간파 같은 서스펜스 상당히 밀도높게 짜여져 있습니다.

-물론 이 두뇌전도 주제와 관련 있습니다. 르카레가 그려내는 첩보전은 관계, 특히 현대 사회의 관계의 연장선상입니다. 첩보원 생활에 잔뼈가 굵은 앨릭에겐 관계는 그저 목적(첩보전에서 이기기 위한 수단)을 이루기 위한 수단일뿐이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친밀함에 대해 의심하고 위장하고 거부합니다. 반대로 리즈는 사람과의 진실한 관계를 믿는 사람이고, 앨릭에게 사심없이 접근합니다. 처음엔 거부하는 앨릭이였지만, 결국 리즈로 대표되는 사랑과 온기를 긍정하는 모습을 보입니다지만 끝내 이뤄지지 못합니다. 책 뒤 해설을 보면 르카레라는 성은 필명인데다 아버지는 사기꾼이였다고 하는군요. 현대인들의 거짓과 위장에 대한 르카레의 관심은 어쩌면 이런 내력에 바탕을 두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르카레는 현실적인 비전으로 등장 인물들의 세계를 바라보지만, 그 시선은 냉소주의라기 보단 오히려 그 관계를 잔인하게 무화시키는 현실에 대한 차디찬 고발에 가깝습니다. 그 점에서 마지막 결말은 무척이나 허무하지만 동시에 절망적인 낭만주의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런 절망적인 낭만주의는 르카레가 2001년에 발표한 [콘스탄트 가드너] 같은 작품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추운 나라에서 돌아온 스파이]는 사람과 이상을 거짓과 음모를 이용해 마구 쓰다가 버리는 기계적인 체제에 대한 냉정한 폭로와 거기에 고립된 현대인들의 고독을 다루고 있습니다. 어찌보면 로버트 러들럼의 [제이슨 본 시리즈] 같은 체제나 관료주의에 대한 비판적인 첩보물의 길을 열었다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분량 조절이 잘 된 편입니다. 반전을 효과적으로 활용한데다 그 반전 이후 이어지는 결말은 간략하지만 강렬합니다. 무엇보다 초반부의 현시창 묘사를 중후반부의 첩보전하고 유기적으로 연결을 잘 한 점을 높게 사고 싶습니다. 현실의 비루함과 차가움을 묘사하면서도 후반부의 서스펜스와 연결되는 떡밥을 치밀하게 뿌려놓았다고 할까요.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적도록 하겠습니다. 

"상대를 속이는 것은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다.그의 적은 외부에만 있는 것만 아니라 내부에도 있다."

"배우나 사기꾼은 때때로 그것을 즐기는 관객의 입장으로 돌아갈 수 있지만, 첩보원은 그렇지 못하다" (정확한 문장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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